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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세상 나누기]

판결 - 영화 <뮤직박스>

푸른비 이창우 (mediamall)
2018-08-15 09: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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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검찰이 '94세의 노인을 3,681명의 죽음에 방조한 혐의로 기소'하였다는 BBC 기사가 떠오른다. 그 기사 중 일부에서 독일 검찰은 94세가 된 그가 1944년 나치 죽음의 수용소에서 군의관으로 일했다고 밝혔다. 그는 군의관으로서 수용소가 기능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가 근무했던 기간에 일어난 학살에 관련되므로 아우슈비츠의 죽음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는 것으로 기소 이유를 밝혔다.

 

독일의 검찰이 하는 일은 다음 세대들에게 역사를 통해 세월이 얼마나 흐르든 상관없이 과거의 그 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교훈으로 남기고 있다. 한국의 검찰은 어떠한가. 도대체 법치국가에서 산다는 의미가 무언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삼권 분립의 민주국가에서 사법부의 독립은 행정부나 입법부와 같은 위상이 있는 거 아닌가. 사법부는 독립성을 포기하면서 역사의 흐름과 민주주의를 거스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이게 법 이래, 하면 그런가 보다, 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의 시선으로 정치인들과 관련된 사건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거지. 여당과 야당 정치인의 잘못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너무 편파적이라는 거. 법이라는 것이 이렇게 상대적으로 적용된다면 그건 분명 옳지 않은 일인데도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지 말이지. 한국 사회는 후대에 어떤 교훈을 남길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다.

 

1990년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 <뮤직 박스>에서 답을 찾아본다. 미 형사사건 일류 변호사인 앤 탤버트는 헝가리에서 이민 온 아버지 마이크 라즐로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앤은 아버지 마이크가 2차 대전 중 ‘애로우 크로스’라는 경찰 조직의 일원으로 양민을 학살하였으며, 그런 사실을 숨기고 불법으로 입국한 이민자라는 법원의 통지를 받는다.

 

앤은 의심의 여지도 없이 이를 모함이라 생각하고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 마침내 혐의 내용이 무고라는 점을 입증한다. 아버지는 유능한 딸을 자랑스러워하며 무죄판결의 기쁨에 젖어 파티를 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앤은 아버지 친구의 유물인 뮤직 박스 안에서 헝가리에서의 아버지의 옛 사진들을 발견한다. 그 사진 속엔 애로우 크로스 제복을 입고 양민을 학살하는 아버지의 사진이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무죄를 증명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외손자를 데리고 승마를 가르쳐 주는데, 앤은 눈물을 머금고 검사에게 수십 장의 증거 사진들이 동봉된 편지를 보낸다. 사랑과 정의라는 이름의 힘. 그녀가 법조인이기에 선택해야만 하는 정의로운 일이다. 하지만 법조인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개인적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오로지 그녀의 양심에 달린 문제가 된다.

 

정의가 상대적으로 판단될 때 법치 국가라는 말은 진정성을 잃게 된다. 그렇기에 정의로운 일을 선택했을 때 현실적으로 나에게 불이익이 온다는 것을 알고도 정의를 선택한다는 것은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양심의 문제라 생각한다. 양심껏 살면 더 손해를 보는 세상에서 양심은 곤경에 처하는데 그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사회 정의가 실현된 시간만큼의 축적된 환경에서 가능한 인성이겠지.

 

제 아버지가 한 일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자식이 아니라면 고뇌 따위는 필요도 없을 거다. 그 사례야 현재 내 나라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으니까. 과연, 아버지를 향한 사랑보다 정의를 선택한 앤을 패륜아라 할 수 있을까? 정의는 개인의 양심에서 시작되어 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기에 내 양심에 비추어 움직이면 되는 거라 생각한다. 정의는 그렇게 지켜져 나가는 것이며 정의와 사랑은 비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

 

앤이 아버지를 선택해서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그 사랑의 힘을 지속할 수 있을까. 존경심이 사라진 부모를 사랑하는 일이 진정한 것일까. 가족이기에 관계의 지속은 되겠지만 이미 그 관계는 형식에 불과한 것이니 그녀는 결국 두 가지를 다 잃게 되었을 거다. 오히려 앤의 정의로운 선택은 그런 아버지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분명 아버지의 과거 행동은 옳지 않은 일이었고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은 아버지가 져야 할 마땅한 것이기에.

 

사법부가 공정성을 잃지 않을 때 그나마 남은 정의는 숨을 쉴 수 있을 거다. 인류 역사에서 문명인의 야만스러움은 계속됐고 현대는 더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나 보다. 합법을 가장한 불법이 권력 남용으로 넘치고 정의를 지키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 부정의를 옹호하는 사회이다. 한 개인이 무엇을 따르는가에 따라 신념은 야만을 부르기도 하고 인간다움을 지키게 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현실이라고 합리화해도 옳지 않은 일은 옳지 않은 것이니까.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 여전히 비틀거릴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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