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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세상 나누기]

당신의 욕망과 내 욕망이 더해질 때

푸른비 이창우 (mediamall)
2018-08-24 09: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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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하우스/ 프랑스와 오종 감독

 

“토요일에 피자 먹고 TV 봤다. 일요일엔 피곤해서 뒹굴었다. 48시간 지낸 이야기가 겨우 두 문장이야.”

“그 정도로 형편없어요?”

“48시간 동안의 주말 얘기를 쓰랬더니 두 문장 이상은 쓸 재간이 없는 거지.”

 

영화에서 문학 선생과 그의 아내가 숙제를 점검하며 나누는 대화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대상에 대한 편애는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편애가 나를 지탱하는 현실에서 많은 것을 앗아갈 수도 있지만 나를 더욱 열렬하게 살아갈 수도 있게 하거든요.

 

영화의 배경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국립고등학교는 시범학교로 지정되어 혁신적 교육정책으로 교복을 도입합니다. 학교 전통을 살리고 학생을 배려하여 가정환경이 다양한 만큼 교복 착용은 대담한 시도라 말하지요. 교장은 이 대담한 정책을 통해 차별 없는 평등교육을 실현하자는 거랍니다.

 

 

새로운 교육의 역사를 여는 것이라던가. 꽤 익숙하게 들어온 그럴싸한 교육정책 같지만, 과연 그럴지요. 이런 획일화와 교육 행정에 맞춰야 하는데 싫증이 난 비 주체의 교육 현장에 주체인 한 명이 있다면 선생으로서 그 특별함에 주목하는 것을 편애라 할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는 의문입니다.

 

문학 선생인 클레망에게 학생 클로드의 작문 숙제는 그와 클로드를 연결하는 시작이었습니다. 클로드의 상상력에 클레망의 지도로 계속되는 이야기는 현실과 허구를 오가거든요. 영화는 보는 이를 혼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디까지가 영화에서 진행되는 현실이고 무엇이 클로드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부분인지를 알아서 판단하시라는 듯 뒤통수를 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상력의 지평을 열어두는 결말에서 잔잔한 감동을 건네는 영화입니다. 선생과 학생의 형식적인 관계가 아주 특별한 관계로 이어지는 현실은 드물지만요.

 

어쨌든 영화는 현실에서 있음 직한 일들이지만 허구이니까요. 반대로 허구이지만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사회적으로 이어지는 이 관계 맺음에 지금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린 상상력의 힘으로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뻔한 답을 내놓게 됩니다.

 

극단적인 생각은 치우더라도 상상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니까요. 대부분 상상력은 창조의 과정이고 그것이 파괴적이진 않다고 보지 않던가요. 하긴 늘 선택의 문제는 주체자들에 의해 시작되는 인간의 욕망이니 결국, 인간성에 달린 문제이죠.

 

 

처음 둘이 앉아 클로드의 문학적 상상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클로드와 클레망의 표정을 보면 둘이 같은 것을 상상하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선생의 욕망과 학생의 욕망이 가리키는 것은 어긋나 있거든요. 서로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겁니다.

 

클레망의 아내를 통해 그의 이루지 못한 작가의 욕망을 표현합니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입니다. 나는 클로드의 문학적 재능, 그 특별함에 빠질 수밖에 없는 자기 사랑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되더군요.

 

클로드의 문학적 상상력을 도와주기 위해 결국 그의 이성은 마비됩니다. 그를 위해 클레망은 수학 시험지를 빼내게 됩니다. 클로드의 상상력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친구의 집에 머물 방법을 찾습니다. 친구의 수학 공부를 도와주고 있는 클로드에게 친구의 수학 점수를 높여 그 집에 드나들 수 있도록 도운 것이지요. 이 유출 사건은 결국 클레망 선생을 파멸로 몰고 가게 됩니다.

 

이것은 단지 클로드의 재능을 위한 선택이라기보다는 그 안에 잠재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의 선택에 대해 영화에서는 딱히 감추려 들지도 않습니다. 현실에서 쉽게 저질러지는 대리만족처럼 친애하는 대상을 향한 선생의 마음이 이기적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무척 힘이 들죠. 그래서 개인의 욕망이 또 다른 대상에게 이입되면 욕망의 끝은 파괴적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대상의 특별함에 끌려 진정한 교류로 이어갈 수 있다면 그 둘의 존재를 빛나게 할 수도 있겠지요.

 

어떤 집이든 틈이 있게 마련이죠. 방법만 찾으면 간단해요. 나 좀 도와줄래요?

 

 

현실에서 모든 것을 다 잃고 홀로 남은 클레망에게는 돌아와 옆에 앉은 클로드가 있습니다. 이제 처음 그 둘이 만났을 때와는 다른 눈빛이 느껴집니다. 그 둘의 상상력은 이제 함께 날개를 달게 되는 현실로 열릴 가능성이 보입니다. 꽤 안정적이라 생각하는 자신의 환경에 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당신과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게 될까요? 현실에서 이룬 것을 다 잃고 나서 다시 새롭게 마법처럼 열릴 힘이 있다고 믿으시는지요.

 

현실에서 쌓아 놓은 사회적 위치를 다 잃어버린 선생과 잃을 것이 별로 없었던 학생 클로드의 만남은 서로의 욕망을 채우려는 필요 때문에 이어지는 관계에서 진정한 관계로 변화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재능에 관심이 있던 이유가 선생 자신을 위한 욕망이었다 해도 그 안에는 재능 있는 학생에게 느끼는 친애의 힘이 전해진 것이겠지요. 때로 우리는 자신이 만든 상상의 모습에 홀로 사랑에 빠지기도 하니까요.

 

생각해 보면 현실에서 아주 작은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늘 건네던 친애의 힘이 마법같이 현실로 스르르 열리기도 할 것 같거든요. 요즈음처럼 이해관계로만 맺어지는 사람과 사람의 일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사회 분위기는 습한 여름의 기운만큼이나 무겁습니다만 이 영화를 보며 그 틈에서 숨구멍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지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겠지요. 훌륭한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한 권의 책으로 자신의 재능의 한계를 알아차리고 말았던 문학 선생의 욕망은 클로드에게 이입되고 말았던 거니까요. 그는 마법 같은 일을 간절하게 바랐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개인의 상상력은 세상의 고정된 시선에 왜곡되어 겨우 지탱하기도 하지만 다시 떠오르는 태양처럼 미래 가능성의 시간으로 빛나기도 하지 않던가요.

 

 

제르망 선생은 그의 아내, 직장까지 다 잃었다. 하지만 그의 곁에 남은 나는 다음 이야기를 시작한다.

 

클로드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이제 그의 욕망은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 이제 이 영화에서 빠져나와 당신과 할 수 있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펼쳐 보고 싶습니다. 너무 많은 틈으로 붕괴가 올 수 있는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진심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그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지요. 습한 여름밤에 시원한 맥주와 마주하면 더 신날 것 같습니다.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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