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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세상 나누기]

시스템 오류인가 조작인가

푸른비 이창우 (mediamall)
2018-09-05 15: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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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스스로 인터넷 홈페이지 표지에 ‘정의의 파수꾼, 국민과 함께하는 정의의 파수꾼’으로 표방을 하고 있다. 2014년 12월 19일은 한국사회의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악덕의 민주주의를 확인하게 되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날이다. 국민들이 정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진실을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라고 기대하고 있는 기관들이 사망한 날로 민주주의의 역사에 기록되었다.

 

87 체제의 한계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서 오늘로 이어지고 있다. 헌재 결정 직후에 대검찰청의 움직임들은 본격적인 공안정국의 시대를 지나왔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문을 보면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과 같다고 밝혔다.

 

통진당을 주도하는 소위 민족해방 계열이 이런 강령으로 '북한식 사회주의 정부'를 세우려 한다는 것인데 이건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예측하여 사전에 예방한다는 결정으로 헌법재판소의 8인은 예지자인 셈이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가 십 년을 훌쩍 뛰어넘은 현실에서 벌어졌으니 그가 오히려 예지자 역할에 걸맞은 것이 된다.

 

헌재의 위상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것은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이었다. 한국사회 사법부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영화 속의 버저스 국장의 범죄조작을 밝히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강압적인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 ‘통제’이다. 정의. 자유. 평등. 사법부가 내거는 그럴싸한 말은 힘을 잃었다. 지금까지 드러나고 있는 사법부의 부패 혐의는 민주주의 삼권 분립의 목적이 권력 남용 수단으로 전락한 상황을 말한다.

 

 

영화의 2054년 워싱턴은 발전된 과학기술에 근거한 범죄 없는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 자동운전 장치에 의해 교통난이 해소되고, 투명액정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접하며 동공인식장치가 신분을 확인하는 최첨단의 사회이다. 프리크라임이라는 범죄 사전 예방 시스템으로 6년 동안 범죄가 발생하지 않은 평화로운 도시이다.

 

세 명의 예지자가 보여주는 영상을 통해 미래 일어날 살인 사건의 범죄자를 추적 미리 잡아들인다. 하지만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시스템의 오류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조작한 국장의 범행이 드러나면서 범죄가 일어나기 전 100%의 예측력을 자랑하는 프리크라임 범죄예방시스템은 폐지된다.

 

이 영화는 인간이 지닌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설사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하여도 그 결과는 개인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감옥에 가도록 하는 것임을 직시하게 한다. 시스템에 의지하여 살아 움직이는 민주주의는 언제든 변화의 가능성을 가진 사회이다. 그렇기에 다양성과 소수의 의견까지도 존중해가며 합의를 통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12.19 헌재에 의한 통진당 해산은 법 해석의 기초에 반하는 추정된 결과로 빚어진 결정이었다. 법복을 입은 자들이 예측을 근거로 내린 결정은 민주주의의 위기로 사회에 끼칠 악 영향을 초래해왔다.

 

예언자는 허수아비고 진짜 힘을 가진 자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자이다.

 

1950년대 미국사회는 공산주의에 대해 두려움에 사로 잡혀 많은 사람이 아무런 죄 없이 일자리와 가정을 잃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빨갱이 사냥꾼’은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이다.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좌파 정당이 자연스럽게 운영되었지만, 미국에서는 좌파 정당 자체는 합법적이었음에도,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로 활동할 수 없게 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좌파 정당에 가입하거나 좌파 정당의 당원을 친구로 둔 사람들은 피해를 당하였다.

 

친일 청산의 실패가 가져온 한국사회의 문제는 국가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한 것으로 일변할 수 있다. 그 근거들은 해방 후 미 군사정부의 친일파 기용에서부터 볼 수 있다. 민족을 팔아 사리사욕을 추구해 온 다수의 친일파가 기득권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청마의 해를 장식한 2014년 헌재 8인의 결정이 한 개인의 안위는 지켰을지 몰라도(결과적으로 503번으로 안위한 상태인 것인지는 각자 판단할 일) 사회정의, 법의 정의를 저버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국가로부터 독립된 기관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결정이었다. 숨겨진 목표를 찾아내어 심증을 해산 결정의 근거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헌재의 결정으로 야기될 민주주의의 후퇴와 혼란을 의미하니까.

 

매카시즘으로 당시 미국 사회는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숱한 사람들을 비틀어진 애국심을 선동하는 이들에 의해 정부를 비판하여 이의 제기를 하는 것 자체가 애국심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리니까.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최선.

 

매카시 상원 의원이 신문의 1면을 장식하며 지나간 그 당시에는 사실상 단 한 명의 공산주의자도 잡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은 것만은 확실하게 드러났다. 그가 퍼트린 두려움은 약한 자를 괴롭히며 환호를 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낳기도 했다. 헌재의 결정과 그 이후 매체들을 통해 그 결과에 대한 반응들을 보며 내 안에 있는 래드 콤플렉스는 어느 정도의 수위를 갖고 있느냐는 질문을 하게 한다.

 

광복 이후 이식된 민주주의는 형식에 불과했고 실질적 민주주의로 정착하지 못했다. 한국전쟁 이후 반공이데올로기를 통해 국가의 안보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지속한 사회적으로 학습됐다. 현대사회에서 이념은 해체되었지만, 분단국가라는 프레임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국민을 우민화하고 있다.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동물인 해태의 뿔과 꼬리를 조형화함으로써 법의 엄격성과 존엄성을 법의 형평성, 사랑, 보호를 표현하였다.

 

5.16군사정변에서 시작된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명분은 독재로 이어지고 87 체제로 자리 잡히기까지 피의 역사는 개인들의 역사의식을 잠식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을 돌아보면 중심에 놓은 것은 사법부 역할이었고 정의 수호가 아닌 권력유착이었다.

 

결국,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한 후유증은 저질의 언론 매체들이 그것을 조장하는데 협력해 왔고 그 협력자 가운데 사법부의 부패한 법복입은 법비가 있다. 검찰 민주화와 사법 민주화는 뗄 수 없는 개혁이다. 민주화는 사회 어느 분야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내 안에 있는 답습된 ‘래드 콤플렉스’는 사회적 약자들을 괴롭히는 강자들에 저항하는 ‘선택의 의지’를 무의식적으로 차단해 버린다. 이제 그나마 외부 압력이 줄어든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사회 정의를 조작하는데 일조해온 사회 시스템의 오류를 저지해줄 마지막 보루. 정의의 저울을 내건 사법부. 이것을 무시한 사법부 존립은 그 명을 다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법부가 자체적으로 신뢰를 만들 수 있는 지는 의문이다. 법은 우리의 생활을 통제하는 수단이다. 또한 그것은 인간다움을 헤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도덕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대 마이너리티의 리포트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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