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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나에게 말걸기]

처음 그 마음을 잃지 않는 일이 가능해?

창작자푸른비 이창우 (overdye)
2018-10-26 0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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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느끼는 일들이 거듭되면 참담한 현실은 빛을 잃기도 합니다. 감히 희망을 말하는 것이 버거워지곤 하지요. 절망이 선택하는 것은 포기입니다. 그래서 작은 희망을 품고 실천을 약속하는 거겠지요. 살아남은 저는 또 무거운 마음으로 떠나간 사람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용기 있는 선택은 때로 삶을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오고는 합니다. 역사는 그런 분들의 힘으로 진보를 꿈꿀 수 있었고요.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로 광화문 광장은 공권력이 시민을 공격하던 날이었습니다.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에 맞아 317일을 병상에서 생사의 기로에 있던 농민이 세상을 버렸습니다.

 

칠순을 병상에서 맞은 다음 날 그분은 떠났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이 땅을 기억해주세요. 좋은 바람 불어오면 고인께서 보내신 희망인 줄 알겠습니다. 그분의 죽음에 무릎 꿇고 빌어야 했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죽음에 책임을 지고 마땅히 유족에게 용서와 조의를 표해야만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한국 사회는 큰 빚을 지고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더 많죠.

 

시월은 절망감이 가져오는 분노와 좌절들이 뼛속으로 스며드는 계절입니다. 체감되는 이 사회의 시간은 20년을 거슬렀고 공권력의 남용은 30년을 거꾸로 갔습니다. 촛불로 이룬 현 정부를 지켜보며 큰 변화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쳐야 하는 현실감. 시간의 화살표는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가능하다던데... 세상살이는 언제든 물리법칙을 거스르며 달려가나 봅니다.

 

이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지혜로운 왕이 다스리던 이야기에서 그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요.

 

 

 어느 날 지혜로운 솔로몬 왕이 산책을 나섰습니다.

 

“흠흠, 내 왕국의 백성들과 동물들이 모두 잘 살고 있는지 한번 둘러볼까?”

 

왕이 넓은 풀밭을 지나는데, 한 소년이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얘야, 왜 울고 있니?”

“형을 만나야 하는데 길이 너무 멀어 못 가겠어요. 엉--엉.”

“호오, 그래? 네 형은 대체 어디쯤 있느냐?”

“저기요. 저 산을 세 개나 넘어야 돼요. 엉엉.”

“흠, 정말 멀리 있구나. 이거라도 먹고 힘을 내거라.”

 

솔로몬 왕은 소년에게 빵과 우유를 듬뿍 주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왕이 개미굴 앞을 지나는데 개미 떼가 새까맣게 몰려나와 공손하게 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 쪽에서 개미 한 마리가 열심히 돌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그 개미는 솔로몬 왕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열심히 돌만 날랐습니다. 영차, 영차~. 개미는 돌을 짊어지고 강가로 가더니 풍덩 빠뜨렸습니다.

 

“개미야, 넌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느냐?”

“둑을 쌓는 중이에요.” 

개미가 낑낑거리며 대답했습니다.

 

“둑을 쌓는다고? 허어, 너 혼자서 둑을 쌓으려면 수백 년도 더 걸릴 텐데?”

그러자 개미가 땀을 닦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돌을 하나씩 하나씩 나르다 보면 언젠가는 둑이 생길 거예요.”

개미는 다시 돌을 짊어지고 강가로 갔습니다.

그때 늙은 개미 한 마리가 솔로몬 왕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솔로몬 대왕님, 그 누구도 저 젊은 개미를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호오, 그래? 한데 둑은 왜 쌓으려는 걸까?”

“그건 사랑하는 개미를 만나기 위해서지요.”

“사랑하는 개미라고? 흠흠, 그 얘기를 자세히 듣고 싶군.”

그러자 늙은 개미는 솔로몬 왕의 어깨에 올라앉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저 젊은 개미가 어여쁜 개미를 사랑했답니다. 하지만 그 예쁜 개미는 멀리 떠나야 했지요. 저 강 건너 마을로 말입니다. 예쁜 개미는 떠나면서 저 젊은 개미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 강에 둑이 생긴다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텐데······."

그러자 젊은 개미가 소리쳤답니다.

 

“좋아, 죽는 날까지 온 힘을 다해서 둑을 쌓겠어!”

“호오, 그래서 저렇게 둑을 쌓고 있구나.”

솔로몬 왕은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둑이 생기고 있잖아요? 모두 저 녀석 혼자서 쌓은 거랍니다.”

 

솔로몬 왕은 젊은 개미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가다 보니 아까 그 풀밭에서 소년이 계속 울고 있었습니다.

 

“얘야, 너 여태 울고만 있구나.”

“갈 길이 너무 멀어요. 못 갈 거 같아서 울고 있어요, 엉~ 엉.”

솔로몬 왕은 소년 옆에 앉았습니다.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 줄까?”

옛날에 아주 젊은 개미 한 마리가 있었단다······.

<솔로몬 왕과 개미> 원작. 페르시아 야타르 / 글. 김진락

 

 

 

어떠신지요. 소년 앞에 놓인 큰 산이나 개미 앞에 있는 그 너른 강이나 너무 까마득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무모해 보여도 젊은 개미는 돌을 하나씩 강가로 가져가 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지는 개인의 상상에 맡겨야 하겠습니다. 젊은 개미 혼자서 하는 둑을 쌓는 일에 누구든 함께 하게 된다면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지요.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지금과는 다른 광장에서 끊임없이 민주주의를 외쳐야 했던 시절이 불과 2년 가까이 지나고 있나 봅니다. 이 나라가 제 길에서 너무 멀리 가버려 잡을 수 있을 때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으로 무엇이든 소리 내어야 했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젊은 개미의 무모함을 비웃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다는 것을 압니다. 갈 길이 너무 멀어 울고만 앉아 있는 소년과 같은 마음의 사람들도 많고요. 나 혼자서 기를 쓴다는 생각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내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기에 외면할 수 있었던 사회 문제들은 더 이상 남의 일만 아닐 겁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대신 우리는 여전히 다수의 문제인 노동과 환경, 교육 문제 등에 그 대가를 치룰 일이 넘치니까요. 권력의 남용과 횡포에 무뎌질수록 야만과 탐욕은 걷잡을 수 없도록 커져만 갑니다. 국가가 나의 적으로 나타날 땐 되돌리기에 너무 늦은 걸지도요.

 

살아서 강을 건널 둑을 완성하는 것을 보게 되지 못한다 해도 기꺼이 저는 젊은 개미를 돕겠습니다. 내 마음 하나 조차 다잡는 일이 버거워지기 시작하면 이 글을 다시 꺼내 읽어야죠. 스스로를 돌아보고 처음 그 마음을 잃지 않는 일은 항상 어렵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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