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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세상 나누기]

'충'으로 명명되는 '인간'

창작자푸른비 이창우 (overdye)
2019-06-05 13: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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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 봉준호 감독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이 영화를 감상하고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가는 그대가 불쾌했으면 한다. 개봉하는 날 받은 묵직함이 덜 가신 채 한 권의 책에서 약간의 위안을 삼았다.

 

향기로운 유월을 바라며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영화 <기생충>은 내 머리를 계속 찌른다. 딱히 잡히지 않는 성가심으로 며칠을 보내고 글을 쓰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그나마 나은 방법임을 깨닫는다.

 

영화 <기생충>이 더는 떠오르지 않을 때까지 이어질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오늘은 '빈곤과 부'에 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봐야겠다.

 

절대적 빈곤층은 아닌 내게 빈곤은 타자에게 지울 글자다. 그렇다고 나와 거리가 먼 것은 아니기에 영화가 주는 지하층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모른다.

 

영화의 미학까지 들먹이진 않더라도 감독이 은유한 인간은 설정이다. 도덕적 해이가 개인에게 아무 거르는 장치 없이 태연하게 합리화로 펼쳐진다.

 

현실에 존재하는 지도 모르는 거대한 주택 지하층에 갇힌 아버지를 꺼낼 방법은 다행히 극단적이지 않다. 다시 생각하면 아주 쉽게 '포기'한 것이다.

 

빈곤한 가족이 보여주는 행위는 상식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는 비 상식을 통해 묻는다. 이 영화를 보는 당신의 뇌는 아직 멀쩡한가?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는 아들.. 다시 무력하다.

 

빈곤과 부에 관한 믿음은 대체로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전제가 영화로 만들어지면 입에 오르내리는 동안만 유효기간이다. 무감각하게 생존만을 위해 살아남고자 하는 빈곤이 주는 욕구는 지독히 동물적이다.

 

'부'가 기생하는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 낸 빈곤층이라면 '빈곤'이 기생하고 있는 것은 돈이다. 자본이란 용어도 사용할 수 없는 그저 생존 도구로써 몇 푼의 돈이다.

 

부와 빈곤으로 선과 악이 재단되기 쉬운 사회에서 기생충으로 전락. 빈곤의 되물림은 웃음과 망각으로 또는 유머로만 대체 가능하다고 자조하는 영화. 감각이 살아난 순간. 왜 사느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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