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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빵생활 (2) - 전대협 씨를 아시나요?

촌사람 (jsandsj2003@hanmail.net)
2018-01-21 16: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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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들1) 족보싸움이라는 게 있다.

 

상대가 센 놈인지 아닌지 간도 보고 웬만하면 실전 없이 구찌로2) 밀어 제압하려고 벌이는 수작이다.

 

“너 역전앞(!) 휘발유라고 들어봤어? 걔가 나하고 부랄 새빨갈 때부터 한 솥밥을 먹었고 나가 밀어줘서 지금처럼 잘나가는 거야” 뭐 대충 이런 식이다.

 

이런 양아들은 감빵에 들어와서도 꿈을 못 깬다. ‘꿈 깨라’는 말은 80년대 감빵 용어로 징역 살면서도 밖에서 내가 어쨌고 저쨌고 하는 놈들에게 하는 충고다. 감옥 밖 생활을 간단히 일장춘몽으로 치환해버리는 도둑놈들 어법이 참으로 철학적이지 않은가?

 

아무튼 내세울 거 없는 양아치들이 좀 쎄 보이는 양심수에게 기대보려고 접근하기도 하는데, 그때도 영락없이 족보를 들먹인다. 예를 들자면,

 

“내가 전주교도소에서 징역살면서 호형호제하며 친했던 학생이 있는데 혹시 아시나 해서...”

 

이때 도둑놈이 말하는 학생이라는 단어는 모든 양심수에게 붙여지는 호칭이다. 예컨대 육순이 넘은 문익환 목사님도 감빵에서는 학생이다. 감빵에는 도둑놈과 간수, 학생 세 신분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때 ‘아 그러세요?’라고 맞장구를 쳐주면 도둑놈 입에선 한편의 드라마가 흘러나온다.

 

“전대협씨라고 왜 아시잖아요. 나가 그 형님하고 7사 하 3방에 같이 있었당깨요. 그때 나가 마깨비들3) 몰래 그 형님 수발드느라고 솔찬히 고상 좀 해쓰요....”

 

그러니까 이 도둑놈은 전주교도소에서 전대협 사건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그게 신창원 사건과 비슷한 거로 알아들은 거다.

 

이런 식의 이야기 중 압권은 1982년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의 주역이었던 문OO 씨가 겪었다는 일이다. 당시 미디어들은 이 사건을 줄여 ‘부미방’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만큼 TV시청은커녕 신문반입도 철저히 차단했던 당시 감빵 안에도 구전을 통해 소식이 전해졌으리라.

 

하루는 문OO 씨가 운동을 하고 있는데 어떤 도둑놈이 접근해 학생이냐며 아는 체를 하더란다. 문OO 씨는 도시 게릴라전을 떠올릴 만큼 격렬했던 사건 주모자라는 타이틀과 달리 곱상한 학자풍 외모에 성품도 다감한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도둑놈이 한다는 말이 “혹시 부미방씨 아니세요?”라고 물은 거다. 어디서 문OO씨가 부미방 사건의 주모자라는 말을 주워듣고 한 말일 텐데 당사자인 부미방씨 아니 문OO씨는 얼마나 웃겼겠는가? 그래도 문OO씨는 워낙 세심하고 점잖은 사람이라 그냥 잘 모른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단다. 그리곤 다른 양심수들이 있는 곳에 와서 그 상황을 전하면서 박장대소를 했다나 어쨌다나...

 

문OO씨 이야긴 80년대 청주교도소에서 징역 살던 공범 김OO에게 들은 야그다.

 

1) 양아치 = 여러 설이 있으나 동냥(구걸)을 하는 무리를 가리키는 '동냥아치'가 줄어서 생긴 말이다. 일제강점기에서 `양아치`라는 말이 쓰였고 한국전쟁 후 전쟁고아들이 갑자기 많아지면서 이 말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2) 구찌(くち) = 일본어로 입이란 뜻

3) 마깨비 = 교도관

 

 1980~90년대에 민주화운동 관련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지금은 강원도 화천 오음리에서 농사 짓고 글 쓰고 생들기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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