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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슬기로운 감빵생활 (3) - 하얀 집의 제왕

촌사람 (jsandsj2003@hanmail.net)
2018-01-22 1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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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잽이들은 드라마 슬감을 보면서 두 번 놀란다.

저기가 감옥 맞아? 할 정도로 몰라보게 개선된 시설을 보고 놀라고 그 첨단시설 안에서 벌어지는 교도관과 수인들의 행태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 또 놀란다.

 

물론 감옥도 변하고 그 안에 사람도 변한다. 80년대 감옥과 2000년대 감옥은 분명히 달랐다. 무엇보다 권력구조가 달라졌다. 80년대 구치소에서 최고 왈왈이는 이른바 학생 혹은 독립군으로 불리던 양심수였다. 양심수가 왈왈이가 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단일 죄명으로 들어온 수인 중에 절대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건대항쟁 때는 단일 사건으로 1288명이 구속됐으며 다른 사건들도 공범이 수십 명에 이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내가 처음 서대문구치소로 입소하던 날도 호송버스가 구치소 인근에 접어들자 단체로 부르는 운동가 소리가 담장 밖까지 들려왔다. 입소절차를 밟는 내내 샤우팅 하는 소리, 밥그릇으로 철창을 긁어대는 소리, 구호를 외치는 소리에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쪽수만 많다고 왈왈이가 되는 건 아니다. 쪽수로만 치면 일상의 시기에는 부러진 칼(절도)들이 절대 다수다. 하지만 그들은 결속된 집단이 아니다. 투쟁의지도 거의 없다. 80년대 양심수들의 투쟁의지는 조폭들도 흉내 낼 수 없었다. 이들은 확신범으로 죄의식이 없다보니 자신들을 잡아가둔 행형제도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구치소로 오기 전 팟쇼폭압기구에 끌려가 온갖 가혹행위를 경험했다. 교정기관에서 할 수 있는 가혹행위로는 절대 그들을 굴복시킬 수 없었다는 의미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양심수들은 우리나라 교정행정을 조금씩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행형법을 파고들어 준법투쟁을 이어간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 양심수들은 그냥 몸빵으로 재소자 인권을 개선시켜 나갔다. 처음에는 양심수만 누리던 특권이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화되는 지난한 싸움이 이어졌던 것이다.

 

구치소가 바뀌면 느리지만 교도소도 변한다. 교도소에 수용된 수형자들은 모두 구치소를 거쳐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도소는 80년대나 2000년대나 조폭들의 세상이다. 실형을 받고 교도소까지 가는 양심수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도관과 조폭들의 직접적, 암묵적 짬짜미가 관행처럼 이어오기 때문이다.

 

아무리 배테랑이라 해도 교도관 1인이 닳고 닳은 수십 명의 범죄꾼들을 교화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교화는커녕 감시조차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모든 출력공장이 힘 센 놈을 정점으로 한 음성적 지도체계에 따라 움직인다. 공장 출력수들은 우선 선반과 앉은반으로 나뉜다. 반장과 조장 아래 종일 문틈으로 망만 보는 보직을 맡은 놈은 문땅, 비밀창고를 관리하는 무슨 땅, 하다못해 난로를 책임진 불땅까지 공장 안을 서서 돌아다니는 놈들은 선반이다. 나머지 개털들은 종일 앉아서 선반의 몫까지 일하는 앉은반이다. 공장 안에는 담당 부장(교사)이 늘 상주하지만 도둑놈들의 이런 짓을 방치한다. 방치를 넘어 협력하는 관계다.

 

예를 들어 상급교도관이 점검을 나오면 망을 보던 문땅이 ‘까마귀 떴다’고 소리친다. 그러면 담당 교도관은 옷매무새를 갖추고 모자를 바로 쓴 후 제대로 근무하는 자세를 취하고 선반들도 모두 자기 자리에 가 앉는다. 물론 상급교도관도 자신이 오기 전에 공장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다 알고 있다.

 

가끔 큰 사고가 터져 지방 교정청이나 법무부 교정국에서 점검을 나와도 마찬가지다. 한 조직 안에서 돌고 도는 놈들이라 이심전심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수준에서 다 덮어버린다. 내가 교도관과 다툼으로 문제가 심각했을 때도 이례적으로 담장 안으로 현장검증을 들어온 지방검사 앞에서도 소장이라는 놈이 내 편 증인의 증언을 끊고 교도관을 시켜 끌고 가버리는 황당한 짓까지 벌이더라. 검사도 담장 안에서는 맥을 못 추던 꼴이다.

 

그래서 교도소장을 ‘하얀집의 제왕’이라고 부른다.

 

 

 1980~90년대에 민주화운동 관련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지금은 강원도 화천 오음리에서 농사 짓고 글 쓰고 생들기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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