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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빵생활 (4) - 동정 없는 세상

촌사람 (jsandsj2003@hanmail.net)
2018-01-25 13: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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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빵잽이들의 과거를 소환한다. 얼마 전 '서진룸싸롱사건' 관련자의 늦은 결혼 소식에 악풀이 잔뜩 달린 걸 보고 떠올린 기억의 편린들이다.

 

삼십여년 전에 세상을 뒤흔드는 사건이 벌어졌다.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던 일이다. 당시 운동권 유인물에도 단골로 등장하던 사건이다. 전두환 군사 깡패정권하에서 벌어진 사건이었기에 정권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소재로 사용됐다. 그 사건의 가해자들을 서울구치소에서 만났다.

사형이 확정된 고ㅇㅇ과 김ㅇㅇ은 죽는 날까지 미결인 상태라 구치소에 남아 있었다. 유학생 사건의 두 선배와 그들은 사형수라는 동병상련 때문에 곧잘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고, 김 두 사람은 사형이 집행됐다. 그들은 법정 최후진술에서 자신들은 죽어 마땅하니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발언에서 자신들의 두목인 장ㅇㅇ은 아무 죄가 없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때 그들 나이는 고작 20 몇 살이었다.

 

시간은 흘러 나는 형이 확정되어 지방의 한 교도소로 징역을 살러 갔다. 그곳에서 그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그들의 형님, 이른바 ㅇㅇ이 파의 두목 장ㅇㅇ을 만났다. 나와 장ㅇㅇ은 나란히 이웃한 독방을 쓰다 보니 자연히 가까워지게 됐다. 검거될 때 맺힌 한이 깊어서 각종 무술 서적을 차입해 종일 수련만 하던 시절이다. 죽은 고ㅇㅇ과 김ㅇㅇ은 키가 190은 되어 보이는 거구였는데 장은 170이 조금 넘을까 하는 작은 키의 사내였다. 물론 작은 키에도 체중은 100킬로가 넘었다. 내가 하는 수련을 늘 지켜보기만 하던 장이 하루는 웃통을 벗어 던지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칼자국 하나 없는 그의 상체는 큰 근육들로 우람했다. 특히 그의 넓은 등에 새겨진 한 마리 독수리 문신이 그가 몸을 쓸 때마다 율동 하는 근육 때문에 마치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듯이 보였다. ‘와 괜찮은데’ 하는 나의 감탄사를 듣고 그가 돌아보며 하는 말이 “너 정도는 10초 안에 보낼 수 있지.” 하는 거다. 당시 나는 20대 초중반의 혈기 방장한 청년이었다. 어찌 호승심이 없었겠는가? ‘한번 해 볼까요, 난 5초 안에 보낼 수 있는데’ 그러자 그가 웃으면서 다가와 끌어안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나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너는 간 거야, 5초도 안 걸리네’

 

 

그렇게 그와 호형호제하며 가까워졌다. 나는 그 후에도 또 다른 징역을 살면서 많은 조폭을 만났지만, 장 같은 이를 보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이 하던 일이 무엇인 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벤츠를 타고 시장통을 지날 때, 신호등에 걸려 기다릴 때, 만원 버스에서 생활인들이 창밖으로 내려다보면 고급 차의 뒷좌석에 탄 젊은 놈이 차마 부끄러워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들은 그 무슨 강령이나 규약 같은 것도 있었는데 절대로 서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우리와 양립할 수 없다는 말도 했다. “내가 ㅇㅇ에게도 말했다만 우리 같은 건달은 그래도 자본주의하에서 생존할 수 있어, 너희가 바라는 세상이 오면 네가 나를 죽이게 될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내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단식과 극단적인 방식의 자해를 투쟁의 수단으로 사용할 때면 “너나 나나 몸이 유일한 재산이니 몸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나는 솔직히 그때 어린 나이었고 해서 인간적으로 그에게 매료되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그가 그의 동생들로부터 충분히 생명을 바쳐 존경받을만한 인물이라고 여기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나는 그가 폭력은커녕 인상을 쓰는 것도 본 적이 없다. 교도관이나 잡범들 가운데 뒤에서 그의 욕을 하는 사람도 본 일이 없다. 온화한 표정의 호남형인 그는, 그의 전력과는 별개로 대단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그의 식구들도 여느 조폭과는 분명히 달랐다. ‘미야모토 무사시’를 존경하여 조직원의 필독서로 정했다는 그들은 분명히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다. 어찌 보면 그들이 닮고자 했던 무사시 보다는 바쿠후 말기의 신선조에 가깝다.

 

사실 두목이 갓 서른이었던 젊은 그들은 청운의 뜻(?)을 펴 보지도 못하고 넥타이 공장으로 직행하거나 감옥에서 늙어갔다. 그들 뒤에 스폰서가 누구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가 누구였든 지금도 호의호식하고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철없던 그들은 광폭한 시대의 수레바퀴에 깔린 피해자일 수도 있다.

 

그들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이 기나긴 수형생활의 터널을 빠져나와 새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청춘을 온통 감옥에 바친 그들이 개과천선을 했는지 그 속마음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판데기에서 제대로 자리도 잡지 못하고 몰락한 그들이 세상에 나와 예전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출소 후 제조업에 종사하며 늦깎이 신랑이 된 그의 벗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돌팔매가 매정하게 느껴진다. 한번 조폭이면 영원한 조폭일까? 살인을 한 자는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되는가? 사람의 일생은 선업이든 악업이든 업을 쌓는 과정이며 그 업으로 인해 사람은 고통의 바다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몸으로 살인을 해야만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입으로 혹은 생각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던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이에게 축복의 인사를 드린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부디 행복하시라…….

 1980~90년대에 민주화운동 관련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지금은 강원도 화천 오음리에서 농사 짓고 글 쓰고 생들기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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