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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지를 찾다가(2) - 산장의 여인

촌사람 (jsandsj2003@hanmail.net)
2018-01-31 16: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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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산장은 노인이 사는 곳으로부터 하류 쪽으로 오리 정도에 있었다. 계곡 옆으로 난 오솔길 위쪽에 자리 잡아 길에서는 보이지 않았으나 주의를 기울여 보니 길가에 작은 이정표 같은 게 보였다. 빛이 바란 작은 판자에 먹으로 鬼魔山莊이라고 적혀 있고 기둥에는 붉은색감이 도는 천 쪼가리가 묶여 있는 게 왠지 그로데스크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때 만약 우리 일행이 벌렁주에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이 이야기는 거기 그 괴기스러운 이정표 앞에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술에 취한 장정(요즘은 40대 초반까지는 장정이다) 셋이 무서울 게 뭐 있겠는가? 더구나 이미 해가 기울어 사위가 어둑해진 터라 족히 이십 리가 넘는 길을 손전등도 없이 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준 여인을 보고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젊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시골 노인들 기준이 뻔한 거라 40은 넘은 아줌마일 거라 생각했는데 많이 보아도 30대 초반의 키가 훤칠한 절세미인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키가 170은 돼 보였고 탄탄한 몸매에 피부가 하얗고 입술은 선홍빛에 코가 오뚝하며 눈에서는 비현실적인 총기가 반짝였다.

 

일단 땅 이야기는 접어놓고 경치에 취해 계곡 깊숙이 들어왔다 날이 저물어 하루 묵어갈 곳을 찾고 있다고 했더니 선선히 문을 열어주며 반겼다. 젊은 여자가 술 냄새 풍기는 남자 셋을 선뜻 집안에 들인다는 것에 놀란 우리들에게 그녀는 요기를 하셔야할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냥 가져온 술이나 한잔 하고 자고 가겠다고 했더니 그럼 밥이 될 동안 술 한 잔 드시면서 기다리라며 술상을 내어왔다.

 

우리는 이미 얼근하던 차였고 술이 더 들어가니 대범해져서 그녀에게 주인도 같이 한잔하자고 수작을 걸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술상머리에 앉았고 손님용으로 별채가 따로 있지만 왠지 귀인이 올 것 같아 솔잎을 깔아 놓은 안채 황토방에 군불을 넣어놨다며 거기서 쉬었다 가라고 권했다.

그녀의 호의에 들뜬 우리는 금방 술잔을 몇 순배 돌렸다. 이윽고 본래 살던 곳이며 통성명을 한 후 나이를 물었는데 돌아온 답을 듣고 우리는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의 나이가 우리들 중 가장 나이든 나보다도 세 살이나 위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바로 꼬랑지를 내리고 누님으로 모시겠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술이 들어가자 여자는 호기를 드러내며 거침없이 하댓말을 쏟아냈다.

 

“경룡이(빵공장 녀석 이름이다) 너는 이름 그대로 놀란 용이야. 용은 용인데 기개가 딸려서 험한 세상에 놀란 거지. 인복은 있어서 앞으로도 밥은 굶지 않겠구먼. 사실 편안한 팔자지”

 

“허당이 너는 온갖 궂은일은 혼자 떠 맞지만 집안에서도 집밖에서도 아무도 대접을 안 해줘. 마누라도 서방 알기를 허당으로 여기잖아”

 

“진수씨(나에게는 아주 하댓말을 하지는 않았다)는 저 잘난 맛에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사는 사람이야. 그러니 인생이 편안치 않지. 근래에도 고초를 겪었을 걸?”

 

좀 설명을 하자면 경룡이 녀석은 학생운동을 하다 그만둔 놈이었다. 심지가 곧지만 남과 다투는 것을 못견뎌하는 성품이라 80년대 후반에 벌어진 운동권 노선싸움에 신물을 켠 후로는 강호를 떠나 그냥 야인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허당이는 감옥에서 나온 후 잘난 형제들 다 떠난 집안의 가업을 잇고 있었다. 그 가업이라는 게 젖소를 키우는 일이라 참으로 고단한 일인데 매일같이 사사건건 부친의 핀잔을 듣고 사는 처지였다. 앞에서 밝혔듯이 나는 감옥에서 나온 지 반년 남짓한 때였고...

 

나는 우리가 여기 왜 온 것 같으냐고 물었고 여자는 살 곳을 찾아 떠도는 중이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별채와 땅을 내줄테니 여기 와서 같이 살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신기가 있어 사람들의 운명이 보인다고 했다. 특히 손으로 사람의 몸을 만지면 몸에 붙어 있는 그 사람의 운명이 선명하게 보인다며 한 사람씩 손과 팔을 쓰다듬었다.

 

먼저 허당이 손을 잡더니 “ 너 어려서 이팔 부러졌었지?” 하는 거다. 눈이 동그래진 허당이 녀석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경룡이에게는 “너는 일 하기 진짜 싫어하는 놈이야. 앞으로도 일해서 먹고 살진 않을 거야.” 험한 일도 별로 없었고 또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거다. 내 손을 잡고도 팔이 부러졌었다고 하고 저뿐만 아니라 남도 많이 다치게 하는 손이라고 했다.

 

여자와 관련해서는 경룡이는 아애 여자가 없고 허당이는 여복이 없어 악처와 살고 나는 여복이 많아 만나는 여자마다 다 좋은 여자라고 했다. 서로의 살아온 행적을 잘 아는 우리는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감탄사만 연발했다.   
 

감옥살이 중에 몸이 많이 골은 나는 제일 먼저 술에 취한데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상황에 취해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나보러 먼저 쉬라며 예의 그 황토방으로 안내했다. 나를 눕히고 난 후 여자는 알 듯 말 듯 한 말을 귓가에 남기고 나갔다. “내 몸에 약손보살이 붙었어. 좀 쉬고 있으면 내가 진수씨 상처 다 낳게 해줄게”

 

진짜 건달(乾闥婆)과 무당은 늙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달건이형은 환갑이 지났지만 사십대로 보이고 감옥에서 만났던 조양은도 어려 보여 수배 중일 때 교복을 입고 다녔다고 했다. 40년대 일본에서는 신들려 미친 여자가 60대까지 소녀의 모습을 유지했다는 기록도 있다. 혼미해진 정신 상태에서 이런 생각을 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의식은 여전히 비몽사몽인데 곁에서 자꾸 야릇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아파요”
 

“조금 참으면 괜찮아 진다니까”
 

“아이 거긴 안돼요”
 

“아 글쎄 가만 있어봐. 몸을 그냥 나한테 맡겨 봐”
 

“아흐윽 그래도 거기는...”
 

“점점 좋아지지?”
 

“예, 근데 무슨 힘이 그렇게 세요?”
 

“내 힘이 아니라 약손보살님 힘이야”
 

“저는 됐으니까 이제 경룡이도 해줘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이런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도무지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아니 허당이 저 새끼가 기어코 일을 치는 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곁에서 자고 있는데 짐승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갑자기 의식은 또렷해졌지만 도무지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무언가 생각해 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데 이번에는 경룡이 녀석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난 아픈 거 싫으니까 살살 해줘요”
 

“글쎄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약손보살님이 하는 거라니까”
 

“근데 진짜 만지면 다 낳아요?”
 

“못 믿겠으면 허당이한테 물어봐”
 

“허당아 어때”
 

“응 좋아, 릴렉스하고 그냥 누님한테 맡겨 봐”
 

그때 허당이 녀석은 그녀의 손길에 인도되어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던 게 아닐까?
나는 그제야 그들이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고 조용히 안도의 한 숨을 내 쉬었다. 하지만 안심은 금물이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남이 내 몸을 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온몸이 예민해서 산들바람에도 목덜미에 간지럼을 탄다. 무심히 있다 누군가에게 만지키면 반사적으로 주먹부터 나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또 술도 어느 정도 깬 상태라 술 취했을 때처럼 상황이 낭만적이지도 신비롭지도 않았다.

 

‘아 저 여자가 내 몸에 손을 대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당장 일어나서 산을 내려갈까?’ 이런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아니나 다를까 연실 신음을 토해내던 경룡이 녀석이 목소리를 죽여 속삭였다.
 

“누님 이제 저 형도 해줘요”
 

여자가 경룡이에게서 떨어져 나에게로 다가오는 그 짧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렇게 여자의 손길이 내 발목에 닿는 순간 나는 발끝에 단호하지만 정중함을 실어 거부의 발길질을 했다. 여자가 “왜 그래, 나쁜 거 아냐”어쩌고 하며 다시 손을 뻗으려는데 갑자기 방문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성난 맹수처럼 흥분한 남자의 음성이 이어졌다.
 

“문열어, 문 열라고”
 

남자는 문을 마구 차댔다.
 

“안 나와 문 부숴버린다”
 

소스라치게 놀란 우리는 그저 숨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여자도 가만히 있었다.
 

“거기 있는 거 안다니까. 빨리 문 안 열어”
 

여자가 나를 주무르려고 다가왔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공포가 밀려왔다. 밖의 남자는 분명 낫을 들고 있을 것 같았다. 문이 부서지면 어찌하나?. 현장을 급습당한 간부 꼴이 되어 당장 창문을 열고 도망가야 하나?. 문 밖의 남자는 필시 여자의 남편쯤 되는 사람일 텐데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도 해명할 수 없는 것이지 않은가? 맨몸으로 낫을 휘두르는 남자와 맞서야 한다는 것도 두려웠지만 어찌해서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다 해도 그야말로 개망신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세상 사람들은 한 여자에게 남자 셋이 피동에 빠져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때 갑자기 여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우리가 어찌할 틈도 없이 방문을 확 열어 재꼈다. 그리고는 남자보다도 훨씬 굴고 우렁찬 소리로 마구 지껄였다.
 

“그래 문 열었다. 어쩔 건데. 니가 뭔데 지랄이야.”
 

여자의 기세에 눌렸는지 남자의 목소리가 이전과는 달리 많이 약해졌다.
 

“누나가 자꾸 이러면 매형한테 다 말할 거라고”
 

여자는 여전히 거침이 없었다.
 

“뭘 말해 새끼야. 내가 사람들 병 고쳐주는 거. 당장 전화해서 그 새끼 오라 그래. 내가 겁 낼 줄 알아?”
 

아닌 밤중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남자가 여자의 남편이 아니라는 게 너무 다행이었고 남자를 제압해버린 여자가 너무 고마웠다. 여자가 남자에게 삿대질을 하며 방문을 나선 순간 허당이 녀석이 얼른 방문을 닫아걸었다.
 

“이게 도대체 뭔 일이야?”
 

“저 남자 손에 낫은 안 들렸더냐?”
 

“지금이라도 창문으로 도망치는 게 났지 않겠어?”
 

어느 누구하나 대답하는 놈 없이 우리는 서로 눈먼 질문을 마구 퍼붓고 있었다. 밖에서는 이상한 남매가 한참을 옥신각신 싸우는 눈친데 방 안에 셀프로 갇힌 우리는 불도 켜지 못하고 서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만 물었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그러고 있는데 다시 누군가 다가와 방문을 열려 했다. 우리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가만히 누어있었다. 이윽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문 열어”
 

여자는 몇 번을 두드려도 우리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자 "괜찮으니 맘 놓고 편히 자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편히 자라고? 절대로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위기가 사라지자 갑자기 웃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치 마약에 취한 놈들처럼 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한참을 숨죽여 키득댔다. 그러다 여자 말처럼 그냥 편안하게 잠이 들고말았다.

 

눈을 떠보니 이미 해가 뜬지 오래였다. 그때부터 나갈 일이 걱정이었다. 여자든 남자든 누구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튼을 재치고 창밖을 보니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문을 살짝 열어보니 거실에도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방을 나와 넓은 현관을 가로질러 복도로 나왔다. 막 신발을 신으려는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여자가 나왔다.
 

“잠 잔 집에서 아침은 먹고 가야지”
 

“아니에요, 마을에 내려가면 해장국집이 있겠죠.”
 

“아냐 내가 확실히 해장시켜 줄 테니 먹고 가”
 

우리는 또 그녀에게 잡혀 밥상 앞에 앉았다. 지난밤과 달리 그 때는 거실 한쪽 면을 가린 베일의 일부가 벗겨져 있었고 향이 타오르고 있었다. 베일 안에서는 이름 모를 화상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화상은 천개의 눈으로 모든 중생의 고통을 낱낱이 살피고, 천개의 손으로 모든 중생에게 두루 자비를 베푼다는 천수관음보살상이었다. 그녀의 몸에는 과연 觀音보살이 붙었던 걸까? 아니면 觀淫보살이 붙었던 걸까?

 1980~90년대에 민주화운동 관련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지금은 강원도 화천 오음리에서 농사 짓고 글 쓰고 생들기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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