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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빵생활(6) - 사형수의 리모콘

촌사람 (jsandsj2003@hanmail.net)
2018-02-20 12: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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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감을 보면 도둑놈이 소장면담 과정에서 리모컨을 훔치는 장면이 나온다. 옥방에 붙박이로 놓인 TV는 채널이 고정돼 있어 구치소나 교도소 측이 녹화해 틀어주는 프로그램만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소자들은 실시간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나는 채널 버튼을 뜯어내고 볼펜 용수철을 펴 만든 기구로 실시간방송을 보곤 했다. 물론 그런 행위는 범칙이기에 걸리면 징벌을 먹는다. 참고로 도둑놈들이 쓰는 말로 범치기는 준칙을 어긴다는 의미의 범칙에서 나온 말이다. 슬감에서 자막으로 해설한 내용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바지사장이란 말도 정확한 발음은 받이사장이다. 주로 유기장(불법 오락실)으로 들어온 사람들 열에 아홉이 받이사장이다. 진짜사장은 밖에 있고 대신 징역을 사는 사람을 총알받이라 하여 받이사장이라 불렀다. 80년대 중반에도 받이들은 월 200만원 상당의 빵수발을 받았다. 물론 징역 사는 대가는 따로 받고서다. 그 200만원 대부분은 담뱃값으로 들어간다. 밖에서 진짜사장이 부패 교도관을 만나 돈을 주면 교도관은 도둑놈에게 한 달 동안 담배를 제공하는 식이다. 때로는 유명인과 마음이 통해 대가 없이 담배를 제공하던 훌륭한(?) 교도관도 있었다. 서울구치소에서 황ㅇㅇ에게 담배를 대주던 교도관은 황이 일부 양심수들에게 담배를 돌리다 걸린 일로 옷을 벗었다. 이일로 황은 교도관들 사이에서 철도 없고 의리까지 없는 놈으로 통한다. 고문을 한 것도 아닌데 담배를 대주던 교도관 이름을 술술 불었기 때문이다. 감빵에 TV를 들여온 건 이정희와 콤비를 이뤄 이러저러한 공익소송을 승리로 이끈 맹검사로 불리던 도둑놈 작품이다. 맹검사 이야기는 따로 할 거다.

 

리모콘 이야기를 하려다 엉뚱한 말만 늘어놓았다. 서울구치소에서도 유명한 리모콘 사건이 있었다. 한 최고수(2000년대 들어갔더니 이전과 달리 사형수를 최고수라고 부르더라. 형이 제일 높다는 뜻이다)에게 새내기 신부가 대부로 붙었다. 교도소 측은 사형수나 문제수를 교화하기 위해 성직자나 학자와 연을 맺게 해준다. 나에게도 구치소 교무과로 우익교수가 찾아온 적도 있고 교도소에선 승이 찾아온 적도 있다. 우익이 하고는 한마디도 섞지 않았지만 승에게는 딱 두 마디 했다. '붇다는 무상과 무아를 말했는데 한국 불교에선 왜 있지도 않는 참나를 찾는다고 그런데요. 한국불교 교종들이 힌두교 분파들이오?'. 물론 이후 그 승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튼 어느 날 초짜 신부를 만난 사형수는 말없이 한숨만 쉬었다. 혹 형을 집행한다는 소식을 들어 저러나? 조심스러워 묻지도 못하던 신부가 드디어 용기를 내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한참을 더 뜸을 들이던 사형수는 사실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며 구라를 쳤다. 아주 가련한 표정연기를 곁들여 옥방 TV 리모컨을 잃어버려 징벌을 먹게 생겼다며, 징벌은 감내하겠는데 신부님 면담도 못하게 되는 게 너무도 안타깝다고 속삭였다. 순진한 신부는 다음 만남 때 리모콘을 사다줬다. 이런 일의 끝은 늘 한결같다. 리모콘을 과시하던 사형수는 결국 동료 도둑놈이 코를 발라 징벌을 먹었고 신부는 교화활동에서 배제됐다.

 

용수철로 만든 첨단(?) 리모우트 컨트롤로 범칙을 해가며 실시간 뉴스를 찾아보던 나도 결국 사단을 내고 말았다. 채널을 돌리려고 용수철로 들쑤시고 있는데 갑자기 쇼트가 일어나며 TV에 불이 났다. 얼른 물을 부어 화재는 면했지만 큰 소동이 벌어졌다. 왜 그런 사단이 벌어졌는지 뻔히 보이는 일이었지만, 착한 담당 교도관은 한마디도 추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큰일 날 뻔 했다고 나를 위로했다. 어찌나 쪽팔리고 미안하던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얼굴이 붉어진다.

 

 1980~90년대에 민주화운동 관련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지금은 강원도 화천 오음리에서 농사 짓고 글 쓰고 생들기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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