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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의 원래 이름은...

최진수 (mediamall)
2019-03-01 07: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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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붕호 이야기

- 대붕, 평화를 품고 날다 -

 

鵬之徙於南冥也水擊三千里搏扶搖而上者九萬里

붕이 남명으로 옮겨갈 때는 
물을 쳐서 삼천 리나 튀게 하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를 오른다.

- 逍遙遊 -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로부터 양구군 공수리까지 펼쳐진 호수를 대붕호라 합니다.
대붕호는 일제 강점기 북한강 상류에 화천댐을 건설하면서 형성된 인공호로 총저수량이 10억 1,842만 6,000t이나 됩니다. 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고 말았지만 화천댐 위쪽에는 수하리와 수상리라는 마을이 있었고 장자의 소요유에 나오는 구만리는 지금도 정식 법정동으로 존재합니다.

 

대붕호를 뜻하는 대붕제 표지석, 일제는 붕자 대신 명자를 썼다.

 

이곳 사람들은 언젠가 마을에 대붕(大鵬)이 날아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주민들에게 대붕은 상생 평화 대동 세상을 향한 염원의 상징이었습니다. 해서 주민들은 댐 건설에 동의하는 대신 새로 조성되는 인공호의 이름을 대붕호로 하자고 요구해 관철했습니다. 댐 건설로 마을은 수몰되었지만, 주민들 염원이 담긴 대붕이라는 이름은 살아 대붕호가 된 것입니다. 주민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서일까요? 북한강 상류 수천 골짜기를 품은 대붕호는 하늘에서 보면 놀랍게도 대붕의 형상을 보여줍니다.

 

68년 전 봄날, 대붕호는 핏빛으로 변했습니다. 단 일주일 만에 2만 4,141명의 중국군이 사살됐고 한국,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 젊은 병사들이 흘린 피까지 호수로 흘러들었습니다. 이 비극이 더 끔찍한 이유는 문명국의 정규군이 상대국 병사들 사체를 호수에 수장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니고 국가와 국가의 관계입니다. 개인은 인간과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병사로서 우연히 서로 적이 되는 것이기에 더이상 적대행위를 할 수 없는 상태일 때는 인도주의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러한 자각은 중세 때부터 이어온 관습적 문명이었습니다. 그날의 참극으로 대붕호는 적이라도 이미 죽은 후에는 합당한 예우를 하던 문명까지 함께 수장된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대붕호의 비극은 전쟁의 포성이 멈추고 66년이 지난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독립을 위해 총 한 방 쏜 적 없고 대책 없이 북진만을 외치다 한강 다리를 끊어 죄 없는 동포들을 수장시켰던 자에 의해 대붕호는 이름을 잃고 말았습니다. 전근대적인 고루한 관념에 찌든 불의한 권력자에 의해 대붕호는 깨뜨릴 파(破), 오랑캐 로(虜), 호수 호(湖)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로 불리게 됐던 것입니다. 파로호라는 말에는 외인을 오랑캐로 부르던 한족의 배타적인 자기중심주의라는 역설과 살육을 미화하는 반인륜적 호전사상이 담겨있습니다.

 

 

광대한 호안과 수중에 뭇 생명들을 품어 기르는 아름다운 호수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입니다. 냉전을 뒤로하고 호혜 친선으로 나아가는 시대에 역행해 비극을 재생산해온 이 이름은 진작에 수명을 다했습니다. 대붕호를 대붕호라 부르는 것은 비극의 역사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실천의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대붕을 기다리는 민의 열망은 꺼진 적이 없습니다. '2019 DMZ 대붕호 평화문화제'는 그 간절한 열망을 더욱 키워 마침내 진짜 우리 시대 대붕을 보기 위한 대장정의 서막입니다. 우리는 참혹한 전장이었던 바로 이곳 대붕호에서 평화의 문명을 열어나갈 것입니다. 평화는 강대국의 총부리에 의존해 실현할 수 없습니다. 민족에게 평화는 반목과 질시를 떨치고 본래 하나였던 사람들 사이에 혈맥을 이을 때 찾아옵니다. 반도에서 평화는 우리와 다른 이방인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호혜 친선의 관계를 확장하는 실천을 통해 열립니다. 우리는 국제적인 참극의 현장에 울리는 화해 친선의 합창으로 마침내 대붕이 평화를 품고 나는 장관을 보고야 말 것입니다.

 1980~90년대에 민주화운동 관련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지금은 강원도 화천 오음리에서 농사 짓고 글 쓰고 생들기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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