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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2. 여행의 소품]

2005년 겨울, 개성 자남산 여관에서 맞담배 피운 그 청년이. ...

여행종편
2018-06-07 20:26:18
4    

 

 

1.


때는 2005년 12월 20일.
개성에서 ‘남북운수노동자 회의’가 열렸다.
정식명칭은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북남운수부문로동자 대표자회의’.
남쪽에서는 민주노총 운수연대 39명, 한구노총 한국교통운수노조연합 7명이 참석했고 북쪽에서는 조선운수수산직업동맹 20명 등이 참가했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548

당시는 개성관광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민간단체 구성원들이 대규모로 개성을 방문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방북이 성사되기까지 꽤 오랫동안 통일부 등과 실랑이를 벌였고 승인이 난 후에도 국정원에서 ‘안보교육’을 한답시고 왔다가 산전수전 다 겪은 노동운동가들에게 챙피만 당하고 가기도 했다.

12월 20일 당일 아침, 나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육로로 넘었던 그 길을 따라 개성으로 향하는데 DMZ 구간의 살풍경한 분위기와 수려한 풍광이 지금도 눈에 밟힌다. 부분 가동중이던 개성공단을 지나 개성 시내를 통과했는데 ‘고난의 행군’ 여파가 가시지 않은 때인지라 차량통행은 거의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오가고 있었다. 

열 살쯤 된 남자아이가 조그마한 수레에 땔나무를 싣고 가다가 우리가 탄 차량이 지나가자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아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눈시울이 붉어지더라. 

10시 40분 자남산 여관에 도착하니 10개쯤의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고 각 테이블에 나누어 앉았다. 우리 테이블에는 남쪽으로 치면 코레일 사장쯤 되는 분과 여성 당 일꾼이 함께 앉았다. 북한 직총(직업총동맹)의 구성상 노동자대표라기보다는 기업소 대표인 철도제작공장 대표가 참석한 것이고 당일꾼 여성은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과 출신이라기에 ‘아 그 장군님이 다니셨다는...’이라고 농담조로 물었는데 ‘아시는군요!’라며 자부심에 넘쳐 대답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부 출신이다.)

어쨌든 1시간쯤의 회의를 마치고 선죽교며 박물관 등을 돌아보았다. 나중에 개성관광이 시작되면서 많은 분들이 가봤겠지만 개성은 아름다운 곳이다. 안타까웠던 것은 고려청자와 고구려 고분유물 등 국보급 유물들이 전시된 박물관이 너무 허름하고 심지어 전력 사정도 좋지 않아 사람들이 들어갈 때만 불이 켜지고 나가면 곧 불을 끄는 등 시설과 관리가 너무 허술했다는 점이다. 마음만 먹으면 슬쩍 훔쳐나올 수도 있어 보였다. 관광이 공식화되고 나서는 많이 나아졌다고 들었다.

 

 

2. 


다시 자남산 여관에 돌아와 술을 곁들인 점심만찬이 있었다. 우리가 대부분 3~40대인데 비해 북측 참석자들은 대부분  6~70대 분들이어서 말 걸기도 어색했었는데 역시 술이 한 잔 들어가니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오고 길게 이어지는 건배사에 좀 불콰하게 취할 정도가 되었다.
북측 어른들은 담배도 피우고 하시던데 아무래도 맞담배를 피우기는 뭐해서 화장실 앞 복도에서 담배를 피웠다. 실내였지만 재떨이도 놓여있고 남과 북 가리지 않고 몇몇이 옹기종기 둘러서서 남북 담배교류를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흔한 동네 아저씨들 담배 피우는 모습인데. ...

어느 순간. 쎄한 느낌이 오더라.

대체로 60은 넘은 어른들이 갑자기 담배 피다 걸린 중딩들처럼 담배를 감추고 먼 산을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뒤를 돌아보다가 나도 숨이 헉하고 막혔다. 

젊은 김일성이 떡 하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김일성 주석의 젊은 시절 사진을 찾아보시라. 정말 딱 그 모습이었다.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 청년은 네이비블루색의 인민복에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김 주석을 너무 닮아서 나도 모르게 그 북쪽 어른들처럼 슬금슬금 눈치를 보게 되었다.

특별한 대화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서로 힐끗힐끗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었고 속으로는 회의장에 들어가면 기회를 봐서 그 테이블로 넘어가서 좀 더 알아볼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회의장에 들어가자마자 공식 마무리 일정이 시작되어 끝내 다시 만날 기회를 잡지 못하고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뒷풀이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하자 대부분은 중앙당의 높은 사람이겠거니 하는 분위기였고 아무리 그래도 직총의 대표급이면 그쪽에서도 꽤나 높은 지위의 사람들인데 스무살쯤의 어린 아이에게 쩔쩔 매는듯한 모습은 좀 그렇더라 정도의 얘기만 오갔었다.

그리고 이때는 김정남 정도가 알려졌을 뿐 김정일 위원장의 가족은 누군지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때라 그 때 그 청년이 그 사람일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3. 

 

김정은 위원장이 공식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등장한 것은 2010년 9월 28일 열린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에서 조선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고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임명되면서였다.

이 때 매체에 나온 사진을 보고 내가 그때 자남산 여관에서 조우한 그 청년이 바로 그 김정은임을 확신했고 그 다음 해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고 최고지도자로 권력을 승계한 후 이러저러한 모습이 각종 매체에 등장하면서 더더욱 확신하게 되었지만 남북관계가 좋지도 않았던 때라 어디서 얘기할 기회도 이유도 없었다.

 

 

4. 


그리고 올해 1월 1월 TV조선에서 생중계되는 김정은 신년사를 보다가 ‘평창 올림픽 축하...’등 남북관계 개선 신호를 듣자마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때 자남산 여관 회의 때 사진을 찾으면 세계적인 대특종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10대 때 스위스 유학 시절 찍힌 사진 몇장말고는 없는 22살 때 김정은의 모습, 그것도 남쪽 노동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면 엄청난 관심을 받을 거고, 그렇게 되면 콩가루연합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거고 그러면 나도 기행을 일삼는 자수성가한 .... 뭐 어쨌든 꿈에 부풀어 미친 듯이 사진을 찾았다.

당시(2005년)에는 스마트폰이 있던 때가 아니니 디지털카메라로 찍었을 것이고 남쪽 참석자 40여명 중 디카를 가지고 간 사람을 찾으면 되는 것 아닌가. 기자도 한 명 동행했었는데 일단 배제했다. 왜냐하면 눈치를 채면 먼저 특종을 터트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이 같던 동료들에게도 김정은 얘기는 하지 않고 그냥 자료정리 때문이라고 둘러대는 등 나름 용의주도하게 탐문을 하였으나 끝내 사진을 찾진 못했다.

 

 

5.


그러던 4월 27일.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이 열리고 저녁만찬이 열린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다시 한 번 불끈 의욕이 불타올랐다. TV에 저녁만찬 장면이 나왔는데 김정은 위원장의 불콰한 얼굴을 보니 딱 떠오른 생각이 ‘그 때 그 청년’이 틀림없고 사진만 찾으면 나는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담배를 어떻게 참았을까 궁금해서 그 만찬에 참석한 어떤 분한테 문자까지 보냈었는데 답문자를 받기 전에 뉴스에 나오더군. 혼자 나가서 피웠다고. ...)

그래서 다시 한 번 사진을 탐문했고 두 세명한테서 파일을 받았는데 수 십장의 사진 중에 ‘그 청년’은 없었다. 

이럴 수가! 

결국 그 기자에게 얘기를 해야하나. ...

몇날며칠을 고민하고 머리를 굴리다가 .... 아뿔싸!

 

 

6.
 

마침내 답을 찾았다.

‘그 청년’은 우리 회의 즉, ‘남북운수노동자 대표자 회의’ 참석자가 아니라 자남산 여관에서 있었던 다른 모종의 회의나 모임에 참석했다가 ‘그 화장실 앞 담배 피는 곳’에서 조우했던 것이다.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앞서 쓴 그 장면은 함께 담배를 피웠던 동료는 똑똑하게 기억하는 반면 실내에 있었던 다른 동료들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수의 디카로 찍은 만찬이며 관광 사진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아깝고 아깝고 아깝다. ㅠㅠ

먼발치에서라도 디카로 찍어놨으면 . ....

 

 

7.

 

어쨌든 나는 그 날 ‘자남산여관 2층 화장실 앞에서 함께 담배 피운 그 청년‘이 22살의 김정은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되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기회가 된다면 꼭 물어볼거다.

아니 이제 남측 인사들도 김 위원장 만날 기회가 많을테니 꼭 물어봐 주시라. 특히 내 문자 읽고씹은 OOO님 김 위원장 만나면 “2005년 12월에 개성에 간 적 있으시죠?”라고 대신 물어봐 주시라!

 


후원은 언제나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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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언니가 버선발로 달려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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