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검색

면회

(mediamall)
2018-02-12 07:23:17
10    

 

전주교도소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은 친척은 두 달 후에 폐렴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폐렴이 아니라 고문후유증으로 죽었던 것이다.

지금 들으면 기가 막히겠지만, 그 당시에는 ‘고문’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암울한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1981년 4월에 전주교도소로 이감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른바 공안수(정치범)들은 5대 교도소로 불리는 대전, 대구, 광주, 전주, 안동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 중 대전 교도소는 일제 강점기시기부터 악명 높은 교도소였다. 이른바 5대 정치범 구금 시설인 교도소에서조차 예외 없이 전향을 위한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전주교도소도 마찬가지였다.

전주교도로소 이감된 아버지는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고문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전향 하라는 폭력은 계속되었다. 어차피 공안과 직원들을 통해 고문으로 만들어진 허울만 간첩들인 사람들에게 ‘자유민주주의로 사상’으로 전향하라니? 전향을 하면 간첩임을 인정하는 것인데!

‘간첩이 아닌데, 왜 어떻게 전향을 하느냐,는 억울한 목소리들은 폭력으로 꺼져갔다. 정말 어이가 없지만,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은 계속되었다.

 

수감번호 2120

 

나는 면소재지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아버지에게 첫 면회를 가던 그 봄날, 처음으로 기차를 탔다. 어머니와 큰형님과 함께였다.

나는 그때 면회가 뭔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는 말에 기대와 불안이 함께 찾아왔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건 좋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간첩이라는데, 어쩌지…… 불안정한 내 옆에서 큰형님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면회 하시면서 울지 마세요.”

어머니가 굳은 표정으로 받아쳤다.

“내가 왜 우니, 울 이유가 하나도 없다.”

큰형님은 불안한 얼굴로 어머니를 보면서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나는 더 착잡한 마음이 되었다. 그 심정은 아버지를 만났을 때도 계속되었다.

 

면회실에서 아버지를 보았다.

2120. 아버지는 그 숫자로 불려 나와서 우리 앞에 앉았다. 두꺼운 유리창과 철창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를 보았다. 아버지는 죄수복을 입고서 가슴에 황색 번호표를 달고 있었다. 그곳에 아버지는 2120이라는 숫자로 그곳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기막힌 상황 앞에서 이상하게 관찰자가 되어 있었다. 주변의 모습과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어린 내게 고스란히 전이되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간첩이 된 이후 내가 얻은 특별한 감각이라고 할까. 아무튼 큰형님은 애써 담담한 척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이미 울먹이고 있었다. 그토록 담대하던 어머니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남편 앞에 선 ‘아내’가 되어 있었다.

잠시 후 아버지의 목소리가 유리 구멍 사이로 들려왔다.

“여기 있는 교도관들도 모두 잘 해 준다.”

그러나 아버지는 면회실에 들어온 교도관의 눈치를 살폈다. 내 어린 감각은 아버지와 교도관 사이에 오가는 무언의 압력을 놓치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나는 걱정하지마라……, 가족들이 걱정이다……”

어머니는 돌아오는 내내 소리 없이 울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보안사

 

중학교를 졸업한 해에, 나는 구세주를 만났다. 길 잃은 간첩의 자식에게 선지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람은 마을 선배였다. 85년 어느 날 그 선배로부터 《보안사》라는 책을 받은 것이다. 책을 건네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금도 메아리처럼 내 곁을 떠돌고 있다.

“너희 아버지는 간첩이 아니란다.”

그 당시에는 ‘간첩’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도 금기시 되던 때였다. 그런데 내 아버지가 간첩이 아니라는 말을 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너희 아버지는 간첩이 아니란다.’

그날부터 선배의 그 말은 내 가슴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았다. 내 아버지는 간첩이 아니다!

 

김병진 선생이 쓴 《보안사》라는 책에는, 간첩을 만드는 과정이 쓰여 있었다. 어떻게 간첩으로 조작하고 만들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피가 식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온 몸의 땀샘이 열리고 따끔거리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때 함께 열린 건, 분노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힘없고 무지한 나 자신에 대한 분노까지……

한글자한글자 읽으며 책장을 넘기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아버지도 이렇게 끔찍한 고문을 받고 나서 간첩이 되었겠구나!’

어린 마음에도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분노’나 ‘복수’라는 것도 무언가를 알아야 하는 거라는 사실을.

그 후로 《보안사》는 나에게 성경이 되었다. 길 잃은 양을 안내하고, 기도하며 매달릴 수 있을 만큼 절대적이며 거룩한 성경 같은 책이 된 것이다. (계속)

 


석권호 : 1980년 전두환 정권이 고문으로 조작한 소위 '진도간첩단사건'으로 18년 동안 투옥되셨던 저희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청와대 청원] "군사독재 시절 자행된 간첩 고문 조작사건들의 가해자들을 처벌해주십시오."

[그것이 알고 싶다 1109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사라진 고문 가해자들

댓글[1]

열기 닫기

게시글 검색
1 2

콩가루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