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검색

제헌헌법의 이익균점제, 6.25 전시하 파업과 노동법 제정

운수노동자
2020-11-02 15:56:54
1    

 

 

1. 70년 전에 이런 급진적인 사상이 있었다니?! : '이익균짐권'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대한민국 제헌헌법 제18조 제2항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해서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익균점권'이라고 불리는 이 조항은 외국헌법을 베끼다시피한 다른 조항들과 달리 치열한 토론을 거쳐 만들어졌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이익공유제'보다 훨씬 급진적인 사상이다참고로 삼성 이건희 회장은 이익공유제에 대하여 '경제학 책에서 듣도보도 못한 학설'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는데 우리나라 제헌헌법에 명시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익공유제가 소극적인 보상을 의미한다면 이익균점제는 적극적인 권리이고 기업의 의무로 강제했다는 점에서 지금으로 보면 대단히 급진적인 사상이다.

 

 

특이한 것은 이 이익균점제를 강하게 주장한 이가 반공우익인사인 전진한이었다는 점이다.

전진한은 해방 후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 조직이었던 전국노동조합평의회를 파괴하고 이승만 친일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대한노총(한국노총의 전신초대위원장은 이승만)을 건설한 인물로 이승만 내각의 초대 사회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생각으로는노동자는 노력을 출자했다는 의미에서 자본가와 다름없으며따라서 이윤을 균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쨌든 제헌헌법 18조의 이익균점제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야 하는데 그 법률이 제정되지 않아 실현되지 못했고 헌법조항조차 5.16쿠데타 후 삭제되었다.

 

현행헌법에서 이익균점제의 흔적을 찾아보자면 제119조가 될 것이다.

헌법 <119조 2>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가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전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재벌독식구조의 경제체제가 심화되는 가운데 심지어 이 조항의 삭제나 완화까지 논의되고 있는 지경이다.

 

십수년 전 민주노동당이 무상교육-무상의료를 제기했을 때모든 정치세력은 공산주의적 발상이라며 반대했었다그러나 이제 보편적 복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대하지 못한다.

70년 전 제헌헌법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공유되었던 이익균점제가 후퇴하고 후퇴하여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로 개종된 6차 헌법 제119조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살아나기는 했지만 이 조항 역시 현실에서는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당과 노동단체들이 이러한 진보적인 주장을 되살려야 할 것이다.

 

 

2. 6.25 전쟁 중에 노조가 파업을 했었다고?!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하여 '지구상에 이런 파업은 없다'고 일갈했다대통령의 이 한마디로 멀쩡한 합법파업이 불법으로 둔갑하고 1만명이 넘는 대량징계와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가 행해졌다.

이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철도와 같은 국가기간산업에서의 파업은 있어서는 안되는 '무조건 불법'일 것이다.

이런 대통령에게 전쟁 중에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면 어땠을까?

6.25 전쟁 중에 파업이 벌어졌다면 당장 총살시키려고 들지 않았을까?

 

그런데 6.25 전쟁 중에 수많은 대형 노동쟁의가 있었고 그것이 당시까지는 없었던 노동관계법 제정의 계기가 되었다.

당시 벌어졌던 노동쟁의들은 다음과 같다.

 

시기/사업장/참가인원/요구사항/기타 
51년9월/인천부두노동자//노임 및 조합비과잉징수 
51년11월/인천부두노동자/1만여명/임금5할, 식량배급/미군상대파업, 요구관철 
51년11월/부산부두노동자//부산중앙부두 소각, 군수물자 소각, 대사관방화, 병기창폭파 
52년1월/부산조선방직/3천여명/임금인상, 노동자폭압반대, 사장퇴진/국회앞 시위투쟁 
52년2월하순/진해미군제55보급회/1천5백/임금인상, 전쟁물자 하역반대 
52년2월/영월,도계,장성,은성,화순 등 광산//체불임금, 식량대책 
52년2월/상동,하천 광산노조//노임지불 방법개선 
52년3월/부산조선방직/전체노동자/재파업/1,343개 직조기, 109대 정방기 운전 완전정지 
52년3월/조선전업노조//미불노임요구 
52년3월/철도노조//식량배급개선, 노동시간단축 
52년4월/주안염전노동자//임금 50%인상 
52년4월말/영월탄광노동자//임금인상, 체불노임, 식량배급/영월화력발전소 석탄공급중단 
52년4월/대구관영기업공장폭파 
52년7월(19일,29일)/부산부두노동자/3만/전쟁물자하역거부 불법성 규탄/대통령선거 
53년2월/부산부두노동자/1천여명/미군 조선노동자 학살 항의파업/미군사시설과 기관들 파괴소각 

 

방직부두광산 등에서 벌어진 쟁의는 전시하임에도 단순히 노무제공 거부에 머무르지 않고 기계파괴에 이를 정도로 대단히 극렬했다이것은 북한의 사주나 조종에 따른 것이 아니고 만성적인 체불이 주원인으로 당시 정부는 51년과 52 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동관계법 제정을 서둘렀다이 때 급조된 노동관계법의 법체계를 보면 근로계약,단체협약 등 전체적인 골격은 대륙법을 기초로 하면서도 부당노동행위,노동위원회,냉각기간 등은 미국법제를 모방한 혼합형이었다.이때의 노동관계법 골격은 영미법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한 것이어서 상당한 수준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1970년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며 분신한 그 근로기준법도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63년 노동법을 대폭 손질했지만 근로기준법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1953년 6.25 전쟁 중에 제정된 한국 노동관계법은 그 후로 끊임없이 개악되어 왔다.

박정희 정권은 1971년 12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면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사실상 전면 제한하는 조항을 신설했는데 이 조항은 72년 12 유신헌법에 그대로 반영돼 10여년간 효력을 유지했다.

 

전두환 정권은  80년 12월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의해 한차례 크게 틀을 바꾸게 되는데 문제의 제3자 개입 금지조항이 신설되고 주48시간한도의 변형근로제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이 당시이다1987년 6월 항쟁과 7~9 노동자 대투쟁의 영향으로 노동관계법은 대폭 개선되었지만 김영삼 정권은 1996년 12월 25일 노조법-안기부법을 날치기 처리해서 민주노총은 96~97 총파업 투쟁으로 저항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역시 비정규직법 정리해고법을 도입하여 오늘날 쌍용자동차한진중공업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비극적인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이명박 정권은 타입오프와 교섭창구 단일화 도입으로 노조활동을 극단적으로 위축시켰다.

 

헌법과 법률의 역사를 살펴보면 노동권은 점차 축소되어 왔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노동이고 노동자의 권리, 노동인권이 실현되지 않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덜 실현된 사회이다. 우리가 노동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더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

 

<참고자료>

 

    <이익균점권>라는 사상/시사IN http://j.mp/UV8yqI

    <노동법 특집노동관계법 개정 어떻게 돼왔나연합뉴스 http://j.mp/TDQ2C9 

    6.25한국전쟁과 노동운동 김상복 http://j.mp/WljyJL

댓글[0]

열기 닫기

 

콩가루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