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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논란]

권위에 의존하다

박성호
2017-04-21 20: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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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사람은 판단의 과정에서 매우 심하게 "권위"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잘못된 주장을 펼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무의미한 권위를 동원하여 주장을 포장한 다는 것은 매우 옳지 않은 행위이며 비판받아야 할 일이 된다. 반대로 어떤 새로운 주장을 접하는 경우에는 그 주장을 있는 그대로 살펴볼 일이며, 그 주장을 둘러싸고 포장하고 있는 무의미한 권위를 신뢰해서는 안될 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무의미한 외적 권위를 자신의 주장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잘 써먹은 사악한 사례가 바로 황우석의 논문 사기 사건이기도 하다. 국가적 신뢰를 온몸에 받고 있던 그가 굳이 사이언스라는 학술지에 조작된 논문을 보내 자신의 업적으로 삼으려고 했던 이유가 뭘까?

 

자신에 대한 신뢰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최고의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쓴 저자라는 권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이제 그 누구도 자신의 업적을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논문이 조작되었음이 밝혀지면서 학자로서의 삶이 끝장나는 결과를 얻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주장은 있는 그대로 내용과 그 내용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중요한 것이지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권위 같은 것들은 아주 하찮은 조역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고, 불필요한 권위를 너절하게 늘어놓는 주장들은 대부분 그 주장의 본질이 허약하거나 자신이 없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라는 점이다.

 

김어준의 <더 플랜>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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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에 인용된 '마스터플랜 1.5"라는 논문은 미국 조지아서던대 역학부 전희경 교수, 캐나다 퀸즈대 수학통계학부 현화신 교수 등이 작성에 참여한 논문이다. 김어준 역시 그 논문의 저자로 등록되어 있다.

 

이 논문은 지난 4월, 미국 중서부 정치학회 (MPSA)의 연례 학술대회의 포스터 세션에서 발표된 것이다. 문제는 이 문장의 뜻을 일반인들이 잘 모른다는 점이다.

 

포스터 세션이라는 말은 이 논문이 정식으로 피어 리뷰를 통과하지 않았고 학회에서 만드는 학술지에 실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즉, 동료 학자들의 검증을 통과하지 않은, 대학원생들이 주로 요약본을 발표하는 수천개의 논문 중 하나라는 뜻이다. 학회는 이런 논문을 모두 지지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 학술적인 검증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논문이기 때문이다. 그저 수많은 대학원생들이나 초보 학자들이 학회지 게재로 가기 위한 첫 관문으로 생각하는 그런 단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더 플랜> 영상을 본 시청자들은 이 K값 1.5에 관한 주장은 통계학의 권위자인 교수가 권위 있는 미국의 학회에서 발표한 제대로 된 권위 있는 논문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지점이 바로 잘못된 권위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 김재광 교수는 영상에 이 논문의 결과를 옹호하는 멘트를 많이 남기기도 했다. "번개를 연속으로 두 번 맞을 확률"이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이 표현은 마치 황우석의 "300억조 국익" 발언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영상의 시청자들은 이 발언을 교수의 권위가 실린 발언으로 듣게 된다. 이건 조작이 절대적으로 확실하구나..라는 느낌.

 

특이하게도 <더 플랜>은 한국의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다루는 영상이면서도 외국인들이 많이 출연한다. 물론 국내의 전문가들은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권력은 죽었다. 지금도 불가능할까? 아니면 국내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투개표 시스템에 대해 별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전자투표"를 시행하는 미국의 특정 지역에서 투표 결과를 조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작성했던 경력이 있는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가 출연하여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는 것이 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가 만든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해당 출연자가 한국의 선거제도를 이해는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긴 하다.

 

또한 전자투표를 시행하다가 포기하게 된 독일의 사례를 설명하는 경우도 등장한다. 독일의 선거제도의 특징과 우리의 선거제도의 특징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이지만 그 역사 자체가 깊고도 복잡한 문제라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런 과정을 모두 건너뛰고 독일은 전자투표제를 버렸습니다. 우리는 어째야할까요?라고 묻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가장 무의미한 지점은 우리가 전자투표제도를 채택하지 않은 국가라는 점이다.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투개표 절차에서의 투표지 분류기는 개표 "결과"를 자동으로 생성하지도 않고 전송하지도 않는다. 분류기의 결과를 사람이 검증하고 손과 눈으로 확인한 뒤에 개표 상황표를 만드는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이건 전자 투표 시스템은 아니다. 수개표를 하자는 주장을 만나게 될 때마다 제일 답답한 것이 "이미 하고 있는 수개표를 어떻게 또 하자는 주장인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더 플랜>에서는 사실상 무의미한 권위, 어떤 경우에는 잘못된 권위를 무척 많이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발견된다.

 

왜 그랬을까?

 

자신들의 주장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권위를 덕지덕지 붙여 놓은 주장들 중에 제대로 된 진실이 담겨있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더 플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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