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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읽고 살자]

생각으로 인도하는 질문 여행

박성호
2017-02-20 06: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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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환타 전명윤 작가는 젊은 시절에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에게 그런 변화를 허락하지 않았고, 그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인도에 가게 된다.

 

그리고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인도의 모습에 반해 인도를 탐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쳐온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인도 환타"라는 이름 자체가 다국적 기업이 만드는 음료수의 상표명 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인도에 대한 "환상을 타파하자"라는 의미라고 한다.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여행, 인도에만 가면 태곳적 신비가 살아 숨을 쉬고 누구나 명상을 하게 되고 종교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며 자신의 내부에 숨겨져 있던 자아를 찾게 된다고 주장하는 말랑말랑하고 감미로운 수많은 인도 관련 서적들 중 단 하나도 인도의 본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며, 그런 환상을 깨버리겠다고 큰 소리를 치면서 "환타"라는 작명을 한 젊은 환타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 후 그는 실제로 인도 여행판에서 현장의 전문가가 되어 버린다. 그가 쓰고 거의 매년 새로 판올림을 하는 인도 여행에 관한 가이드북은 필드에서는 국내 최고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작품이 되었고, 그를 둘러싸고 형성된 인도 여행자 커뮤니티는 지금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인도인 범죄자에게 피해를 받은 국내 여행자를 돕기 위한 활동을 하다가 재판까지 당하기도 한다.

 

물론 무죄 판결을 받게 되어 다행이기도 하다.

 

여행자들을 홀려 한 명이라도 더 인도 여행에 나서게 만드는 일, 인도 현지에서 한 푼이라도 돈을 더 쓰게 만드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 자신도 넉넉지 못한 수입으로 인해 항상 곤궁을 벗어던지지 못하면서도 자존심을 뜯어먹고살아도 배가 부르다는 양 돈 안 되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

 

남들 대부분이 그러듯이 현지의 업자들과 슬그머니 결탁을 해서 숙소나 식당을 홍보해주면 홍보비 수입이라도 올리련만 그런 기회도 스스로 걷어차 버린다. 그의 가이드북에 실린 모든 음식들은 직접 자기 돈 내고 사 먹어가며 취재를 한 내용이고, 그가 찍어온 현지 숙소들의 모습은 업소의 협조를 거부하고 말 그대로 여행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 꼬장꼬장함에 반해 환타의 팬이 된 나에게 있어 그가 무려 "대한항공"의 도움을 받아 인도에 관한 에세이집을 낸다고 했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실망감이 밀려왔다는 점은 솔직히 고백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 그 친구도 지칠 때가 되었지. 이제 돈 맛 좀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아."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평소 자기가 그렇게 혼줄을 내던 말랑말랑한 에세이집을 낸다는 것. 환상에 빠져 인도를 무슨 낙원으로 착각하는 젊은 예비 여행자들의 코 앞에 초심자는 감당하기 힘든 인도의 속살을 보여주며 이래도 거기에 가보고 싶냐고 겁을 주던 그가, 그렇게 제 밥그릇을 발로 차 엎어 버리던 그가 인도의 숨은 아름다움, 인도의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을 운운하는 에세이를 쓴다니, 실감이 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흐르자 어느새 내 손에는 그가 썼다는 책, <생각으로 인도하는 질문 여행>이라는 책이 들려 있었다.

 

 

제목도 참, 달달하기도 하여라.

 

그래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자아는 인도에 가보면 다 모여서 굴러다니고 있는거 맞나? 하는 배배 꼬인 마음으로 책을 열어보았다. 그간의 정에 못 이겨 서평을 써주겠다고 했으니 안 읽고 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마지못해 귀차니즘의 습격에 괴로워하면서 억지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결과는 사뭇 달랐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정도?

달달하게 썼다. 에세이집 맞다. 고통스럽지 않고 편하게 술술 읽힌다. 인도도 사람 사는 곳이며 나름대로 멋과 낭만이 살아 있는 동네라는 것, 아주 쉽게 받아들여진다. 고질적인 전력부족에 시달리는 인도의 현실을 이용해 숙소 옥상에서 정전되는 타이밍을 잡아 쏟아지는 별들을 올려보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보라는 조언까지 등장하는 판이다.

 

세상의 끝을 가보고 싶어 하는 여행자들에게 "여기에 세상의 끝을 보여주마"라고 외치는 내용도 있다. 신들이 공기놀이를 하다가 버리고 간 공깃돌이 쌓여 있는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 경치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타의 본색을 버리진 못한다. 내 입가에 슬며시 번지는 웃음이 그걸 입증한다. 역사 속에 명멸하는 작은 왕조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그들이 벌이는 종교적인 갈등과 그 무의미한 갈등 속에서 고통받던 민중의 슬픔을 슬며시 끼워 둔다.

 

권력자들의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낭비되고 소모된 역사의 흔적들을 아까워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인도 사회가 가진 비합리적이고 구시대적인 폐습을 조롱하기도 한다.

 

이 모든 비판적인 시선들, 그리고 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는 민중들에 대한 사랑을 결코 숨기지 못한다. 그런 성질은 숨긴다고 숨겨질 일이 아니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든 느낌들은 결국 하나로 모여 폭발한다.

 

전 세계 역사상 최초로 공산주의자들이 폭력혁명이 아닌 합법적 정권 쟁취가 벌어졌던, 인도에서 가장 지성적인 도시이자 현실의 낙원에 가장 가까운 "께랄라"를 소개하는 환타의 문장에서는 자부심이 넘쳐흐른다.

 

이거 쓴 사람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말이다.

 

구걸하는 장애인이 신문을 읽고 있고, 유람선의 선장이 모든 여행자들과 더불어 각자의 출신 국가에 대한 정치 토론이 가능한 도시 께랄라에 대한 예찬이 이어진다.

 

이제사 고백하지만 그간 여러 가지 일을 같이 해오면서, 또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수없이 쏟아내던 환타의 인도 예찬론에도 솔직히 단 한 번도 마음이 흔들려본 적이 없었다. 차라리 이집트를 가면 갔지 더럽고 시끌벅적한 인도를 뭐하러 가냐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었다. 인도에 한 번 가봐야겠다. 어지간히 고집이 센 나를 이 책이 설득한 셈이다.

 

이 책은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숨어있는 젊은 혁명가가 우리들에게 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설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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