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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투데이]

낫투데이 20170719

박성호
2017-07-19 11: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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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암 확진을 받을 때부터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도대체 내가 왜? 왜 나에게? 내가 뭘 잘못해서?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죠. 왜 나한테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이 생기는가, 내가 뭔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 는 건가, 아니면 내가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다거나 오염된 환경을 모르고 겪어 버리면서 암에 걸리게 되었 나, 그렇다면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인가, 뭐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생각을 온전히 사로잡아 버려서 다른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한 번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수시로 그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벗어나기가 정말 힘들죠.

 

암에 걸릴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암 발생자 숫자는 약 20만 명 정도 됩니다. 10만 명당 비율로 보면 405명 정도. 즉 0.405%입니다. 이 정도면 사실상 무시해도 좋은 낮은 확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1년만 살고 마는 게 아니죠. 매년 암환자는 저만큼씩 생겨나고, 암에 걸릴 확률은 누적됩니 다. 만약 70년을 살아왔다면? 이제 그 확률은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높아지죠. 한 사람이 그 사회의 평균수명까지 살면서 암에 걸릴 확률은? 미국이나 우리나 이 기준으로 계산을 하고 통계를 낸다고 합니다.

 

그 확률은 굉장히 높습니다. 무려 36%, 1/3이 넘는 확률입니다. 70살까지 살았다면 셋 중의 한 명이 암에 걸린다는 얘기가 됩니다. 정말 무서운 숫자입니다. 그러나 이 숫자 역시 계산에 의한 숫자일 뿐입니다. 어디까지나 평균 수명까지 살았을 때 이야기입니다.

 

30 대나 40대의 경우는 이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당연하죠. 암은 평생에 걸쳐 골고루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 노년층에게서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하니까요. 보통 이렇게 높은 확률을 들이대면서 셋 중의 한 명은 암에 걸 린다고 협박 비슷하게 홍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암 관련 보험업자거나, 건강식품 판매자들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인 생각들은 막상 내 이야기가 되었을 때, 아무런 도움이 못 됩니다.  ‘그래, 내가 암에 걸릴 확률은 몇 퍼센트였군, 알겠는데 내가 왜 거기에 포함되어야 하는 거지? 아닌 쪽에 포 함될 가능성이 훨씬 높잖아.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라는 생각이 남게 되죠.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담당 의사 선생님께, 무려 최고 수준의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분께 여쭤봅니다. “교수님, 제가 이 암에 걸린 이유가 뭡니까?” 교수님의 답변은 예상 밖으로 아주 간단 명쾌했습니다. “암은 랜덤입니다.” 뭔가 찌르르하게 다가오는 답변이었지만 그래도 약간 저항을 해 봅니다. “아니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구강암이니까 제가 담배를 많이 피워서 그렇다거나..” “물론 통계적으로 흡연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암 발병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만, 아직 의학은 흡연과 암 발병 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혀내지는 못했다고 봐야죠.” “그럼 제 잘못이 아닌 겁니까?”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런 마음 갖지 마세요.”

 

뭔가 죄를 사해 주는 그런 느낌이 순간 들기도 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구나, 다만 그냥 그냥 운이 없 을 뿐이었어, 라는 느낌인 거죠. 물론 내가 만약 담배를 안 피웠더라면, 더 일찍부터 체중관리를 잘하고 건강관리, 치아 건강관리 등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좀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좀 더 청결하게 생활을 하고 그랬더라면, 술 끊고 매일 운동 하고 그렇게 살았더라면 암에 걸릴 확률은 현저히 더 줄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죠. 이거 제 잘못 아닌가요? 과거의 나는 왜 조금 더 제대로 살지 못했는가, 하는 자책이 들기도 합니다. 또, 아무리 랜덤으로 운이 나빠서, 뽑기를 잘못해서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이 병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들 에 대한 내 의무, 또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의무를 다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으니, 그게 내 죄의 시작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차라리 내가 뭘 잘못해서 이 몹쓸 병에 걸렸다고 생각이 되면 그게 더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냥 운이라니, 그냥 뽑기를 잘못한 거라니, 더 억울하죠. 그럼 난 잘못한 것도 없이 이런 병에 걸렸다고?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신에게 항의라도 하고 싶어 집니다.

 

차라리 무슨 나라를 팔아먹었거나 연쇄살인을 했거나 대규모 사기를 쳐서 수천 명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하 는 죄를 지어서 그 대가로 병에 걸렸다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좀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까지 떠오릅니다.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모든 환자들, 또 병이 아니라 사고를 당하신 분들도 다 이런 생각 하실 겁니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분들도 마찬가지겠죠. 도대체 왜 나에게? 진짜로 풀기 힘들고 답하기 힘든 질문입니다. 잠이 안 올 정도로 고민이 되고, 그렇게 밤새 엎치락뒤치락하 면서 고민을 해 봐도 답이 안 떠오릅니다.

 

그러나 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답을 알면서도 인정하기가 싫은 것뿐이죠.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에게 제가 자주 해주던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면 조금 더 잘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거죠. 그러면 십중 팔구는 그럴 기회만 있으면 더 잘할 거 같다고 답변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자책을 하거든요. 그럴 때 저는 이야기해 줍니다. 과거에 당신이 했던 모든 선택들이 모여서 지금의 당신을 만든 거라고. 과거의 당신은 그 순간에 당신이 할 수 있던 최선을 다한 거라고. 만약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당신보다 더 열심 히 일을 해서 뭔가를 바꾸어 버린다면, 그렇게 바뀐 오늘의 당신은 아마 당신이 아니게 될 거라고 말입니다.

 

제가 지금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저에게 조언을 구하던 그 후배들과 정확하게 똑같은 이유에서인 겁니다. 저는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려야 하냐고 울부짖으면서 과거로 돌아간다면 내가 살아온 인생을 바꿔 이런 병에 안 걸리게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는 거죠.

 

그냥 이런 병에 걸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 현실이 싫 을 뿐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도피하려고 하는 거죠.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은 바로 과거의 내가 했던 모든 선택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오늘의 결과이자 현실일 뿐입니다.

 

가장 현명한 행동이라면 이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다시 쌓아가는 것뿐입니다.

 

그게 가족을 위해, 친지들을 위해,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제 가 아는 모든 분들을 위해, 무엇보다도 저 자신을 위해 가장 충실한 행동이 되겠죠.

 

그런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민은 계속됩니다. 사람이기 때문이죠. 무섭고 외롭고 두렵고, 그 러면서 동시에 이 현실이 내 현실 같지가 않고 인정이 안되고.. 그나마 이런 고민을 접을 수 있게 완치를 향해 나아가는 줄 알고 마음을 놓고 있다가 다시 재발 판정을 받게 되니 이런 고민이 다시 스무 배의 무게로 저를 짓눌러 오고 있습니다.

 

힘드네요.

 

다음에는 좀 밝은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읽어도 너무 어둡군요.

 

2017.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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