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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투데이]

낫투데이 20170815

콩가루연합
2017-08-15 15: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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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안 좋은 꿈을 꿨습니다.

 

저 스스로가 살고자 하는 의지를 버린 겁니다. 고통도 싫고 재활도 싫고 굳이 이렇게까지 살려고 애를 바둥 바둥 써야 하냐는 생각을 하면서 보지도 듣지도 않고 외부와의 연결을 다 끊어 버리고 자신만의 세계에 스 스로를 가두고 서서히 꺼져가는 등불처럼 죽어가는 꿈을 꿨습니다.

 

오히려 편했어요.

 

이래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고 고통도 없고 그냥 사라지면 되는 거니까요. 남아 있을 사람 들에게 조금 미안한 느낌도 있었지만 뭐 어떻습니까. 내가 사라져 버리면 그걸로 모든 게 끝인데요.

 

꿈에서 깨어나면서 아주 기분이 나빴습니다. 이건 마치 제가 겉으로는 어떻게 해서든 재활을 하고 수술 후유증들을 모두 극복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완치를 향해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얘기하면서도 속 으로는 그 모든 노력들을 하기 싫어하고 있거나 두려워하고 있다는 고백을 스스로에게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잘난 척하고는 있지만 사실 넌 두렵고 무서워서 모든 걸 내팽개치고 어디론가 도망쳐서 숨고 싶어 하는 어 린아이 같은 심정 아니냐는 질책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왜 이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는 이해가 갑니다. 수술 이후 처음으로 병원에 가서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고 왔거든요. 수술은 잘 된 것 맞고 순조롭게 아물고 있었고 몇 가지 문제점이야 있지만 심각한 일은 아닌 걸로 확인을 받았습니다. 물론 아직도 코 속은 피딱지 투성이고 절개 자국 따라 퉁퉁 부어 있으며 턱근육은 말을 안 듣는 등 일반적인 기준이라면 만신창이 수준이지만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나아질 것들이니까요. 코가 잘려나간 티리온 라니스터보다야 훨씬 더 나은 수준일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재발의 가능성입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방사선 치료를 담당하실 방사선 종양학과 선생님과 항암치료를 담당하실 종양내과 선생님을 모두 예약해 두고 그분들과 잘 상의해서 가능하면 방사선 치료, 항 암치료(약물치료)를 모두 받길 권해오셨습니다.

 

이 대목부터는 좀 어려워집니다. 저는 이미 일차 수술 이후 상당한 양의 방사선을 쬐는 방사선 치료를 받은 상태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발을 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그게 어떤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추가적인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걸린 종류의 암에 있어서는 항암치료가 효과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일반적인 얘기를 많이 들었 습니다. 그 말도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치의 선생님이 일차 수술 때와는 달리 두 가지 추가 치료를 모두 받기를 권하는 이유는 재발의 가능성 때문입니다. 수술 직전에 확인한 암세포의 특징, 아마도 채 한 달이 못 되는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나간 그 습성을 의미하겠죠.

 

그런 특징을 볼 때 질이 상당히 안 좋은 세포들이며 아무리 보이는 조직을 모두 긁어냈다 하더라도 언 제 또 급하게 조직이 다시 자라나 버릴지 모른다는 얘기일 겁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하자, 그렇 게 조금이라도 재발 가능성을 낮춰서 “생존”의 확률을 높여 보자는 애기일 겁니다.

 

비록 그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얘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최선의 길일 겁니다. 단순한 추정도 아니고 수많은 경험과 기록들 사이에서 찾아낸 가장 확률이 높은 길일 겁니다. 아마 저도 고민 끝에 권고대로 극도로 고통스러운 두 가지 치료를 다 받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제 가치관으로 봐도 그렇고 저희 집안 형제들의 사고방식으로도 다들 그걸 권할 겁니다. 그러나 제 마음 한 편으로는 그렇게 고통스럽게 두 가지 치료를 다 받고 만신창이가 되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채 회복하기도 전에 다시 재발하게 되면 어쩌냐는 생각이 듭니다.

 

뭘 하든, 어떤 고통을 참고 어떤 의지를 가지고 그 어떤 최선을 다하더라도 어느 한순간 재발이 다시 시작되면 그 모든 노력은 물거품 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제 시간은 끝이 날 겁니다. 차라리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삶의 질이라도 높아지게 고통스러운 치료는 포기하고 수술이 잘 되었으니 빨리 회복한 다음 어딘가 평화롭고 깨끗한 곳에 가서 천천히 살아가는 것이 생존을 연장할 가능성이 더 높은 방 안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재발 가능성은 더 높아지겠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뿐입니다.

 

저는 더 살고 싶습니다.

 

그것도 만신창이가 된 몸을 가지고 고통에 허덕이며 사는 게 아니라 하루를 살아도 평온하고 건강하게 지내고 싶을 뿐입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빨리 회복하라”, “몸조리 잘 하라”, “어서 회복해서 돌아오라” 고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 주십니다.

 

심지어 후불제 원고료 공지를 했더니 원고료로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금액들을 보내주시기도 합 니다. 어떻게 해서든 제가 회복되길 원하시는 그 마음, 눈물겹도록 감사하고 또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답답합니다. 회복할 자신 있습니다. 허벅지 피부 떼어낸 자리 거의 다 나았고, 이식도 잘 되었다고 합니다. 수술하느라 목구멍 아파진 것도 다 나아갑니다. 아직도 가끔 좀 아프긴 하지만 말입니다. 입은 부자연스럽고 턱 근육은 밥 한 숟가락을 못 먹게 아프지만 그것도 나아질 자신이 있습니다. 아픈 거 참고 연습하면 되고 시간 맞춰 잠들고 시간 맞춰 밥 먹어가면서 체력을 쌓을 자신도 있습니다. 이거보다 더 잘하는 몸조리는 없을 정도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한 번 더 받으라면 받고 항암치료를 하자고 하면 머리가 다 빠지건 하루에 오십 번씩 구역질 을 하건 체중이 이십 킬로가 더 빠져서 뼈만 남게 되는 한이 있어도 다 받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하나, 그렇게 고생을 해 나가다가 이번처럼 어느 날 갑자기 덜컥 재발 판정을 받을까 봐 그게 두 려울 뿐입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 버릴까 봐 무서울 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별다른 수가 없습니다. 재발하는 상황? 그런 건 아예 생각을 안 할 겁니다.

 

어느 순간 재발이 된다면 저는 부서지는 겁니다. 인간은 강요된 상황에 의해서 부서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무릎 꿇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건 저는 끝까지 버틸 생각입니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산티아고 영감처럼 말이죠. 염치없는 부탁입니다만, 여러분들도 함께 기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회복하고, 돌아오고 이런 게 문제가 아닙니다. 재발되지 않기만을 빌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 습니다.

 

꿈은 현실과 반대라고 합니다. 반대여야 하고, 반대가 될 것입니다.

 

2017. 8. 15 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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