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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투데이]

낫투데이 20180930

박성호
2017-09-30 17:28:56

우울합니다.

 

뭐 암환자라고 우울해하지 말라는 법은 없죠. 우울할 때도 있고 우울해할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우울한 상태가 투병에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게 맘대로 되면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겠죠.

 

거기다가 우울하다거나 슬프다거나 두렵다거나 하는 내용의 글은 가급적 안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글을 쓸 때 좀 더 제대로 된 표현을 담으려고 노력을 하다 보면 글에서 묘사하는 감정이 더 증폭되어 느껴지게 되곤 하거든요.

 

기쁘다는 글을 멋지게 잘 써내면 훨씬 더 기뻐지고 슬프다는 내용의 글을 훌륭하게 써내려 가다 보면 진짜 눈물이 날 정도로 원래의 감정보다 몇 배나 더 슬퍼지곤 합니다.

우습지만 자신이 쓴 글에 글쓴이 자신의 감정이 이입되는 현상이겠죠.

그래서 더 어두운 내용의 글은 안 쓰려고 하지만 쓸 때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황은 이렇습니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진료를 받았습니다. 주치의 역할을 해 주시는 이비인후과 담당 교 수님을 만나서 좀 더 공격적으로 치료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맞는 말이죠. 제 나이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봐서는 재발의 우려를 줄이기 위해 힘들더라도 항암치료 등을 좀 더 강하게 하는 게 좋다 는 것이 의학적인 관점에서, 아니 과학적 관점에서는 옳은 얘기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힘들어서 미뤄둔 상태예요. 그러니 살짝 내가 뭔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드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요.

 

뭐 그건 그렇게, 시월 초 연휴가 지나면 다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될 내용이니까 그렇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미뤄둔 문제, 귀 속,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이 부분, 고막 안쪽에 물이 차서 귀가 잘 안 들리고 고막이 눌려 아픈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을 했죠. 그래서 다른 이비인후과 강사님을 소개받고 일정을 잡아 고막을 뚫고 튜브를 삽입하는 시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같은 전문의라도 구분이 되는 호칭이더군요. 교수와 강사. 아마 지정 진료, 소위 특진을 하는 의사와 아직 그게 안 되는 전문의를 구분하는 명칭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병원 내의 호칭 구조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거나 담당 의사 선생님이 직접 안 하고 다른 분을 소개하여주는 거 보니까 뭔가 단순하고 흔한 시술인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되긴 했죠.

 

그래서 진찰을 받으러 가서 간단하게 귀속을 들여다 보고 튜브 삽입을 하는 걸로 결정하고 날짜를 잡았습니다. 연휴가 되기 전이라 바로 다음날로 급하게 잡아 주시더군요. 시술은 뜻밖에 간단하게 끝났습니다. 수술실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린 게 전부고, 막상 수술실로 들어가자 옆으로 누워 귀만 남기고 천을 덮은 뒤 바로 마취주사를 두 방을 귀 속에 맞았습니다. 오, 부분 마취를 한다더니, 그 마취주사 한 번 제대로 따끔하네,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몇 초도 안 걸려서 의사 선생님이 물어보시더군요.

“뭔가 좀 시원하지 않으세요?”

귀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나긴 했는데 갑자기 물어보는 그 목소리가 엄청 크게 들립니다.

 

즉, 그 몇 초 사이에 이미 고막을 살짝 뚫어서 그 안에 차 있던 물을 뽑아낸 겁니다. 그러자마자 먹먹하고 저 멀리서 속삭 이는 것처럼 들리던 소리가 갑자기 옆에서 말하는 소리로 들리게 되고 시원하기 이전에 깜짝 놀라게 된 겁니다.

물론 귀 속에 항상 거북하게 느껴지던 고막을 누르는 압박감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소리가 크게 들리네요.” 라고 답을 하자, 그럴 거라면서 후속 작업을 진행합니다.

고막을 뚫고 물을 빼내더니 그 뚫은 자리에 조그마 한 플라스틱 튜브를 삽입, 고정하는 작업입니다.

고막을 뚫은 채로 놔두면 바로 아물면서 구멍이 다시 막히고 물이 또 차게 될 테니 물을 배출할 수 있도록 구멍을 유지하는 장치를 달아 버리는 거죠.

이 밸브는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정도 귀속에 장착을 한 상태로 놔두다고 하네요. 그 튜브를 장착하는 것 도 얼마 안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기다리는 시간을 제외한 실제 시술 시간은 5분도 안 걸리는 거예요. 그러고 끝났습니다.

 

마취의 효과로 귀 근처가 무감각해진 것은 그렇다 치고 세상의 사운드가 갑자기 모노 사운드에서 스테레오 하이파이 사운드로 변하니까 정신이 없더군요. 그러나 좋기만 하고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고막 근처에 살짝 이물감 비슷한 통증이 남아 있기는 하죠. 그리고 그 근처의 상황에 따라 마치 높은 산에 차를 타고 오르거나 비행기 이륙할 때 고막에 압력 변화가 느껴지면서 소리가 들리는 상태가 바뀌는 것 같은 현상이 가끔 벌어집니다.

 

그리고 고막에 염증이 생기지 말라고 물약을 하루에 두 번 귀 속에 넣어야 하는데 그때마다 와삭와삭 소리가 나면서 또 청력 모드가 바뀝니다. 그때마다 내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절대 아니고 뭔가 신체 각 부위에 계속 문제가 누적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거기다가… 원래 제가 느끼던 통증은 참 다양했습니다. 일단 수술 부위, 환부에 묵직한 통증이 수시로 다가오고 부어 있는 코 주변에 통증이 간헐적으로 옵니다. 또 턱근육 부위에 근육통이 거의 계속 있고, 이런 통증들이 한 번 몰아치면 따라오는 두통이 있습니다.

그 와중에 고막에 압박감과 가끔 오는 찌르는 듯한 통증까지 곁들여져 있었죠.

그러다가 고막 관련 통증이 사라진 겁니다.

그게 웃기는 일이죠. 통증이 네 가지 있다가 한 가지가 사라지면 25%가 사라진 거니까 전체 통증은 75%로 감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 통증 수위는 그대로 100%고 이제는 남아 있는 세 가지 통증이 각각 25%에서 33%가 되는 식입니다. 

 

통증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잘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한 가지 통증이 없어졌으니 나머지 통증도 이렇게 없앨 수 있겠지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해 볼 수는 있죠.

 

하지만, 암환자에게 있어 통증은 언제나 심리적 위축감을 동반합니다. 수술이 끝난 지도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통증이 계속 온다는 것, 이건 뭔가 불길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게 됩니다. 즉, 강한 통증이 오더라도 완치되고 있다는, 완치될 거라는 확신이 있는 일반 환자와는 달리, 앉아 있다가 머리만 좀 아파도, 엉뚱하게 배가 좀 아파도 항상 따라오는 걱정이 있다는 겁니다.

 

재발과 전이라는 무서운 걱정이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우울해집니다. 재발과 전이가 두려워서 우울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더 심한 것은 내가 왜 진짜 별 것도 아닌 일에서까지 항상 재발과 전이를 걱정하고 두려워해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면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 자체에 대해서 우울해지는 겁니다.

 

그런 생각은 결국 내가 지금 뭐 하는 건지,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건지,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워야 하는 건지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런 암담하고 우울한 생각의 끝에는 가장 무섭고 두려운, 말하기도 싫고 글로 써 놓기는 더 끔찍한 결론이 기다리고 있죠.

 

뭐 그냥 다 포기하고 끝내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디가 더 아파진 것도 아니고 어디가 더 망가지지도 않았으면서, 아니 오히려 한 가지 문제를 어떻게 어떻게 해결을 한 상황에서 이런 우울함이 다시 덮쳐 옵니다. 좋은 변화 건 나쁜 변화 건 어떤 변화도 즐겁게 받 아들이기 힘든,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암환자 특유의 신경질이겠죠.

 

이럴 때에는 모든 게 다 고깝고 거북하게 느껴집니다. 날씨가 좋아서 하늘이 맑은 것도,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학교 운동장에서 건강한 사람들이 테니스를 치고 있는 모습도 불편합니다.

 

긴 연휴가 시작되어 많은 사 람들이 즐거워하는 것도 불쾌합니다.

 

그래, 당신들은 즐겁겠지. 난 이러고 있는데.. 새벽에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깨어 진통제를 한 알 먹고 통증이 가라앉길 기다리며 밤하늘을 한참을 올려다봤 습니다. “내가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병과 싸우고 있는 이유가 뭘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별다른 결론은 없고 그저 우울할 뿐이죠.

 

우울합니다. 우울해서 아주 미쳐 버리겠습니다.

 

그래도 아침에 해는 또다시 떠오르더군요.

 

2017. 9. 30 추석명절 연휴가 시작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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