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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 박탈감

박성호
2018-02-12 09: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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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기초적인 물리학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이 당황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은 ‘속도’를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마 물리학에 경험이 없는 독자분들은 지금도 그게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하실 것이다. 사람이 속도를 느낄 수 없다니.. 이런 분들은 모두 중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으신 분들이 확실하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시속 30km와 시속 100km 는 체감 속도가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왜 사람이 속도를 느낄 수가 없다고 하는 걸까? 그건 창밖이 아주 잘 보이기 때문에 느끼는 것 뿐이다.

 

고속도로에서 주행하는 자동차들의 속도는 대략 시속 100km 정도 된다. 그런데 철도 위를 달리는 KTX는 최고속도가 시속 300km 정도가 된다. 그 속도의 차이를 제대로 세 배 차이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거기에 국제선 민간 항공기들은 보통 시속 900km 정도의 속도로 날아간다. 이 속도를 여객기 안에 앉아서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즉 사람은 주변에 눈에 보이는 기준 지표(예를 들어 창밖의 풍경이 뒤로 지나가는 것)가 없다면 속도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 있어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게 바로 가속도다. 가속도라는 것은 바로 “속도의 변화량”이다.

 

즉,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움직이는 것은 창밖이 가려져 있다면 전혀 알지 못한다. 얼마나 빨리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창밖이 가려져 있어도 지금 갑자기 속도가 더 빨라지거나 더 느려지는 것은 명확하게 알 수가 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갑자기 가속을 하면 승객들은 몸이 뒤로 밀리면서 좌석에 파묻히는 느낌을 느끼게 된다. 자동차나 열차가 급감속을 하게 되면 승객들은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고개가 숙여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인체의 다른 감각들도 마찬가지다.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은 그게 어떤 것이거나 대체로 금방 적응해 버리고 느끼지 못하게 되며 뭔가 “변화”하는 것은 민감하게 느끼게 된다. 일정한 냄새에 한참을 노출되어 있으면 느끼지 못하다가 갑자기 새로운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민감하게 느끼게 된다.

 

이런 감각의 특성은 대체로 감각 자체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센서라는 의미로 발전해 왔다는 생각을 해 보면 왜 그렇게 되어 있는지 이해가 간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위험할지도 모르는 공격으로 간주한다. 민감하게 느끼고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트럼프 집권 이래 미국에서 오바마 케어에 대한 여론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한다. 긍정적인 여론이 부정적인 여론을 넘어서고 있다. 트럼프는 지속적으로 오바마 케어에 반대해 왔다. 즉 사람들은 트럼프가 집권하면 오바마 케어를 없앨 것이라고 생각을 해왔고, 오바마 케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한 것이다. 그런데 왜 당선 이후에 이런 변화가 오게 된 것일까?

 

트럼프를 당선시킨 힘은 사실 경제적 약자인 백인 남성들에게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한 때 손쉽게 돈을 벌던 그들은 사회가 변화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고 자신이 이렇게 된 이유는 히스패닉 등 외국인들이 불법으로 미국에 들어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즉, 이들은 항상 자신들에게 주어져 왔던 일자리가 갑자기 다른 이들에게 넘어갔고 자신들이 그 혜택을 빼앗겼다고 생각해서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과 똑같은 일이 오바마 케어에 관해서도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오바마 케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던 식당 종업원 등 경제적 약자들이 별 생각 없이 그런 혜택을 누리다가 트럼프 집권 이후 그 혜택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점을 알게 되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왜 미리 알지 못했냐는 질문은 하지 말기로 하자. 일반적인 사람들은 정치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변화가 코앞에 닥쳐야만 겨우 인지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던 혜택은 항상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혜택이 유지되고 있는 동안은 그것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마치 창문이 가려진 여객기를 타고 날아가는 승객들이 자신이 지금 얼마나 빨리 날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혜택이 사라진다면, 갑자기 속도가 변하는 것처럼 아주 민감하게 느끼게 된다.

 

트럼프를 당선시킨 백인 남성들도 가지고 있던 일자리를 빼앗기고 나서야 반응했다. 물론 그게 외국인들 때문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변화 때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오바마 케어에 의해 혜택을 보던 사람들도 이제 그 혜택이 사라질 지경이 되자 반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변화에 반응한다. 속도는 느끼지 못하고 가속도만 느끼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이 나에게 불리한 것일 경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가 응당 누려야 할 혜택을 앞으로 못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분노하고 들고 일어서게 된다. 최순실 사태의 초창기에 일반 유권자들을 가장 크게 자극한 사건 중의 하나가 정유라에 관련된 학사부정인 것도 같은 메커니즘이다. 내 아이는 그렇게 고생해서 대학을 가는데, 저 사람들은 왜 저러는가 하는 감정이 일반 학부모들을 분노케 했다.

 

그런 감정을 상대적 박탈감으로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대적 박탈감을 다수 유권자가 느끼게 될 경우 정치 상황은 크게 요동치며 변화하게 된다.

 

트럼프는 백인 남성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해서 당선이 되었으나, 이젠 또 다른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정치적 위기에 몰리고 있는 중이다. 벌써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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