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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알바가 본 교황 프란치스코

박성호
2018-02-13 08:3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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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딴지일보에서 발행하는 “더딴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여기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교황청 알바 물뚝심송

 

내가 교황청 알바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은 2005년에서 2006년에 걸쳐 벌어졌던 황우석의 난 시절이었다당시 황우석 지지자들은 황우석이 체세포 복제를 통해 세계적인 힘을 가지게 될 것을 두려워한 전세계의 숨어있는 힘들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터무니없는 음모론 지도가 나돌기도 했었다.

 

<이 놀라운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

 

이 기괴한 음모론 지도는 뒤에 황우석 지지자들을 조롱하는 의미에서 더욱 버전업이 되기도 했지만 대략 이 버전까지는 진지했던 걸로 기억한다지도에 보면 최상단에는 프리메이슨이 자리잡고 있고미국 CIA 나 FBI도 등장한다일본에는 고이즈미와 2CH 오덕들도 등장하는데 2CH가 왜 등장하냐면 당시 황우석의 논문에 등재된 이미지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DC 등에서 폭로가 되자 그 내용이 2CH에도 퍼져나갔고 다들 놀라움과 동시에 황당함을 느끼면서 비웃곤 했었기 때문이라는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 정부에는 노무현과 박기영이 등장하며, MBC에는 당시 사장이었던 현 강원도지사 최문순의 이름도 보이고피디수첩을 통해 황우석의 문제를 최초로 사회에 알린 최승호(현재는 뉴스타파 소속피디와 한학수 피디의 이름도 나오고 있다하여간 전세계가 황우석을 음해하고 있다는 황우석 지지자들의 망상은 이제 와서 보면 그냥 우습지만 당시에는 아주 엄청 더욱 매우 우스웠었다물론 당사자들은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였기에 더욱 우습기도 했었다.

 

당시 서프라이즈라는 친노 사이트에 글을 쓰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나는 황우석의 논문 조작에 분개해서 비판적인 글을 연속으로 올리고 있었는데,그 덕에 “물뚝심송”이라는 닉 대신 “서프꼴통”이라는 명칭으로 저 음모론 지도에 등장하기도 했다물론 서프꼴통에는 서프라이즈에 모인 황우석 지지자 집단을 비하하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시작되었다도대체 왜 저 물뚝심송이라는 인간은 생기는 것도 없이 황우석을 욕하는지 궁금해하는 황우석 지지자들이 많았던 것이다.그들은 나에게 물어보기도 하고직접 내가 사는 곳으로 찾아오기도 한다그 중에 한 명은 어느 일요일내가 살던 아파트 주차장까지 차를 몰고 찾아와 나를 만나고 가기도 했었다그 때 낮부터 소주잔을 건네며 한참을 얘기한 뒤 나한테 설득이 되어 황우석의 실체를 깨닫고 나서는 가방 속에서 칼을 꺼내 보여주며만약 직접 만나 얘기해 보고 이 인간이 모종의 사주를 받고 애국 과학자 황우석을 음해하는 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진짜로 찔러 죽이려고 했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지금 다시 생각을 해봐도 참으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경험이다지상파 아홉시 뉴스에 뜰 뻔 했지 않은가.

 

저 지도에 보면 좌측 중간 쯤에 교황청이 등장한다교황청은 당시 체세포 복제에 대해 종교적인이유로 반대를 하고 있었던 까닭에 저 음모론 지도에 등장하는 영광을 누렸었다결국 황우석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물뚝심송이 교황청의 사주를 받은 알바라는 루머가 퍼지기 시작했다내가 개신교보다는 천주교에 약간 호감을 가지고 있고집안이 천주교 집안이라는 사정이 어떤 경로를 통해 알려졌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걸 알아낸 사람들이 궁여지책 끝에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그래서 나는 서프에서 교황청 알바로 통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교황청은커녕 성당도 안 나가는 무신론자다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가족들 중에 큰 형님은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때 직접 만나 선물도 주고 받고 했었고돌아가신 부모님 모두 천주교 영세도 받고 했던 분이지만난 관심 없다더욱이 교황청으로부터 알바비를 받아본 적도 없다.

 

다만너무 재미있어서 사람들이 나를 교황청 알바라 부르면 부정하는 대신교황청 정규직이라고 응수를 하곤 했고당시 서프에서 황우석을 비판하던 사람들은 각각 하나씩 저 음모론 지도에 등장한 음모세력 중의 하나를 자신의 소속으로 고르는 놀이를 했던 기억도 난다누구는 CIA 지부장이고누구는 프리메이슨이며누구는 성당기사단의 기사라고 자칭하는 놀이였을 뿐이다.

 

그리고 세월은 흘렀고나는 서프라이즈를 떠나 당시 만났던 사람들과 함께 작은 회원제 커뮤니티를 만들어 거기서 놀았으며그 때 만난 사람들 중에는 지금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그리고 시간이 한참 더 흘러 딴지일보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그러던 중 다시 황우석이 간간히 뉴스에 언급될 때 마다 그 시절의 생각을 돌이켜 보면서 혼자 킥킥대곤 할 뿐이다.

 

최근에 황우석이 대법 확정판결을 받게 되었는데그 재판 기간이 8년을 넘는다고 하니 정말로 오래 전의 일이기도 하다또한 황우석의 사기행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비판도 빠트리면 안되겠다.

 

그러나 이 글의 주제는 황우석이 아니다한 때 교황청 알바로 불리우던 내가 다시 교황의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실제로 교황청 알바로 취직했냐고그건 아니다.

 

내가 역사를 통해 알고 있었던 교황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다른정말로 매력적이고 종교 지도자라 보기에는 너무나 진보적인그야말로 우리 사람들의 생명과 자유와 권리에 대해 여태껏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그런 교황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바로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으로 교황의 자리에 오른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에 대한 이야기이다.

 

카노사의 굴욕

 

우리는 평소 “아무개의 굴욕” 이라는 말을 무척 자주 쓴다심지어 공식 언론에서도 이런 말을 쓴다누군가의 굴욕이라는 표현은 보통 유명인이 이상한 포즈로 사진이 찍히거나 해서 평소의 모습과는 다른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때 붙여지는 말인데이 말의 어원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바로 이 “카노사의 굴욕”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진지한 추정이 있긴 하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유명한 말이며세속의 황제가 종교 지도자인 교황에게 굴욕을 당했다는 이 사건은 중세의 기독교가 얼마나 위세가 강력했는가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기독교 초대 교황은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예수의 제자였던 베드로다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가진 사람이다.

 

천국의 열쇠를 예수로부터 받고 있는 베드로. 천국에는 넘버키 같은 것은 없다.

 

보시는 바와 같이 예수로부터 큼직한 천국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는 사실상 기독교의 창시자이며 초대 교황이 된다. 하지만 베드로 이후 한참 동안의 교황들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그런 위세당당한 종교지도자의 품위는 갖추지 못했으며 숨어 다니던 비밀 종교의 사제 역할 정도, 누더기 입고 다니면서 기괴한 얘기를 전파하는 약장수 같은 사람들이었다고 보는 것이 좋다. 뿐만 아니라 걸리면 잡혀가서 고문 당하고 처형당한다. 반정부 단체의 리더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상황은 약 300년이 지난 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서기 312년)을 내려 기독교를 공인할 때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뒤이어 테오도시우스 1세때 드디어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다.

 

그 이후 변화를 거듭하던 유럽의 정세는 교황을 단순히 종교 지도자의 위치에 한정되어 있도록 놔두지를 않았다. 교황들은 명목상으로는 종교 지도자였지만 사실상은 세속의 군주였으며, 그것도 다른 군주들과의 경쟁 속에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해야 했던 보통의 세속 군주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된다는 점이다.

 

즉, 카노사의 굴욕에 등장하는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의 투쟁은 종교와 세속 정치간의 갈등이라고 보기 보다는 그저 일반적인 군주들 간의 세력 다툼으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하인리히 4세의 아버지 하인리히 3세는 세력이 강성한 군주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교황을 마음대로 갈아치울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인리히 3세가 갈아치운 교황들은 모두 3명으로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추풍 낙엽처럼 날아가던 그런 교황들이었다. 그러다가 어린 하인리히 4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죽은 뒤, 제국의 위세가 급격하게 감소하게 된 것이다.

 

그레고리오 7세와 하인리히 4세의 사이에서 실제로 문제가 된 이슈는 바로 주교 서임권 관련 분쟁이었다. 당시에 황제들은 자신의 영토를 봉건 영주들에게 분할해서 통치를 위임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 봉건 영주들이 다스리는 영토 중의 일부를 성직제후, 즉 주교를 서임하고 그 주교에게 위임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성직자들은 아들이 없잖아.

 

이런 성직제후들이 많아진다면 왕권은 강화되기 마련이다. 대를 이어 영토를 늘려가는 봉건 영주들은 도대체 언제 다른 마음을 먹을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성직자에게 영토를 맡긴다면 기독교를 보호하고 장려한다는 명분도 서고, 해당 주교가 죽으면 영토는 또 금방 왕에게 돌아오는 그런 이득이 있었다는 얘기이다.

 

그 주교 서임권을 놓고 분쟁이 생긴 것이다. 그레고리오 7세는 수도원 출신으로 기독교를 개혁하고자 했던 교황이다. 황제로부터 영토를 받는 성직 제후들의 타락을 없애고자 했고, 그 성직 제후, 즉 주교들을 서임하는 황제의 권한을 축소시키고자 했다. 그로 인해 황제의 주교 서임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었고, 하인리히 4세는 이에 반발하게 된 것이다. 그런 하인리히 4세에게 돌아간 것은 교황청의 파문 통보.

 

실제로 당시의 황제들도 교황청의 파문을 그다지 두려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세력이 강하면 갈아치울 수도 있는 교황 따위가 파문한다고 해 봤자, 그 교황을 갈아치우고 새로운 교황으로 하여금 파문을 취소하도록 하면 되는데 무엇을 두려워 했겠는가? 단지 하인리히 4세는 그럴 만한 힘은 아직 없었고 그레고리오 7세는 자신의 주변에 동맹국들을 많이 거느린 강고한 종교군주였던 것뿐이다.

 

또 파문 된다는 것은 종교적으로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인증을 떠나, 정치적으로 기독교 제국의 정식 황제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얘기를 신의 이름을 빌어 하는 것이니 각지의 영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욕구를 권장하는 측면이 있다. 하인리히 4세가 그레고리오 7세 앞에 무릎을 꿇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기인된다. 아직 자신의 세력이 약해 각지에서 준동하는 반란군들을 진압하지 못하게 된 하인리히 4세가 교황의 힘을 빌어 국가를 안정시키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고, 남루한 누더기를 입고 교황의 성 앞에 찾아가 성문 앞에서 3일이 넘게 꿇어 엎드려 있으면서 얼어 죽을 뻔 하다가 겨우겨우 교황의 용서를 받게 되고, 교황의 동맹군 안에 편입된 사건, 이것이 바로 카노사의 굴욕이다.

 

정리하자면, 카노사의 굴욕은 종교권력과 세속권력이 충돌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종교의 이름을 빈 세속권력과 황제의 이름이 필요했던 세속권력간의 충돌, 정치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이 사건이 삼전도의 굴욕과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는가?

 

어찌했거나 얘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교황도 세속의 권력이며 정치지도자였다는 얘기일 뿐이다.

 

새로운 권력 프란치스코 교황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상승하기 시작한 교황의 세속 권력은 사실상 십자군 원정 당시에 정점을 찍고 그 이후로는 지속적인 몰락을 경험하게 된다.

 

기독교는 신교의 반란을 맞이하여 그 교세가 반으로 갈리게 되고 신교와 구교의 다툼이 시작되게 된다. 물론 신교 역시 여러 갈래로 나뉘면서 이합집산 하게 되고, 원조 기독교의 상징 교황과 교황청의 세속적인 권력도 점차 내리막길로 접어들게 된다.

 

결국 우리 시대의 교황은 그저 관광 코스 같은 바티칸의 궁전에 갇힌 박제된 종교 지도자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천주교, 그러니까 구교의 신도수는 아직도 교황에게 세속의 권력을 주고 있다. 참고로 전세계 천주교 신도의 수는 대략 12억에 달한다고 한다. 물론 저런 통계가 정확하다고 보지는 않지만 대략의 위세를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12억의 사람들은 심지어 세금과 유사한 헌금도 내고, 그 모든 돈은 로마 바티칸으로 귀속된다.

 

교황은 그 사람들의 정신적 지배자이다. 이 세상의 어떤 현존하는 권력도 12억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교황을 건드리고 무사할 경우는 없다. 따라서 교황의 권력은 바티칸으로 유배되고 박제 되어 버린 오늘날의 교황청의 현실 속에서도 아직도 실질적인 세속 권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런 권력을 가지게 되면 언제나 국제적인 주류 권력들과 친하게 지내는 수 밖에 없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논리는 우리나라 아사리판에서만 벌어지는 논리가 아닌 것이다. 정치판에서도 언제나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역대 교황들은 언제나 현존하는 글로벌 권력들의 눈치를 보곤 했었다.

 

지금 이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은 자본에 있다. 오바마? 푸틴? 다 아니다. 그들 역시 자본의 눈치를 본다.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를 맞이한 오바마 역시 자본에 대한 단호한 단죄 따위는 전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양적완화네 뭐네 하면서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것에 급급하지, 자본의 탐욕으로 인해 발생한 금융위기의 재발 가능성을 차단하거나 하는 본질적인 투쟁은 전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황이라고 다를까? 몇몇 정치적인 이슈를 제외하고서는 언제나 국제적인 자본의 눈치를 본다.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 과정에서 평화적인 역할을 다수 수행해서 “평화의 사도”라는 별명을 가졌던 요한 바오로 2세, 과거 기독교가 저질렀던 인류적 범죄에 대한 최초의 사죄를 했던 그 요한 바오로 2세 조차도 자본 앞에서는 제대로 된 말 한마디 하지 못하던 소심한 인물이기도 했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상한 교황이 등장한 것이다.

 

그의 취임 소감은 “저같이 어리석고 부족한 자를 교황으로 추대해주신 분들을 주님께서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였다. 물론 주변사람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여 폭소를 터트렸다고 하지만, 자세히 뜯어 보자면 여태껏 이어져 내려오던 교황 선출의 관습에 대한 통렬한 비판일 지도 모른다.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발언들은 역대 교황들에게서 도저히 기대하기 힘들었던 전향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버스를 즐겨 타고 자신의 손으로 밥을 해 먹던 이 남미 출신의 교황은 2013년 한 해 동안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11억 9천만명에 의해 가장 많이 언급된 주제로 떠올랐다. 그 순위는 교황(Pope Francis), 선거(Election), 로열 베이비(Royal Baby) 순이었다.

 

신임 추기경을 서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시계는 스와치 브랜드로 플라스틱 재질의 50불짜리였다는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심각한 피부 질환에 걸려 보통 사람은 가까이 하기도 힘든 사람을 서슴없이 포옹하던 교황의 사진은 전 세계에 널리 퍼졌고, 업무가 끝난 밤 시간에 평복으로 갈아입고 지하철을 타고 노숙자들을 만나러 가는 교황의 사진은 사람들을 놀래키기에 충분했다.

 

교황이 되고 나서 이러는 것도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 시절에도 에이즈 환자들의 발을 씻어 주고 입을 맞추는 등 파격적인 행보로 유명했다. 문제는 그게 과연 보여주기만을 위한 가식적인 행동이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져서 너무나 유명해져 버린 교황의 발언들을 몇 가지만 추려보자.

 

“그 누구도 개인의 특별한 사생활을 물리적으로 간섭할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를 자유로운 사람으로 창조했다면 지금 그 자유인을 간섭하려는 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교황 프란치스코 어록 303>

 

별 이야기도 아니다. 이 정도 수준의 말을 한 정치인도 많고, 종교 지도자도 많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얘기하는 것이며, 이 말을 한 사람이 교황이라면 얘기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기독교는 동성애를 죄악으로 간주한다. 심지어 병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은 다르다. 물론 그도 동성애를 완전히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이 차별을 받는 것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는 동성애 문제보다 “차별 받는 인간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이다.

 

“야만적인 자본주의는 이익만을 우선시하면서 인간을 배려하지 않고, 착취하는 사고방식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풂과 자선의 가치는 반드시 회복돼야 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어록 303>

 

“문 밖에서 백성들이 굶주릴 때, 예수께선 끊임없이 ‘어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 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안온한 성전 안에만 머물며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어록 303>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본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를 한다. 굶는 사람들을 교회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한다. 그가 교황이었기에 교회의 의무를 얘기하는 것이지, 정치적 지도자였다면 모든 사람에게 같은 얘기를 했을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이 특이한 교황 성하께서는 자본주의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좀더 자극적인 말들도 이어진다.

 

“거리로 나가서 파장을 일으켜라. 교회도 거리로 나가길 바란다”

“불평등에 무감각한 채로 남아 있는 것은 빈부격차를 키울 뿐이다.”,

“가난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를 회피하고 무시하는 사회에는 평화와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 것”

“교회도 거리로 나가라 …불평등과 맞서 싸워라”

 

심지어 교황이 불평등과 맞서 싸우기를 명령하고, 가난과 맞서 싸우기 위해 교회가 거리로 나아가 파장을 일으키라고 명령을 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또 있다.

 

“교회가 돈을 벌기 위해 비어있는 수도원을 호텔로 바꿀 이유가 없다. 비어 있는 수도원이 우리의 것이 아닌 만큼 난민을 위해 써야 한다“

 

아프리카 난민 수용소를 방문한 교황이 화려한 시설의 교회들을 호텔로 바꾸어 돈을 벌고 있는 교단의 현실을 정면으로 언급하며 비난한 발언이다. 거리에서 아이들과 가난한 자들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모른 척 하고 호화로운 시설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저런 이야기가 어떻게 들렸을지 가히 상상이 간다. 또한 그들과 짝짝꿍이 되어 가난한 자들에게서 빼앗은 돈으로 종교 지도자들에게 호의호식을 제공하던 자본의 주인들에게 저런 소리가 어떻게 들렸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급기야는 스스로가 교황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은 발언까지 한다.

 

“신은 신앙이 없어도 양심을 따르는 사람을 용서할 것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십자군들이 횡행하는 사회에 사는 내 입장에서는 전세계 기독교인들의 최고 지도자인 교황의 입에서 저런 얘기가 나오리라고는, 그런 얘기를 내 귀로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이 사람은 종교를 초월해 버렸다. 스스로 종교 지도자이면서 신앙이 없어도 “양심”을 따르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있다.

 

일찍이 이런 종교지도자를 본 적이 없는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매혹되어 버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사람이 일거리를 준다면 알바비 없이도 할 생각이 생겨버렸다. 지난 시절, 우스개 소리로 넘기던 교황청 알바라는 비하의 의미를 담은 별명이 이제 와서는 오히려 진짜 교황청 알바를 한 번 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친숙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성당을 다니거나 개종을 할 계획은 전혀 없다. 진짜 솔직히 말해서 약 3초 정도 성당이라도 나가서 교황님 때문에 다시 돌아 왔다고 (어려서 나는 영세 받기 직전까지 성당을 다닌 적이 있다.) 고백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하긴 했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나의 입장은 꽤 단호하다. 없는 신을 섬기는 종교를 가질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내가 본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모습은 종교를 떠나 나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도록 한다.

 

그런 그가 우리 사회를 위해 남긴 말 한마디를 인용하면서 마치기로 하자.

 

프란치스코 교황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아시아의 평화, 특히 한반도의 평화를 간절히 빕니다. 한반도에서 불화가 극복되고 화해의 정신이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어록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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