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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얼 먹고 사는가]

붕어구이의 추억

박성호 a.k.a. 물뚝심송
2018-02-21 08: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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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국민학교 다닐적 얘기입니다.

 

남양만 간척지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님 덕분에 추수할 때 논에서 많이 놀았었는데, 그 때 경험했던 붕어구이에 대한 얘기입니다.

 

간척지는 간척공사가 완료된 이후에도 상당기간동안 땅에서 배어나오는 염기 때문에 농사가 안됩니다. 그래서 논 구획정리, 급배수로 공사가 모두 완료되고, 남양호의 물을 양수장에서 퍼올려 모든 간척지 논에 지속적으로 물을 흘려서 염기를 빼줘야 합니다. 그 작업이 십여년간 된 후에야 겨우 농사가 시작되는 겁니다.

 

그러고도 비가 좀 덜온다 싶으면 수시로 염해를 입는게 간척지 벼농사의 실태였습니다.

 

반면에 약간의 염기가 남아있고,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는 간척호는 진짜 그야말로 물고기들의 천국이 되는거죠. 아버님이 농사를 지으러 남양호에 내려가신 초창기만 해도, 남양호에는 그야말로 물반 고기반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남양호는 붕어낚시꾼들의 인기있는 포인트라서 주민들이 쓰레기에 시달리고, 그 결과 많은 지역이 낚시 금지 지역이 되어 버렸지만..

 

70년대 말만 해도 그 넓은 간척지 논에도 사람 손으로 모를 내고, 사람 손으로 벼를 베고 했었습니다. 요즘에야 이앙기나 콤바인이 일반화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추수철만 되면 다른 지역에서까지 일손을 구해서 버스나 트럭으로 실어 나르고, 그 일손들을 동원해서 벼를 베곤 했었습니다.

 

벼를 베기 위해선 한 보름전부터 논에 물을 빼고 바닥을 말려야 합니다. 그러나 논 바닥은 평면이 아니라는 겁니다. 좀 깊은 곳이 있기도 하고, 또 논에 들어가서 일 하느라 생긴 사람들의 발자국에도 물이 고여 있게 되기 마련이죠. 그러면, 물을 빼면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붕어들이 군데군데 고여있는 물속에 갇혀서 퍼덕거리곤 합니다.

 

한편에서는 일꾼들이 줄 맞춰서 벼를 베어 나가는데 또 한쪽에서는 저같이 아직 벼를 벨 수없는 어린애들이 이런 저런 심부름을 하면서 뛰어다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벼베는 일꾼들이 “여기도 있다~” 하면서 소리를 쳐 주곤 합니다. 푹푹 빠지면서도 신나서 쫓아가 보면, 그렇게 고인 물 속에 어른 손바닥보다 더 큰 붕어가 퍼덕거리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저는 그놈들을 줏어 담죠.

 

줏어 담은 붕어들이 어느새 한자루 가득 차고, 날이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벼베기 작업이 마무리에 들어가면 붕어들을 자루에 담아 호수에 가서 헹구면 묻어 있던 개흙이 다 떨어지고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이미 탈곡까지 한 논에 가서 깨끗한 볏짚단을 몇개 줏어 오고, 그 짚단을 양쪽 끝을 꽉 묶어 고정시키고 볏짚 사이 사이에 살아있는 붕어를 그냥 끼워 넣습니다.

 

그리고 나선 짚불을 피우고 그 위에 짚단을 올려 태워 버리는 거죠. 불이 다 타고 열기가 식을 무렵, 잿속을 뒤적거리면 검게 탄 붕어들이 굴러 나옵니다. 그 붕어를 들고 슬쩍 껍질을 문지르면 검게 탄 비늘과 껍질이 한번에 스르륵 벗겨지고 하얗게 익은 붕어살이 김을 무럭무럭 풍기면서 나오게 됩니다. 그 하얀 살점을 뜯어내어 준비한 소금에 찍어 먹는거죠.

 

그 쫄깃쫄깃한 맛과 짭짤한 소금의 맛, 그 씹히는 질감, 이거 최고의 맛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붕어는 벼베기에 참여한 수십명의 일꾼들이 일제히 앉아서 술안주로 뜯어 먹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어느새 옆에는 붕어가 뼈만 남아서 수북히 쌓여 있게 되죠.

 

아마 제 생각에는 이런 붕어구이는 우리 민족이 농사를 시작한 이래 만년이 넘게 이어져온 음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붕어구이는 몇년 되지도 않아서 사라지게 되죠.

 

일단 호수가 오염되어 물에서 냄새가 나고 따라서 붕어도 냄새가 나기 시작해서 먹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고, 그런 촌스럽고 지저분한 붕어구이 따위를 일꾼에게 먹였다가는 다시는 일꾼을 구할 수 없게 될 정도로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버렸고, 뭐 그런 이유들 때문일 겁니다.

 

이게 오래된 추억이라서 더 그 맛이 좋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죠. 지금에야 그 똑같은 붕어구이를 준다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여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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