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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친일파였는가?

박성호
2018-02-20 10: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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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승만은 친일도 반일도 아니었다는 거죠. 그는 지독한 권력추종자적인 성격을 가진 일종의 성격파탄자였습니다.

 

이승만이 미국에 가서 공부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별로 언급 안해도 됩니다. 일단 그는 젊은 시절에는 당시의 청년들이 거의 겪었던 과정을 겪는거죠. 그가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를 계획했다거나 입헌군주제를 꿈꾸며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사실이 전해지긴 하는데 별다른 근거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그 일로 7년의 세월을 감옥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동안 이승만은 “영어공부”를 합니다.

 

결국, 민영환이 고종의 밀서를 루즈벨트에게 전달하는 밀사로 이승만이 자신의 영어실력 때문에 뽑히게 되는거죠.

 

그러고 나선 미국에 눌러 앉습니다.

 

조지 와싱턴 법학학사, 하버드 종교철학 석사, 프린스턴 국제정치학 박사를 따게 됩니다. 당시의 상식으로는 대단한 일입니다. 아마도 민족의 천재 대우를 받았겠죠.

 

이 대목에서 이승만은 아마도 제가 방금전의 글에서 언급했던, 주류권력층이 만들어 놓은 금자탑에 압도를 당하게 되는 걸로 보입니다. 일본도 아니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시스템과 물량에 압도되어 민족의 자존등은 잊게 되는 걸로 보입니다.

 

그 후로 이승만은 민족진영에게 씻을 수없는 범죄 행각을 반복합니다.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 열사에 대한 재판과정에서 동포들이 모아준 피같은 돈(미국이나 멕시코, 하와이에 살던 초기 이민자들의 가혹한 삶에 대한 얘기는 별도로)을 가지고 호텔 생활을 하면서,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살인범의 변호를 도울 수 없다는 기상천외한 이유로 변호통역을 거절하게 됩니다. 그럴려면 아예 첨부터 재판이 벌어지는 도시로 오질 말던가..쓸 돈 다 쓰고 돈 떨어지니까 바로 저런 소리 하면서 돌아가게 됩니다.

 

하와이에서 국민회의에 들어가 권력투쟁을 하는 과정에 대한 얘기는 좌우파를 떠나 인간적인 환멸을 불러일으킬 수준입니다.

 

그리고 임시정부에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해주는 조건(이런게 조건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으로 합류하게 되죠. 대통령이 되어서도 위험한 중국에는 며칠 있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하와이로 귀환…

 

대략의 내용만 뽑아도 이 정도입니다. 이런 이승만을 놓고 독립투사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그는 독립투사가 아니라, 자기보다 너무나 열등해서 저 밑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조선은 자신의 영도를 따라 미국의 한 주로 편입되는게 최상의 선택이라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던 미친 엘리트였을 뿐입니다. 그걸 외교우선독립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해방과 함께 맥아더의 도움으로 복귀한 그가 벌이는 정치권력의 투쟁과정은 다들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미군정을 옹호하고, 이제 다 죽었구나~ 하면서 숨죽이고 있던 친일경찰 조직을 그대로 부활시켜 수족으로 삼고, 반민특위를 친일경찰의 말발굽을 앞세워 진압해버리고, 자신들의 정적을 모두 한칼에 몰아 넣을 수 있는 반공주의를 도입하고, 여운형 주도의 실질적인 정통성 있는 집단인 건국준비위원회를 말살시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남아서 민중의 지지를 받던 김구를 암살하게 됩니다.

 

결국 48년 정부수립에 앞서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죠.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국부라 호칭하며(거시기 주변을 국부라 부르기도 하죠.), 조선의 이씨왕조의 계승자 역할을 하면서 군왕으로 군림하며 온갖 부패와 무능을 발휘하다가 결국 419를 맞이하여 도망가게 되는 겁니다.

 

자, 과연 이승만은 친일파였을까요?

 

일제에 대한 무력 항거를 비난했습니다. 이건 친일파 반일파의 차원이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는 일제에 대한 무력투쟁에 몰두하던 대다수 독립운동가들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리는 차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무장투쟁에 나섰던 독립운동가들은 청산리 전투라는 전사에 길이남을 대승을 거두기도 하고, 45년 해방 직전에는 범계파적인 광복군을 창설해서, 연합군보다 앞서 한반도로 진출하려는 계획까지 세우기도 합니다.

 

친일경찰조직을 부활시켜 수족을 삼았습니다. 이 부분은 이승만의 친일의 근거라기 보다는 권력을 사적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장악하고자 하는 그의 권력욕을 상징할 뿐입니다. 군대도 없고 미군정은 버티고 있고, 해외에서만 돌던 처지라 지지세력도 부족한 그가 유일하게 장악할 수 있는 것은 친일경찰 세력과, 일제때부터 호의호식 하다가 세상의 변화에 놀라 겁을 먹고 있던 지주세력들의 연합 지지였습니다.

 

그 이후 이승만 정부의 기조는 근거없고 유치한 감정적 반일이었습니다. 그 자신은 별로 반일주의자도 아니면서 해방이후 정국에서 필요한 민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프로파갠더 차원의 일이었죠.

 

이승만은 친일파가 아니라 친미파였습니다. 그것도 사대주의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었죠.

 

자신을 교육시켜주고, 자신을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고, 해방이후 자신을 남한만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을 만들어주고, 굶어죽어가는 국민들에게 돼지죽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는 지원을 해 주던 미국은 그에게는 지상최고의 가치였습니다.

 

오죽하면 내전이 벌어져 부산까지 도망간 상태에서, 자신이 지휘해야 할 남한군의 전체 지휘권을 영구히 미국의 일개 사령관에게 헌납하기까지 했겠습니까?

 

그가 유일하게 미국의 정책에 항거했던 것은 딱 한가지 입니다. 휴전협정에서였죠. 자기가 지휘할 군인 한명 없는 종이쪼가리 대통령 주제에 “북진통일”을 외치면서 후딱 휴전해 버리고 상황을 종료하려던 미국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었습니다. 그래봤자 그런 기조에서 행한 짓은 딱 하나, 소위 반공포로의 석방이었을 뿐입니다. 이는 북한의 심기를 크게 건드려서 미국과의 휴전회담이 결렬되기를 원했던 거라는 거죠.

 

저는 이 부분에서 그가 북진 통일을 주장했던 원인은 딱 하나, 통일 한반도의 대통령 자리를 미국의 힘을 빌어 얻고자 하는 노회한 욕망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 이승만은 친일파였을까요?

 

이승만 덕분에 이 땅에는 해방과 함께 말라죽어 가던 친일파가 다시 득세를 하긴 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승만은 노추의 극치를 보이는 권력욕의 화신이지 친일파로 볼 수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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