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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얼 먹고 사는가]

수제비

박성호 a.k.a. 물뚝심송
2018-03-06 08: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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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제비를 안 먹는다.

 

아니 뭐 주면 못 먹지는 않는데, 적어도 내 돈 내고 사 먹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집에서 만들어 먹을 리도 없다. 그걸 아는 마눌님이 만들어 줄 리도 없다.

 

이유는 빈곤의 60년대가 끝나고 풍요의 70년대가 시작되던 바로 그 시절..

 

농사를 거부하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신 아버님께서는 어찌어찌하다가 소방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셨고, 그 덕에 군대도 안 가고 자리 잡았다가 평생을 소방공무원에 재직하시게 된다.

 

물론 그것도 월북한 사촌 형, 그러니까 나한테는 오촌 당숙 덕분에 끝끝내 소방 지서장 자리 하나 못하시고 그냥 은퇴하셨지만, 그나마 육 남매나 되는 우리 형제자매들을 다 키우셨으니 성공했다 해야 할까..

 

그러나, 그 육 남매가 몽땅 학교에 다니던 시절, 요즘같이 의무교육이라고 월사금 하나 안 내고 다니는 학교도 아니고 쥐꼬리만 한 소방대원 월급으로는 아이들 학비 내기도 급급한 지경이었다. 결국, 한 달치 월급으로, 한 달 먹을 쌀 사고 연탄사고, 아이들 학비 내고 나면, 땡전 한 푼 남지 않았다고 한다.

 

소방서에는 각지에서 위문품이 답지하기 마련이다. 사실 순수한 위문품이라기보다는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소방점검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기 싫은 공장주나 상가주인들이 뇌물 삼아 보내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위문품은 대략 당시 도시 서민에게는 생필품인 비누 수건 등등인데, 그런 걸로 우리 집은 생필품 수요를 충당하고 살았다.

 

거기다가, 물난리라도 한번 나면 각지에서 수재의연금품들이 몰려오는데, 솔직히 미안한 얘기지만 그중에서 밀가루 같은 것들을 슬쩍해서 우리가 먹고살았다. 그땐 다 그랬어. 다 그랬다고.

 

그러다 보니, 당시 생활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쌀값을 절약하기 위해, 우리 집에선 정부에서 시키지 않아도 분식이 저절로 장려되던 그런 상황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분식도 하루 이틀이지, 매번 반죽해서 채 썰어 끓여야 하는 칼국수를 만들어 댈 수도 없고, 그냥 초간편 요리로 뚝뚝 떼어서 멸치 넣고 끓이는 수제비가 주종으로 등장한 것이다.

 

제길슨….

 

잘 나가는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이런 속담이 있었나??)

 

어린 입에 맨날 점심때마다 먹어야 되는 수제비는 보기만 해도 먹고 싶은 맘이 천리 밖으로 달아나는 그런 음식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도시락 싸가는 형들은 보리가 반넘어 섞이긴 했어도 밥을 먹는데, 아직 어려서 오전 수업만 하던 나는 맨날 점심을 어머니와 함께 수제비를 먹어야 했다는 슬픈 얘기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게 끝이다.

 

쌀값의 비중은 점점 더 줄어들었고, 소방공무원을 은퇴하신 아버님은 간척지 땅을 분양받아 다시 농사를 지으러 내려가셨다. 누님과 함께 생활하며 학교를 다니던 나는 절대로 수제비는 안 먹기로 결심을 했고, 실행에 옮겼다.

 

그게 이어져 지금도, 수제비는 안 먹는다. 칼국수도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면류를 그리 좋아하면서도, 밀가루 음식은 싫어한다.

군대 갔다 오면서 식성이 바뀌어 거의 모든 종류의 음식,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입에도 못 대는 동남아 음식이나, 외국 어디의 음식이라도 아무 부담감 없이 먹고, 세계 어디에선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라면 다 잘 먹을 자신이 있고, 실제로 잘 먹어서 몬도가네 급의 경지에 들어온 내 입맛으로도..

 

수제비는 진짜 못 먹겠다. 아니 먹기가 싫다.

 

맛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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