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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민주주의자인가?

박성호 a.k.a. 물뚝심송
2018-03-13 09: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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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주주의를 믿지 못하겠다, 나는 민주주의 자체에 회의적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는가?

 

거짓말이건 진짜건, 이쪽이건 저쪽이건 다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자리매김을 하고 있고, 심지어 가스통 할배들조차도 자신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주장을 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신뢰하고 민주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인지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

 

나름대로 꽤 널리 퍼진 용어 중에 국개론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서 국민들이 개새끼라는 이론이다. 이명박을 선택한 국민들, 박근혜를 선택한 국민들이 개새끼들이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 국개론은 다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고 하면서도 수시로 가슴속에서 뭔가 치받아 올라올 때 나도 모르게 입에서 터져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대체 얼마나 멍청하고 무식하길래 이명박을 찍고 박근혜를 찍는단 말인가 하는 억울함의 토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다.

 

멍청하건 미쳤건 간에 다수의 국민들이 정치적 식견이 부족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치자. 그게 현실이니 받아들이고 나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가능한 반론이 하나 있기는 하다. 일상에 바쁜 국민들을 대상으로 국가 최고 권력기관들이 총출동해서 치러진 부정선거였으니 국민의 과반수가 개새끼는 아니라는 것도 있기는 하다. 나도 그건 인정하지만, 그렇다 해도 박근혜의 득표율이 51.6%는 아니었겠지만 최소한 40%는 넘었을 것이다. 그건 또 어찌해야 하는가? )

 

그런 수준 이하의 국민들이 다수이니 어쩔 것인가? 그들을 몽땅 계몽의 대상으로 간주해서 국민 계몽론이라도 주장해야 할까? 농촌으로 돌아가서 농민들을 깨우쳐 주자는 브나로드 운동이라도 다시 펼쳐 볼까?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아마 이런 국민 계몽론을 펼치는 사람들보다 농촌에서 수박농사 짓는 농민들이 세 배쯤은 더 현명하다는 쪽에 오백 원 걸 수도 있다. 아니 누가 더 현명한지를 따지기 이전에 그런 계몽활동을 받아들일 만큼 순진한 사람들은 이제 없다.

 

아니면 좀더 과격하게 국개론에 기반해서 무식한 유권자들에게는 표를 주지 말자거나, 그들의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 볼까? 그 순간 이미 민주주의는 부서진다.

 

또 다른 질문을 생각해 보자.

 

만약, 국민들 중 다수가 파시스트 정부를 원하게 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히틀러 역시 독일 유권자들 중 절대 다수의 지지를 얻어 정권을 획득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민주적인 선거를 치렀는데, 그 선거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국민의 지지를 발판으로 삼아 그 사회의 민주주의를 말살하게 될 수도 있다.

 

당연히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잘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아이디어가 스스로 내포하고 있는 모순된 상황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권력을 선택하는 권한을 돌려 주자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떤 종류의 권력을 택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권력을 국민들에게 돌렸더니 국민들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부정해 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이 모순을 도대체 어떻게 극복해야 한단 말인가?

 

모순이고 뭐고, 그런 위험성은 이미 박근혜 정권의 탄생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

 

자, 이래도 당신은 민주주의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

 

또 있다.

 

요즘 일베나 뭐 그런 쪽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선동질”이라는 용어가 있다. 원래 이 선동이라는 말은 좌파쪽에서 많이 쓰던 말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용처가 사뭇 달라진 케이스이기도 하다.

 

선동질의 의미는 교묘한 언술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현혹하여 정치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내리도록 조장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회적인 데이터를 가져와서 설명하면서 정부를 비판하거나, 정권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말로 쓰인다. 그러면서 일베는 “팩트”를 들어 선동질을 막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야 그들이 가져온 팩트라는 것이 더 조악한 기준으로 취사선택된 “선동질”의 소재이기는 해도 말이다.

 

그러나 이 선동질이라는 어휘의 의미에도 국개론과 유사한 인식이 숨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무지해서 누군가 “선동질”을 하면 넘어간다는 인식이다. 어떤 면에서는 자기비하일수도 있겠다. 나는 선동에 잘 넘어가는 취약한 지성의 소유자이므로 나한테 선동질 하지마, 이렇게 외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선동질이라는 어휘가 꽤 널리 퍼진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 인식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국민들 중 다수가 선동에 넘어간다는 인식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좌파들이 선동질을 해서 그 국민들을 속여 정권을 무너트리려고 하니, 자신들이 역 선동질을 해서라도 그걸 막아야 한다는 기괴한 사명감에 불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도 공통적인 인식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선동에 넘어가는 존재라는 인식 말이다. 국개론과 유사하다. 국민들이 무지하기 때문에 좌파들의 선동에 넘어간단다. 그러다보면 결국 그들도 선동질에 넘어가는 무식한 국민들에게는 권리를 주면 안 된다는 논리를 쉽게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아직까지는 그 단계는 아니고 그저 선동질을 하는 좌좀들을 이 사회에서 추방해 버리자는 식의 의견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선동질이라는 어휘에서 출발한 논리전개의 끝에는 (약간은 취약하긴 하지만) 역시나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그들 역시 그렇게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다. 그렇게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으니 맨날 전땅크 부릉부릉 하면서 그저 한국사람들은 누군가 강력한 권력자가 휘어잡고 몰아 부쳐야 된다는 식의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그렇게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민주적인 권력을 줘야 한다는 것, 즉 그들 역시 유권자라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핵심 아이디어라는 현실이다.

 

—————–

 

결국 이런 모순들은 모두 다 민주주의 자체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들이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자들에게까지 민주적인 권력을 주어야 한다는 것,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의 내용 그 자체가 포함하고 있는 너무나 무서운 모순이라는 뜻이다.

 

이 조항에 진지하게 동의하시는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민주주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 민주주의적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성심 성의껏 노력을 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이쯤 되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나는 민주주의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자신은 없다는 솔직한 고백이 나와줘야 할 것이다. 왜냐고? 우리 사회의 다수가 민주주의에 걸맞는 수준의 정치인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틀렸는가?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분들에게 직설적으로 묻겠다.

 

당신은 민주주의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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