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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투데이]

감사의 말씀

박성호 a.k.a. 물뚝심송
2018-03-18 07: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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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참 민망한 구석이 있습니다. 시작한 지 꽤 오래된 일이고 그만큼 오랫동안 해온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내가 쓴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글 값을 받겠다는 것. 이게 무사히 잘 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는 겁니다. 이런 일을 누가 해서 성공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었죠.

굳이 찾자면 스티븐 킹이 자신이 어떠어떠한 소설을 쓸 예정이니 볼 사람은 미리 돈 내고 예약하라는 방식으로 개별 예약 판매를 한 적은 있다고 합니다. 사실 그게 제가 이 원고료 시스템을 구상한 모티브이기도 하죠.

 

하지만 제가 무슨 스티븐 킹 정도로 유명하고 공인된 작가도 아니고, 제가 쓰는 글이 그만큼 상업성이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거기다가 강제로 글을 보기도 전에 이 글을 보려면 돈을 먼저 내라고 하는 시스템도 아니고 글을 본 다음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돈을 달라는 것이, 글쎄요, 인간이 그 정도로 착할까요?

 

글이 아무리 좋건 말건 그냥 모른 척하면 끝날 일을 굳이 찾아서 계좌이체 송금을 설정하고 돈을 보내는 작업을 할까요?

 

하지만 이런 회의감 섞인 출발과는 다르게 이 원고료 시스템은 나름 훌륭하게 작동되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복이 있긴 했지만 어지간한 군소 사이트나 정기간행물 등이 주는 원고료보다 많은 액수를 글 값으로 받아 왔고, 정기적으로 원고료를 지불하시는 고정 독자도 생기는 등, 의미 있는 결론을 가져오긴 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저는 팟캐스트 방송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그쪽은 글이라기보다는 방송이고, 원고료라기보다는 출연료를 받는 세계였죠. 주로 광고에 기반한 수익을 배분받는 형태였어요.

그러다 보니 원고료를 받을 만한 글을 많이 못 쓰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약간의 변화가 있던 거죠. 이 변화도 분명히 영향을 줬을 겁니다. 그러나 진짜 큰 변화는 제가 병에 걸린 겁니다.

일단 병에 걸리자 글쟁이로서의 제 인생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물론 증세가 호전되면서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될 수도 있겠죠. 그건 일종의 부록이 될 겁니다. 짧고 가벼운 칼럼 같은 것은 쓸 수 있겠지만 장기간의 조사나 데이터 축적이 필요한 무거운 글은 쓰지 못하게 될 것이고, 책으로 엮어낼 정도의 장편도 쓰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료 시스템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저도 압니다. 제가 발병한 뒤, 특히 2차 수술 이후에 보내주신 원고료는 원고료가 아닌 것, 잘 압니다. 치료비 보태 쓰라고위문금, 위로금 보내주신 거죠.

 

그거 알면서도 잘 받았습니다. 고맙게 받았습니다. 위로금 위문금을 보내주시는 이유에 분명히 제가 그동안 꾸준히 글을 써온 효과, 제 글을 읽으면서 도움이 되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겁니다. 즉 독자로서 보내주는 위로금이니까 원고료 시스템의 취지에 별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최근에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또 하게 됩니다.

 

저는 전혀 모르는, 아마 알 수도 있겠지만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분께서 적지 않은 돈을 보내 주신 다음에 간단하게 소감을 보내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평범한 얘기일 수도 있을 겁니다.

 

노사모 서프 시절부터 제 글을 읽어오셨던 분인데 그 뒤로도 가끔씩 제 글을 보셨다는 겁니다. 제가 쓰는 모든 글을 찾아 읽을 정도로 열광적인 독자는 결코 아닌데, 이러저러한 경로로 전달되는 제 글을 볼 때면 아이 친구, 아직도 글을 쓰는구나, 하면서 읽곤 했다는 거죠.

 

그러면서 지나고 생각을 해 보니, 물뚝이라는 자의 글이 뭐 대단한 감동을 주거나 엄청난 지식을 전달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그 흐름이 있었다는 겁니다. 어두운 바다를 항해하는데 그래도 꾸준히 일정한 방향에서 깜빡거리면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작은 부표 등대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겁니다.

 

그런 자가 무려 암에 걸려 이제는 뭐 글쟁이로서의 인생을 슬슬 마무리해야 되는 단계가 되니 뭔가 작지만 신세를 갚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구독료를 보낸다는 얘기를 하신 거죠. 장황하게 설명을 했지만 이렇게 많은 얘길 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제가 그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제가 무슨 시대의 석학도 아닙니다. 여러분들께 엄청난 지혜와 지식이 담긴 글을 보여드리지도 못했을 겁니다. 또는 시대를 앞서는 통찰을 가진 선구자도 아닙니다. 혼란한 세상에 비전을 전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제가 독자 여러분들께 뭘 해드렸다고, 무슨 도움을 드렸다고 글 값을 내라고 손을 벌릴 수 있겠습니까? 하는 자괴감을 한 두 번 느낀 게 아닙니다.

 

그깟 알량한 평론 칼럼 몇 줄 쓴다고, 그것도 되도 않는 개그 드립이나 섞어서 버무려 놓고 그걸로 글 값을 받겠다는 것은 너무 후안무치한 일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괜히 혼자 부끄러워서 끙끙 거린 적도 많았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 자체가 오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저는 그저 지나온 시대를 살아오면서 여러 독자님들과 함께, 그저 "함께 걸어왔다"라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그게 제가 한 일이었어요.

 

아주 조금, 아주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저는 그 길을 걸어오면서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작은 신호를 발신을 해왔고 그 신호를 받은 독자들은 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구나 하는 작은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해 왔던 일의 가치는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겁니다.

 

이건 원고료네 구독료네 하는 돈 문제가 아닙니다. 이 시스템을 통해서 거의 막판에 와서야 깨닫게 된 겁니다.

 

내가 그래도 그 긴 시간을 무위도식하면서 보낸 것은 아니었구나, 그래도 요만큼, 아주 깨알만큼이라도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해 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고, 그 깨달음으로 인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아무런 공헌도 못하면서 이 사회에 빌붙어 기생하는 기생충은 아니었구나 하는 안심이 듭니다. 항상 그게 제일 두려웠거든요.

 

글쟁이는 독자로부터 배우는 법이라더니, 정말 큰 배움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행복하네요.

 

2017. 11.21. 박성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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