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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투데이]

비둘기에 얽힌 추억

박성호 a.k.a. 물뚝심송
2018-03-22 09: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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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개인주택에서 살았었는데, 비가 무척 많이 쏟아지던 어떤 여름날이었다.

 

작은 비둘기 한 마리가 집으로 날아들어 오는 일이 생겼다. 작은 방에 미닫이 문이 조금 열려 있는 틈으로 날아 들어온 그 비둘기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상태였고 비에 젖어 초라하기 그지없는 몰골을 하고 있어 가족들의 동정을 사게 되었던 것 같다.

 

안 그래도 십자매나 잉꼬 등을 좀 기르시던 아부지께서 좁쌀을 좀 주자 잘 받아먹었고, 우리는 그 어린 비둘기를 새장에 가두지도 않고 기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이 녀석은 제법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고, 방에 들어가 손바닥에 콩을 몇 알 두고 “구구구~” 하고 부르면 포르르 날아서 팔목에 앉아 콩을 쪼아 먹는 등, 우리 가족과의 생활에 적잖이 만족해하는 눈치였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걸 보는 맛에 방안 여기저기 떨어지는 비둘기 똥을 치워가면서도 가족들은 별로 불평도 안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이 녀석은 그럴싸한 외모를 자랑하는 다 자란 비둘기로 성장을 해 버렸고 (물론 요즘 길거리에서 뛰어다니는 닭둘기하고는 많이 다르다. 날렵하고 매끄러운 외모였다. ) 어느 맑은 날 갑자기 열린 방문 틈으로 날아서 도망가 버렸다. 그 몇 달 되지도 않는 사이에 우리 가족들과 나름대로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다고 믿고 방심한 틈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냥 이렇게 생긴 흔한 비둘기였다

 

아쉬워하는 가족들에게 아부지는 원래 새들은 날아다니면서 살아야 되는 거니까 더 잘된 일이라고 아쉬워하지 말라고 다독이셨고 우리는 금방 그 비둘기를 잊어버렸는데..

 

얼마 뒤,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날 그 녀석이 또 돌아온 것이었다. 방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마당에 빨랫줄에 앉아 구구구~ 하면서 울고 있었다. 신기해서 전처럼 손바닥에 콩을 올려 두고 팔을 내밀었더니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포르르 날아와 내 팔에 앉아 콩을 쪼아 먹는 것이었다.

 

이거.. 새들의 기억력 수준이 아닌데?

 

그 뒤로도 가끔 날씨가 나빠 먹이를 구하기 힘들 것 같은 날이면 우리 집에 날아와 그렇게 먹이를 얻어먹고 가곤 하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 가족을 기억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힘들 때 가면 먹을 거 주는 호구들로 기억했을지도..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아부지께서 가족들을 막 깨우시길래 뭔가 하고 나가보니 화창한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녀석이 또 날아와서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옆에 아마도 암컷으로 보이는 비둘기 한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부지는 마치 집 떠난 아들 녀석이 며느리감이라도 데려온 것처럼 반가워하셨고, 콩과 쌀을 섞어 손바닥에 올리고 주려고 했으나, 이 녀석은 자연스럽게 날아와서 받아먹지만 그 또 한 마리의 비둘기는 눈치만 볼뿐 팔에 날아와 앉지는 않았다.

 

결국 마당 바닥에 곡식을 뿌려주자 그때서야 내려와 집어 먹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 가족들은 내기를 걸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 알을 낳아 자식을 길러 자식들까지 데리고 올것인가 안 올 것인가 하는 내기였다. 가족들은 그렇게까지야 되겠냐고 부정적인 쪽으로 의견을 표시했지만,

 

아부지는 저 녀석이 반드시 내년 봄쯤에는 자식들을 데리고 날아올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건 아마도, 판단이라기보다는 강력한 희망이셨겠지만, 우리는 그 낡은 한옥집을 버리고 이사를 했고, 아부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비둘기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지는 못했다.

 

난 지금도 길거리에서 뒤뚱거리고 있는 못생긴 닭둘기들을 볼 때마다, 그 녀석이 기억이 나긴 한다.

 

손바닥에 있던 콩을 다 집어 먹고 나서, 마치 더 줄 거 없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녀석의 표정이 기억이 난다. 강아지나 고양이 등의 포유류 하고만 공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조류도 분명히 공감이 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종과도 공감이 되는데, 사람들끼리는 같은 종들끼리도 공감을 못해서 쩔쩔매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역시 이 녀석이 기억날 때가 있기도 하다.

 

비둘기만도 못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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