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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얼 먹고 사는가]

수박서리

박성호 a.k.a. 물뚝심송
2018-03-27 07: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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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범죄자들이 그렇듯이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절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손님들이 오실 거니까 수박밭 가서 수박 좀 몇 통 사오라시는 아버님의 명을 받자와 수박을 사러 갔을 뿐이었다.

 

동네 어귀를 좀 벗어나면 탁 트인 평지가 나오고 거기에 너른 수박밭이 있어서 매년 그 밭에서 나오는 수박으로 동네 사람들 모두가 더위를 이기던 그런 좋은 수박밭이었고, 밭의 주인 할배도 워낙에 마음씨 좋은 분이어서 한 덩이 값을 내면 두 덩이를 주던 그런 분이었다.

 

거름을 튼실하게 주고 밭 관리를 워낙에 정성스레 하시던 분이라 그 할배의 수박은 달기로 소문이 났었고, 옆 마을에서도 와서 사가곤 했던 그런 곳이었다. 장성한 자식들은 모두 서울로 떠나고 할매도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낸 뒤 사는 낙이라고는 수박밭을 가꾸고 그 밭에서 나온 수박을 달고 맛나게 먹어주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는 것 밖에 없던 순박한 할배.

 

그 수박밭 한가운데에는 생뚱맞게도 커다란 미루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고, 그 나무 그늘에 원두막이 있는 바람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거기에 잠시 멈춰 한 여름에 길 가느라 등에 배인 땀도 들이고 가곤 하던 곳. 밭 근처에 있던 할배내 집 마당의 우물에서 파이프를 연결해서 원두막에다가 설비를 해 놓은 덕분에 원두막에서는 시원한 물도 콸콸 나오던 그런 훌륭한 천연의 휴게소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위 사진은 기사중 특정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대놓고 서리해온 사진임을 인증함>

 

그 날 역시, 친구들 서넛을 옆에 거느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원두막을 향해 걸어갔다. 주머니에 수박 댓 통 값이 들어 있으니 당당한 고객의 자격이지 않은가. 우린 또 쪼잔하게 밤중에 수박 껍데기 머리에 쓰고 몰래 기어가서 수박 훔쳐먹고 그런 짓은 안 하던 통큰 시골아이들이었으니까..

 

근데 웬걸, 원두막에 도착해보니 늘상 거기서 손에 파리채 들고 베잠벵이 입고 주무시던 주인 할배는 어디로 마실이라도 가셨는지 보이지가 않는 거였다.

 

“얘들아, 어쩔 수 없다. 일단 기다려보자. ”

 

그러고 나서 원두막에 앉아서 누워서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영 안 오신다. 어디 멀리 가셨나 보다. 결국 우리가 가져갈 분량의 수박을 잘 익은 걸로 골라 따다가 다라이에 시원한 새 물 받아놓고 넣어뒀다.

 

그래도 안 오신다.

 

결국 기다리다가 갈증도 나고 해서 시원한 수박 하나를 원두막 기둥 옆 틈새에 꽂혀있던 부엌칼을 꺼내 쫙 쪼개서 같이 간 친구들하고 해치워 버렸다.

 

“아, 이거 어쩌지? 할배 오시면 우리가 먹은 것도 값을 내야 될 거 같으니까 껍데기는 숨기자. ”

 

잔머리를 막 쓰면서 우리가 먹어치운 한통의 수박에서 나온 껍데기는 증거인멸 작업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안 오신다.

 

“아, 덥다. 등목이라도 한판씩 할까?”

 

친구들은 차갑다고 소란을 막 떨면서 돌아가매 한 명씩 시원하게 등목까지 했다. 그래도 안 오신다. 슬슬 잠이 온다.

 

원두막에 네댓 명의 아이들이 널브러져 곤하게 잠에 빠진다. 여름만 되면 어디 장난거리 없나 하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불철주야 몰두하던 아이들이니 피곤할 만도 하다. 그렇게 한잠씩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도 할배는 안 오신다.

 

결국, 집에서 기다리실 아부지 생각에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다는 효심 어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우리는 교활하게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사고라고 합의를 보고 우리가 다녀간 흔적을 정교하게 지운 뒤, 차갑게 식은 수박들을 한통씩 들고 원두막을 벗어났다.

 

“근데, 너 그 수박값은 어쩔 거냐? ”

 

순간 사악한 생각이 발동한 나는 호기롭게 외치고 말았다.

 

“어쩌긴 뭘 어째, 그냥 꿀꺽하는 거지. 우린 원두막 가서 돈 주고 이 수박 사 온 거야. ”

 

“그래도 될까?”

 

“안될 건 또 뭐야~ 입이나 다물어. ”

 

그렇게 음모를 꾸미고 집에 도착해 보니 벌써 몇몇 손님들이 와 계시고 엄니는 수박을 심어서 캐 왔냐고 야단을 치신다. 그래도 찬물에 담가서 시원하게 만들어서 가지고 왔노라고 자랑을 하고, 수박값 얘기는 아예 꺼내질 않고 눈치를 본다.

 

마루에 앉아 계시던 아부지께서 물어보신다.

 

“그래, 수박은 잘 사 왔냐?”

 

“네~~~”

 

“수박값은 잘 드렸고?”

 

“네~~~”

 

“음홧홧홧.. 가소로운 녀석..”

 

아부지가 설마 눈치를 채신 것일까.. 저 말의 의미가 뭘까.. 이제라도 순순히 자백을 하고 수박값을 토해내야 되는 건가.. 온갖 상념이 머릿속에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는데, 마당 건너 뒷간에서 수박밭 할배가 바지춤을 여미면서 나오신다.

 

“이것들, 나 없다고 밭에서 수박 몇 통이나 따묵었냐, 이눔들아~~ ”

 

“아부님, 소자 첨부터 횡령의 계획을 가지고 있던 것은 절대 아니옵고, 호부호형을 허하시고, 죽여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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