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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얼 먹고 사는가]

두릅 이야기

박성호 a.k.a. 물뚝심송
2018-03-28 09: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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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버님이 사시던 시골집 마당에는 두릅나무가 있었다. 봄이 다시 돌아오면 식구들이 모여서 그 두릅을 따서 끓는 물에 데쳐 초고추장 찍어 먹으며 그 향을 모든 식구들이 함께 즐기곤 했었다. 최소한 우리 가족에게는 두릅의 향은 이제 봄이 왔음을 본격적으로 선언하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그러던 어느 해 아버님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 하필 그 날은 두릅이 가장 먹기 좋을 정도로 익어, 따야 하기 사나흘 전.

 

시골 풍습에 따라 마당에 차일을 치고 장례식을 치르는 사이에 결국 그 해의 두릅은 아버님의 장례식 손님으로 모인 동네 사람들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여기 두릅이 있었네, 하면서 모두 따다가 가마솥에 물을 끓여 데쳐 나눠 먹어 버렸다. 그리고 시골집을 정리하면서 마당의 두릅나무도 베어 없애 버렸다.

 

그 뒤로 해마다 아버님 기일이 다가오면 어머님은 언제나 불평을 하셨다. 그 좋은 두릅을 동네 사람들이 와서 자기들 멋대로 따서 장례식을 위해 쳐 놓은 차일 아래서 자기들 멋대로 데쳐 먹었다고..

 

나는 어머님의 그 불평을 들을 때마다 언제나 그깟 두릅이 뭐라고 그러시냐고 불평을 했다. 아버님의 명복을 빌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그깟 두릅 좀 따 먹으면 뭐가 아까운 거냐고..

 

그러나 어머님마저 돌아가시고 난 뒤 난 너무나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어머님은 그들이 따 먹은 두릅이 아까워서 불평을 하신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머님께서는 두릅이 아까워서 그러신 것이 아니었다. 어머님이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그리워하셨던 것은, 우리 가족들이 모두 모여 둘러앉아 같이 얘기하며 보냈던 그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오늘..

 

돌아가신 어머님이 아쉬워하셨던 바로 그것. 가진 것도 별로 없는 가족들이 그저 모여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아름다운 시간들..

 

그걸 한꺼번에 수백의 가족들이 영원히 잃어버리는 사건이 터졌다는 것.

 

그러고 나서도 벌써 일 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 국가는 자신들이 지켜주지 못한 그 수많은 가족들의 소중한 시간들에 대해 전혀 사과할 생각이 없다는 것.

 

우린 그런 나라에 살고 있는 중이다.

 

내가 오해했다. 그깟 두릅이 뭐라고..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은 오해를 한다. 그 가족들은 아마 돈을 바라고 있는 것 같다고..

 

우리들은 이렇게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을 잃어 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가 인간임을 보여주는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을 잃어 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두려운 것은 바로 그것이다. 나 자신이 인간임을 입증해 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잃어버리게 될까 봐.

 

(* 이 글 역시 세월호 사건이 터진 날 근처에 썼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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