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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얼 먹고 사는가]

비오는 날의 짬뽕

박성호 a.k.a. 물뚝심송
2018-04-01 09:37:57
5    
짬뽕이다.

이게 진짜 별 것도 아닌 음식인데 다방면으로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음식이기도 하고 그 역사도 졸라 헷갈리기도 하고 어찌되었거나 정체불명이면서도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음식이기도 하다.

짜장면과 쌍벽을 이루며 해방이후 우리 사회의 “중국집”을 지배해 온 짬뽕.

문제는 그 맛을 집에서 내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거다.

비도 꾸물꾸물 내리는데 갑자기 짬뽕에 삘을 받아서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과연 빈약한 재료로 중국집 짬뽕 국물의 맛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필요한 재료 

오징어, 새우, 홍합, 모시조개, 굴 등의 해산물.

청경채, 양파, 죽순, 대파, 표고버섯, 말린 고추 등의 식물.

마늘, 고춧가루, 기름, 간장 등의 향신료.

닭육수.

 

있는 재료. 

오징어, 칵테일 새우 뿐. 홍합, 모시조개등은 사온 날로 다 먹어치우니 있을리가 없다. 청경채를 대치할 배추도 없어서 양배추를 선정. 양파, 대파는 있지만 죽순, 표고버섯 따위가 있을 리가 있나. 웬지 들어가면 맛있을 것 같은 애호박은 있다.

마늘은 있고, 고춧가루는 김장하고 남은게 있고, 간장, 물엿 등은 있다.

닭육수 같은 것은 낼 수도 없다. 그냥 멸치 다시마 육수로 도전한다.

말린 붉은 고추따위 없으니 풋고추를 썰어서 준비한다.

거기다가 면도 없다. 하지만 뭐 짬뽕은 국물이 장땡이지 면빨 없으면 밥 말아 놓고 짬뽕밥이라고 우겨도 된다.

 

하여간 이렇게 빈약한 재료로도 어지간한 중국집 스타일의 짬뽕국물은 만들어 낼 수 있어야, 어디가서 음식좀 만들어 봤다고 할 수 있는거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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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국물 맛의 비밀은 대략 이렇다.

1. 기름 : 이게 집에서 보통 쓰는 올리브유 같은 거 쓰면 끓는 점이 낮아서 불냄새가 안난다. 뭐 정 다른 대안이 없으면 써야 겠지만, 그래도 중국집은 쇼트닝을 써서 특이한 향이 나게 되는 거다.

– 흉내내기 대책 : 돼지고기 전지살 같은거 사면 달려 오는 비계를 잘라 뒀다가 활용한다.

2. 굴소스 : 짬뽕국물에는 굴소스를 넣으면 맛 흉내내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그 맛은 굴소스의 맛이 아니라 굴소스에 다량 포함된 조미료의 맛일 뿐.

– 흉내내기 대책 : 없다. 어차피 조미료 맛이라는 게 감칠맛이고, 물엿을 약간 태워 씀으로써 단맛을 살짝 가미하는 것 뿐이다. 조미료 같은 건 집에 없어…

3. 고추기름 : 짬뽕에는 순두부와 비슷하게 고추기름이 들어간다. 오뚜기 고추기름 같은거 파는 걸 사서 쓰면 편하다. 하지만 없다.

– 흉내내기 대책 : 만들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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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비계를 잘게 썰어서 우묵한 팬에 넣고 가열을 하면 기름이 흘러 나온다. 나무주걱으로 꾹꾹 눌러서 기름을 짜내가며 가열하다가, 비계는 건져 버린다.

기름의 양이 부족하면 어쩔 수 없다. 식용유를 슬쩍 추가해 준다.

가열된 기름에 잘게썬 대파와 다진 마늘을 넣어서 볶는다. 그리고 재빠르게 좋은 고춧가루를 푸짐하게 한숟갈 넣어 준다. 고추가루에 포함된 캡사이신 성분은 지용성이라 이 뜨거운 기름에 순간적으로 녹아 나오기 마련이다.

이걸 거름종이로 잘 거르면 맑은 고추기름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이대로 쓴다. 거르긴 뭘 걸러..

여기에 그대로 미리 잘라서 준비한 채소를 투입한다. 물론 이 때부터 화력은 최고로 올려서 정신없이 진행해야 한다. 꾸물거리면 타 버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불을 줄이면 짬뽕이 아니라 찌개가 나오고 만다.

양배추 썰어 놓은거, 양파 썰어 놓은거, 거기에 웬지 이유를 모르지만 같이 준비한 호박도 투입한다. 그리고 후추가루를 좀 뿌려준다. 화하게 매운 맛을 내준다.

팬을 막 휘두르면서 정신없이 볶는다. 이 때, 뜨거운 팬의 벽면을 타고 흘러내리도록 간장 (국간장은 안된다. 양조간장을 쓴다. )을 투입해 준다. 간장이 타면서 약간 카라멜 타는 맛도 나게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잘 태워야 된다.

그리고 문제의 물엿을 약간, 이것도 벽면에 태워가며 투입한다. 이 과정이 짬뽕 국물 맛의 상당부분을 좌우하니 여러번 해서 망쳐 가며 경험을 쌓도록 하자.

이렇게 5분 이내로 채소를 볶아야 한다. 채소가 볶아졌다 싶으면 이제 해산물을 투입한다. 썰어 놓은 오징어와 새우를 투입한다. 다른 건 없다니까..

열심히 잠깐 볶아 주면 뭔가 그럴싸한 냄새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이 때 미리 준비한 멸치 육수를 살짝 부어준다. 한 100미리 정도? 육수가 살짝 끓어 오를 때 까지 가열하다가, 나머지 육수를 다 부어준다.

그리고 천천히 끓어 오를 때 까지 기다린다.

맑은 육수에 고추가루물이 들면서 적절히 빨개질 거고, 육수가 싱겁기 때문에 국물맛은 무척 맵긴 한데 싱거운 상태일 것이다. 국물 색을 망치지 않기 위해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국물이 한번 끓어 오르면 완성이다.

 

맛을 보자.

과연 그럴싸한 짬뽕 국물 맛이 나는가? 한 80% 정도 비슷하면 만족해야 한다. 워낙에 빈약한 재료로 시작했잖은가.

사람은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ㅎㅎㅎ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사진이 엉망이 되었지만, 얼큰 시원 달콤 화끈 칼칼한 물뚝표 짬뽕 국물 되시겠다. 건데기좀 건져 먹다가 밥 말아서 한 그릇 후루룩 먹고 나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게 된다.

이로써 비오는 날의 짬뽕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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