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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의를 원한다 – 통상임금 관련 판결에 부쳐

콩가루연합
2013-12-19 08: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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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9일/ 이승로그

 

로마시대를 다룬 드라마를 보면 흔히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등장인물이 어떤 현실적인 힘을 가진 또 다른 등장인물에게 부당한 침탈을 당하게 된다. 재산을 빼앗기거나, 가족 중의 누군가가 죽임을 당한다거나 하는 일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힘이 부족해 직접 그 상대에게 맞서 싸우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 등장인물은 현실적인 권력이 있는 호민관이나, 또는 추상적인 권력을 지녔다고 믿고 있는 신의 신전을 찾아가서 외치게 된다.

“I want JUSTICE.”

약간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의 사극을 보게 되면, 비슷한 경우를 당하게 된 등장인물은 고을 원님이나 임금님 앞에 가서 똑같이 외치게 된다.

“소인의 한을 풀어주십시오.”

한이라는 것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발생하는 억울함이다. 이 억울함이 발생했다는 것은 정의(Justice)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을 풀어 달라는 것과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동일한 얘기가 된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상관없이, 현존하는 권력의 의지를 넘어서는 어떤 올바름이나 공정함은 존재해 왔다. 그리고 약자들은 언제나 그 올바름이나 공정함, 즉 정의가 지켜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현실은 현존하는 권력의 의지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정의가 항상 승리하지 못하고, 심지어 훨씬 더 많은 경우, 패배한다. 사람들이 정의가 승리하는 장면, 올바름이 지켜지는 장면, 공정하게 모든 일이 처리되는 장면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런 일이 얼마나 벌어지기 힘든가 하는 증거일 뿐이다.

2013년 오늘, 또 하나의 정의가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이 사라진 정의를 되찾아 달라고 하소연할 수도 없는 상황에 빠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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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상.실

 

근로기준법

일을 해주고 대가를 받는다는 것, 이것은 정의다. 그러나 이런 노동을 돈과 교환하는 거래에 있어서 언제나 노동을 제공하는 쪽은 약자고, 돈을 제공하는 쪽은 강자였다. 이는 역사를 관통하는, 언제나 지켜지는 법칙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언제나 강자들은 주기로 했던 돈을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가며 안 주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약자들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받기로 했던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한을 품게 된다. 즉 아주 빈번하게 정의가 사라지는 현장이 바로 노동현장이다.

노동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노동계약이 복잡해질수록, 노동자들은 사실 자신이 어떤 계약을 했는지 잘 모르게 되고 복잡한 규정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거대한 규모의 사업장을 유지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계약 내용이 복잡해지기 마련이겠지만, 현실적으로 그 복잡한 규정들은 거의 대부분 사용자의 입장을 더 충실히 반영한다.

이렇게 정의가 수시로 사라지는 현장이 존재한다면, 그 공동체는 항상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는 것이며, 이러한 위험을 막기 위해 국가 권력이 개입한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것이 노동관련 법안들이다.

큰 틀에서 얘기하는 노동3권에 대한 보장도 중요하다. 우리 또한 87년 헌법에서 이 노동3권의 보장에 대한 명문 규정을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잘 안 지켜진다. 작은 틀에도 있다. 분쟁이 발생한 경우 필요한 노동3권 말고도 최소한의 노동 계약의 건전성을 제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이 있다.

그리고 이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와 사용자 양자간의 자의적인 계약보다 우선한다. 즉, 어떤 사용자도 근로기준법이 제시하는 기준 이하의 처우를 노동자에게 할 수 없으며, 노동자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그 이하의 대가를 받고 일해서는 안 된다는 법률적인 기준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계약의 신성함을 침해하는 일이긴 하다. 어떻게 둘 사이의 사적인 계약을 국가권력이 함부로 침해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사회의 붕괴를 막기 위해 필요한 제한이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한 결과이다. 그렇게 사회는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시스템이 아무리 존재해 봐야, 정의는 또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미 정한 기준도 지키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준의 세부적인 해석에 대해 서로 이견이 존재해 논쟁이 발생할 경우에도 또 정의가 사라진다. 무슨 일만 벌어졌다 하면 정의가 사라진다. 논쟁과 대립이 발생했다 하면 언제나 강자가 승리한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내가 손해를 봤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언제나 약자에게 피해를 강요하고, 참을 것을 강요하다가는 언젠가 이 사회 전체가 뒤집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속한 이 사회가 붕괴하지 말고 평온하게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정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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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상식의 문제

그 시작은 매우 단순한 일에서 출발한다. 평소 정상적인 근로시간에 정상적인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합의가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한다. 근로기준법에도 주당 근로시간을 제한하고는 있지만, 언제나 추가적인 연장근무나 야근, 휴일근무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놔두고 있다.

이 때, 비정상적인 야근이나 휴일근무에 대한 대가는 당연히 평상시의 시간급보다는 높아야 한다. 애초에 하기로 했던 일이 아니라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해야 하는 추가적인 노동이니 당연하다. 그래서 이런 노동에 대해서는 돈을 더 준다. 이건 상식이다. 그래서 대략 50%에서 100%의 추가 임금을 지급하도록 되어있다.

문제는 그 50%, 100% 하는 추가임금이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계산인가 하는 점이다. 당연히 이 노동자가 정상적으로 일을 할 때 받아야 하는 시간급이다. 바로 이 정상적인 시간급이 통상임금이라는 것이다. 그 통상임금에 비해 연장근무는 50%를 추가해서 줘야 하고, 휴일이나 심야의 근무에는 100%를 추가해서 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 통상임금은 또 다른 형태의 임금 산정에도 기준이 된다. 예를 들면 퇴직금 같은 것이다. 기본급에 비해서 얼마, 기본급 기준으로 얼마, 하는 계산법은 임금 계산 과정에서 곳곳에 적용된다. 그만큼 통상임금이 노동의 대가를 법적으로 산정하는 데에 있어 제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수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 통상임금은 어떻게 산정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주 단순하다. 노동자가 정상적으로 노동을 제공하고 받기로 한 정상적인 임금 총액을 그의 노동시간으로 나누면 된다. 통상임금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던 지난 기사 (지난기사 바로가기)에 사용했던 계산의 사례를 그대로 재활용하기로 해 보자.

월급 200만 원에 분기별 보너스 300만 원을 받기로 한 노동자가 월 209시간을 일할 경우, 통상임금은

1. 보너스를 포함해서 계산할 경우 = 14,350원

2. 보너스를 포함하지 않고 계산할 경우 = 9,570원

이 된다.

보너스, 즉 상여금이 포함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통상임금이 이렇게 몇 천 원의 차이가 나면 그걸 기준으로 계산하는 온갖 수당, 퇴직금에서는 그게 몇 백 만 원, 몇 천 만 원의 차이로 확대된다.

어느 쪽이 옳은 것인가? 어느 쪽이 상식적인 계산인가? 이미 이 정도 되면 상식의 수준을 벗어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단순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통상임금의 정의 자체가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받기로 한 임금을 시간단위로 산정한 것이니, 내가 회사로부터 ‘받기로 한 모든 돈’이 포함되는 것이 맞다.

그게 비록 매월 주는 월급은 아니더라도, 이 회사에서 일을 하기만 하면 정기적으로 주는 돈, 내가 입사할 때 당연히 받는 것으로 알고 들어왔고, 또 그 기대에 맞춰 항상 당연히 지급하던 돈은 월급과 동일한 것이다. 비록 그 기준이 매월 지급하는 조건은 아니고, 3개월에 한 번, 6개월에 한 번 주는 돈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심지어 80년대 후반부터 이 얘기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통상임금 산정에 정기 상여금을 포함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논쟁이었다. 초기에는 1개월 단위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면, 통상임금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우세하다가, 차츰 정기적으로 조건 없이 지급하는 것이라면 통상임금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는 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법원 판결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최종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노동계를 술렁이게 만들었던 판결은 2012년에 금아리무진 사건에서 나오게 된다. (사건 번호 2010다91046 )

이 판결의 주된 논리는 단순하다. 쉽게 말하자면 정기 상여금 역시 노동의 대가로 주기로 한 돈이니 통상임금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여태껏 이게 아니라고 했던 주장들이 머쓱해질 정도로 단순한 내용이었다.

이 판결이 최초의 판결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원래 1개월 단위를 넘어서서 주는 돈은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판례가 먼저 있었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7건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6년에 있었던 의료보험조합 판결(94다19501)에서부터 1개월 단위를 넘어서 지급하는 돈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쪽으로 판결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무려 17년 전부터다.

즉, 2013년 오늘 대법원 전원 합의체까지 나서서 판결을 내려야 했던 이 통상임금 관련 문제는 이미 17년 전부터 법원도 인정을 했던 아주 오래된 상식이라는 얘기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식에 기반한 정의도 우리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정의는 돈보다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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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는 법원의 결정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법원이 어떤 문제에 대한 판결을 내리면 그 판결에 따라 대응을 해 줄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행정부가 법원보다 힘이 약해서 그러거나 행정부가 법원의 부하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3권분립의 기본 정신이 그렇기 때문이다. 입법부가 법을 만들고, 사법부가 판단을 하면, 행정부는 그대로 집행하면 된다. 그것뿐이다.

법원이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면, 노동부는 노동부 시행령이나 노동부 지침에 이제부터는 통상임금 계산하면서 정기 상여금도 포함시키도록 지침을 변경하고 시행령을 개정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토를 달 필요도 없고, 토를 달아서도 안 된다. 안 하겠다고 나서면 3권분립의 룰을 깨트리는 것이고, 나중에 하겠다고 미루면 업무태만, 업무 불이행으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부는 이미 17년 전부터 나온 법원의 판결을 무시했다. 아직도 노동부의 지침에는 통상임금 계산할 때 정기 상여금은 포함이 안 되는 걸로 되어 있다.

노동부가 왜 그러지? 왜 일을 안하고 개기는 거지?

이게 돈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노동부의 지침이 이렇게 바뀌어 버린다면, 그 때까지 통상임금 산정 기준에서 제외되었던 정기 상여금이 포함되어 계산해야 하고, 여태까지 그 잘못된 기준에 맞춰 ‘덜 받았던’ 각종 수당을 달라고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그 순간부터 미래에도 그렇게 새로운 계산에 의해 더 받게 되는 것이고, 지난 3년간 잘못 계산해서 주지 않았던 임금, 즉 체불임금을 달라고 노동자들이 사측에 요구할 수 있게 된다. 3년이라는 숫자는 민법상의 시효이기도 하다.

이게 대략 얼마나 될까? 노동계는 우리 사회 전체의 노동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못 받은 돈이 얼마나 되는지 산정할 능력도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렇게 계산 방식이 하나 바뀜으로 인해 더 주어야 하는 노동의 대가가 첫 해 13조 8천 억 원, 향후 매년 연간 8조 8천 억 원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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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머니투데이>

 

재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사용자들은 지난 17년간 매년 8조(물론 물가 인상률에 따라 과거로 갈수록 줄어들겠지만)가 넘는 돈, 노동의 대가로 지급했어야 하는 돈을 체불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셈법으로도 100조가 넘는 돈, 일한 대가로 주어야 하는 돈을 여지껏 안 주고 있었다고.

이런 날도둑놈들이 어디 있는가?

노동부는 법원의 판결을 17년간이나 무시하고 지침을 수정하지 않은 죄가 있다. 그 범죄로 인해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은 100조가 넘는 돈, 받았어야 하는 노동의 대가를 사업자들에게 강탈당한 것이다. 지금도 강탈당하는 중이다.

이 사회 전체가 암묵적인 합의하에 협잡을 벌여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야 할 돈을 주지 않고 무려 17년을 끌어온 것이다. 이게 오늘의 한국사회다.

정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대법원 전원 합의체

이번에 있었던 대법원 전원 합의체의 판결은 뭐 그리 특별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갑을오토텍이라는 회사에서 이 통상임금의 문제로 인해 또 노사간에 소송이 발생했고, 그 소송이 지법 고법을 거쳐 대법원까지 올라온 것뿐이다. 그런 사건을 왜 대법원 전원 합의체에 배당을 했냐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논란의 시작은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초 방미했을 때 터져 나왔다. 물론 그 이전부터 노동계에서는 지속적으로 통상임금 문제로 인한 소송이 있어왔고 법원은 계속 기존의 판례,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그런 포함해서 산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유지했었다.

그런데 이 위대하신 박근혜 대통령께서 방미 중에, GM의 회장이 요구한 ‘통상임금 문제 해결’ 건에 대해 잘 해주겠다고 답변을 해 버린 것이다. 이 상황을 다룬 것이 바로 앞서 링크한 예전의 기사이다.

[이슈]백수에서 열사로, 윤창중의 살신성인

3권분립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던 법원의 판결을 정면으로 부정해 달라는 외국 회사 사장의 요구를 행정부의 수장이 덜컥 받아 버린 것이다. 이게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재계, 즉 사용자들의 연합은 지속적으로 노동부에 이거 인정해 버리면 우리 다 망한다고 협박을 하고 있었다. 계산을 잘못해서 안 주고 있던 밀린 인건비를 주면 다 죽게 된다고 아우성을 친 것이다. 액수가 크니까 그럴만하다고? 도대체 17년 동안 뭘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그런 소릴 하냔 말이다.

노동자들이 밀린 임금 내놓으라고 소송을 걸어서야 겨우 마지못해 조금씩 내놓기도 하고, 그거 안 줘도 되도록 해 달라고 노동부와 정권을 찾아가 아우성이나 치고, 차라리 밀린 돈을 주고 말지 왜 그러냐는 얘기다.

노동자들이 소송을 해서 그 엄청난 밀린 돈을 한 번에 다 달라고 그러던가? 회사에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도 망하거나 말거나 한꺼번에 다 내놓으라고 하는가? 그러다가 회사 망하면 가장 손해 보는 것이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그저, 앞으로는 바뀐 계산법으로 계산해 주고, 과거 밀린 돈은 적절한 선에서 줄 수 있는 만큼 분할해서 달라고 하는 중이다. 그 정도의 양심은 있는 사람들이다.

그 걸 어떻게 해서든 안 주려고 발버둥치는 당신들은 도대체 인간과 노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냐고 묻고 싶다. 이건 정의의 문제다. 아니 그 이전에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에 관한 문제이다. 일을 시켰으면 그 일을 한 만큼의 돈을 줘야 하는 것이다. 계산이 틀렸으면 맞춰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대법원 전원 합의체에서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에 대해 온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대법원은 권력의 손을 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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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의 문제점

대법원의 판결은 요약해서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1.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 계산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다.

2. 그러나 휴가비 등 복리후생비는 빼도 된다.

3. 신의칙에 의해 소급 적용은 하지 마라.

1번의 판결은 이해가 간다. 무려 17년 동안이나 같은 판결을 계속 해 왔던 것을 뒤집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거 뒤집으면 가장 망신을 당하는 것은 법원 그 자체이다.

2번은 꼼수다. 어떻게 해서든 기업들과 노동부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준 것이다.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 계산에 포함시켜야 하니 앞으로는 정기 상여금 같은 거 주지 말고, 명절 차비, 김장값, 뭐 이런 복리 후생비 계정으로 줘서 통상임금 산정액수를 줄이라는 길을 터준 것이다. 아마 거의 모든 기업에서 이미 정기 상여금을 이런 식으로 변형된 임금의 형태로 지급하고 있을 것이며 그렇게 바꾸려고 노력하는 중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1번의 판결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겠다.

3번은 정말로 어이없는, 황당한 억지 판결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법원을 모욕하고자 하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 따라 붙어 있는 소수 의견들이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대법원의 입장은 이런 것이다.

노사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신뢰’한 상태에서 이를 토대로 임금 합의를 했을 것인데, 지금 와서 이 부분만 무효로 하면 기업으로선 예상치 못한 과도한 지출을 하게 되고 기업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므로 신의칙상 허용할 수 없다.

즉, 주는 놈이나 받는 놈이나 다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합의를 해 왔는데, 이걸 갑자기 뒤집으면 회사들이 망할지도 모르므로 지난 일은 다 덮자. 라는 뜻이다.

일단, 주는 놈 받는 놈 다 알고 있었다. 모를 리가 없다. 무려 17년이다. 무려 17년 동안 법원이 이 판결을 해 왔다. 그걸 몰랐던, 아니 모른 척 하면서 무시해 온 것은 노동부다. 노동자들이 그렇게 요구하고 주장하고 애원하고 탄원을 해도 생까던 놈들이 노동부다. 노동부가 개기니까 그걸 믿고 재계도 같이 개긴 것뿐이다. 몰랐던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알면서 법원의 판결을 무시해 온 거다. 여기 어디에 신의칙 문제가 있는가?

이번 판결에서 나온 소수 의견들은 그나마 대법원에도 아직 제정신을 가진 판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긴 한다.

이인복, 이상훈, 김신 대법관이 바로 그들이다. 이 판사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사용자의 그릇된 신뢰를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 찾기에 우선할 수 없고, 사용자의 경제적 어려움도 근로자의 권리를 희생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쉽게 말해서 다 알고 있으면서 생까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고,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엄살은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 어디에 민법상의 신의칙이 들어설 곳이 있냐는 것이다.

그러나 개소리는 판결문으로 채택이 되었고, 옳은 목소리는 소수의견으로 묻혀 버렸다.

권력이 이긴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 해결해 준 것이다. GM 회장 댄 애커슨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충실히 수행하신 것이다. 대법원의 대법관들을 수족으로 부리는 신묘함을 보여주신 것이다.

GM 회장 댄 애커슨이 잘 본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행정부의 수장이 법원의 판단을 뒤집어 버릴 수 있는 그런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그가 옳았다.

돈만 많이 벌고, 세계 무역 8대 강국이면 뭐 하겠는가. 민주 공화국의 기본 뼈대인 3권분립조차 못 지키고, 아니 못 지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정당한 대가를 암묵적인 합의를 통해 사회 전체 시스템이 동원되어 협잡으로 빼앗아 가는 그런 ‘정의가 실종된 국가’인데, 그걸 후진국이라고 부르면 후진국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후진국이 아니라 야만국이다.

역사는 이번 판결을 ‘온 사회가 합심하여 노동자들의 돈을 100조 원이 넘게 갈취한 범죄를 정당화 시켜준 사례’ 로 기록할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 우리의 후대들이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렇게 써 둬야 한다.

또한 부제목은 이렇게 써 줬으면 한다.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한 늙은 대법관들의 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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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현실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노동계에서는 진작부터 이 통상임금의 문제는 체불임금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기왕에 못 받은 돈 받게 되면 좋지만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80년대 노동 대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이다. 일단 실질적인 임금총액을 올려야 한다는 급박함에 서두르다 보니, 임금체계의 본질을 무너트리고 기형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즉 기본급, 통상임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기본급은 내버려두고, 온갖 잡 수당을 신설하고, 또 연장근무, 초과근무, 휴일근무의 수당의 비중을 높여 노동자 스스로 장시간의 노동을 택하도록 한 근시안적인 협상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노동계의 현실에서 기본급의 비중은 절반은커녕 40%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제조업 평균은 40% 정도이며, 전체 평균은 54% 정도라고 한다. 앞에서 언급된 GM 대우의 경우 전체 임금 대비 기본급 수준이 30% 수준이다.

그 외에 시간 외 근로 수당이 기본급의 수준에 육박하는 21%나 된다. 즉, 구조적으로 전체 임금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엄청난 장시간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런 구조가 되어버렸으니, 통상임금에 정기 상여금을 포함시키느냐 마느냐가 뜻밖에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시라. 대부분의 노동자가 정해진 시간만 일하고 시간 외 근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면 통상임금이 두 배가 되건 세 배가 되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실질적인 임금의 1/3에 육박하는 부분이 그 시간 외 근로에 주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통상임금의 계산 기준에 따라 연간 8조가 든다는 둥, 최초 1년간 13조가 든다는 둥 하는 기괴한 일이 발생한 것뿐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월급 좀 더 받고 덜 받고 하는 문제를 떠나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한 상황, 이렇게 왜곡된 노동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임금체계를 좀더 단순 명확하게 바꾸고, 기본급의 비중을 올리고, 시간 외 노동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바꿔가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노동 시간을 줄이자는 요구는 노동자들이 일하기 힘들어서, 더 놀고 싶어서 하는 주장이 아니다. 지나치게 장시간 근로를 하는 덕분에 일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사람을 더 뽑으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진정한 의미의 일자리 나누기이다. 노동시간이 길다는 것은 이 때문에 더욱 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이 지적이 맞다.

 

맺음말

이제 지나가 버렸다.

노동자들은 돈을 빼앗긴 것이고, 주어진 제 몫도 못 찾아 먹는 팔푼이들이 되었다. 아니 우리 사회가, 우리 모두가 노동자들을 팔푼이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 스스로가 노동자들이니, 우리 모두가 우리 스스로를 팔푼이로 만든 셈이 된다.

좋다. 어쩔 수 없다. 힘이 약해서, 정의를 얻지 못하고 빼앗긴 것이다. 피를 토하고 울고 있어봐야 나아질 것은 하나도 없다. 정의는 누가 찾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찾아와야 하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 합의체의 판결을 뒤집어 보자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이 그런 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도록 압력을 넣었던 그 보이지 않는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래도 상식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는 헛된 기대는 이제 접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3권 분립에 의해 구성된 민주공화국의 뼈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망상도 이제 접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행정부가 법원을 뒤집어도 아무도 뭐라 못하는 독재 사회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무서운 사실을 현실로 받아 들여야 한다. 저들은 결코 말로 해서 물러날 놈들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진 것이다.

우리가 팔푼이로 전락하는 것은 참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까지도 팔푼이로 살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싸울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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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사실, 어제 대법원 전원 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을 보고 상당히 깊은 빡침을 느꼈었다.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 산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당연한 소리 하나 해 놓고, 복리후생비를 제외 시켜 주면서 빠져 나가는 법을 친절히 알려주질 않나, 수없이 많은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민법의 시효도 무시하고 소급 적용을 원천적으로 차단시켜 버리질 않나.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건 온 사회가 작당을 해서 노동자들의 체불임금을 갈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엄청난 억울함이 솟아 올랐다. 왜 우리는 항상 지는 걸까. 지고 나서 억울해 하는걸까.

한편으로는 또 다른 마음도 들었다. 왜 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관심도 없는 이런 주제에 관해 혼자 빡치면서 분해서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 이러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난 통상임금 관련해서 받을 돈도 하나도 없는데..

거기다가 더 무서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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