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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평화의 사도인가

박성호 a.k.a. 물뚝심송
2017-12-26 11:22:04

예수에 관한 비토님의 생각에 그게 아니다라는 반론을  달고 싶은데, 반론글을 따로 쓸 수는 없고 해서 옛날 구찌질넷에 제가 올린 글 다시 퍼와서 올립니다. 아래 펌글은 마빈 해리스라는 학자의 의견을 제 나름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한가지 더, 예수와 동 시대인(조금 뒨가?)인 요제푸스라는 유태인(로마에서 오래 거주한)이 쓴 ‘유태인사’라는 역사책에는 예수가 살던 시기의 이스라엘의 분위기, 반로마 분위기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것말고도 더 쓸 말은 많지만 그냥 이 정도에서..


지금이야 예수는 평화의 사도라고 우리들은 믿고 있지만 사실 예수는 우리가 보통 아는 것처럼 그렇게 평화적인 인물은 아니다. 그가 실제로 가르쳤던 것이나 한 행동은 사실 유태인의 전투적 메시아니즘의 전통과 그리 단절되지 않는다. 사실 초기의 그의 가르침에는 친제롯파 강도단의 경향과 반로마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그의 가르침과 유태인들의 메시아 전통 사이에 결정적인 단절이 생기게 된 것은 예루살렘의 함락 이후부터다. 이때쯤 해서 예수가 가르쳤던 원복음 가운데 정치적, 군사적 요소들은 로마나 로마제국의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던 유태인 기독교들에 의해 제거되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승리자인 로마제국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교훈과 전투적 메시아니즘의 전통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예수는 세례 요한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 속에서 시사되고 있다. 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은 헤롯왕과 헤로디아스의 불륜이라 할 수 있는 결혼을 비판해서 체포했다고 기록되고 있지만 유태인 역사가인 요제푸스는 이런 짐승가죽을 걸치고 메뚜기와 석청만을 먹었던 세례 요한같은 부류들은 광야를 방황하면서 농민과 노예들에게 로마와 로마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유태인들을 괴롭히라고 선동했던 자들로 분류하고 있다. 
  
전투적 메시아니즘의 전통에서 세례 요한이 차지했던 위치는 <사해문서>가 발견된 쿰란 공동체의 의식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쿰란 공동체의 사람들(주로 에세네파)야말로 바로 자신들은 “빛의 아들들”이고 로마는 “어둠의 자식들”로 부르면서, 유태인들의 역사는 아마겟돈의 역사로, 그날이 오면 어느 누구보다도 강력한 전투적 메시아가 나와 로마를 쳐부수고, 새로운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게 될 것이며 자기들이야말로 이 싸움에 승리해서 궁극적으로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극단적인 사람들이었다(광신의 황빠들 모습이 바로 이 거 아닐까?). 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세례 요한이나 예수야먈로 이 전투적 메시아니즘으로 무장한 쿰란공동체의 일원, 즉 에세네파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쿰란 제4동굴
  
유월절에 나귀를 타고 들어가는 예수의 모습에 환호하는 군중의 모습, 그 이후 벌어진 성전에서의 폭력사태, 예수 제자들이 전투적 행동대원임을 보여주는 이름들(예를 들어 시몬이라는 이름은 제롯당이라는 뜻이 들어 있고, 또다른 제자인 유다의 이름인 이스카리오트에는 칼을 휘두르며 암살행위를 하는 자라는 뜻이 품어져 있다. 실제 어떤 라틴 필사본에서는 그가 제롯당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다른 두 제자 역시 호전적인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은 ‘보아네르게스(Boanergers)라고 불렸는데, 이 말은 사실 검을 뜻하는 “천둥의 자식들”이란 뜻이다. 
  
물론 초기 예수와 관련된 것에는 이런 것 말고도 전투적 생활양식을 드러내 주는 것이 여럿 있다. 복음서 보면 검을 숨기고 있는 제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예수 체포 당시 제자들이 반항했다는 기록도 있다. 예수는 체포되기 전, 제자들에게 “칼을 갖지 않은 자는 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명령하는데, 이 말에 제자들은 품에서 검 두자루를 재빨리 꺼내서 예수에게 내보이는데, 이 이야기는 제자들 중 최소한 두 사람은 상습적으로 무기를 소지했음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검객들처럼 항상 옷속에 검을 품고 다니는 자들이었을 시사해준다. 
  
복음서에도 예수가 평화적인 인물이 아니라 폭력적인 인물임을 보여주는 모순된 기록들이 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온 줄 아느냐? 아니다. 도리어 분쟁케하러 왔노라(눅 12:51), 검이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검을 살지니라(눅 22:36),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환전상의 돈을 쏟으시면 상을 엎으시고….(요 2:15)” 
  
아무튼 이런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와 그의 핵심 제자들이 폼고 있었던 생활양식이나 의식은 결코 평화의 메시아니즘이 아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폭력적인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속에는 전투적 메시아니즘이 깊이 들어가 있다. 
  
이런 전투적 메시아니즘이 지금 우리가 아는 평화적 기독교로 변질된 것은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하면서부터이다. 당시의 기독교는 야고보를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 공동체와 로마를 근거로 바울을 중심으로 기독교공동체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바울의 공동체가 승리하면서, 그리고 이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해 로마에 적응하면서 자신들의 종교는 로마제국을 전복하려 했던 유태 메시아니즘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는 것를 부인하면서부터이다. 물론 이후, 기독교 복음서에서 전투적 메시아니즘의 요소가 있는 글들이 제거되고 수정된 것은 눈에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 중동의 빠꿈이 유태민족, 마사다 함락에서 보듯 정말로 질긴 민족이다. 로마의 식민지 중에서 로마를 그렇게도 끈질기게 괴롭히고 힘들게 한 민족은 유태민족 밖에 없다. 당시 1세기에 이미 로마에서는(이 유태인들에게 로마가 얼마나 학을 떼었으면) 지금의 반유태주의 뿌리가 될 수 있는 반유태주의가 횡행했었다는 사실도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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