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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책사

박성호 a.k.a. 물뚝심송
2015-02-05 14: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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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월간지 “주부생활”에 기고했던 글이며, 주부생활과의 협의에 의해 블로그에도 올리게 되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

(* 권력과 책사라는 제목으로 두 개의 원고를 썼었습니다. 이것은 실리지 않은 것이며, 2편은 “주부생활”에 실렸습니다. *)

 

 

권력과 책사

중국역사에서 중 최강의 책사는 누구일까거의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공명 제갈량을 떠올릴 것이다중국 땅 여기저기에 그를 모시는 사당이 만들어져 있고심지어 머나먼 한반도에까지 제갈량의 명성은 드높다. 21세기에 접어든 현대 사회에서도 누군가 뛰어난 기획력을 보이고 전략적인 판단을 잘 하면 곧바로 제갈공명의 화신이라는 칭찬을 듣게 된다.

제갈량의 뒤를 잇는 넘버투는 누구일까지명도로만 따지자면 초한지에 등장하는 장자방장량이다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일으켜 희대의 명장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를 제압하고 중원을 통일한 장량이 아마 제갈량을 잇는 두번째의 책사일 것이다하지만 실제로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중국인들 중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제갈량과 장량보다 더 앞세우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는 사람이 바로 유백온이다.

저장성 온주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유백온의 이름은 기송렴과 함께 당대의 문장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실존했던 인물이면서도 온갖 소설과 시희곡에 등장하는 인기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특히 중국의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중원을 통일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과정에서 유백온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었다.

젊은 시절 원나라의 관리로 부임해 세상에 자신의 뜻을 펼쳐 보려 했으나 이미 말기에 접어들어 부패했던 당시의 사회상은 유백온의 힘으로도 어쩌기 힘든 상황임이 드러났고 그는 포기하게 된다보통 이렇게 젊은 시절을 허송하고 은거에 들어갔다가 나이 들어 다시 뜻을 펼치는 대기만성형 인재들이 중국 역사에는 많이 등장한다.

원래 홍건적에 속해 세력을 키우던 비적떼의 두목에 불과했던 주원장이 급기야 남경을 장악하고 오국공을 자처하던 시절드디어 유백온은 주원장의 초빙을 받아 다시 몸을 일으킨다이 때 유백온이 주원장에게 제시한 중원 통일 계획이 바로 그 유명한 “시무십팔책”이었다.

주원장은 유백온의 제안을 받아들여 당시 최강의 세력을 장악하고 있던 진우량과 건곤일척의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되는데 진우량의 병력은 무려 65주원장이 보유한 군사력은 겨우 20만에 불과했으나유백온의 신기에 가까운 전술 지휘에 힘입어 진우량을 물리치고 중원의 패권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진우량의 주력이었던 수군과 주원장의 병사들이 격돌했던 파양호의 싸움이 바로 나중에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집필할 때 그 유명한 적벽대전을 묘사하기 위해 모티브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는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상전, “파양호 전투”인 것이다실제로 나관중은 제갈량을 천재적인 책사로 묘사하기 위해 오히려 역사적으로 더 근세에 가까웠던 실존인물 유백온의 일화나 습성을 많이 차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양호전투에서 승리한 주원장은 진우량을 멸하고 또 장사성을 정벌한 뒤북방의 원나라를 쳐서 몽고군을 다시 만주로 몰아내고 명나라를 세우게 된다결국 천하제일의 책사 제갈량은 그 대단하다던 유비를 도와 천하삼분지계로 기껏 삼국의 정립을 이룩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지만,유백온은 실제로 천하를 통일한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바로..

삼분천하제갈량(三分天下諸葛亮) : 천하를 셋으로 나눈 것은 제갈량이요,

일통강산유백온(一統江山劉伯溫) : 강산을 하나로 통일한것은 유백온이다.

이 말은 제갈량이 더 유명하지만 실제로 더 훌륭한 사람은 유백온이라는 뜻이다물론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에 의하면 유백온은 자신이 스스로 제갈량을 능가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여 제갈량의 사당이나 묘소를 두루 찾아보던 과정에서 제갈량이 이미 역사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자신에게 메시지를 남긴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식으로 제갈량을 더 윗 길에 놓고자 하는 묘사를 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그것은 어디까지나 제갈량의 명성으로 인한 신격화의 풍습일 뿐이고 현실적으로는 유백온이 더 대단한 업적을 세운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옳은 일이다.

유백온은 그 성격이 매우 강직한 사람이어서 적도 많았다고 한다하지만 주원장이 천하를 통일하고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개국공신들을 모두 척살하는 과정에서도 유백온 만큼은 살아남았다.

이미 황제가 되어버린 주원장부터 “저 자가 욕심이 있었다면 이미 나를 배신할 기회는 오래전부터 많이 있었다.”면서 살려둘 정도였고유백온 본인도 명리를 탐하지 않아 개국공신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낮은 지위를 고수하고 있었던 까닭도 있겠다하지만 그런 유백온도 주변의 모함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며그 과정에서 그를 시기한 또 다른 개국공신 호유용에게 독살 당했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물론 확인해볼 방법은 이미 없다.

무릇 권력이란 이런 것이다권력을 잡는 과정과 이미 잡은 권력을 운용하는 과정은 전혀 다른 것이다최고 권력을 손에 넣은 자는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에 함께 했던 책사나 동료들을 계속 가까이 하고 싶겠지만권력을 잡은 뒤에는 그들과 함께 해서도 안 되고함께 할 수도 없는 법이다해야 할 일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며공을 다투는 자들은 새로운 일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언제나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이러한 순리를 거스르고 과거의 동료들을 계속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하는 권력자라면 진정한 권력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청와대 내외부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잡고 있는 실세가 누구인가모든 권력이 숨겨진 비선 조직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논란이 한창이다그리고 그 핵심으로 지목받고 있는 정윤회라는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에서 밀려나 미래연합이라는 정당을 창당하던 시절부터 함께한 사람이며그 이전에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친분이 있던 사람의 사위라고 한다.

아무런 직함도 없고아무런 공식적인 역할도 없는 일개 민간인에게 국가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진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벌어진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이상징후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의 인물은 과거로 흘려 보내는 것이 맞다백보 양보해서 정히 그 사람이 꼭 필요한 인물이라 해도 공식적인 직책에 임명해서 시스템 내부에서 움직이도록 하지 않고 민간인 신분을 유지한 상태에서 숨어서 활동하도록 한다는 것은 권력의 운용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 자명하고불투명한 권력은 언제나 스스로 부패해서 무너지게 마련이다.

수백 수천 년을 넘어 이어지고 있는 역사는 언제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매우 현실감있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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