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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오빠, 김기춘옹의 생애

박성호 a.k.a. 물뚝심송
2013-09-14 13: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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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김기춘이라는 분이 사셨어요.

 

이 분은 저 멀리 외딴 섬마을 거제도에서 태어나셨어요. 거제도 동북쪽에는 대금산이라는 우람한산이 있고, 이 산의 품에 안겨 앞으로는 외포항이라는 조그만 포구를 바라보는 배산임수의 명당터에 자리잡은 외포초등학교라는 학교가 있었는데, 바로 김기춘 선생님이 다닌 학교에요.

물론 김기춘 선생님이 다니실 때에는 겨우겨우 국민학교로 승격된 지 얼마 안되어서였을 거에요.

이 분은 초등학교 때부터 너어무 너무 공부를 잘하는 착한 어린이였어요. 얼마나 공부를 잘했냐면 졸업하자마자 아무나 갈 수 없다는 경남의 명문 마산중학교에 들어갈 정도였거든요. 그것뿐이 아니에요. 마산중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경남 최고의 명문인 경남고에 입학을 하게 되었어요. 시험만 봤다 하면 합격이에요.

여러분들도 어려서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 이 분처럼 좋은 학교도 가고 그러는 거지, 맨날 야동만 보고 놀면 자라서 딴지스(마사오라고는 말 못함)가 되는 거에요. 조심하세요.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에요.

그렇게 좋은 학교에 가서도 맨날 일등만 도맡아 하시던 김기춘 선생님은 드디어 서울대 법대에 입학을 하시게 되었어요.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에서 짱 먹은 학생들만 모인다는 바로 그 학교에요. 이제 법대에 입학했으니 교양도 쌓고 학문도 닦아야 하겠지만, 이분은 그런 잡생각을 하실 여유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하루속히 고시에 합격해야 한다는 일념에 가득 차 있었거든요.

결국 미처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3학년 때 이미 고시에 합격해 버렸어요. 그 때가 1960년도인데, 이 분은 당시 사회에서 학생들이 앞장서서 건방지게시리 국가를 바로잡겠다고 4.19 같은 난동이 벌이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을 거에요. 왜냐면 고시에 합격을 해야 되니까요. 그래야 인생이 피거든요.  4.19 같은 것은 공부도 못하는 찌질이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벌인 짓일 뿐이에요.

그래도 물론 고향에서는 경사 났다고 돼지도 잡고 잔치도 벌였겠죠. 실제로 잔치를 벌였는지 안 벌였는지는 제가 안 봐서 몰라요. 다들 그러니까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에요.

그렇게 1960년에 이미 고시에 합격한 김기춘 선생님은 검사가 되어 광주, 부산, 서울 등의 지방검찰청에서 근무를 했어요. 그런데 근무를 너무 잘해서, 어르신들한테 귀여움을 받게 되었어요. 어르신이 누구냐고요? 우리 민족을 보릿고개의 도탄에서 구하신 구국의 영웅 박정희 각하지 누구겠어요.

그래서 지방이나 도는 말단 검사 신세에서 벗어나 법무부 법제과장이 되었어요.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하니 출세도 빨라요. 정말 우리모두 본받아야 할 훌륭한 분이세요.

그런데 이 때, 박정희 각하께서 큰 결심을 하시는 거에요. 당시 우리나라에는 헌법이 정말 엉터리였거든요. 그래서 박정희 각하는 프랑스 드골 헌법이라는 외제를 들여오기로 맘을 먹어요. 불란서제라면 단연 최고잖아요.

그래서 박정희 각하는 김기춘 선생님에게 직접 프랑스에 가서 드골 헌법을 싸게 사오라고 시켜요. 전하, 아니 각하의 밀명을 받은 법무부 법제과장 김기춘 선생님은 1년 동안이나 프랑스에 가서 드골 헌법을 베껴오게 되죠. 정말 멋있지 않아요? 국가의 명운이 달린 일을 혼자 도맡아 저 멀리 프랑스까지 가서 일년 동안이나 고생을 하고 돌아오신 우리의 김기춘 선생님.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그런데 원래 헌법은 헌법학자들이 만들어야 되잖아요. 하지만 박정희 각하께서는 학자들을 싫어하셨어요. 원래 아는 게 많은 놈들은 먹고 싶은 것도 많고 말도 잘 안 듣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일을 학자들에게 안 시키고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신직수하고 김기춘 선생님에게 새로운 헌법을 만들라고 시킨 거에요.

그래서 우리의 김기춘 선생님은 오직 나라를 위한다는 한 마음으로 프랑스에서 베껴온 헌법에 박정희 각하의 권력을 왕창 늘려줄 수 있는 조항들을 섞어서 새로운 헌법을 만든 거에요. 그리고 나서 폼은 잡아야 되니까, 한태연, 갈봉근 같은 학자들을 불러다가 구경을 시켜줬어요. 이거 내용은 절대 고치면 안되는 거야~ 라는 친절한 조건을 붙여서 말이에요. 이 얘기는 최근에 한태연씨가 회고한 내용이니까 사실일거에요.

사람은 누구나 명예에 대한 욕심이 있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우리의 김기춘 선생님은 그런 명예 따위 아랑곳 하지 않아요. 자신이 만든 헌법이 그대로 세상에 선을 보이는데, 자기 이름이 들어가지도 않고, 오히려 아무 일도 안하고 나중에 와서 구경만 한 헌법학자들이 만들었다고 알려지는데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어요. 오직 나라를 위한 한마음뿐이었던 거죠. 그래서 우리는 여태까지 이 위대한 유신헌법을 한태연, 갈봉근 같은 노땅 학자들이 만든 줄 알고 있었던 거에요. 이제라도 밝혀져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렇게 유신헌법이 탄생하고, 우리나라는 유신 시대가 된 거에요.  법과 질서가 존중받고, 무지한 난동은 그대로 잡혀가서 두들겨 맞는 그런 아름다운 사회가 열렸어요. 이 모든 것의 배후에 김기춘 선생님의 노고가 듬뿍 담겨 있던 유신헌법이 있던 거지요.

김기춘 선생님은 함께 유신헌법을 만든 법무부 장관 신직수라는 분을 무척 존경했어요. 그래서 그 분이 중앙정보부로 옮기자 그 분을 따라가서 또 보좌를 했지요. 그런데 이 신직수라는 분 역시 무척이나 훌륭하신 분이라서, 나랏일 하시는 분들에게 대항하는 몰지각한 난동꾼들을 매우 엄하게 다스리시던 분이었어요. 그런 나쁜 놈들을 다스릴 때에는 법도 절차도 필요 없어요. 그냥 사건을 만들면 되는 거에요.

그렇게 맨 먼저 만든 게 64년도 1차 인혁당 사건, 그리고 유신헌법 만든 공로로 중정부장으로 옮긴 다음에는 2차 인혁당 사건을 만들어 8명을 순식간에 해치워 버리셨죠. 참으로 통쾌한 일이었어요. 그 때 김기춘 선생님도 함께 했었던 것은 물어보나 마나 한 일이죠. 충성심이 넘치시는 분들이라서, 감히 박정희 각하에게 도전을, 아니 도전은커녕 손가락질만 해도 잡아가는 거였어요.

세상이 더러워져서 그런 충성스러운 역사의 현장을 최근에 와서는 잘못된 재판이네, 사법살인이네 하는 얘기들을 많이 하기도 하는데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러다가 너무 슬픈 일이 벌어졌어요. 북한 괴뢰도당의 혹 달린 우두머리 김일성이 문세광이라는 킬러를 보내 박정희 각하를 암살하려고 했던 거에요. 물론 박정희 각하는 평소 AT필드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암살은 실패했지만, 불행하게도 AT필드에 튕겨나간 총알이 영부인 육영수 여사에게 맞은 거에요.

김기춘 선생님은 끓어오르는 애국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 사건의 검사역할을 맡아 문세광이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될 때까지 몰아 부쳤어요. 감히 존귀하신 영부인을 암살하다니, 죽어 마땅한 놈!!

어떻게 수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문세광은 사건의 전개과정을 몽땅 다 자백을 했다고 하더군요. 검사란 모름지기 이 정도로는 수사를 할 줄 알아야죠. 우리의 김기춘 선생님은 평소에는 자애로우신 성격이지만, 불의 앞에서는 이렇게 무서운 분이시랍니다.

그렇게 일을 잘 처리하자 박정희 각하는 이제 드디어 우리의 김기춘 선생님의 진가를 이해하시게 된 것이었어요. 그래서 보좌관 수준이 아니라, 중앙정보부 제5국장으로 승진을 시켜 주신 거에요. 이 제5국은 대공수사, 즉 흉악한 빨갱이들을 때려잡는 부서였어요. 그 이후로 우리 선생님이 얼마나 활약을 잘 하셨으면 김기춘이라는 이름 석자만 들으면 우리 나라에 쥐새끼처럼 숨어서 4대강 사업을 하..  아니 그냥 활약하는 모든 빨갱이 간첩들이 벌벌 떨면서 오줌을 지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이 때 시련과 역경이 다가오게 되는 거에요. 오로지 충성심으로 가득 찬 김기춘 선생님에게 이런 역경이 다가와서는 안 되는 건데..

그 때 전방을 지키던 우리 군부대에 근무하던 대대장 중의 한 명이 북한으로 도망을 쳤어요. 이 사건을 역시나 또 우리의 김기춘 선생님이 수사를 해봤더니 평소 그 대대장과 부대의 보안대 요원 사이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죠. 보안사 요원이 현직 대대장을 협박했고, 그게 무서워 서 대대장이 북한으로 도망을 친 거에요. 그 얘기를 듣게 된 박정희 각하는 격노에 진노를 따블로 하셨어요.

감히 일개 보안사 쫄따구가 현직 대대장을 협박하다니..

그 결과 보안사는 초토화 되고, 김기춘 선생님은 각하의 명을 받아 이 보안사령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해 버리는 구조조정을 떠맡으셨던 거죠. 그리고 역시 또 공로를 인정받아 청와대 법률 비서관까지 하시게 된 거에요. 이 때 김기춘 선생님은 박근혜 공주님을 처음 만나게 되는 거죠. 역사적이고도 숙명적인 만남이었다고 할까, 그런 거였어요.

그런데 이게 왜 시련과 역경이냐고요? 아뿔싸..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보안사 사람들이 정권을 훔쳐가게 되거든요. 그 사람들은 속이 좁아서 원한을 잊지 않고 있던 거에요.

박정희 각하께서 AT 필드를 거두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던 중 미쳐버린 쫄개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돌아가시고 나자, 모발이 부족한 보안사 사령관이 정권을 잡아 버리게 되었죠. 이 사람들은 우리 김기춘 선생님의 애국심을 높이 살 줄은 모르고, 그저 자신들의 권력을 축소시켜 버린 사람으로만 기억한 거에요. 그렇게 충성심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끔 이런 오해가 생기곤 하죠. 그게 세상이에요.

그래서 우리 김기춘 선생님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시게 된 거랍니다. 물론 당시 정권실세였던 박철언 같은 분에게 가서 솔직히 털어놓고 가오는 좀 빠지지만 “저 좀 살려주세요~” 하고 호소를 한 덕분에 짤리지는 않았어요. 그냥 할 일 없는 직책으로 쫓겨나게 된 거죠.

그러나 훌륭한 사람들은 한 번의 역경으로 좌절하지는 않아요. 끝까지 버티는 거죠. 이외수 선생님도 맨날 그러잖아요. 존나게 버티라고..

결국 그 존버정신은 모발이 부족한 전두환 장군님이 물러난 뒤에야 효과가 발휘된 거죠. 전장군의 절친 보통사람 노태우 각하가 드디어 김기춘 선생님에 대한 오해를 풀고,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을 해주셨어요. 고생 끝에 낙이 온 거죠. 여러분도 이렇게 존나게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올 수도 있어요. 물론 언제나 오는 것은 아니에요. 보통은 존나게 버티면 좆되고 마니까 주의하셔야 해요.

그런데 세상은 점점 더 암울해지고 있었어요. 애국심 넘치는 김기춘 선생님 같은 분들이 활약을 못하게 되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평생을 몰지각한 난동질에 앞장서 오던 김영삼 같은 분은 회개를 하고 애국 세력의 품에 귀순하여 노태우 각하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려고 하고 있었는데, 반성도 회개도 할 줄 모르는 김대중 같은 빨갱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설치기 시작한 거에요.

이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이렇게 되면 나라 망하는 거에요.

김기춘 선생님은 이 국가적 차원의 비극을 막기 위해 결연히 몸을 일으키신 겁니다. 김영삼 후보의 본거지인 부산에 내려가, 지지자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각계 각층의 권력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따뜻한 복국 한 그릇 사주시면서 “우리가 남이가~~” 를 외치신 거에요.

당연한 얘기죠. 정권은 정의로운 것이고, 정의는 계속되어야 하는 거에요. 빨갱이들에게 정권이 넘어가면 우리는 모두 죽는 거에요. 우리는 뭉쳐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남이 아니거든요. 그럼 북인가?

어찌되었거나 이렇게 애국적인 행동을 한 것을 가지고 돈만 엄청 많은 주제에 대통령 한 번 해보겠다고 설치던 정주영이라는 사람의 쫄개들이 몰래 녹음을 해서 퍼트린 거죠.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 온 거에요. 하지만 역시나 우리는 남이 아니었어요. 애국 부산 시민들은 이 위기상황을 한마디로 극복을 해 버린 거죠.

“그래서 뭐?”

그리고 김영삼이 차기 각하가 되신 거에요. 사필귀정이죠. 역사는 이렇게 진보하는 겁니다.

그 뒤로 김기춘 선생님은 정부에서 일하는 것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깨닫고 정치에 투신을 하시게 됩니다. 결코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은 아니었어요. 아니.. 자신의 영달은 쪼금만 생각한 거에요. 아니.. 그게 더 많은가? 하여간..

정계에서도 김기춘 선생님의 훌륭함은 빛을 발휘했죠. 그 애국심이 어디 가겠어요? 15대, 16대, 17대까지 내리 삼선을 하시게 됩니다.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김기춘 선생님의 애국에 대한 열정은 어디에 가서나 항상 빛을 발휘했답니다.

여의도에서 정치활동을 하시던 중, 또 한 번의 위기가 닥쳐왔어요. 역시 훌륭한 사람에게는 시련과 역경이 자주 오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심상치 않았어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촌놈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세상을 속여서, 어려운 말로 혹세무민을 해서 난데없이 대통령이 되어 버린 거에요.

이래서는 정의가 이룩되지 않잖아요. 이건 세상이 망하는 길인 거에요. 이런 일을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선생님이 아니신 거죠. 또다시 몸을 일으키셨어요. 듣보잡 대통령은 물러가라~ 라고 호통을 치시면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시게 된 거에요. 깜이 안 되는 사람이 대통령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했으면 일도 안되었을 거에요. 그러나 김기춘 선생님이 나서자 일이 되었어요. 2004년 3월 12일, 드디어 국회에서 역사적인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김기춘 선생님의 공로였어요. 산전수전에 공중전, 진흙탕 레슬링까지 모두 통달하신 선생님의 버럭질이 한번 작렬하자 그냥 통과가 된 거에요.

그런데 하늘이 돕질 않았는지, 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헌재의 늙은이들의 손에 의해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오호 통재라..

더불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백성들이 화를 내기 시작한 거에요. 아 그게 아니라니까~ 하고 아무리 얘길 해도, 대통령을 탄핵까지 한 것은 나쁜 짓이었다고 그러는 거에요. 복창이 터질 지경이었죠. 그렇게 위태로운 상태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우리의 김기춘 선생님은 겨우 겨우 살아 남았어요. 그것은 오로지 그간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애국에의 열정을 선생님의 고향인 거제시의 유권자들이 인정을 해준 결과라는 것이죠.

그렇게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고 선생님도 이제 나이가 칠십을 넘어가게 되고 이렇게 이 얘기는 마무리 되었어야 해요.

선생님은 임기를 마치고 평안하게 한국 에너지 재단의 이사장으로 노후를 보내시고 계셨죠. 사람들 모두 다 선생님은 이제 편안히 쉬시는 걸로 생각을 했던 겁니다. 훌륭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에게 이 정도의 보상은 당연한 거잖아요? 이게 무슨 낙하산 인사나 그런 걸로 매도된다면 너무 비인간적인 일이잖아요. 그러니 까불지들 마세요.

하지만 너무나 훌륭한 사람은 세상이 내버려 두질 않아요.

세상이 또 한번 바뀌고 만 겁니다. 김기춘 선생님께서 달리는 마을 버스에서 뛰어 내리고, 철근을 씹어 먹듯이 신당동 떡볶이를 씹어 드시던 시절, 문세광을 때려잡고 보안사를 때려 잡던 선생님의 리즈 시절을 기억하시는 분이 왕위에 오르신 거에요.

바로, 삼십여 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들어가 처음 만나 뵈었던 바로 그 공주님께서 드디어 자신의 본가에 복귀하시게 된 거랍니다. 참으로 감개무량하고 역사는 이렇게 흘러가는 거라는 점을 느끼게 해 주는 감동적인 스토리 아니겠어요?

거기다가, 공주님께서 한 말씀 하시게 된 거에요.

“그 때 그 오빠, 다시 돌아와서 나를 지켜줘야지. “

이게 이 기나긴 스토리의 클리토리, 아니 클라이맥스에요. 75세의 노구를 다시 일으켜 일국의 핵심부인 청와대의 비서실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김기춘 선생님.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어요. 산천 초목이 부르르 바이브레이션을 하게 되고, 서울대공원 호랑이까지 밥 먹다 말고 침을 뱉었어요. 에버랜드 사파리의 호랑이는 암사자하고 데이트하느라 신음을 흘렸다고 하더군요.

여러분, 우리는 이 감동적인 스토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세상 참 조까트니까 존나게 버티는 게 장땡이라고요? 뭐 그렇게 믿고 그렇게 사는 것도 니 자유에요.

 

졸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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