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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총 비사

박성호 a.k.a. 물뚝심송
2012-03-02 19: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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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총이라는 단체가 있다. 정식명칭, 한국 노동조합 총 연맹.

역사가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깊은 조직이고, 민주노총과 함께 대한민국 노동계를 대변하는 양대조직이다.

그래봤자 소용없다. 이제부터 이 한국노총이 얼마나 구린 조직인가를 대놓고 깔 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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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의 홈페이지에 가서, 연혁 페이지를 보자.

1919년에서 1945년까지의 역사 부분을 보자. 자랑스럽게도,

“일제하에서 독립운동과 함게 지하노동운동 전개
  [대표조직 : 근로회(1919), 노동쟁의 72건(1923), 월산,]
  경성제네레스트,태평양 노조사건 등 소작쟁의 762건(1923)”

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 1946년에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결성이라고 쓰여 있다.

이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라는 이름도 졸라 긴 단체의 성격을 1그람이라도 이해한다면, 이들이 일제치하의 치열했던 노동쟁의의 역사, 항일 투쟁의 정신이 깊게 배어 있는 선조들의 역사를 감히 “자신들의 역사”라고 저기다가 적어 놓을 염치는 없어야 한다.

일제때의 노동운동은 노동쟁의라 불리우면서 다각도로 전개되지만, 주로 좌파적 경향을 띠게 된다. 그로 인해 벌어진 수많은 쟁의들은 항일 정신을 바탕에 깔고 일제의 강력한 수탈에 저항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일제의 차별은 계급적인 차별과 중첩되면서 노동계층에 대한 가혹한 탄압의 형태로 나타났고, 우리 선조들은 이런 탄압에 맞서 노동운동에 더해 항일투쟁의 성격까지 포함된 쟁의로 저항을 지속해 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던 중에 수도 없이 많은 쟁의가 있었고, 그런 쟁의를 치러낸 경험들은 축적되어, 해방직후 전국적인 노동조직의 탄생을 이루어 내게 되는 거다. 수많은 쟁의를 해본 결과, 노동계급의 연대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을 이미 깨달아 버린 것이고, 일제가 패망하고 도주한 공백기는 전국적인 노동조직을 건설하기에 가장 좋은 시점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아주 쉽게 유추할 수 있겠지.

싸움도 해본 넘이 잘 한다고..

그런 결과로 생긴 조직이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씨바.. 졸라 길다. 앞으론 대한노총) 아니냐고? 절대 아니다.

해방과 더불어 기존의 노동운동을 리드하던 그룹은 바로 조직 건설에 착수하게 된다. 1945년 10월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가 건설되게 된다. 박헌영의 남로당하고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조선공산당하고도 관계가 있다. 물론 남북한을 총괄하는 인민공화국 건설을 지지하면서 건준과도 연계가 된다. 노동자들의 조직이었던 이 전평(조선노동조함 전국평의회)에 대응되는 조직으로는 전국 농민들의 조직인 전농(전국농민조합 총연맹)이 있기도 했다.

이들은 빠른 속도로 조직을 구성하고 활동해 내면서, 건준을 중심으로 인민위원회를 설치하고 남북조선을 총괄하는 자발적인 국가조직을 만들어 가게 된다. 실질적인 우리 민족의 국가 말이다.

물론 다들 아다시피 이 시도는 소련의 지원을 받는 김일성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승만에 의해 좌절된다. 여기서부터 우리 현대사의 모순이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 아마도 가장 객관적인 관점이 될 것이다.

그럼 전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대한노총이라는 엉뚱한 조직이 튀어나와 오늘날 한국노총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냐는 질문이 가능하다.

당연하게도, 전평은 좌파적 경향을 띠게 된다. 아니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이 좌파적 경향을 띠지 않으면 무슨 자본가들 처럼 우파적 경향이라도 띠어야 하나? 이 좌파적 경향이 못마땅했던 세력이 누구겠는가? 바로 이승만과 미 군정이잖아.

이 전평이 무슨 김일성과 연계를 하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당시 전통적인 좌파 그룹들의 입장에서는 김일성은 단순한 외세의 대표자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결국 이승만은 이 전평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어용조직을 건설한다. 그게 바로 독촉이라고 불리우던 대한독립촉성회고, 제헌의회에서 무소속에 이어 최대 다수 의석을 보유하는 조직이 되며 나중에 자유당으로 이어지게 되는 조직이다.

대한노총, 즉 대한독립촉성 노동총연맹은 저 독촉과 연계를 가지게 되는 이승만의 어용조직, 전평을 무력화 시키기 위한 권력자의 하수인이 되는 조직이라는 얘기이다. 설립 때 부터 조직 강령에 반공주의가 선명하게 적혀 있던 조직이라는 것만 봐도 이들이 노동운동하고 거리가 얼마나 먼 조직인지 알 수 있다.

이 조직을 자신들의 전신이랍시고 홈페이지 연혁란에 자랑스럽게 적어 놓은 단체가 바로 오늘날의 한국 노총이다. 이게 노동운동 조직이 맞긴 맞아?

이 대한노총은 초기부터 전평과 유혈투쟁을 벌인다. 아니 말이 틀렸다. 전평이 노동쟁의를 시도하고 대한노총은 이승만의 사주를 받아 전평의 쟁의를 유혈로 진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게 뭐야.. 오늘날의 구사대 잖아.

결국 전평이 주도하던 47년의 1,2차 총파업을 이 대한노총이 진압하는데 성공하면서 전평은 급속히 세를 잃게 되고, 대한노총이 득세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의 노동운동의 역사는 암흑기로 접어들게 된다.

결국 대한노총은 자랑스러운 구사대의 전신으로 이승만이 건립한 전국 구사대 총연맹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의 조직이라는 것이다.

이게 끝인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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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이승만의 어용조직으로 전락해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기는 커녕, 벌어지는 노동쟁의 현장마다 쫓아 다니면서 구사대 역할 하기 바쁘던 이 대한노총이 위기에 봉착한 것은 이승만 정권 말기. 즉 1959년 무렵이다.

이때 대한노총의 비민주성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전국 노동조합 협의회, 전국노협이라는 것을 건설하게 된다. 그리고 때맞추어 4.19 혁명이 발발하면서, 대한노총은 사실상 와해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주인 잃은 사냥개 신세가 된거지 뭐.

결국 아직 기반을 닦지 못한 전국노협과 망해가던 대한노총은 합쳐지면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총이라는 통합 조직이 건설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이름은 현재와 비슷해 졌다.

그러면 그 한국노총은 4.19 직후부터 제대로 활동을 했나?

4.19 직후에 바로 터진게 박정희라는 정체 모를 군인이 정권을 찬탈하는 5.16 불법 무력 군사구테타였잖은가. 이 사건을 통해 전국의 모든 노동단체는 강제로 해산된다.

그리고 이 한국노총은 이제는 박정희의 어용조직으로 재편되면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당연히 이 조직은 노동운동하고는 관계가 없다. 이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전세계가 공통으로 지정하는 노동절, 메이데이가 사라지고 이름도 일본스러운 근로자의 날로 바뀌고 날짜까지 엉뚱한 날로 옮겨 버린 사건이다.

그리고 우리의 노동운동의 역사는 더 한층 암흑기로 빠져들게 된다. 전태일이라는 새로운 전기를 만나기 전 까지 말이다.

그 시기의 역사에 대해 그 잘나빠진 한국노총의 연혁란에는 무엇이 쓰여 있을까? 딱 두건이 적혀 있다.

– 75년 12월 : 여의도에 노총회관 신축이전

– 77년 04월 : 한국노총 장학재단 설립

참으로 대단한 역사라고 칭송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다. 이게 유신 강점기에 한국노총이 이룩한 역사의 전부다. 이걸 지금도 노총이라고 불러주는 내 자신이 황송해서 몸둘바를 모르다가 방구를 끼고 말았다.

그 사이에 우리의 노동자들은 정말로 엄청난 고행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목록만 보여준다. (위키백과 대한민국의 노동운동 목록에서 발췌)

 

1960년대

  • 1963년 6월 : 16개 정부 관리기업체의 보수통제법 폐기투쟁
  • 1963년 7월 : 외기노조 의정부지부의 해고 반대투쟁
  • 1964년 7월 : 마산방직 임금인상 투쟁
  • 1964년 11월 : 조선방직 해고 반대투쟁
  • 1965년 5월 : 동신화학 연장근로수당 지급요구 투쟁
  • 1965년 5월 : 고려석면 기아임금 시정요구 농성투쟁
  • 1965년 11월 : 외기노조 KSC지부 노스웨스트항공 인력파견업체인 한국산업안전주식회사 파업투쟁
  • 1966년 2월 : 외기노조 일본상사분회 임금인상 요구투쟁
  • 1967년 6월-8월 : 섬유노조 산하 각 지부의 임금인상투쟁
  • 1967년 11월 : 자동차노조 산하 좌석버스지부 전국 규모의 임금인상투쟁
  • 1968년 3월 : 철도노조 쟁의위협 투쟁
  • 1968년 4월 : 동양기계 승급요구 농성투쟁
  • 1968년 6월 : 대전방직 체불임금 지급요구 농성투쟁
  • 1969년 6월 : 대한조선공사 임금인상 요구하며 가두시위


1970년대

  • 1970년 2월 : 한국화이자 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 요구투쟁
  • 1970년 7월 : 대한조선공사, 임금인상 요구투쟁
  • 1970년 11월 27일 : 청계피복노조, 전태일 분신 14일 만에 노동조합 결성
  • 1971년 2월 : 아이맥전자,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 요구투쟁
  • 1971년 4월 : 주한 미국 대사관 경비,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 요구투쟁
  • 1971년 9월 15일 : 한진파월 노동자들 KAL 빌딩 방화하며 격렬히 투쟁
  • 1972년 7월 : 한국모방(원풍노방), 노조민주화투쟁 전개
  • 1973년 9월 : 삼립식품,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 요구투쟁
  • 1974년 2월 : 반도상사,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 요구투쟁
  • 1974년 4월 7일 : 애경유지, 180여 명이 임금 54% 인상을 요구하며 대강당에서 농성 전개, 30% 임금인상으로 타결
  • 1974년 8월 : 종근당제약,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 요구투쟁
  • 1974년 9월 19일 : 현대조선소,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투쟁
  • 1976년 9월 : 풍천화섬,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 요구투쟁
  • 1977년 : 미국 마텔사의 자회사인 대협 노동자들이 일당 400-450원의 저임금 해결 농성에 돌입했으나, 마텔사가 대협을 해체하고 필리핀으로 이전
  • 1977년 4월 : 인선사,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 요구투쟁
  • 1977년 10월 : 제일제당,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 요구투쟁
  • 1976년 7월 – 1978년 5월 : 동일방직노조 민주노조 사수투쟁 장기간 전개
  • 1977년 7월 10일 : 협신피혁 가스중독사 투쟁: 협신피혁 민종진이 폐수처리 중 가스중독사하자 한강성심병원에서 2백여 노동자들이 장례식 후 영구차 시위, 노동청 앞마당에서 연좌농성
  • 1976년 7월 – 1978년 5월 : 아리아악기의 정재종 외 5명이 과도를 들고 부사장집에 들어가 가족을 인질로 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다가 다음날 농성을 풀고 경찰에 구속됨
  • 1978년 3월 : 동일방직 사건 – 연극공연 중 무술경관이 난입, 200여 명에게 폭력을 행사하자 노동자들이 항의, 기독교방송을 점거하고 투쟁
  • 1978년 3월 26일 : 동일방직의 해고 노동자들이 부활절 연합예배가 진행되던 여의도에서 단상을 점거하고 노동자들의 처지를 호소하다 연행, 구속됨
  • 1978년 4월 :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 연좌농성
  • 1978년 5월 :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 5명이 부산광역시에서 출마한 섬유연맹 위원장의 어용행각 및 블랙리스트 만행을 고발하는 유인물을 살포중 연행, 구속됨
  • 1978년 8월 15일 : 해태제과,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투쟁시작
  • 1978년 8월 22일 : 방림방적, 임금체불 관련 농성투쟁 중 장희수, 김두숙, 전경숙이 연행당함
  • 1979년 8월 : YH무역 150여 명, 신민당사에서 농성중 강제해산당함(YH사태)
  • 1979년 9월 11일 : 김경숙 추도식 중 30여 명이 연행당함


1980년대

  • 1980년 3월 4일 : 서울 구로공단 남화전자 노조결성투쟁
  • 1980년 4월 28일 : 동국제강 노조결성, 차별금지, 민주화 요구투쟁
  • 1980년 4월 20일 : 사북 동원탄좌, 임금인상, 어용노조 퇴진 요구투쟁
  • 1980년 5월 1일 : 부산 삼화방직, 여용노조 퇴진 및 임금인상 등 요구투쟁
  • 1984년 4월 : 부산 태화고무 공장폐쇄 항의투쟁
  • 1984년 5월 : 대구, 부산 택시기사, 노조결성, 사납금 완화 등 요구투쟁
  • 1985년 4월 16일 :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임금인상 요구투쟁
  • 1985년 6월 24일 : 구로공단, 대우어패럴 노조 석방과 노동악법 철폐, 정권퇴진을 요구하며 동맹파업
  • 1987년 7월 : 울산 현대 계열사, 민주 노조 건설, 노동조건 개선 요구투쟁
  • 1987년 9월 16일 : 서울 서울지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해고자 복직요구 영등포 성문밖교회 투쟁대회, 민주당사 점거농성
  • 1988년 11월 : 전국 농민대회, 농산물 수입개방 반대투쟁

이 모든 투쟁의 과정 속에서 도대체 한국노총은 뭘 하고 있던 걸까?

노총회관 이전? 장학재단 설립? 대단한 노총이다.

그리고 우리는 87년 노동자 대투쟁기를 맞게 된다.

이 당시 한국노총은 뭐 했을까? 각자들 알아서 찾아 보시기 바란다. 찾기가 쉽지는 않을 거다. 뭐 한게 있어야 찾거나 말거나 하지.

전국적으로 자발적인 노조가 천개가 넘게 설립되고 이들은 제대로 된 전국 조직을 갈망하게 된다. 아니 왜 한국 노총이 있는데, 전국 조직을 갈망하나? 그게 제대로 된 조직이 아니라니까.. 어용이라고 어용. 딴지 기자 이용 말고 어용.

그래서 결국 수도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구속되고 탄압을 받아 가며 피흘려가며 만들어낸 조직이 전노협. 그 전노협이 확대개편 된 조직이 민주노총.

87년 대투쟁을 거쳐 90년에 민주노총이 탄생하게 되기까지 장장 30년간 이 땅에는 제대로 된 전국규모의 노동조직이 한개 없었고, 그저 다른 나라 보기에 부끄러우니까 구색 맞추기로 한국노총이라는 어용 조직이 한개 탱자탱자 놀고 있었던 거라고.

그게 진짜 어디가서 얘기하기도 쪽팔린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의 역사란 말이다.

그러니 한국노총 홈페이지 연혁 란에 쓸게 없는 거지. 오죽 없었으면 노총회관 이전한거하고 쥐꼬리만한 장학재단 설립한거 두 건 겨우 적어 놓은 거지. 이거 적으면서 좀 마이 쪽팔렸을 거 같은데.. 아닌가?

결국 한국노총은 노동자의 권익과는 전혀 관계 없는, 과거 자신들의 목줄을 쥐고 있던 주인들을 잃어버린 사냥개 조직의 흔적만 남아 있는, 아직 폐기처분 되지 않은 역사의 잔해라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있고, 어딘가 전국 조직에 가입해야 하는 수많은 기업들의 필요성에 의해 돈과 인력을 지원받고 살아 남아 있는 그냥 그런 이권조직으로 잔존하게 된 것이다.

이게 한국 노총의 실체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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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들이 최근에는 어떤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을까?

최초로 눈에 띄는 움직임은 바로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와의 정책연대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걸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집권 가능성이 있는 정당과 연대해서, 정책을 공유하고 영향을 끼치는 거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근데 뭘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더니 2004년에는 직접적으로 정당을 설립해서 후보자를 내게 된다. 이름도 멋진 사회민주당이라는 정당이었다. 이 선거에서는 민주노총과 연계된 민주노동당이 약진했었으며, 사회민주당은 참패를 겪게 된다. 이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여기까지는 참아줄만 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러더니 2008년도에는 급기야 한나라당과 연대를 하기에 이른다. 연대의 조건은? 정책? 노동계급의 이익? 다 아니고 그냥 금뱃지 4개.

농담같은가? 노동계급의 이익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집권여당과 연계하여 의석 4개를 챙기는 것. 이게 도대체 전국적인 노동자 조직의 정치 참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심지어 한국노총 내부에서도 중앙의 이런 행보에 대해 지역 조직들 사이에 엄청난 반대가 있기도 했다. 그 반대들? 당연히 묵살되고 말았다.

그러더니 결국, 겨우 4년 전에 한나라당과 연계해서 의석 4개를 챙긴 바로 그 조직에 바로 그 사람들이 민주당과 연대해서 민주통합당을 만들게 된다. 4년전의 행위는 뭐였는데? 반성을 하던가 참회를 하던가 뭔가 바뀐 모습을 보여주고 민주당에 오더라도 와야 되는 거잖아.

아니 그것도 좋다. 굳이 뭐 시끄럽게 반성했네 참회했네 나대는 것도 꼴 사납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정책이라도 잘 만들면 되는 거지 뭐.

그러나, 현실은 또 개판이 되고 만다.

정책은 안중에도 없고, 최근 개판이 되어가고 있는 민주당의 공천판에 개입해서, 4년전 한나라당이 해준 것 만큼 의석을 안 챙겨주면 다시 짐싸서 탈당해 버리겠다고 으름짱을 놓으면서 뗑깡을 부리고 있다는 거다.

지역구 4개. 비례대표도 두세개. 이거 안주면 나 돌아가 버린다.. 라고 한국노총 지분으로 최고위원 감투를 획득하신 이용득 대표께서 우기고 있다는 얘기다.

이거.. 좀 해도해도 너무한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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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해 주기로 하자.

노동운동, 과거에 아무리 어용이었고, 아무리 이권 조직이었고, 어떤 심한 과오를 저질렀다 해도 현존하는 전국 조직이고 그 간판은 적어도 노동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조직이다.

민주당에 합류할 자격은 된다. 기왕에 올 거 자신들이 저질렀던 과오에 대한 사과가 있었으면 더 좋겠지만, 굳이 통합의 대의 앞에서 구성원들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좀 남사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당신들은 아직 민주주의에 대해, 노동운동에 대해 뭐라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정치에 참여하고 싶었다면 정책연대가 우선이다.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정책부터 들이미는 게 맞다. 정책은 뒷전이고 금뱃지가 중요하다고? 뭐 백보 양보해서 자신들이 내미는 정책을 민주당이 안 받아 줄 것에 대비해서 발언권이 필요했다고 치자.

그러면 자신들의 후보를 지역구에 내려보내, 정당하게 다른 후보들과 경쟁해서, 즉 경선을 통해 살아 올라오도록 해야 되는 게 맞다. 그러면 얼마나 떳떳하고 좋아.

왜 단수공천을 요구하고 전략 공천을 요구하냐는 말이다. 그것도 요구하는 지역들이 하나같이 민주당 깃발만 꼽고 나가면 무조건 당선이 될 지역으로 말이다. 이건 뭐 그냥 지역구 금뱃지를 꽁짜로 너댓개 내놓으라는 강짜가 아니고 뭐냔 말이다.

당신들 도대체 정치를 어디서 배워 먹은건가?

민주주의를 도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거냔 말이다. 뒷구멍에 숨어서 금뱃지 내놓으라고 생떼를 쓰면 그냥 순순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드려야 되는 건가? 자신들이 지지하던 후보가 졸지에 날아가고 생면부지의 한국노총 멤버가 하늘에서 날아와 후보로 꽂히는 꼴을 봐야 하는 지역구 유권자들은 뭐가 되는 건가?

지난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4개를 줬으니 민주당도 그 보다는 더 줘야 된다는 주장을 한다고 들었다. 당신들 보기에는 국회의원 금뱃지가 시장통에서 에누리 해가면서 줬다 말았다 하는 곶감으로 보이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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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도 잘한 거 하나 없다. 맞는 얘기다.

백번 그렇다고 되뇌여 봐도, 한국노총 당신들은 이 판에 낄 자격이 없는 것 같다.

수많은 한국노총 산하 노조들이 꽂아주는 회비, 그거 다 그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모아준 돈이다. 그거 챙겨서 룸싸롱 가는 걸로도 부족해서 이젠 금뱃지까지 달고 떵떵거려 보고 싶은 모양인데,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다.

당신들은 제대로 된 세상이 오면 과거의 죄를 씻기 위해 수백번 사죄를 해도 부족한, 노동운동의 적들이고 아직 폐기되지 않은 왜곡된 역사의 잔존물들일 뿐이다. 정치판에 끼어들기 이전에 가서 진솔한 반성이라도 좀 하고,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에 대한 인식부터 새롭게 하고 다시 와야 될 것 같다.

겉으로 알려지지 않는다고 속에 숨어서 협잡 피우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 바닥부터 다시 노력해주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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