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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양보

박성호 a.k.a. 물뚝심송
2016-04-24 20: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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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진짜 어려운 얘기다. 그러나 결국은 누구라도 먼저 꺼내야 할 얘기.

 

대한민국 사회는 이제 과거와 같은 급성장을 하지 못할 것이다. 불가능해졌다. 국제 경기가 나빠서도 아니고 우리가 뭘 잘못해서도 아니다.

 

과거 박정희 시절,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는 너무나 작아서 세계 시장은 거의 무한대로 커보였겠지만, 2016년의 대한민국은 너무나 거대해져서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 (더 이상의 고속 성장은 없다는 이유) 가 된다.

 

잘 해봐야 서서히 성장, 아니면 현상유지 정도일 것이다.

 

그런 경우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성이 늘면서 필요한 인력은 자꾸만 줄어들 것이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이 속도가 너무 빠르면 시장이 붕괴한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유시민 전 장관(그의 장관으로서의 경험을 존중하기 위해 굳이 전 장관이라고 불렀다.)은 공공서비스직, 즉 사회보장사나 돌보미 같은 분야에 국가가 투자를 하고 규모를 늘려 일자리를 보충하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난 그걸로는 부족할 거고, 결국 기본소득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을 준다고 해서 일자리가 늘어나겠냐고? 오히려 줄지 않겠냐고?

 

성장이 멈춘 사회에서 유일하게 일자리를 늘일 수 있는 방법은 "일자리 나누기" 뿐이다. 12시간 일하던 것을 8시간으로 줄이고, 아니 나아가서 4시간으로 줄이고, 더 나아가서 3-4년에 한 번씩 안식년도 가지고 해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나눠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작업시간이 줄어든 만큼 수입도 줄게 되는데 기본소득으로 이걸 보충해 주고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 이게 기본소득의 또 하나의 효과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조차 노동자들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본소득도 받고 기존에 하던 대로 야근에 특근까지 다 하면 월급을 더 받을 수 있는데 사회적인 요구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일자리를 나누고 일을 덜 하고 스스로 수입의 감소를 감당할 노동자가 있을까? 자발적으로 말이다.

 

이 문제는 거의 해결이 불가능하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양보"하기 전에는 말이다.

 

노동자 계급이 그 정도의 양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그 집단은 그렇게 선의로 충만한 사람들일까?

 

만약 그랬다면 민주노총이 지금 겪고 있는, 대기업 노조 편향이라는 비판, 비정규직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을 가하는 집단이라는 비난은 듣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귀족노조라는 악의적인 레토릭이 이 사회에 그렇게 널리 퍼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다 못해, 전교조조차, "교직원 노조"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서도 학내 용역들, 경비, 수선공, 영양사, 조리사 등을 노조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잖은가.

 

물론 왜 조금 더 받는 노동자가 양보를 해야 하는가, 돈을 산처럼 쌓아두고 있는 기업들이 양보를 해야지.. 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기업들의 일방적인 양보를 받아 내려면 전두환이 필요하다. 아니면 노태우를 등에 업고 대기업이 보유하던 비업무용 토지를 강제로 매각시켜 모든 재벌들의 웬수가 되어버린 김종인이라면 가능할까?

 

노동자의 양보는 반드시 필요해질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당연히 기업의 양보도 있어야 한다. 상황이 변하면 살아남기 위해서 모두가 양보를 해야 한다. 양보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사회적 대타협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어느 한 쪽만의 양보로 이루어지는 것은 타협이 아니라 타도니까 말이다.

 

그 동안의 착취, 그 동안의 일방적 지배, 그 동안의 가혹한 탄압, 그런 걸 무시하는 게 아니다.

 

또 일방적으로 양보하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법인세의 실질 부담율을 OECD 평균수준으로 올리는 조건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의 중간 수준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제도를 도입한다거나, 주당 근무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다거나 하는 방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자는 얘기일 뿐이다.

 

이런 글 쓰면 보통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되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생각인 것 같아 한 번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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