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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구분

물뚝심송
2018-01-24 14: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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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쉽지 않습니다. 좌파와 우파의 구분도 쉽지 않습니다.

기 존의 것들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보수, 그것으로 고치려는 사람들이 진보, 이런 분류도 맞습니다. 의사당에 왼쪽에 앉으면 좌파, 오른쪽에 앉으면 우파, 이것도 맞습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조금 더 좋아하면 좌파, 조금 더 싫어하면 우파 이것도 맞습니다. 세금을 덜 걷자면 보수, 더 걷자면 진보 이것도 맞습니다. 뭐 도대체 명확한 기준이라는 것을 잡기가 힘들군요.

해 서, 현재 대한민국 땅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기준으로 봤을 때, 대략 이렇게 구분하면 좀 정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제멋대로 기준을 한번 잡아 봤습니다. 이거 얘기가 좀더 진행 된 후, 다시 보강정리하면 나름대로 쓸모가 있는 내용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봅니다.

대략 이런 구분.
대략 이런 구분.

 

몇가지 먼저 걸고 들어가야 할 조건들이 있습니다. 원래 저는 보수라 하면, 자유경쟁, 더 적은 세금, 강한 군사력, 애국심을 듬뿍 담은 민족주의, 권위주의적 위계질서, 성차별, 사회복지 축소, 엄격한 가정, 예술에 대한 상대적 비하, 순위를 따지는 교육, 신에게 순종하는 종교, 법률이나 사회적 규칙에 대한 맹종 등을 떠올리곤 했었습니다. 진보는 대략 그 반대의 주장이겠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게 잘 맞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이런 기준으로 봤을 때 보수세력이라는게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보수들은 대략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감세를 원하며, 강한 군사력을 원하는 것이나 엄격한 가정을 얘기하고, 비평준화 교육을 얘기하는 것은 맞지만, 애국심에 기반한 민족주의는 없고 대미 사대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 룰에 대한 맹종 보다는 편법에 의한 재산증식이나 적절한 수준의 부패에 대해서 매우 관대한 경향을 보이고 있죠. 근본적으로 보수라면 나름대로 강하게 가지고 있어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식이 희박한 편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보수도 없고, 천민자본주의만 판을 치고 있다고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진보들 역시, 사회적 약자의 보호, 교육의 평준화, 증세, 권위주의 반대등을 얘기하고 있지만 오히려 보수에 비해서 더 강한 애국심, 민족주의 등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헷갈리는 거죠.

이 런 현상들은 일제이후 우리 역사의 왜곡에서도 기인되겠지만, 역사가 잘못되었다 해서 수정할 수도 없는 것이고 현재 당면한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보수와 진보의 구분 기준을 수정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 맘대로 수정을 해 보겠습니다. 학술적 분류등에 의거 틀린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경우, 더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분류기준이 있다면 얼마든지 제 기준을 철회하고 대치할 생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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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공통점

근 본적인 목적은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진보나 보수 공히 서로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안별로 선택가능한 대안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 두 세력은 특히 정치적 입장의 관점에서는 거의 서로를 용납하기 힘들 정도로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사회라는 거대한 숫자의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 대한 이해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보의 핵심은 휴머니즘

진 보들은 사람이란 날 때부터 그 가치의 우열을 따질 수 없도록 귀중한 존재이므로 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간의 능력의 차이가 있어서, 단지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시스템으로는 어쩔수 없는 환경에 의해 약자가 된 사람들의 인권이 침해될 소지가 있으니 사회에 각종 장치를 도입해서 약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는데에 중점을 둡니다. 그게 단순히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비용의 개념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보호장치를 통해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고, 그게 사회를 더 발전시킬수 있다고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주장은 너 자신이 당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는 힐렐의 황금율에서도 볼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약자가 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보호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주장입니다.

 

보수의 핵심은 경쟁

반 면에 보수는 타고난 인권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근면과 게으름에 대한 차이를 강조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이 사회는 적절한 경쟁을 통해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며, 근면을 통해 성공한 이들에게는 포상이 필요하고 게으름으로 인해 자원을 획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회가 징벌을 해야지 보상을 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약자보호장치들은 사회적으로 비용을 발생시켜서 발전을 저해하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로 이 사회에 게으름에 대한 보상이 존재함으로써 게으름을 확대시켜 사회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힘들더라도 사회 구성원 각자에게 경쟁이라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하며, 그 경쟁의 승자에게는 확실한 물적 심적 보상을 주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개념을 바닥에 깔고, 각 분야별로 진보와 보수의 입장을 살펴보자면…

 

국가의 문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호장치를 두자고 주장하는 진보의 개념은 사람의 이성에 대한 보다 강한 신뢰와 연결됩니다. 경쟁에서 실패한 약자를 보호해 주면 그가 다시 재기해서 사회를 위해 일 할 것이라는 믿음이죠. 보수는 그 사람들을 보호해 줄 경우 게으름을 즐기게 될 것이라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개인에 대한 개념이 국가 차원으로 자연스럽게 확대됩니다. 전반적으로 군비축소 문제는 진보들에게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즉, 국가역시 한 개인들과 다를 바 없이 좀더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며,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처럼 국가들 역시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기에 광기에 기반한 전쟁이 더 이상은 안 벌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당연히 군비축소가 아무 문제 없는 것이죠.

보수는 개인의 이성에 대한 불신과 동일하게 국가들 역시 불신합니다. 그래서 국가간에도 경쟁을 해야 하며 이 경쟁에서 낙오된 불량국가들은 필연적으로 비이성적인 국가간 전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한 군사력으로 무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게 실패했을 경우, 혹은 대한민국 같이 작은 나라는 강력한 우방에게 비록 자존심상하고 굴종적이긴 하지만 의존을 해야 하며, 그 의존의 댓가로 경제적 수탈을 당하는 것은 감내해야 할 일이라는 해석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 진보들은 좀더 이성적이고 문화적인 국가 모델을 원하는 반면 보수들은 비이성적이고 외세 의존적이라 할 지라도 강한 국가를 열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부의 문제

흔 히 진보는 큰 정부, 보수는 작은 정부를 얘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야에 따라 다르게 됩니다. 진보는 약자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의 경우 매우 강력하고 효율적인 큰 정부를 원합니다. 보다 많은 세금을 걷어서 사회보장제도에 큰 투자를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보수는 사회보장제도는 최소화하기를 원합니다. 진보=큰정부, 보수=작은정부 원리에 맞는 분야입니다.

하지만 국방이나 외교분야로 오게 되면, 반대가 됩니다. 진보는 군축을 얘기합니다. 결국 국방예산의 감소, 관련 정부조직의 축소를 얘기하게 됩니다. 보수는 국방력 증강을 얘기합니다.

진 보는 지방분권 및 자율을 얘기합니다. 보수는 중앙집권적인 정부를 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이어 이명박 정권에서도 지방분권과 자율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정부조직 운용의 효율성 차원에서 접근해야 이해가 될 듯 합니다. 진보와 보수의 근본 개념과 관계없이 대한민국의 경우 중앙집중정부에 비해 지방분권정부가 효율이 좋다고 공공 실무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본 듯합니다만 이런 측면도 있습니다.

전에는 지방분권이 보수주의자들이 장악한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진보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길이었었지만, 지방분권을 제도적으로나마 시행한지 시간이 꽤 흐르다 보니, 지방의 권력 역시 보수가 장악(한나라당의 지자체 선거 독식의 결과)함으로써 지방분권을 하더라도 보수가 사회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 의해 이렇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자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중앙을 장악한 보수주의자들을 피해 각개의 기관들에게 권한이 이양된다면, 진보적 이상이 펼쳐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진보일 것이라는 믿음과도 통합니다.)이 있었으나, 교육계의 자율 같이, 보수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교장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자율의 강조는 보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와 유사하게도 행정조직의 축소는 진보들의 단골메뉴였습니다. 이는 부패한 공조직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었지만, 요즘에는 오히려 보수들이 행정조직의 축소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패에 대한 거부감도 일조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켜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증대하고자 하는 점이 더 크다고 보여집니다.

진보는 사회보장제도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더 이상 공조직의 축소를 주장하기 힘든 상황이 된 듯 합니다.

 

교육의 문제

보 수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측면이 있기에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항상 규율을 강조하고 권위주의를 내세우기 마련입니다. 특히나 아직 인격의 완성이 덜 된 학생들의 경우, 보다 강력한 위계질서하에서 사회에 적응할 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훈련의 완성도는 바로 성적으로 평가됩니다. 이 시스템에 저항하는 학생들은 낙오자로 분류해야 하며, 이 훈련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사람들이 사회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을 합니다. 모든 학생들은 순서가 매겨져야 하며 모든 학교 역시 순서가 매겨져야 합니다. 따라서 평준화 같은 가치들은 무의미한 것이 됩니다. 그들에게 가장 효율적인 교육조직은 군대입니다.

반면에 진보는 교육은 자아실현의 기본적인 도구이며, 학생들의 가치는 개인마다 다른 곳에 있기에 일률적으로 순서가 매겨질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학생들에게는 사회진입의 관문 즉 취업의 가치에 매달려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을 권리가 있기에 그들에게 다양한 문화에 대한 체험과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경쟁에 이기는 방법보다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서 학생과 선생의 관계는 수직상하관계라기 보다는 동료의 관계에 가까우며, 학생들의 최종적인 인생 선택권에 대한 가이드로써 선생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입시제도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관점에서 항상 진보와 보수는 전혀 다른 대안을 내놓게 되곤 합니다만 보통 보수들의 대안이 제도화 되고 계속 실패해오고 있습니다. 물론 강압적인 평준화제도 도입등의 기이한 현상도 과거에는 있어 왔습니다. 보수들은 바로 이게 교육 정책이 지속적으로 실패하는 원인이라 주장하면서 평준화 폐지를 원하고 있습니다. 진보들은 그 평준화 정책은 결코 완성도 있는 제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학생들을 보호하는 최후의 방패막이는 된다고 주장하고 있기에 평준화 폐지에 반대합니다.

 

학문의 문제

보 수들은 역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즉 직접적인 경제적 가치가 있는 연구실적을 내지 않는 학자들에게 사회적 자산을 제공하는 것은 불필요한 비용의 증가라는 점에서 그다지 지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에 진보는 학문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며, 실용적인 관점에서도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수학문에 대한 연구 자체가 결과적으로는 모든 학문의 수준을 발전시켜서 보다 큰 사회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항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이익의 관점 이전에 학문 자체의 가치를 더 크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 부분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생각하는 인생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있음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다양한 가치체계를 인정하고 추구하는 진보에 비해,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댓가를 확실한 경제적 수치로 보상받기를 원하는 보수라는 뜻입니다.

자신들이 근면하게 노력해서 생성한 부가, 세금의 형태로 거두어져서 사회 곳곳에 투자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보수들은 그 부가 전적으로 자신의 소유이며 그것은 자신의 근면에 대한 포상이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 포상의 일부를 덜어내어 별로 노력하지도 않는 것처럼, 혹은 쓸데없는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학자들에게 제공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보는 사회적 자원을 학자들에게 투자하는 것처럼, 자신 역시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할 때에도 사회의 보호를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거 기다가 보수들은 그 학문에 대한 사회적 자원의 배분과정에서도 대학내의 위계질서에 의해 배분되기를 원하는 것이며, 진보들은 그 자원이 순수하게 학문 자체의 가치에 따라 배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점 역시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의 정도 차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여집니다.

 

종교의 문제

우 리나라는 다종교 국가이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입장은 구분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표적으로 기독교를 보자면 보수들은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조차 위계질서를 찾곤 합니다. 신은 인간의 근면에 대해서 포상을 내리고 나태에 대해서 징벌을 내리는 엄격한 아버지 같은 존재입니다. 그 신을 위해서 자신의 근면의 댓가인 금전을 바치는 것은 신에 대한 최대한의 경외감의 표현이며 신으로 상징되는 위계질서에 자신도 편입되었음을 알리는 길이 됩니다. 거기다가 금전을 많이 바칠수록 자신의 근면을 크게 입증하는 길이 되는 것이죠.

진보의 경우, 극렬한 좌파의 경우 “종교 자체를 아편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신을 인간을 사랑하는 자애로운 동료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은 약한자들을 보호하고, 사랑하며, 도덕(인간에 대한 예의겠죠)을 어기는 자에 대해 분노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간주합니다. 신에게 돈을 바치는 것은 신에게 바치는게 아니라, 신이 사랑하는 약자들을 도와주는 것이며, 교회는 이 과정을 대리하는 중개자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 국 거액의 헌금으로 유지되는 보수교회에는 부자들이 득실거리면서 비즈니스의 사교장이 되어 버리고, 그들의 헌금은 약자들을 위해 사용되기 보다는(약자들은 나태를 의미하며 그들을 돕는 것은 죄악일수도 있습니다.) 진보들의 교회는 동네구석에서 월세 내기도 힘든 처지를 면하지 못하면서도 헌금만 들어오면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다 써버리게 되는 결과를 낳곤 합니다.

 

예술의 문제

보 수들은 예술에 대해서도 값어치를 매기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돈에 환장해서가 아니라, 어떤 일련된 순서가 매겨지는 위계질서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위계질서를 정하는데 있어서 값어치만큼 확실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류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도전적인 실험예술가들은 보수적 사회에서는 지원을 받기 힘듭니다.

반면에 진보들은 각자가 추구하는 예술의 개별적 가치를 인정하고자 하기 때문에 주류 예술가들 보다 젊은 실험예술가들에게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측면은 보수들은 예술가들이 사회현상에 개입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거 독재시절에 예술가들이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대중 선동능력을 활용하여 사회를 불안하게(보수의 입장에서) 만들었던 경험에 힘입은 바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사회를 위한 재화를 생산하지 않는 예술가들이 사회의 지원을 받아 예술을 하면서 사회 현상에 개입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나태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모양입니다.

진보들은 순수예술 뿐 아니라 실용예술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한번도 이 사회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했던 진보들에게는 유일한 무기가 대중의 지지이며 이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의 능력에 의한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실용예술이냐 순수예술이냐 하는 판단은 보수와 진보의 구분을 개념적으로 적용하는 데 있어서는 큰 차이를 발견하기 힘듭니다.

 

가족의 문제

보 수들은 가족을 매우 중요한 사회 구성의 기본단위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 가정은 엄격한 아버지의 통제아래 근면을 배우고, 사회적응을 위한 교육을 받는 기초단위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피폐해지는 것은 아버지의 나태때문이며, 그런 가정은 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징벌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 됩니다.

이 가족제도는 보수들의 사회관이나 국가관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그 상징적인 의미때문에라도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가족의 해체는 바로 보수들의 가치관에 대한 공격의 단초가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동성애나 미혼모, 동성동본의 결혼 등은 이 가족의 해체를 유발할 수도 있기에 보수들에게는 귀찮은 존재가 됩니다.

진보들은 이 가족의 문제를 가장 친밀하게 서로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수평적 공동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아버지 어머니 자녀들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가족 말고도, 동료들간에, 혹은 지역공동체에서도 얼마든지 가족의 개념을 구현할 수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전통적인 가족에서도 아버지의 의무에 대해 집중하지 않고 구성원 전체의 대등한 관계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굳이 양부모가 다 있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런 관점에서 입양을 강조하고 동성의 결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물론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에 대해서도 아버지의 전횡만 없다면 인정하고자 합니다. 즉, 폭력적인 아버지나 때리는 남편이 있는 가족보다는 차라리 편모,편부가족이나 미혼모 가족들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 입니다. 또한 그런 전통적이지 않은 가족들에 대해서 사회가 편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주장을 합니다.

 

성별의 문제

보 수들은 이 문제역시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사회는 남성들이 이끌어 가는 것이며, 남성들의 역할은 분명하게 여성들의 역할과 구분이 되며, 여성들은 이 질서에 통합되어야 된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여권문제에 대한 인식에서도, 여성들의 권리를 확장해주고자 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남성들의 통제아래에서의 일정한 권한의 양도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이 정도 해줬으면 되지 뭘 더 바라냐는 식의 결론을 내곤 합니다.

진보들은 여성 역시 동일한 인격을 가진 개인으로 간주하는 것이 기본적인 주장입니다. 성역할의 차이는 근육의 힘 같은 어쩔 수 없는 물리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 수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를 놓고, 엄청난 여권의 신장이 이루어졌다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오히려 여권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들을 지나치다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보들의 경우에는 아직도 근본적인 “동일한 인격체”로 여성을 간주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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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정도의 카테고리로 분류를 해 보았습니다만 굉장히 부족하고 아쉽군요. 하지만 이 정도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구분한다면, 발생하는 개별 사안별로 진보와 보수의 입장을 유추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현 재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모든 제도권의 의사결정은 보수적 입장에서 내려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진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죠. 보수들은 보수 나름대로 이렇게 나아가야 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이 험악한 국제정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진보들의 주장을 매우 위험하게 받아들이곤 합니다.

만약 실질적으로 그런 속셈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을 부정직한 방법으로 공고히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보수도 진보도 아닌 협잡꾼일 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선량하고 나름대로의 신념을 가진 보수세력들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즉, 정권을 잡은 정치인들이 모두 협잡꾼들이더라도 그들의 구호에 동의하는 다수의 선량한 보수가 있기에 그들이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진보들은 이런 일련의 가치관을 사회제도에 구현하려면 일단 사회 전체의 헤게모니를 장악해야 한다는 선결과제가 있으며, 그 일은 대중의 지지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게 됩니다. 즉, 아직 분명하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지 못한 집단이나 새로 자라나는 집단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이 더 우월하고 합리적이라는 것을 설득해내어 최대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겨우 자신들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구현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집권 보수세력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좀더 면밀한 검토와 합리적인 비판을 수행하고 보다 더 중요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좀더 설득력있게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전략적 기법을 연마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제 판단으로는 여태껏 얘기한 기준으로 보자면, 이 사회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비율이 8:2 정도는 되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어떨지 무척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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