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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

비키니 사건

박성호 a.k.a. 물뚝심송
2012-02-04 09: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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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반응전 이야기.

 

여성의 권리 문제에 대해서는 진짜 얘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좀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얘기할 자신이 없다. 내가 모르는 문제에 대해 설레발을 떨고 싶진 않으니까.

좀더 정확하게 말해볼까.

사실 나도 여권문제에 대해 완전 깡통은 아니다. 읽을 만큼 읽어 봤고, 얘기할 만큼 얘기해 봤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머리로는 다 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그것을 이해할 지언정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내가 타고난 불가촉 천민인 남자이기 때문이다.

백인들이 흑인 노예를 해방해 주면서도, 노예로 살던 흑인의 입장을 진정으로 이해해서 해방시켜 준 넘은 하나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단지 지들의 이해관계상, 즉, 노예에 의존해 번성하던 남부 농장주들의 세력을 약화시킬 필요성이 있어서 북부 상공인들이 노예 해방을 주장한 혐의가 짙다는 것이잖은가.

오히려 노예 해방은 링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서 죽어간 수많은 흑인들의 핏값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게 맞다. 그 이후로 줄기차게 이어져 내려온 흑인 인권운동가들의 노력이 뒷받침을 해 왔던거고.

비슷한 논리로 남자들은 여성의 권리 문제에 있어서 소위 말하는 꼴페미들의 말을 이해하는게 거의 불가능하다. 아니 몇몇 남자들이 그걸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깊이 있는 공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옳은게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는 그 어떤 남자도 자유롭지 못하다. 진중권 역시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자유롭지 못함을 얘기한다. 김어준도 마찬가지고, 홍석천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홍석천은 좀 다른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서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겠지만..  그게 여성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시작한 것은 현실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흔히 벌어지는 정치 논쟁은 일반적으로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에 근거를 두고 벌어진다. 그나마도 정확한 개념구분은 불가하다. 그래서 많이들 우리의 정치는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게 더 맞는 표현같다.

몰상식은 말 그대로 몰상식이다.

선출직에 종사하는 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 보다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데 더 열중하고, 국가를 수익모델로 생각하는 건 몰상식이다.

권력의 안위를 위해 편파적인 법적용을 하는 건 몰상식이다.

기왕 모은 자본, 더 크게 불리려고 종업원들을 백혈병으로 내모는 것은 몰상식이다.

도심의 재개발을 위해 사람들을 불태워 죽이는 것은 몰상식이다.

몰상식은 이토록 명확하게 구분이 된다.

그런데 상식은 어떤가? 좀 혼란스럽다. 상식 안에는 상식적인 보수도 있고, 상식적인 진보도 있으며, 학술적인 진보도 있고, 극렬 좌파도 있다. 그저 대통령이 사기나 안 쳤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고, 대통령이 이 국가를 사민주의로 만들어주길 기대하는 진보도 있고, 대통령이고 뭐고 우리 사회가 사회주의가 되길 바라는 좌파도 있다.

실제로 오랜 시간동안 좌파나 진보적 가치에 몰두하면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시절부터 꾸준히 일관된 목소리를 내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최근까지도 아무 생각없이 살아오다가 나꼼수 덕분에 가카의 실체를 깨닫고 도저히 저런 넘을 내버려 둬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이 그룹에 합류한 사람까지 그 폭이 너무나 넓다.

그래서 결국 이 안에서 다시 패가 갈리고 싸움이 벌어진다.

모든이가 힘을 합쳐서 이명박만 쫓아내자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다수다. 도저히 더는 못견디겠어서 나선 사람들이기도 하고, 진보나 좌파적 가치에 대한 학습과 훈련은 아직 안된 사람들이다.

또 그 중심에 오랜 기간동안의 학습과 훈련을 통해 좌파적 가치가 몸에 밴 그룹이 존재한다. 비록 소수지만 이 사람들은 지극히 논리적이고 학술적이다. 숫자로 보면 한줌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상식 진영의 모든 논리적 주제를 제공하고, 몰상식들의 행태를 분석하고 알려내며, 싸움의 방향을 설정해 나갈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이 협조가 잘 되면 좋지만, 수시로 불협화음이 벌어지는 것 역시 현실이다. 대표적으로는 이 핵심 좌파 그룹이 먹물티를 내면서 일반적인 상식그룹을 가르치려 든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정리해 보자.

이 사회는 현재 상식 vs 몰상식의 이분법적인 이해만 가지고서는 현실을 파악하기 힘든 상태이다.

더 세분화 해서, 몰상식에 분노하는 일반인 그룹, 오랜시간동안 활동해온 진보그룹, 그리고 몰상식 그룹이 된다.

몰상식 vs 일반상식 vs 진보상식… 이런 형국이 된다.

그래서 이분법이 아니라 삼분법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발해시기의 세발솥>
 


 

진보상식은 외롭다. 너무 긴 시간동안 외로움의 스트레스를 감내해 왔고, 그 결과 진보상식 그룹 중 상당수는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고(그래.. 맞다. 민노당 주사파들 말이다. 니들 김씨 삼대를 신으로 섬기잖냐.) 일부는 기괴한 변이를 통해 119에 전화를 걸어서 관등성명을 물어보는 취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이 가치를 지키고 남아 있으면서 지역활동에 매진하는 등,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을 얘기할 때에는 일단 먼저 최소한의 경의라도 먼저 표하고 나서 얘기하는게 인간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김규항처럼 글로발하게 외로운 좌파의 길을 가고 있고, 일부는 진중권처럼 현실에 적응해서 사민주의를 주장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은 대중을 설득하는데 실패했었고, 실패해왔다. 지금도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대중은 전혀 다른 지점에서 설득이 되고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이 사건은 바로 일반상식 그룹에서 벌어진 것이다.

가카 요정설은 아니지만서도 이명박의 그 근원을 알 수 없고, 역사속에서 찾아보기 힘든 소시오패스적 뻘짓의 결과로, 몰상식 그룹의 외연이 심각하게 쪼그라 들었고, 이 틈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분노하던 잠재적 일반상식 그룹 구성원들이 나꼼수의 복음을 듣고 명확하게 일반상식 그룹으로 자리매김 하는 사건이 벌어져 버렸다.

기본적인 입장은 이런거겠지.

진보고 보수고 그런 따위는 내 골치 아파서 하나도 모르겠는데, 씨바, 이명박 이 쉑키의 뻘짓은 도저히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잖은가.. 우리 힘을 합쳐서 저 쉑키좀 몰아내 볼까.. 근데 뭘 어떻게 해야 저 쉑키를 몰아낼 수 있는 거지?

바로 그 사람들 중 극히 일부가 여의도 나꼼수 공연에 모여든 십만의 인파를 구성한 것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대고, 니들은 나꼼수 신도고, 니들의 방법은 틀렸고, 니들이 믿는 건 음모론이고, 공부좀 해라 이 돌대가리들아.. 하고 외치는 게 진중권이었고 말이다.

진중권의 말은 말 그대로 보면 맞는 말이잖아. 근데 졸라 재수없잖아. 재수없음을 넘어 예의도 없고, 싸가지도 없고, 뭐 저런 넘이 다 있어.. 이게 새로 모여든 일반상식 그룹의 보편적인 반응이 될 것이고 말이다.

이렇게 천하는 삼분이 되는 거고, 이분법으로는 도저히 해석하기 힘든 최근의 사회적 논쟁의 흐름을 이 물뚝표 삼분법에 의해 일그람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삼일간 머리 짜내서 만든 스토리가 되겠다.

더 편하게 표현하자면, 사회적 부를 움켜쥐고 호의호식 하는 A 그룹의 몰상식에 맞선 상식그룹이,  B컵 좌파(헉.. 이것도 여권론의 측면에서 보면 부적절한 표현일수도..)인 김어준의 복음을 듣고 모인 B그룹과, 돈도 없어서 찌질거리면서 사는 C급인생들인 골수 진보좌파들로 구성된 C그룹으로 나뉘어 버렸다.. 라는 얘기가 된다.

이건 뭐 ABC 초코렛도 아니고..


 

여성의 권리 문제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팔구십년대를 거치면서 사회 각분야, 특히 노동문제나 소외계층의 문제가 폭발적으로 사회적 의제로 다루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히 발전한 것과는 좀 다르게 여성문제는 매우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바뀌어온 측면이 있다.

물론 여성문제가 팔구십년대를 주름잡은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문제등과 같이 보수-진보의 문제, 좌파-우파간의 문제와는 또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사회의 관심 여력이 온통 정치 쪽으로 쏠려 버렸으니 그럴 수 밖에.

하지만 여성문제는 인류를 구성하는 각각의 절반(그 틈에 또 다른 소수자들이 있긴 하지만)의 협력과 상생에 관한 문제라는 거대한 보편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또한 우리의 실책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권리는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발전해 왔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물론 아직도 여성들의 사회적 권리는 남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고, 그 발전속도 또한 매우 느리다.

아쉬운 점이라면, 여권에 관한 부문의 학술적 논리적 발전이 다른 분야에 비해서 좀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즉 사회 트렌드는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여권론자들은 좀 시대에 뒤떨어진 학술적 입장에서 나올 수 있는 주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근데 재미있는 건, 이 여성의 권리에 대한 스탠스를 기준으로 그룹을 나눠 보면 앞서 얘기한 ABC 이론이 거의 유사하게 들어맞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 권리에 대해 거의 무지한 A급 여성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여권신장에 절대적인 걸림돌(심지어 무식하기 짝이 없는 마초맨들 보다도 더 걸림돌이 된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잖는가.)이 되고 있다. 마치 가카로 상징되는 정치적 A그룹과 유사한 존재들이다.

과거 팔구십년대에는 이런 A그룹이 절대다수였다. 그만큼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들은 외로운 존재들이었고, 그들의 투쟁은 눈물겨웠었다. 역시나 이 분들에 대한 얘기를 할 때에도 우리는 최소한의 경의를 먼저 표하고 나서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결국 그 강경한 페미니스트들은 아직도 정치적 C 그룹과 같이 페미니즘적 분류에서도 C그룹을 구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아직도 소수이며, 아직도 외롭다. 비록 옳다 하더라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도 B그룹이 탄생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 숫자가 매우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B그룹에 속한 여성들은 더 이상 과거 A그룹과 같은 구시대적 인식을 가지기를 거부한다. 그녀들은 그녀들의 어머니와 시어머니같은 인생을 살질 않는다. 권력이 여성성을 도구화하는데에 분노할 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본의 성상품화는 적절히 즐기기도 한다.

남편들에게 굴종하면서 사는게 아니라 남편들을 조종하면서 착취(응??)할 줄도 알고, 자신의 성적결정권을 활용하면서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적절한 된장질도 즐기고, 자신의 캐리어도 관리하며, 여성의 상품화에 대비될 수 있는 남성성의 상품화를 주도하고 즐기기도 한다.

이들은 과거의 A 그룹같은 단순한 존재들이 아니다. 여권의 차원에서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차원에서는 상당히 주체적인 존재들이며, 자존감을 발휘하는 존재들이다 .

팔구십년대를 넘어 이천년대에 돌입하고도 십년이 넘게 흐른 2012년 오늘날, 이 B그룹은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나름 당당하게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앞서 얘기한 정치적 B그룹은 다수의 고개숙인 남성들보다 오히려 이 페미니즘적 입장에서의 B그룹이 견인하기도 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정치적 B그룹과 C그룹사이에 발생하는 불화가 똑같은 양상으로, 페미니즘적 B그룹과 C그룹사이에 발생한 것이다.

그게 이번 비키니 사건의 전모라는 점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깔때기를 대자면, 나는 “불법미인”의 반론과 유사한 사건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나꼼수가 정봉주 응원 인증샷을 요구하고, 거기에 비키니 샷이 올라오며, 이를 가지고 생각짧은 농담(코피 얘기)을 주진우가 올리고, 김용민이 수시로 성적인 농담(주진우 좆까~)을 날리는 상황에서 페미적 C그룹이 반론을 하는 것은 원래 당연한 일이다.

단지 문제는, 문제를 지적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여성들과 같은 여성이면서 자신의 비키니 인증샷을 공개한 그 여성들은 어떤 입장이 되는가 하는 것이 내 관심사였다는 얘기다.

과거 같으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사회적 논쟁이 벌어진 것 자체에 놀라 불안해하며 뒤로 숨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지만, 이 예측은 자체모순을 가지게 된다. 겨우 그까짓거에 놀라 뒤로 숨을 사람이라면 애시당초 비키니 인증샷을 올리는 것 같은 대담한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아니 지금의 시대는 그 자체가 뭐 별로 대단한 행동도 아닌 시대인 것이다.

누구의 사주를 받고 하는 행동도 아닌 것이다. 그냥 스스로 발언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자신의 몸을 이용한 것 뿐이다. 전형적인 페미적 B그룹의 행동이다. 이 상황이라면 분명히 당찬 반박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게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지 않는가.

페미니스트, 그러니까 C그룹에서 강렬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주춤하던 나꼼수 팬(그 중에서도 나같은 마초들)들은 이 반론에 힘을 얻어 기세가 등등해지면서 거봐라~ 이게 뭐가 문제냐고 외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불법미인의 행동에는 원래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참 멋진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음험한 의도는 절대 없다. 진짜다. 좀 믿어주라.)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의 행동이 핵심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다 얘기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이 논쟁이 발화점이 된 것도 사실이고, 이 논쟁이 그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논쟁들이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논쟁에서 본질은 어찌되었든지 간에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주도권은 초기에 페미적 C그룹이 주도하던 것에서 이번에는 또 정치적, 페미적 B 그룹으로 주도권이 넘어가 버린 형국이 되고 말았다.

 


 

원칙적으로 말해보자.

아직도 이 사회는 여성의 권리 차원에서 보면 후진국이다. 여성은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 곳곳에서 권리가 무시당하고 억압받고 있는게 현실이다.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아직도 옳다. 근본적으로 옳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물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본질을 표현하는 방법 자체가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서 정신없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좌파우파 진보보수 구분을 떠나 인간을 가장 중심에 놔야 한다는 휴머니즘을 그 본질이라고 본다면 본질에는 변함이 없지만, 정치적 발언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그 표현의 방법, 주장을 전달하는 미디어는 정신없이 변화하고 있다.

조중동이 몰락하고 개인 미디어가 힘을 얻고 하는 그 상황속에서, 정점에 서 있는 나꼼수라는 존재 자체가 그렇게 누구보다도 빠르게 변화해서, 그 첨단에 서 있는 존재인 것이다. 말하는 내용만큼이나 전달하는 방식이 중요해진 사회가 된다.

페미니스트들도 이 점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옳은 주장을 하는 것 만큼이나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하는 방식도 중요해 진 것이다. 이 부분에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이 좀 뒤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정치적 C그룹, 골수 진보들도 정확하게 똑같은 곤경에 처해 있는 것 같다.

양측 모두, 원론에 충실하고 본질적으로 옳은 주장을 하면서 그 전달 방법 차원에서 시대에 현저하게 뒤떨어져가고 있다는 징후가 사방에서 포작된다는 얘기다.

표현 방식이 낡아 버리면 사람들은 아무도 귀기울여 듣질 않는다. 이런 상황은 그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불행이지만, 정치적, 페미니즘적으로 옳은 주장들이 사장된다는 측면에서 사회적 손실이 되기도 한다.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면, 보다 감동적인 방법으로 얘기를 하려고 노력해야 된다.

하지만 난 그 방법이 뭔질 전혀 모르고 있다. 나도 모르는 얘기를 남에게 요구해서는 안되는 법이기 때문에 그 방법이 뭔지를 좀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이제 고등학교 들어가는 딸아이에게 물었다.

나 : 비키니 사건이라는게 있는데 니 생각은 어때?

딸 : 그게 뭐? 그게 왜 문제가 되지? 올린사람 맘이지.

(뜻밖에 요즘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도 훨씬 더 리버럴하다.)

나 : 비키니 사진은 좀 그렇지 않나?

딸 : 티비에서 아이돌들이 거의 벗고 나와서 춤추는 게 더 문제 아닌가? 그것도 괜찮으면 비키니도 괜찮은거지 뭐.

(얜 아직 자본이 하는 성상품화와, 권력이 하는 성도구화를 구분할 수준은 아니다. )

나 : 나꼼수에서 이런저런 농담을 했다는데 그건 어때?

딸 : 그런 농담은 축에도 못끼지. 왜 그걸 사과하라 그러지?

나 : 그래도 방송, 아니 팟캐스트잖아.

딸 : 아빠, 우리가 보는 만화, 애니, 웹툰, 즐겨하는 카톡, 싸이, 뭐 그런 수도없이 많은 것들에 그 정도 수준의 얘기, 아니 훨씬 더 한게 넘쳐나잖아. 팟캐스트는 뭐 다른가?

(그렇다. 얘들은 우리 때와는 다르게 넘쳐나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미디어들중의 대부분은 이미 자본에 의한 성상품화가 일상이 되어 버린 시대인 것이다.)

나 : 너는 살아가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손해본적 없니?

딸 : 생리통 오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지. 하지만 요즘 학교에선 남자애들은 천민이야. 공부도 우리가 더 잘하고, 일도 우리가 다 하지. 남자애들은 왜 그렇게 찌질한지 몰라. 내가 남자가 아닌게 오히려 다행이야.

(세상이 어찌 되려고 그러는지.. 실제로 딸아이 학교에서 전교 1등에서 10등까지는 몽땅 다 여학생이다. 선생님들도 무슨 일을 시킬 때 남자애들한테는 안시킨단다. 시켜봐야 못하니까. 이젠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남성들이 불가촉 천민이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인가… )

나한테만 의미심장한 대화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대화는 많은 것을 얘기해 주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여기서 상당부분, 우리가 앞으로 어떤 주장을 전달하고자 할 때 취해야 하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1. 각 개인의 자유와 자존감이 더 중요하다.

쉽게 말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자는 거다. 욕하고 싶은 넘은 욕하는 거고, 가슴 사진 올리고 싶으면 올리는 거고, 현행법 위반만 아니면 맘대로 하도록 내비두자는 거다.

자유는 좀 과하게 주더라도 별 문제 없다. 독재자들이야 사람들이 자유로워 지는 것을 두려워 하기 마련이지만 유사이래 과한 자유가 문제가 된 적은 없다.

거기에, 남들에게 자유를 더 주기 이전에 스스로에게 자유를 좀더 부여하자. 누가 내 자유를 억제하려 들면 조까~ 한방 날려주고 쿨하게 돌아서면 된다. 이게 바로 자존감의 시작이고 끝이다.

거기에 한가지만 더 얘기하자면, 스스로 자존감을 부여하기 위해 “잘나가는 남들 밀어주기” 보다는 “스스로 잘나가기”에 주력하자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전면에 등장한 삼국카페의 회원들에게도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다. 잘나가는 남성 정치인들 밀어주기에만 주력하다 보면, 결국 이런 일은 또다시 반복 될 것이다. 스스로의 대표를 선수로 만들어 내보내 보는건 어떨까?

 

2. 시대의 변화를 인식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적 논쟁에 활용되는 논리들이 구시대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좌우파간의 경제논리도 구식이고, 진보보수간의 정치논리도 구식이다. 그 구식논리에 함몰되어 한 얘기 또하고 한 얘기 또 하고 하는 짓을 반복하고 있으면 그 순간 바로 교조주의가 되는 법이다.

본질은 기억하되, 디테일은 매일 매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해야 되는 것이다. 이게 현대사회의 본질이잖은가. 거기에 뒤떨어지면 공룡되는 거 순식간이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자유로와 졌고, 각자 개인의 인생에 대한 입장도 예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 설득을 해야 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정치적 진보들도 마찬가지다. 이젠 마르크스가 영국의 아이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던 시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페미니스트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여성들을 납치해다가 감금하고 매매춘을 시키면서 착취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엄청나게 힘들고 피곤한 일이지만, 최소한 이 시대에 적응하도록 노력은 해야 되는거 아닌가 말이다.

 

3. 좀 더 떠들자. 쫄지말고..

미디어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미 당신들의 손 끝에서 모니터와 웹캠을 가지고 전세계에 라이브 방송을 돈 한푼 안들이고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구글 유튜브 라이브를 보라.

이런 시대에 남들이 하는 주장에 욕하면서 달려들어 그 주장을 무력화 하거나 남들의 태도를 바꾸려 하는 것 보다는, 그 주장보다 훨씬 더 그럴싸한 주장을 내가 더 크게 하는게 훨씬 효율적인 태도가 된다. 욕할 여유가 있으면 그 시간에 새로운 얘기를 한마디 더 하는게 공공의 이익이 된다.

상상력을 발휘하고 창의력을 발휘해서 남들이 안하는 방식으로 말을 해보자.

당신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입닫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가 당신이 하고자 했던 말을 가지고 나꼼수를 만들어서 메가히트를 친거다. 이제 제2 제3, 아니 무수히 많은 나꼼수가 등장할 때도 된거 아닌가 말이다.

 


 

어찌되었거나 이번 비키니 사건은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여성의 권리 문제에 대해 한층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해준 고마운 사건이다. 거기에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논쟁에 참여했고, 주장을 펼쳐놨다. 나도 그런 논쟁들 속에서 많은 부분을 새로 배웠고, 깨달았다. 난 이런거 정말 좋다. 더 떠들어 주기를 바란다.

아무쪼록 이 사건에 관여한 사람들 모두가 상처받지 않고 마무리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아, 그리고 나꼼수는 어떻게 반응하는게 좋을까?

그걸 내가 어찌 알아, 김어준 꼴리는 대로 반응 하겠지.

 

 

2부. 반응 후 이야기.
 

지면으로 발표한 게 아니라 시사인 콘서트 현장에서 말로 한 거라서 워딩은 정확치 않다.

하지만 몇가지 부분은 말거리가 충분히 된다.

나꼼수를 비판하던 상처받은 사람들을 더욱 열받게 만든 “생물학적 완성도” 운운은 그냥 김총수 특유의 개그코드일 뿐이다. 아마도 총수의 개그코드를 익히 알던 사람들은 그냥 넘길만한 어휘이다. 여기서 우생학이 나오고 나치가 나오는건 너무 심한 오바 되겠다.

가장 심하게 문제가 되었던 주진우 기자의 대박 어쩌고, 코피 어쩌고 하는 문장이 들어있는 접견 서신에 대해서는 김총수가 자기가 쓰라고 시킨거라고 얘길 한다. 이거 여성분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마초들의 의리 코드다. 쉽게 얘기해서 김총수가 주진우 기자 쉴드를 쳐준거라고나 할까.

거기에 더해 주진우 기자도 분명한 사과의 표현이 담긴 말을 하게 된다. 이 결과, 공지영작가는 속내야 어찌 되었건 사과를 받아들인다는 식의 트윗을 쓰게 된다. 물론 이건 사과도 아니라면서 더 분노하는 그룹도 있었고.

또 성희롱이다 아니다 하는 부분도 있었다. 내가 아는 성희롱의 정의에 의하면 성희롱은 권력관계가 전제되는 것이 맞다. 국내에서도 성희롱이라면 주로 직장내의 성희롱을 얘기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역시 권력관계가 있다. 국제적으로도 Sexual harassment에 대한 정의는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권력관계 없이도 성희롱을 정의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김어준이 채택한 성희롱의 정의에 의하면 성희롱이 아닌거고, 보다 넓은 광의의 성희롱이라는 개념을 택하면 성희롱이 될 수도 있다. 그게 되건 안되건 그건 개념정의의 문제라는 얘기가 된다. 성희롱이 아니면 여성비하, 혹은 성의 도구화라고 하면 될 뿐이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게 된 얘기는 그 뒤로 이어진 내용들이다.

“여성들이 그런 약자의 의식으로 비키니를 성적 담론으로민 머물게 하는건 60년대 사고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얘기는 바로 “성적 대상화”와 시위 방법의 참신함, 동지의식 같은건 동시에 가능한 일이라는 얘기를 하면서 그걸 굳이 분리하는 것은 웃기다는 거다. 유치하다고까지 한다.

내가 보기엔 이게 핵심이다.

말실수 하고 사과하네 마네 하는건 지엽적인 얘기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이 사건을 놓고 할 수 있는 어떤 담론이 가장 생산적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총수 본인도 논란의 기승전결을 얘기하면서 충분한 담론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진짜 이번 사건을 둘러싼 페미니즘 진영의 주장은 구시대적이고 유치한 것일까? 아니면 총수가 단지 나꼼수에 쏟아지는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꼼수를 부리고 있는 걸까?

많은 비판자들이 총수가 이번 사건의 본질을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거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딴지일보의 과거 행적을 살펴본다면 동의하기 힘들다. 김총수는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다. 바보이길 바라는 사람들은 꽤 있겠지만..

원래부터 총수와 딴지일보는 이 부분에 대해 상당히 파격적이고 논란을 불러 일으킬만한 행동들을 많이 해왔다. 2000년대 초반부터 딴지는 당시 우리 사회에서 금기로 여겨질 만한 것들에 도전을 해 왔고 상당히 많은 부분을 돌파해냈다. 딴지 최초의 기사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딴지일보 창간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사진 옆에 비키니 입은 여성들의 사진을 합성해서 올렸었다.

이 사진은 여성의 성적 대상화(아, 대상화보다는 도구화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일까, 아니면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가진 권위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것일까?

그 후로도 딴지에는 성적 소수자에 관한 문제들,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 이런 주제를 가진 기사들이 굉장히 수위 높게 기사화 되곤 했었다. 물론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도 무수히 다루어져 왔다.

사회의 권위주의적 문화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성적 금기들을 돌파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이런 방식의 운동은 여성인권 해방에도 매우 중요한 부분중의 하나가된다. 마치 근래 널리 알려진 버자이너 모놀로그 같은 컨텐츠들이 취하고 있는 형식과도 같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서 수많은 대권후보들과의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꼭 끼던 질문도 있다. 당신의 자녀가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 한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라는 질문 말이다. 일찌기 우리 사회에 대권후보를 앉혀놓고 이런 질문을 던진 언론이 존재했던가? 아니 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라도 있는가?

유일하게 딴지일보 뿐이었고, 그런 딴지를 이끌어온 장본인이 바로 김총수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김어준 총수를 놓고, 이번 사건의 페미니즘적 관점을 이해조차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무례하기까지 하다.

바로 그 김총수가 비키니 응원사진을 받아들고, 키득거리면서 코피조심하라는 접견 서신을 쓰도록 시키고, 옆에선 성욕감퇴제 운운하면서 비키니 사진을 더 보내라고 떠들어 놓고, 사과하라는 요구에 대해 그건 성희롱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관점에 대해 한마디로 말해 “구리다”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은 과연 옳은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페미니즘에 입각한 주장은 원칙적으로 옳다. 비키니, 성욕감퇴제, 대박, 코피 등등의 어휘는 사회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적절치 못한 용어가 맞다. 나꼼수가 아니라 누가 했어도, 공공의 발언이었다면 사과해야 할만한 말실수가 맞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그게 과연 2012년 오늘날에도 그러한가? 라는 것 뿐이다.

 


 

무슨 정치적 전략을 따지면서 그 정도는 참아줘야 한다는 둥, 적들 앞에서 단결해야 한다는 둥, 또는 나꼼수는 원래 골방 토크고 B급 컨텐츠인걸 몰랐냐는 둥 하는건 별로 무게감이 없는 주장들이다.

위대한 지식인 도올 김용옥선생도 나꼼수가 정통이고, 주류라고 일갈하지 않으셨던가 말이다. 잘 나갈 땐 정통이고 문제가 생기면 B급으로 도망가는 건 치사한 짓이다. 정통이고 주류면 정통이고 주류답게 논쟁에 나서야 한다.

김총수의 주장대로 비키니 인증샷이나 코피 등의 발언이, 성적 대상화와 참신한 시위 문화라는 동시적 성격을 갖는 것이고, 거기에서 성적 대상화만 분리해내서 비난하는 것은 구린 일이라면, 과연 구리지 않은 입장은 어떤 입장인지를 말해야 한다.

비록 이 시대의 트렌드가 공중파에도 비키니 정도는 넘쳐나고 미성년 아이돌들이 섹시댄스를 추는 장면이 안방으로 직공수 되는 시대라 해도, 그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옳지 않은 일이라고 주장하는 그룹이 현존하는 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다.

거기다가 그런 시대적 트렌드의 변화 자체가 현실이기는 해도 꼭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차이점이라면 남성적 권력에 의한 성의 도구화가 자본에 의한 성의 상품화로 전이되었을 뿐인거다. 그러니, 올바른 정치적 주장이라 해도 그것을 꼭 여성성의 도구화, 또 그 도구가 되는 여성들을 대상화 해가면서 까지 드러내야 안 구린 태도가 된다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반대로, 자발적인 여성 시위자가 자신의 신체 일부분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편다는 것이 꼭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문제가 되고 사과해야 할 일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도 필요하다.

단순히 보기에 불쾌해서, 이런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나꼼수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여성들 말고도 엄청나게 많다. 그런 불쾌감을 일일이 사과로 보상해 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 불쾌해 지겠지만, 이번 사건에서도 불쾌감을 표시하며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확연하게 소수였다.

그런 감성적인 불쾌감 말고, 사회적으로 실질적으로 여성의 권리 회복, 또는 여성해방 운동차원에서 이런 행동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방해가 되는가를 설명해 내야 한다.

물론 이런 시위의 결과로 생성된 컨텐츠가 마초적 방식으로 소모되는 현상, 쉽게 말해서 비키니 사진 퍼나르고 껄떡댓글 달면서 침흘리는 본능에 충실한 그룹들의 행태는 그리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건 그냥 찌질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단순한 얘기 말고..

 


 

진짜 앞으로 어떤 정치적인 주장을 펼칠 때, 여성의 성을 도구화해서 표현수단으로 삼는 형태의 사회현상이 늘어났을 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하는 담론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보다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앞선 서구에서도 여성성을 드러내는 시위 방식은 일반화된지 꽤 오래다. 아마도 그들 역시 성의 도구화로 인한 폐해보다 주장의 전파력을 배가시키는 실효성을 높게 치는게 아닐까? 물론 푸틴이 동원한 젊은 여성들의 관제 시위는 돈으로 사서 하는 이벤트니까 논외가 된다.

얼결에 그랬는지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그랬던 것 처럼 김어준 총수는 이런 문제를 우리 사회에 제기한 것이다.

이 문제는 이번 총선이나 대선에 국한된 단기적 정치전략 관점에서 볼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거대한 담론이 될 공산이 크다.

김총수의 주장은 대략 이렇게 읽히고 있다.

권력이 작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한 비키니 인증샷 시위는 참신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성의 도구화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현 시대에 맞지 않고 유치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적 태도에서 이런 행위를 비판하는 것은 60년대식 발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60년대는 좀 심했다. 페미니즘 운동이 발생한 것이야 그보다도 훨씬 전이긴 하지만, 70년대가 되기 전 까지는 기껏해야 백인 여성들만의 전유물이었다는 역사를 보자면 아무리 과거로 밀어봐야 70년대가 적절할 것 같다. 우리나라로 치면 80년대는 한참 지나야 되고.

하지만, 김총수의 주장이 힘을 얻는 것은 현실적인 결과가 그의 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딴지 스타일의 도발적인 방식은 확실하게 결과를 얻어냈다. 지금 현재도 나꼼수는 확실하게 이 사회를 뒤덮고 있는 음험한 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고 있다.

페미니스트 그룹이 진작에 해냈어야 할 일들의 다수(사회적, 성적 금기에 도전하고 깨트려버린)를 가장 마초적인 성향을 띤 딴지일보가 해냈다는 역설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위험한 도구를 사용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빠른 속도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고, 대중의 감성을 자극해 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중을 향한 스피커를 만들어내고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페미니스트 그룹이 김총수가 취하는 전략과 태도를 부정하고자 한다면, 말로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김어준, 나꼼수, 딴지일보에 비할만한 “대중을 향한 설득력”을 확보해서 보여주는게 급선무일 것 같다.

언제까지나 자기들끼리 모여서 말만 하고 있어서는 어느 세월에 여성해방의 세상을 만들겠나 말이다.

김총수는 기존에 전해 내려오는 운동그룹들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는 이단자적 성격이 강하다. 기존의 지식인들의 관점에서는 낯설고 기괴한 생명체다. 여태 해온 일을 보자면, 기가 막히는 타이밍에 기가 막히는 도발을 벌여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이다가 뒷심이 딸려 흐물거리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실패를 몇번이고 거듭했으니 이제 엄청난 노하우도 보유한 상황이다. 빠르게 진화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니까.

최소한 이런 괴생명체가 채택하는 전술을 부정하려 든다면, 얼굴도 모르는 온갖 학자들의 저서와 현란한 논리 가지고는 힘들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인정을 안해줄 것이다. 인정은 커녕 감성적 공감도 끌어내지 못한다.

가장 실효성 있는 전술이라면, 김총수와는 다른 방법, 그러니까 페미니즘적으로 대단히 옳은 방법을 써서 김총수만큼의 설득력을 확보하고, 대중을 향한 스피커를 만들어내서 보여주는 것 뿐이다.

이게 안되면 지는 거다. 옳은 방법은 느리지만 언젠가는 된다는 변명도 잘 안통할 것 같다. 그 사이에 김어준은 계속 사고를 치고 다닐테고, 대중들은 환호할 것이고, 그걸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역시 결론은..

소수로 전락하고 있는 진보그룹도 마찬가지고, 페미니스트 그룹에서도 김총수에게서 뭔가 배울 게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었다.

위험해 보이고, 도발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넘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수없다고 배척해버리지 말고, 김총수에게만 있는 그 무언가, 아마도 “대중을 향한 설득력”의 원천이 되는 그 무언가를 반드시 확인해 내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는 지극히 현실적인 제언을 하고 싶다는 걸로 마무리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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