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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성공해도 민중은 실패할 수 있을까.

ravenclaw69 (mediamall)
2018-04-20 07: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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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마 2차 촛불집회였나 그랬을 겁니다. 초 켜고 앉아 있는데 꽤 많은 분들이 "이 재난은 어떻게 해야돼요?"라고 하시더군요. 이 재난은 이미 2012년 겨울에 발생했던 재난입니다. 저 분 청와대 들어가실때 정상적으로 퇴임하실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 꽤 되잖습니까.

문제는 이게 대비해야 할 재난이 아니고 이미 벌어졌던 겁니다. 아마 2012년 겨울이었다고 한다면 브렉시트의 경험을 바탕으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미국인들에게 정치적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에 대해 조언한 BBC 이야기 정도를 들으면 되겠지만, 한국은 이미 4년전에 벌어졌던 일입니다.

그러니 대비는 뭔 대비요.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봐야죠. 제 경험으로 보면, 이거 쉽지 않습니다. 제가 네팔에 처음 갔던게 10년을 끌던 내전이 끝난 2006년 봄이였어요. 그것도 폭군이었던 국왕을 끌어내렸었으니 민중의 승리라고 할 수 있었죠. 그런데 네팔이 왕정을 끝내고 제헌의회 선거를 하고 헌법을 만드는데 10년 걸렸습니다. 그것도 지진을 겪고 나서요.

독재라고 하는 건 한 사람이 한 국가의 정치권력이 한 명, 혹은 아주 소수의 집단만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상태를 말하죠. 그 정치권력이 어느 순간에 제거되면 정치적 진공상태가 발생됩니다. 진공 상태로 있었던 시간이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이 공간이 채워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엄한 인간들에게 넘어가는 경우도 숱합니다. 이집트의 경우, 2011년 2월 11일에 무바라크가 하야를 선언하면서 잠깐 이집트 국민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군부출신의 압둘팟타흐 시시가 대통령이고 감옥 갔던 무바라크는 풀려났죠.

세상엔 다른 나라의 폭군들을 끌어내리고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제NGO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CANVAS라는 조직이에요. Center of Applied Nonviolent Action and Strategies, 비폭력 행동주의와 전략 응용센터라는 곳입니다. 밀로세비치를 쫓아내는데 성공했던 세르비아인들이 주동이 되어서 만들었죠. 지금은 여러 나라의 민주화 운동에 다양한 형태의 도움을 주고 있는 조직입니다. 이 분들에 따르면 독재자를 쫓아낸 것은 게임에서 Stage 1의 마지막 악당을 처리한 것에 불과하답니다. 프로도가 모르도르의 운명에 산에 절대반지를 던져 넣는 것처럼, 제대로된 민주국가를 만든다는 것은 아주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사실 꽤 많은 나라들이 그렇습니다. 인도네시아는 1998년에 독재자 수하르토를 끌어내렸습니다. 그런데 민주적인 정치인이 대통령이 된 것은 2014년 10월이었습니다. 2004년 오렌지 혁명의 우크라이나 역시 아직도 혼란 상태죠. 그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참 많습니다. 그 중에 최악의 사례, 개혁의 핵심적인 요구들이 정치적 타협과정에서 어떻게 손쉽게 증발할 수 있는가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바로 네팔 이야기입니다.


나라얀히티의 비극


2001년 6월 1일, 네팔의 왕궁 나라얀히티에서 총성이 연달아 울려퍼집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네팔 국민들은 비교적 인기가 좋았던 자신들의 국왕 일가가 몰살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왕세자가 부모와 누이를 포함 왕위 계승 서열 1위부터 9위까지를 모두 죽이고 자기도 자살을 기도했다는 겁니다. 이유는 자기가 원하는 여자와 결혼을 허가해주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서거한 비렌드라 국왕은 존경도 받고 인기도 좋았습니다. 그와 그의 가족이 죽은게 16년이 지났음에도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그의 동상이 있는 거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남부지역으로 가면 비렌드라 국왕과 아이슈와라 왕비의 사진이 걸려있는 집들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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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장모님 방에 걸려 있는... Orz

심지어 그의 서거 소식을 들은 네팔항공의 조종사는 비행기를 추락시키려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승객들과 함께 순장하겠다는 거였죠. 이 아찔한 해프닝은 조종석에 승객들이 난입해 기장을 끌어내고 부기장이 회항하면서 막을 내렸었습니다.

하지만 민간이 믿는 이야기는 공식적인 사망 원인과 다릅니다. 왕의 동생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아들을 시켜 형의 일가족을 모두 죽였다는 겁니다. 이게 좀 더 신빙성이 있는 것은 약 200여년간 네팔군 통수권을 가지고 대대로 네팔의 섭정이었던 집안이 있습니다. 대대로 왕실과 통혼도 했던 가문인 라나 가문이 죽은 비렌드라 국왕을 그닥 좋게 보지 않았거든요. 예를 들어 90년대 네팔군 참모총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답니다.

“비렌드라는 네팔에 맞는 왕이 아니었어, 당신도 알듯 그는 인도 다르질링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고 영국의 이튼 칼리지와 미국의 하버드에서 공부한 사람이라고. 너무 민주적이야. 그가 가진 생각들은 네팔 보통인들이 따라가기에는 너무 앞선 것이야"

비렌드라 국왕은 네팔 국민들이 정치적 권리를 달라고 1990년에 요구하자 그 전까지 불법이었던 정치정당들을 허용하고 전제왕정을 입헌군주국으로 바꾸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동생이 왕위를 계승하고 나선 형의 개혁정책들은 모두 원위치 됩니다. 모든 정당들은 불법이 되고 전제왕정국가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런 것을 본 네팔 국민들의 입장에선 최 상위의 기득권 세력들이 전대 국왕의 개혁을 멈추게 하기 위해 암살했다고 보는거죠. 확실한 증거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모조리 정황증거들 뿐이죠.


억압의 고리


대대로 군 통수권을 가져 섭정의 역할을 했던 라나 가문은 약 200여년 전에 인도에서 힌두교를 수입합니다. 남부 지역, 특히 남서쪽의 곡창 지대가 자기들 땅이었거든요. 힌두교에서 브라만은 당연직 지주가 되어야 합니다. 지주가 되어야 신을 찬미하는 신성한 카스트는 신을 찬미하는 것만 할 수 있죠. 불평등한 토지 소유를 종교로 합리화시켜 주는데 그거 만큼 좋은게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다보니 네팔이라는 나라가 히말라야에 있다더라는 이야기가 서방에 전해졌을때 같이 전해졌던 것은 라나 집안이 아주 방탕하다고 하더라는거죠. 뭐 농기구, 소, 퇴비 등을 모두 지주에게서 빌려야 하고, 그 빌리는 돈을 빼고도 소작의 80%를 지주에게 바쳐야 했으니 방탕한 삶을 살 수 있었겠죠.

여기에 국제기구의 선의가 황당한 참극을 만들어냅니다. 1950년대에 WHO에서 네팔정부에 DDT를 지원해 말라리아 퇴치 지원사업을 합니다. 평원이 네팔 국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 그러니까 나머지 75%의 땅은 산간지대입니다.

개간하고 물을 대야 하는 수고로움이 산간지대와 평야가 같을리가 없지요. 문제는 그 비옥한 평지가 말라리아와 뎅기열이 창궐하는 지역이었고, 거기에 터를 잡았던 이들은 말라리아와 뎅기에 대한 저항성이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말라리아가 없어지면서 다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겁니다. 안그래도 문맹률 높은 네팔에서 이 지역 사람들은 더 문맹률이 높았습니다. 제대로된 병원도 별로 없는 네팔에서 누가 전염병을 무릅쓰고 들어가서 그들을 가르쳤겠어요? 그러니 이들은 자신들이 경작하던 땅에 대한 소유권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비옥한 평야 지대에 소유권이 공중에 떠 있는 땅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자 글을 아는 다른 부족들이 대거 밀려와 이들의 땅을 자신들의 앞으로 소유권 등기를 해 버립니다.

자영농이었던 이들이 세계보건기구의 전염병 퇴치 사업으로 한 순간에 자기 땅 하나 없는 소작농이 된거죠. 이들을 마데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계속 참아내지는 못합니다. 이들 역시 집단적으로 총을 들죠.


마오바디


전세계 어디든 농민에 대한 지주들의 착취가 극에 달하게 되면, 이 사회구조를 깨겠다는 이들이 등장하기 마련이죠. 그리고 이들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은 이념. 농민에 대한 지주의 착취가 극한에 다다른 곳에서 반군들이 가장 쉽게 선택하는 이데올로기는 바로 모택동식 공산주의, 영어로 마오이즘입니다.

뭐 마오이즘에 경도된 게릴라들은 전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긴 한데, 인도대륙의 마오주의자들은 유독 더 잔혹합니다. 요즘도 이들이 활동하는 인도 중북부와 중남부 지역에서 목잘려 효수된 이들에 대한 뉴스를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1960년대에 인도 서벵골 지역낙샬이라는 마을에서 소작료 봉기를 일으켰던 차루 마줌달이 현지화한 인도 대륙의 마오이즘은 지식인, 자본가, 국가행정인력 등 농지를 경작하는 농민을 빼곤 모두 '인민의 적’이라고 규정해 그 지역을 장악하면 이들을 모두 죽이고 목 잘라 마을 앞에 붙여놓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 이렇게 변형된 마오이즘은 1994년에 네팔에 수입됩니다. 그리고 1996년 2월 4일 인민전쟁을 선포하죠. 그런데 1996년이면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6-7년전에 붕괴한 상태였고 중국도 본격적인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지 한 참 뒤였잖아요? 시대착오적이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이들은 순식간에 만 여명의 무장세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네팔의 토지 소유 형태가 그 만큼 전근대적이었으니까요.

마오바디 반군이 되겠다고 전국에서 찾아왔던 거죠. 그들의 절반 이상은 여성이었습니다. 끔찍하게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고통받게 되는 이들은 힘없는 사람들, 특히 여성입니다. 인신매매조직이 네팔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 들어가 어린 여아를 사서 인도의 사창가에 매년 수백명씩 팔아 넘기고 있었고, 평생 소작인으로 살아야 했던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마오바디에 입대하는 것이었던거죠.


그렇게 입대한 마오바디 게릴라중 가장 유명해진 분, 미라 라이

비렌드라 국왕 서거 이전까지 이들의 무장 상태라는 것이 19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사냥용 라이플 정도였고, 이들과 맞붙는 정부군의 무장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 전투도 그렇게 크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외부에서 일이 터집니다. 국왕이 몰살당한 후 몇 달 뒤에 9.11이 터지죠. 당시 미국 대통령 부시는 정부군에 저항하는 무장세력은 모두 국제테러리스트라고 정리, 네팔 정규군에 엄청난 물자들을 공급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영국과 미국의 정보기관들도 정부군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했습니다. 데일리 텔레그라프와 이코노미스트의 네팔 특파원을 지낸 토마스 벨은 ‘카트만두’라는 제목의 네팔 근현대사를 다룬 책을 2014년에 썼는데 이 책에선 영국 정보부와 CIA가 ‘무스탕 작전’이라는 마오바디 수뇌부 체포작전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가 제시됩니다.

국가 규모로 치면 과한 수준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과 5년 뒤, 마오바디 인민해방군은 네팔 국토의 70%를 얻게 됩니다. 19일간 수도 카트만두에서 연일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2006년 4월 21일 총리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한다는 발표를 네팔 국왕이 하면서 10년간 벌어졌던 내전은 사실상 종식됩니다. 이 과정에서 죽은 마오바디 인민해방군만 1만이 넘습니다. 합쳐서는 약 15만 정도 죽고 다쳤다고 해요.


배반


국토의 70%를 확보한 상태에서 네팔의 샤왕조까지 끝장내자 마오바디는 자신들이 민주적인 표 대결을 해도 넉넉하게 승리할 것이라고 착각했었습니다. 이들은 도시와 농촌의 인구밀도가 다르다는 것은 까맣게 잊어먹고 있다가 도시지역에서의 지지율이 엉망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2006년 11월 29일 평화협정에 서명해서 내전이 완전히 종결되지만 왕정을 끝내고 공화제 정부를 세우기 위해 헌법 개정을 하기 위해 소집하는 제헌의회 선거가 계속 연기되죠. 가장 큰 이유는 아무리 계산해도 과반이 안되던 겁니다. 인구가 적은 농촌은 장악했지만 인구가 많은 도시는 마오바디가 어떻게 하지 못했던 겁니다. 도시와 공단지역의 노조는 1960년대 만들어졌던 맑스레닌주의 공산당이 이미 접수하고 있었거든요. 거기다 지주들의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네팔 국민회의의 역사도 꽤 길었구요.

그리고 이때부터 정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합니다. 통일교 당과 주체사상파 당까지 생겨요. 북한의 그 주체사상 맞습니다. 약 50여개가 넘는 정당들이 2008년 4월 10일 역사적인 제헌의회 선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1차 제헌의회 선거에서 과반에 한참 미달하는 30.52%의 지지율만 확보할 수 있었던 마오바디는 수권 정당이 되기 위해 네팔 공산당 Communist Party of Nepal (Unified Marxist–Leninist)과 연정 합의를 합니다.

문제는 네팔공산당 역시 확보할 수 있었던 의석은 17% 정도. 그래서 수상을 뽑기 위한 제헌의회의의 수상선출 투표가 계속될 때마다 합당과 입당이라는 어디서든 많이 볼 수 있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거의 과반에 이르는 이들을 이들 두 정당이 포섭해서 정부 구성이 코 앞이 된 것처럼 보이던 즈음, 뜻밖의 음성 파일 하나가 네팔의 모든 방송국에 배포됩니다.

중국 영사와 마오바디 사무총장의 전화 통화로 그 내용은 수상이 되기 위해선 최종적으로 15명을 매수해야 하며 이들에게 각각 10크로어, 당시 한화로 약 17억원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화는 이 돈을 집행할 의사가 있는가, 있다면 그 돈을 어떻게 전달할 것이냐는 대화가 이어졌구요.

네팔의 모든 언론기관에서 방송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대화 내용은 관련자 모두가 부인하지요. 그리고 이어진 수상 선출 투표에서 네팔 인민군 총사령관이자 네팔 마오바디 당수였던 푸스마 카말 다할이 수상이 됩니다. 이 분, 본명보다는 열정을 뜻하는 필명, 프라찬다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합니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가 문제가 됩니다. 첫 번째는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한 문제를 의원 숫자를 늘리기 위해 타협하게 됩니다. 바로 토지문제죠. 원래 마오바디가 하겠다고 했던 것은 유상몰수 유상분배 형태였어요. 그런데 의원수를 늘리던 과정에서 80%가 넘던 소작료를 50%로 줄인다 정도만 합의하고 유상몰수 유상분배는 폐기됩니다.

두 번째는 토지개혁 문제가 공중에 붕 뜨면서 마오바디와 땅을 빼앗긴 이들과의 관계도 공중에 떠버립니다. 특히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 땅을 뺏은 마데시와의 관계가 말이 아니게 됩니다. 60년도 더 지난 상황에서 누구 땅이 누구 땅인줄 알고 다시 교통정리를 하겠어요?

결국 마데시랑 아주 사이가 나빠진 상태가 되는데... 이게 두 가지 문제로 이어집니다. 인도의 부추김을 받아 심심하면 국경봉쇄를 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인도 최대의 반군 세력이랑 연계된 세력이 바로 위 국가 정권을 잡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잖아요. 히말라야를 넘어오는 루트를 통해 물류가 돌아갈 수는 없겠죠? 네팔 물류는 인도와의 국경도시를 통해 대부분 유지되는데, 이곳들이 마데시 지역입니다. 여기가 막힙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인도 대륙은 시멘트값이 무척 비쌉니다. 그리고 마데시가 사실상 통제하는 지역이 시멘트 생산공장이 몰려 있는 곳이라는 거죠.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네팔의 발전설비용량의 총 합은 800MW가 안됩니다. 한국으로 치면 화력발전소 2개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죠.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발전량의 변화가 심합니다. 이유는 네팔 발전량의 90% 이상을 소수력 발전소, 한국으로 치면 시범사업을 위해 만들어보는 규모의 소규모 소수력 발전소에서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뭔가 대규모로 짓기 위해선 시멘트 콘크리트가 대량으로 필요한데, 그 시멘트 콘크리트는 동맹군에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마데시 지지 지역에서만 생산되고 있었다는 거죠. 불구대천의 원수가 전기 만들겠다고 시멘트 좀 사가겠다고 하니 공장 운영을 못하도록 시멘트 공장을 둘러싸 봉쇄해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스텝들이 꼬이면서 네팔의 정치개혁은 그 동력이 빠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마오바디가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는 관료들을 제대로 포섭하지 못했던 겁니다. 마오바디에게 어떤 공공조직의 책임자 자리는 논공행상 하는 자리였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 곳인지에 대한 인식이 없었어요. 그러니 관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했죠. 전기가 부족하니까 공공전산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리가 없잖아요. 급하게 결제해야 할 문서들은 서류 뭉치들의 밑으로 집어넣고, 급하지 않은 문서들만 위로 올리는 형태로 일을 합니다. 마오바디는 행정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이게 되고 지지율은 계속 빠지게 됩니다.

특히 마오바디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면서 평화협정으로 합의했던 주요한 합의들이 파기됩니다. 가장 컸던 것은 네팔 인민군을 네팔 정규군으로 편입시키는 것이었는데, 육군 참모총장이 이걸 거부해버리고 대통령이 이를 지지해버리면서 프라찬다는 사임하게 됩니다.

중국의 등에 업혀 집권했던 만큼 프라찬다 집권 이후부터 네팔은 중국의 이해관계와 인도의 이해관계가 어그러지면 고래 두 마리에 낀 새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네팔 내에서 살고 있던 티벳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던 티벳인들이 정기적으로 굴비두릅처럼 엮여서 중국에 넘겨졌습니다.

중국이 인도에게 긴밀하게 할 말이 있으면 기존의 지원 내용을 부풀린 해외원조계획이 발표되고 그 내용이 대서특필되면 바로 부수상이 인도에 가서 중국이 인도에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해야 하는 상태가 되었죠.

예를 들어 딱히 새로운 지원 내용이 없는데 액수만 잔뜩 부풀려진 중국의 네팔 지원 사업 내용을 공동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하면 그 다음날 네팔 부수상 정도가 인도로 날아가서 중국의 지원 사업에 대한 내용을 설명한다는 신문기사가 뜹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미 받기로 했던 지원 내용들을 다시 읊은 기자회견 내용을 왜 해설하러 가야 하겠습니까? 네팔은 중국과 인도가 밀담을 하기 위해 쓰는 메신저인겁니다. 외세의존적인 세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면 약소국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셈이죠.


심판


2008년 소집되었던 제헌의회가 2012년 초가 되도록 헌법초안을 합의하지 못하자 네팔 대법원은 2012년 5월까지가 데드라인이라고 못 박아버립니다. 그러자 바로 대법원장이 암살됩니다. 결국 당시 수상이었던 마오바디 소속의 바버람 버터라이 수상은 내각을 해산하고 2차 제헌의회 선거를 책임질 내각에게 모든 권한을 넘기는 작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2013년 11월 19일 2차 제헌의회 선거가 치뤄지고 네팔 국민회의가 196석을, 네팔 공산당이 175석을 확보합니다. 1차 제헌의회를 장악했던 마오바디는 80석으로 1차 선거 대비 60% 가까운 의석을 잃게 됩니다. 마데시 정당들도 1차 제헌의회에선 82석을 차지했는데, 2차선거에선 거의 반토막이 납니다. 49석을 차지하는데 그쳤으니까요.

전세계 어디서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이 뭔가 나아질 것을 기대하고 표를 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해결할 방안을 찾지 않고 자신들만의 이해관계에 집중해도 그들이 지속적으로 표를 얻는 곳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두 당 모두 공천을 위해 거액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애게 혹은 가족들에게 비례대표 우선순위를 줬어요. 그걸 보고 누가 그 정당들의 개혁의지를 읽었겠습니까.

1당과 2당이 연정을 꾸리면서 수상선출은 손쉽게 할 수 있었지만 제3당으로 찌그러졌던 마오바디가 나머지 30여개 정당들과 연합하면서 마데시와 마오바디는 다시 손을 잡습니다. 그마나 주요한 이견들은 대략적인 합의를 하지만 끝까지 하지 못했던 것이 몇 개의 독립된 주로 나누느냐는 문제였습니다. 마데시들은 상당한 수준의 자치를 할 수 있는 주로 독립할 경우 빼앗긴 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이들이 주요 지지자들입니다.

네팔을 강타한 두 번의 지진은 이런 정치적 혼란기에 닥쳤던 겁니다. 국제사회로부터 헌법도 없는 나라라고 아이티와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된 것이 네팔 국민들을 많이 자극합니다. 여름부터 마데시 지역 정당들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은 모두 헌법초안에 합의하기에 이르렀고, 드디어 9월 20일 네팔 공화국의 헌법이 선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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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헌법 반포를 축하하는 네팔인들

그리고 3일뒤부터 네팔과 인도의 국경이 봉쇄됩니다. 네팔 구헌법에선 "네팔의 국교는 힌두교다"라는 조항이 있었는데 세속주의 국가를 선언하면서 빠집니다. 그런데 현 인도 집권당은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거든요. 그것이 빠진 것에 분개한 인도 집권여당인 인도인민당이 고립된 마데시 그룹을 지원하면서 시작된 봉쇄는 올해 3월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국경봉쇄 4일만에 네팔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카트만두 트리듀번 공항이 항공유 공급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덕택에 한국에서 네팔로 바로 날아가는 직항편인 대한항공은 방글라데시 다카 혹은 베트남 사이공에서 중간 급유를 했었습니다. 국내선 운항도 대거 취소되었구요. 인도의 국경봉쇄가 더 치명적이었던 것은 그나마 있었던 네팔-티벳 국경을 잇는 도로가 아직도 복구가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국에 대한 책임을 지고라고 쓰고 인도에 용서를 빌기 위해 제1당이었던 네팔 국민회의가 연정에서 탈퇴합니다.

국경봉쇄는 6개월이 지난 올 3월에 풀렸습니다. 하지만 대형 재난 뒤에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고 이번 겨울도 추울겁니다. 그리고 인도와의 관계가 워낙 틀어져놓으니 중국과 관계가 좋은 마오바디 출신이 수상이 되면 좋겠다고 다시 프라찬다가 수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도의 요구로 다시 헌법 개정 논의가 진행중입니다. 지진 복구도 아직 잘 안되고 있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은 지역은 산간지역인데 그 사람들이 거기서 사는 이유는 경작할 곳이 없기 때문이었어요. 지진으로 쓸려갈 위험이 없고 소작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땅은 평지에 없습니다. 그러니 산사태가 나서 사람들이 쓸려내려간 위에 다시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결어


듣고 보니 깝깝~해지지 않으신가요? 많은 분들이 우리는 친일청산부터 되지 않았다고, 일종의 리셋 버튼을 누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합니다. 네팔은 전제왕정에서 공화국으로 넘어가는 리셋버튼은 제대로 누른 나라입니다. 하지만 리셋 버튼 누른다고 일이 해결되는건 아니라는 것을 저렇게까지 보여주는 사례도 드뭅니다.

제 아버지는 통영수산전문학교를 5.16 장학금 받으면서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박정희가 만들었던 수산개발공사에 입사하셨고 대한민국 원양수산업을 일으킨 장본인들 중 한 분이 되셨죠. 현 청와대 세입자께서 ‘국가와 결혼했다’는 말을 했을때 진심으로 믿으셨었어요.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아들의 입장에선 그게 갑갑했지만요.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그 분을 찍은 51.6%의 대부분은 저희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그 분을 찍었을 겁니다. 그 분들이 느낄 배신감은 사실 가늠하기 힘들죠. 하지만 마오바디 인민해방군에 입대해서 싸우다가 전사한 가족들이라고 다를까요? 토지개혁 하겠다고, 일하는 농민이 그 땅을 가지게 해주겠다고 했던 이야기가 가장 먼저 거래되었는데.

정치의 세계는 드라마의 소재로 많이 쓰이죠. 리버럴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미드가 웨스트윙이었는데, 사실 현실 세계의 정치는 하우스 오브 카드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자신들의 권력쟁취를 위해선 모든 것이 거래의 대상이 되는 세계죠. ‘그 놈이 그 놈이다’라고 하면 세상은 안 바뀝니다. 사람만 바꾸는 것도 비슷해집니다. 청와대에 가는 분은 국민이 주인인 집에 5년 전세 살러 가는 사람입니다.

정치인과 정당을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언제 내 유일한 자산인 내 집을 엉망으로 만들지 모르는 세입자라고 생각하고 바라보세요. 그게 이 정치적 재난의 시대에 살아남는 출발점입니다.

(나라의 주인은 당신이라는 이야기였는데... 세입자 권리를 우습게 안다고 까이기도 했습니다. ㅎㅎ 뭐 세상의 절반이 여자인데 게릴라 부대원의 절반이 여자인 것이 대수냐는 이야기도 봤는데... 1개 사단에 달하는 게릴라 부대원의 절반이 여자인 부대는 네팔 마오바디 게릴라들 밖엔 없었습니다.)


  Samuel Seong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메인 저자입니다. 모매체 국제부에 한 20년 글썼고 요즘은 xsfm 그알싫에 종종 등장하는 그 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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