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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의 시대, 운동가요는 어떻게 퍼졌을까요?

ravenclaw69 (mediamall)
2018-04-29 12: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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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가 얼마전에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이야기를 올렸습니다.

https://steemit.com/kr/@sanha88/1982-2-20

노래의 작사가가 집회에서 자신이 만든 시가 노래가 된 것을 알 수 있었던 시절이었죠. 그러니 노래 하나가 퍼트리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일단 집회 자체가 제대로 열리는 경우도 드물었습니다. 경찰 정보과에서 노리다가 바로 쳐들어와서 사람들을 체포했거든요. 그러다보니 노래 한 곡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산하의 위 글에서 처럼 카세트 테이프로 전달될 때는 이런 장비들이 이용되었었죠.

http://www.junggo.com/bbs/board.php?bo_table=sound&wr_id=10589

 

문제는 카세트 테이프 자체가 썩 좋은 음질을 보장하는 매체도 아니었고, 저런 장비를 몇 번 거쳐서 복사가 여러번 되고나면 알아먹는 것도 힘든 수준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다보니 극악한 형태로 노래가 전달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방식이 전화였습니다. 그러니까 전화로 노래를 불러주면 그 전화를 녹음한 다음에 따라 부르는 방식이었죠. 그런데 이건 고속 복사한 테이프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가장 홀대 받는 과목이 예체능입니다. 그래도 체육은 공이라도 좀 찰 일이 있지만 음악과 미술 등은 예나 지금이나 좀 많이 심각하죠. 여기다 워낙 엄중한 시절이었다보니 전화를 걸고 전화를 받는 것도 아주 신경 쓰이는 일이었죠. 뭐 악보가 전달되기도 했지만, 악보 못 보는 사람들이 받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악기를 다뤄본 적이 없는 사람들끼리 노래가 전달되는 경우도 흔했다보니 같은 노래가 지방별로 다른 형태로 불리고 있기도 했습니다.

20131022_133934.jpg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가 노래집을 만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어요. 노래집이 퍼지면 서로 다르게 부르던 노래들이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했던거죠. 그리고 87년 이후, 대규모 공연이 늘어나면서 표준화된 민중가요가 정착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데요... 이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민중가요들 중에서 몇몇은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제각각의 버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특히 사랑을 받은 것은 산하가 말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습니다.


캄보디아 버전이지요.

아마 최초의 한류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자랑스럽게 기억해야 할 일인데... 이 노래를 못 부르게 하는 정권이 다 있었죠. 우리가 쫓아냈지만 말입니다.


  Samuel Seong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메인 저자입니다. 모매체 국제부에 한 20년 글썼고 요즘은 xsfm 그알싫에 종종 등장하는 그 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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