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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일 새벽, 안국역의 기억

ravenclaw69 (mediamall)
2018-05-04 13: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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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31일은 제가 영어로 굴욕을 당한 날입니다. 별 생각없이 있다가 뜬금없는 곳에서 통역 호출을 받았습니다. 쉬운 통역이라는 사발에 넘어가서 갔더니... ㅅㅂ 제가 전혀 모르는 세계의 물건들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거더군요. 한국 전통 가옥의 인테리어라고 할 수 있는 고가구들을 한국에 와 있는 외국 대사 사모님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였습니다. 몇 시간 동안 엄청나게 버벅거렸죠. 제가 쪽팔려서 알바비도 거절하고 나왔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갈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시청 근처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들이 연락을 하더군요. 자기들 촛불집회에 참석할 예정인데, 별 일 없으면 보지 않겠냐고... 통역 한다고 간만에 정장 입고 구두 신은 상태로 시내를 꽤나 빨빨거리고 돌아다녔습니다.

전경차에 붙어 있는 불법주차 계고장, 듀나의 영화 게시판에서 나온 친구들의 [공지]2MB는 강퇴되었습니다, 피케팅을 하던 젊은 친구들의 2MBㅅㅂㄹㅁ, 값싸고 질좋은 대통령을 수입하자, 청와대부터 민영화하자!, 명박지옥 하야천국, 이과장님 경리과에서 97일어치 퇴직금 받아가세요~ 등등의 재치 넘치는 피켓들도 구경하고, 강기갑 의원의 즉석 사인회가 열리던 청계광장도 보고 있었죠.

뭐 이때만 하더라도 전경 버스 깻잎 주차의 달인들이 얼마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종종 구멍이 생겼는데 이걸 대학생들이 뚫고 들어갔더군요. 지인들과 함께 대학생들을 따라 쫓아 올라갔더니 안국역 앞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어요. 그때가 아마 11시 정도였을 겁니다.

청와대로 들어가는 길에서 전경들이 소방전을 풀어 시위대에게 물을 뿌리고 있더군요. 시위대의 구호 따라하면서 뒤에서 응원하고 있다가 출출해 조금 위에 있는 페밀리 마트쪽으로 갔더니... 그쪽은 거의 축제 판이더라구요. 전경들과 약 10미터 정도의 사이를 두고 시위대는 비보이 공연까지 하고 있으니까요. 이쪽에서 한 번 보여줬으니 경찰들은 방패로 쇼 한번 하라는 구호가 나오기도 했고.

친구들과 앉아서 학생들 응원만 하고 있었는데요. 새벽 3시쯤 되니 뭔가 안 좋은 촉이 오더군요. 소시적에 점거농성하면 가장 긴장 탔던 시간대가 딱 그 시간대였거든요. 새벽에 동이 트기 전. 진압 교본을 충실하게 따른 경찰은 6월 1일 새벽 4시 30분 경에 해산 시도를 합니다.

앉아서 밤새 맥주 캔 하나 갖고 이런 저런 이야기하던 제 일행. 모두 90년대 초반에 집회와 시위의 경력이 좀 되던 인간들인지라 학생들을 뒤로 피신 시키면서 앞으로 나가는데... 아놔, 전경들이 못된 짓 하다가 딱 걸렸죠. 이 자식들이 앳뒨 여학생들을 쫓아가면서 아스팔트에 방패를 갈더군요. 정장 입은 40대 아저씨 아줌마들이 우루루 일어서서 호통을 치기 시작하니까 잠깐 전경들은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이때 학생들은 뒤로 빠져나갔고 옆으로 예비군복 입은 청년들이 스크럼을 짜면서 전경과 대치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 MBC 카메라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마봉춘이라고 불리던 그 MBC의 카메라가 스크럼 딴 시민들과 전경 사이에 끼어들었었습니다. 한참 아스팔트에 방패 갈다가 카메라에 이 모습이 잡히기 시작하니 전경들도 잠깐 움찔 했던 것 같습니다. 뭐 그렇게 대치하고 있었더니 물대포가 나오더군요.

DSC_3030.jpg
제가 촌놈이라서 얘 위력을 몰랐죠..

제가 학교 댕기던 시절만 하더라도 페퍼포그와 최루탄 정도가 시위 막겠다고 등장 했지 물대포 같은 최신무기는 없었거든요. 정말 장난 아니더군요... 친구들은 다 쓰려져 넘어졌고, 전 가슴에 정통으로 맞은 다음에 호흡 곤란이 와서 뒤로 돌아 캑캑거리고 있었는데요... 물대포 사수 좌식이 안 자빠진다고 계속 쏘더라구요.

제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양복과 드레스셔츠를 쥐어짜는 것이 좀 안스러웠나 봅니다. 그때 산행가려고 하셨던 복장으로 나오신 분이 자기가 여분의 옷이 한 벌 있다고 주시더군요. 연락처를 주시면 되돌려드리겠다고 했는데... 그냥 입고 싸우자고 하시더군요.

아마 그 즈음에 나왔던 구호가 “온수” 였던 것 같습니다. 물대포로 한참 맞아 오장육부가 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 구호 재미있다고 “온수”를 연호하다 아침 7시쯤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안되는 양모 양복 정장 한 벌과 산지 1주일도 안됐던 구두는 결국 버려야 했습니다. 이걸 시작으로 9년간 길바닥에서 뿌린 돈을 합하면 소형 SUV 중고차 한 대 뽑을 수 있는 규모가 될 줄은 정말 몰랐죠.

역사는 아마 이때를 세계 최초의 유비쿼터스 시위대가 탄생한 날로 기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프리카 TV가 시위대 모습을 전국에 중계하기 시작했고, 일 때문에 광장으로 나가지 못하는 분들이라고 하더라도 PC로 그 집회를 보면서 마음을 더할 수 있었으니까요. 저 무렵만 하더라도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사회 관계망 서비스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입니다만... 2011년 아랍 혁명 당시 그쪽 활동가들에게 우리의 시위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좀 합니다.

뭐 제가 아는 분은 이때 촛불 방송을 시작해 생업을 작파하고 장장 2년동안 촛불 방송만 하셨던 분도 있습니다.

MB구속 영장 발부되는 것을 친구들과 축하하면서 문득 이날 기억이 나더군요. 그때 안국역과 동십자각 사이에 모였던 그 사람들, 그 아비규환의 현장을 데스크탑으로 봤던 사람들, 결국 대통령 사과를 받아냈던 세계 최초의 유비쿼터스 시위대. 사진 찍으러 나왔다가 경찰의 폭력진압에 머리가 깨졌던 학생...

뭐 유감스럽게도 또 이상한 분을 대통령으로 뽑아 다시 4년간 꽤나 많이 길거리로 튀어나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모여... 정권도 바꾸고 구속도 시킬 수 있지 않았나... 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모쪼록 앞으론 화나서 길바닥으로 뛰어나가는 일은 좀 없어졌으면 합니다. 이젠 관절도 좀 힘들고... 인대도 종종 놀라고...


  Samuel Seong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메인 저자입니다. 모매체 국제부에 한 20년 글썼고 요즘은 xsfm 그알싫에 종종 등장하는 그 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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