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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김덕기와 (cbs라디오 2018년 5월 20일 방송분)

ravenclaw69 (mediamall)
2018-05-22 08: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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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지난 주의 정리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집에서 채소를 키우고 비닐봉지를 쓰지 말자”였잖아요? 이번 주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지난 5월 1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아마도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를 금지시킬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미국 허핑턴 포스트발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화요일, 한국으로 치면 시의회 의원인 케이티 탱이 플라스틱 빨대, 일회용 젓기용 플라스틱, 그리고 일회용 플라스틱 이쑤시개까지 금지하는 시 조례를 입법 예고했습니다.

김: 어? 그것들은 인스턴트 푸드 체인점이나 커피 전문점에 가면 항상 쓰게 되는 것들이잖아요? 그걸 안 쓰기로 하는 이유야 짐작이 되지만 업주들은 제조 단가가 오르니 싫어할텐데요?
성: 우선 금지의 이유는 지난 주에 이야기했던 비닐 봉지와 같습니다. 재처리하기 무진장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상당히 과격한 시 조례, 그러니까 아주 작은 행정 단위의, 그것도 입법 예고임에도 불구하고 뉴스거리가 된 것은 케이티 탱이 시민들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수많은 샌프란시스코의 요식업자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 빨대에 비해 훨씬 단가가 센 종이 빨대를 쓰고 있는 곳들이 많다는거에요. 실제로 케이티 탱의 지역구에서 유명한 커피 전문점 창업자인 로렌 크랩은 “나는 우리의 환경을 더 보호할 수 있다는 이유로 모든 플라스틱 제품의 금지에 찬성한다, 그리고 이미 플라스틱 빨대를 우리 업장에서 치워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 조례는 우리에게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더군요. 실제로 100개 업소 이상이 이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었답니다.

김: 환경 보호에 앞장 서는 지역 상인들이 있었다면 정치가 입장에선 훨씬 수월하게 일을 추진할 수 있었겠네요. 보통 어느 나라든 이런 일들은 이해관계자들의 이해관계 조정이 가장 힘든 부분인데 말이죠. 그런데 이 결정엔 한 거북이의 역할이 컸다면서요?
성: 아마 청취자 여러분들도 한 번쯤은 보셨을 비디오가 있습니다. 2015년 경에 해양 과학자들이 거의 8분 넘는 시간 동안 거북이의 코 안에 박혀 있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뽑아내는 영상 말입니다. 이 거북이는 빨대가 어떻게 해양 생물에게 위협이 되는지 알리는 비공식적인 마스코트가 되었죠. 이후 미국 해안가 지역에서 이 거북이의 사진을 들고 플라스틱 사용 금지를 호소하는 운동이 대거 벌어졌었는데, 다른 때와 달리 꽤 큰 반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난 주 입법 예고의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지요.

김: 그런데 이게 샌프란시스코 뿐만 아니라 미국 내의 다른 도시들로 퍼질 기세라구요?
성: 예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의 다른 도시들인 샌 루이스 오비스포와 데이비스 시가 비슷한 조례를 추진중에 있고, 이번 여름 중에는 비슷한 운동이 같은 주의 말리부시와 북쪽 워싱턴주의 시애틀에서도 추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김: 김치국을 마시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은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자연보호라는 것이 우리가 무엇을 쓰지 않는다는 것으로 가면 간단한 문제지만 말 그대로 자연과의 공존은 사실 많은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잖아요? 예를 들어 유기묘나 유기견의 사례도 그렇고, 도시 비둘기 문제도 그렇고.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성: 음, 성공사례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만, 이게 실패하는 사례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실패로부터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요. 대표적인 실패 사례인 인도의 원숭이 이야길 전해드릴까 합니다.

김: 아니, 원숭이라구요? 좀 뜬금없는 동물인데요? 인도에 원숭이가 그렇게 많나요?
성: 인도 원숭이들이 좀 난폭합니다. 인도를 오고간 사람들 치고 원숭이에게 한 번이라도 봉변을 당하지 않았던 사람은 찾기 힘들 정도죠. 여행자들의 방을 해집어놓고 반짝거리는 것을 훔쳐간다거나, 선글라스 혹은 안경을 뺏아가는 경우는 흔히 경험하는 일입니다. 이거, 뭔 정글 사파리 같은 것을 가서 당하는 게 아니라 도시 한 가운데서 당해요. 심지어 2007년엔 델리의 부시장이었던 S.S. 바즈와라는 분이 원숭이들에게 발코니에서 떠밀려 사망한 사건도 있었구요, 2006년엔 대법원장실을 원숭이 떼가 습격해 수십년동안의 판례와 사건 파일들을 박살내고 도망간 적도 있습니다.

김: 진짜요? 한국 사람들에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인데요? 그렇게까지 원숭이가 공격적이라구요?
성: 우리야 야생 원숭이를 만날 일이 없으니 농담 같죠. 하지만 미국의 디지털 매체인 VICE의 2015년 3월 23일자 기사에 따르면 인도 원숭이들의 행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를 들어 2015년 1월 중순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인도를 국빈 방문했을때 특별 경호대가 편성되기도 했어요. 이 특별 경호대의 무장은 새총과 빗자루였습니다. 혹시라도 미국 대통령에게 원숭이가 달려들까봐 배치되었던 전문가들이었죠. 인도 내무부 서류 1만개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기도 했고, 인도 유적지에서 돌팔매질을 해서 손상을 가하는 것도 원숭이들입니다.

김: 우리가 겪는 도시 비둘기 문제에 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심하군요. 야생동물이 이런 행패를 부린다면 뭔가 극단적인 형태의 조치도 취해질 것 같은데요? 인도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왔나요?
성: 스타워즈 시리즈의 1편인 ‘보이지 않는 위협’이죠? 2007월 2월 15일자 이코노미스트엔 이 제목을 페러디한 제목의 기사가 하나 실립니다. 델리의 원숭이 위협, Delhi’s monkey menace라는 제목의 기사였죠. 기사에 따르면 인도의 뉴델리 고등법원은 약 6000마리로 추정되는 뉴델리 시내의 원숭이들을 시 외곽으로 쫓아내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미 2004년부터 꾸준히 원숭이들을 포획해서 인근의 주인 마드야 쁘라데쉬주로 이주시켰구요. 그런데 2004년 이전에 약 250마리의 원숭이를 이미 받았는데 300마리를 추가로 받아놓으니 이전에는 없던 병이 돌기 시작했다네요? 그래서 다른 주로의 이주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원숭이는 힌두교 신들 중 하나인 하누만의 현신이에요. 힌도교에 기반한 동물보호단체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딛혔죠. 그래서 훈련된 큰원숭이들을 원숭이 서식지에 투입해 거점을 이동시키는 방법도 동원되었는데요, 결국 실패했습니다. 야생 원숭이로부터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는 인도 사회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 중에 하나가 되었죠.

김: 사실 좀 의외이긴 합니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한다는, 혼란 속에서도 질서가 있다는 이미지가 있는 인도에서 이런 격렬한 싸움이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성: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국가는 없습니다. 원래 완전히 다른 가치관이잖아요? 다른 가치관이 충돌하면 발생하는 것은 분쟁이지 평화가 아니죠. 서로 다른 가치관이 서로 다른 해법을 제대로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인도의 이 실패는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다른 문제에 대한 해법의 출발점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김: 어떤 해법에 대한 어떤 출발점 말인가요? 사실 남의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가장 현명한 자세입니다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잖습니까?
성: 생물체가 일으키는 문제들은 몇년에 걸친 연구 조사 결과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겁니다.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한 종의 동물을 상대로 하는 일을 벌일 경우 동물전문가들이 중심이된 사업 타당성 연구 그룹이 구성됩니다. 이 분들이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낸 다음에 시행하죠. 하지만 인도 대법원은 동물전문가들의 사업타당성 평가를 거치도록 하지 않고 일단 쫓아내는 것을 목표로 했어요. 생태계를 바꾸라는 명령을 내렸던 셈이죠. 일단 생태계에 편입되어 있으면 그 종을 제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유기묘의 경우 포획후 중성화한 다음에 방생하는 형태로 개체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도시 생태계에서 유기묘가 이미 정착한지 오래기 때문에 제거할 수 없다는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이 근거가 있다고 판정되었기 때문에 실행되고 있는 정책이죠. 하지만 꽤 많은 민원들은 과학적 근거랑은 아예 상관이 없지요. 유기묘 포획 중성화 정책에 반대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검증된 것도 반발이 있는데 그냥 빨리 눈앞에서 치워버리려는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겠어요?

김: 음, 어려운 이야기군요. 사실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들도 워낙 가짜 뉴스들이 많잖아요. 무엇보다 과학적 입증의 문제는 과학자들의 영역이구요. 일반인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믿는 경우들이 또 많으니까요. 일반인들이 과학적인 검증을 할 수는 없구요.
성: 그런 문제들이 있죠. 자 그런데 검증은 과학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기록을 인증받아야 하는 경우라면 항상 따라다니는거죠. 이 검증이 이루어지는 영역 중에 하나가 바로 저희 처갓집 앞산에 오르는 처남댁 집안 이야기입니다.

김: 처갓집, 처남댁이라구요?
성: 집에서 산이 보이면 앞산이죠 뭐. 카트만두에서도 날씨만 좋으면 히말라야 산맥의 높은 봉우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는 네팔의 나라얀히티 왕궁은 아주 소박한 건축물인데요, 요즘은 일년에 몇 번 보이는 히말라야의 모습이 겹치면 왜 저기 저런 형태로 왕궁을 지었는지 알 수 있죠. 산세를 꽤 잘 이용한 건축물인데, 이런 건 관광객이 보려면 운이 아주 좋아야 하죠. 여튼, 이 히말라야의 8천미터가 넘는 산을 오르려면 전문 가이드의 도움이 필요하다는건 잘 알려져 있죠?

김: 예 세르파라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에베레스트를 처음 오른 텐징 노르게이가 대표적인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 넵. 세르파는 세르파라는 성을 쓰는 분들의 공동체입니다. 제 처남댁 집안이죠. 하하. 참 처남댁은 산악 가이드가 아니라 은행원이에요. 여튼 지난 수요일인 16일, 처남댁 집안 한 분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를 스물 두번 등정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16일자 가디언지에 따르면 올해 마흔 여덟인 카미 리타씨가 에베레스트를 스물 두 번 올랐다는 것이 공인되었다고 합니다. 등정에 성공했네 못했네 하는 이야기들이 종종 나오기 때문에 네팔 정부쪽에서 아예 사람이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 나가 있어요. 에베레스트는 워낙 많이 올라가는 산이기도 하기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등정에 성공하는 분들이 많아 검증받긴 쉬운 편에 속합니다.

김: 그러고보니 몇 년전에 한국의 산악인 한 분이 히말라야의 어느 산 등정에 성공했는가 못했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죠? 그런데 많이 올라가는 산이라고 하니 마치 북한산 오르는 분들처럼 말씀하시네요?
성: 그 분이 올라갔느냐 못 올라갔느냐는 논란이 벌어졌던 산은 인도 시킴주에 있는 칸첸중가였죠. 북한산 이야기 하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는게, 이날 세계 기록이 두 개 만들어졌어요. 카미 리타가 22번째 에베레스트에 오른 날, 락파 세르파라는 44세의 여성 세르파가 아홉 번 째 에베레스트를 올랐습니다. 작년에 자신이 세운 여덟 번 등정의 기록을 깼다죠. 그리고 이날 여러 팀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었다고 합니다.

김: 대단한 분들이네요.
성: 에베레스트로 출발하기 전 AP와 가진 인터뷰에서 카미 리타씨는 에베레스트에 최소한 스물 다섯 번은 오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고 해요. 처음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것이 스물 네살 때의 일이고 그동안 K-2, 마나슬루, 로체등에도 자주 올랐다고 합니다. 재미있는건, 이 분의 직업이에요. 가을부터 겨울까지가 네팔 관광시즌의 피크거든요. 트레킹 하기 좋은 날씨들이 이어지기 때문인데요, 카미 리타씨는 이때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코스를 안내하는 가이드 일을 한답니다.

김: 일반인들이 겪긴 좀 어려운 세상의 이야기 같기도 하네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북한산 등반하듯 오르는 분들의 이야기라니. 그런데 오늘 마지막 이야기도 이런 분들의 이야기라구요?
성: 지난 5월 1일 시드니 모닝 포스트는 캄보디아 인권 특별 보고관인 로나 스미스씨의 인터뷰로 시작하는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로나 스미스 특별 보고관은 “지금 캄보디아의 정국을 감안하면 다당제와 민주주의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밖에 없다”고 통탄하고 있었죠. 사실 이 이야긴 작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작년 2월 14일 국제인권가시단체인 휴먼라이트와치는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가 자신의 종신 집권을 위한 개헌 작업에 착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음,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캄보디아는 입헌군주국 아닌가요?
성: 입헌군주국에서 왕이야 그냥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죠. 지금의 총리인 훈센은 1985년에 총리가 된 후 지금까지 장기집권 중입니다. 30년이 넘도록 장기집권하면 정형화된 일들이 벌어지죠. 나라 곳간이 그 사람 집안 소유가 되잖아요? 작년에 훈센 가족이 갖고 있는 자산 운용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도청 파일이 풀려서 그 정치적 입지가 참 난처하게 되기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센은 의회에서의 압도적인 지위를 이용해 작년 2월 말에 몇 가지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정치적인 문제로 5년 이상의 징역을 산 사람들은 5년간 공직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고 5년 이상의 징역을 산 사람이 대표로 있는 정당은 해산시키는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겁니다. 이 법안은 가장 유력한 야당 정치인인 삼랭시 맞춤형 법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이 딱 5년형을 받은 적이 있는 정치인이고, 통합야당의 대표였거든요. 2013년 총선에서 훈센의 집권당에게 아깝게 패배했던 삼랭시 캄보디아 통합야당 대표는 2014년에 한국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또한 이때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결혼 이주자들이 아주 따뜻하게 맞아줬었죠. 한겨레21이 그 모습을 촬영한게 있는데, 정말 구름처럼 모였더군요. 그리고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 분들은 캄보디아 야당의 돈줄이기도 합니다. 어째 좀 짠하다는 느낌 안드세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은 모아주셨던 우리의 하와이 교민 1세대 같지 않나요? 작년 2월에 통과된 법은 또 다른 조항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체류하는 캄보디아 인들의 정치인 후원도 금지시켰어요. UN이주민 통계에 따르면 약 7만명 정도의 캄보디아인들이 해외에서 일하고 있고, 한국의 출입국관리소 통계에 따르면 그 중 약 2만5천명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2만5천명의 송금이 그렇게 못마땅했던거죠.

김: 이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한국에서의 민주화운동이 캄보디아에 혹시라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성: 유툽 검색을 해보시면 캄보디아어로 번안된 한국의 민중가요들을 많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제창이냐 합창이냐 갖고 논란이 있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경우엔 꽤 오래전에 캄보디아어로 번안되어 있었죠. 여기에 야당의 대표 정치인을 말려 죽이기 위해 만든 법의 타겟이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송금이었던 걸 감안하면 지금까지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죠. 무엇보다 한국에서 2016년과 2017년 사이의 촛불시위를 보고 돌아간 이들이 최소 1만명은 됩니다. 캄보디아의 야당과 시민들은 훈센 총리가 추진중인 7월 총선을 보이코트하는 중인데요, 이 분들의 소식은 이때 좀 더 자세히 전해드리도록 하지요.

김: 넵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상 재야 국제부 기자 성상원씨였습니다.


  Samuel Seong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메인 저자입니다. 모매체 국제부에 한 20년 글썼고 요즘은 xsfm 그알싫에 종종 등장하는 그 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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