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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는 기생충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ravenclaw69 (mediamall)
2020-02-11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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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잔치였던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한국 영화가 말 그대로 주요 부분을 싹쓸이 해버리니 여기저기 말의 향연이 장난이 아닙니다. 숭어가 뛰니 망둥어가 뛴다고, 망둥어인 저도 이 참에 슬쩍 한 삽 올려보려고 합니다.

시상식에서 제 눈길을 끌었던 부분이 몇 가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양반들이 이야기를 팔아먹는 양반들이니 이야기의 전개방식은 물론 '복선'에 대해 상당히 공을 들이죠. 몇몇 분들은 "끔찍했다"고 평하던데, 오프닝 공연들 중에 이디나 멘젤이 다국적 부대를 이끌고 "In to the Unknown"을 불렀던 부분부터 좀 심상치 않긴 했어요. 다국적 가수들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자"고 한다니. 미지의 세계? 그러니까 이번엔 안해본 거 하겠다는 이야기 아니야?란 생각이 잠깐 스쳐갔습니다.

지금은 성지글이 된 글이 하나 있죠. "기생충이 작품상을 수상한다면 그 시상자는 사회활동이 활발한 제인 폰다일 것이다"라는 예언(http://bit.ly/2OLTFZf)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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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발표할때 살짝 목소리가 떨리고 있던 것이 기억나네요.

감독상 시상자인 스파이크 리 역시 유명한 사회파 감독입니다. 다분히 기생충을 위한 복선이 아니었나 생각해볼만 한거죠. (뭐 위의 예언글 처럼 먼저 써놓았다면 대박 났을텐데;;; 아니 바른손 주식을 있는 돈 다 털어서 샀을텐데;;;)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21세기 지구 최강의 이야기 장사꾼들을 모아놓은 곳에서도 군계일학으로 빛났던 것은 봉준호 감독의 감독상 수상 소감이었습니다. "적을 만들지 않는다"가 사실 거의 모든 비즈니스 영역의 철칙임에도 이거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저 같이 부족한 넘은 항상 잊어먹고 다니는 이야기구요.

봉감독님은 자신의 수상소감으로 다른 후보가 감독상을 타길 바랬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한 방에 정리해버렸죠. 그것도 자신을 비굴하게 낮추는 방법이 아니라 "예의와 존중"이라는 요즘 미국 사회가 꽤나 찾고 있는 가치를 말로 구현하면서 말입니다.

자, 그런데 어제의 흥분이 가시고 나니 문득 "대단히 Local Festival의 성격이 강한" 미국 아카데미가 그 틀을 벗어나겠다고 덤비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 좀 궁금해지더군요. 사실 #OscarSOwhite (오스카는 백인들의 잔치다라며 시정을 요구하는 헤시테그)가 나온게 일이년 된 것도 아니고, 작년의 로마 같은 경우엔 좀 더 쉽게 문호를 개방할만 했는데... 왜 올해, 그것도 한국의 기생충이었을까.

이 힌트는 다음의 두 개의 동영상에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는 2017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았던 메릴 스트립의 수상 소감입니다.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링크를 드리면

 

메릴 스트립은 여기서 헐리우드는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의 집합일 뿐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후배 한 명 한 명의 출신지를 이야기하죠. 그래서 미국이 외국인들을 모두 내쫓으면 볼 수 있는 영화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미식축구와 종합 격투기 밖에 없을 것이며 그것들은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배우가 하는 일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들어가 관객들에게 그 느낌이 어떤건지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죠. 그리고 그 즈음에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장애인 기자 묘사 사건을 들며 "그런 행동은 힘을 가진 이가 다른 사람에게 모멸감을 줘도 된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합니다. 혐오는 혐오를 낳고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약자를 괴롭히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이용한다면 모두 패배할 것이라고 경고하지요.

그리고 무엇이 진정한 미국의 가치였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수상 소감은 끝납니다.

하지만 잠깐 더 생각해보면 이 분들은 다양성에 대해 많은 가치를 둘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파는 분들인데,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맨날 같은 이야기 밖에 더 나오겠냐구요. 이건 우리도 마찬가지였죠.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지 못하겠지만, 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음반을 사면 건전가요라는게 딸려 왔었습니다. 정권이 국민을 계도하는 좋은 노래라고 생각하는 걸 한 곡씩 넣어야 했던거죠. 뭐 만화에서 오누이가 가난한 판자집에서 누워있다고 해서 검열 삭제되던 세상이기도 했구요.

아니 뭐 멀리 갈 것도 없죠. 이미경 CJ 부회장은 어느 분에게 좌빨 기업인이라고 찍혀서 미국에서 계속 지내야 했고, 봉준호 감독은 아예 블랙리스트에 들어가 있었잖아요? 이쪽 업계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양성, 그리고 표현의 자유, 대중과의 긴밀한 소통"은 먹고 사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는 "중대장은 아주 실망했다의 차이가 어떻게 저렇게 날 수 있느냐"는말이 나왔던 미국 공군사관학교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입니다.

역시 못보신 분들을 위해 링크를 드리면

 

교장선생님이 긴급 훈화말씀을 하시게 된 것은 예비학교에서 어떤 얼간이가 인종차별 문구를 써놓은 것이 발각되었기 때문이죠. 약 5분간 이어지는 이 훈화 말씀의 요약은 "남을 존중하지 못한다면 나가라"입니다.

교감이 너희들을 모아 샤롯스빌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기억하라, 세상이 완벽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는 세상물정 모르는 놈이다, 그러니 "남을 존중하지 못하겠다면, 나가라"로 이어지는 이 연설. 민주적인 군인의 표상이겠거니...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연설입니다. 그런데 이 분의 직위를 생각하면 좀 더 다른 문제가 있지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면 수년간의 추가 훈련을 더 거쳐서 다양한 기체를 조종하는 공군 조종사가 됩니다. 균용기는 당대의 첨단 과학기술의 총아죠. 하지만 무슨 문제를 가지고 있을지는 실전을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기계덩어리기도 합니다. 설계과정이나 생산과정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버그들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단히 심각한 상황에 빠지기 때문이죠.

비행기 조종사는 자신이 모는 비행기를 위해 수없이 많은 이들이 달라 붙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잘나서 대접을 받을 만 하다고 착각하기 쉬운 자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비사와 무장사가 없다고 한다면 날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게 공군이에요. 더군다나 천조국 미군은 최강의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첨단 무기를 개발하다가 수많은 삽질을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의 "다양성과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은 최상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는거죠.

다양한 시각을 가진 이들이 서로 존중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나눌 수 있을때, 미처 생각할 수 없었던 기체의 결함을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이고,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무기나 작전을 개발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한 조직에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 있으면 그 조직은 외부의 변화에 아주 취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두 동영상을 보고 올해 달력을 보면 미국 아카데미가 하고 싶었던 것은 이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올해 미국은 또 다시 대선을 치룹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미국의 민낯들은 여전히 기세등등하지요. 판을 치는 백인우월주의가 자신들의 먹을 거리 판까지 박살낼 판이니 목소리를 안 낼 수가 없지요. 그런 판에 아시아에서 좀 나간다는 나라 출신의 감독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문제, 그리고 자신들 역시 겪고 있는 문제들을 블랙코미디 + 스릴러로 버무려놓은 영화를 가지고 온거죠.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사람들의 말을 좋아하기 마련이죠. 기생충에 환호했던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이런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그 양반들이 왜 기생충이 작품상을 먹으라고 기도까지들 했겠어요. 당대에 자신들이 처한 문제가 어떻게 곪아 터질지를 보여주는 영화나 다름없는데.

하필이면 올해에 한국영화가 오스카 주요부분을 싹쓸이 해온 것은 이런 배경이 있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뭐 가방끈 짧은 육체노동자가 뭔 권위가 있어서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만... 제 깜냥으론 그렇게 보인다는 이야기지요. ㅎㅎㅎ

그런데... 이걸 이렇게 보고 나면 좀 많이 서슬퍼 집니다. 어제 가장 많이 돌아다녔던 짤이 백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이었죠.

하지만 시계를 조금 더 뒤로 돌려보지요.

전우용 교수는 "서울은 깊다"에서 이런 이야길 합니다.

"17세기 중반부터 서울 문체와 시골의 문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의 경화 자제들은 시골 유생들이 배우기 어려운 새로운 문체를 배웠고 출제자들은 그에 합당한 문제를 냈다.

서울 선비들은 사륙문 (중국의 육조와 당나라 때 유행한 한문 문체, 4자로 된 구와 6자로 된 구를 배열하기에 사륙문이라 불린대) 을 익혔으나 시골 선비들은 그를 제대로 배울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경화 거족들(서울에 뿌리내린 명문 세족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급제할 수 있는 길을 넓혀주었고, 그럼으로써 자기들만의 서울, 자기들만의 나라를 만들어 나갔다. 정교하게 고안된 과거 제도의 여과장치를 거치면서 '명가의 자제는 날 때부터 다르다'는 생각이 퍼져나갈 공간도 넓어졌다."

'당상 이상과 삼사의 반열에 시골 출신이 없다"는 점이 불안한 현실로 인지된 것은 현종 때부터의 일이었는데 영조대에 이르면 아예 과거 합격자 가운데 시골 출신들이 가뭄에 콩나듯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인간은 시야각이 대단히 좁은 동물 중 하나입니다. 눈이 얼굴이라는 평면의 앞에 박혀 있기 때문에 시야각은 60도 정도 밖엔 안되죠. 그런 판에 임진 병자 양란을 거치게 되면 주자학 이외엔 모조리 사문난적이 됩니다. 그러니 대항해시대를 이어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던 양이들에 대해 뭘 알았겠어요. 결국 열강들에게 제대로 털리고 일본에게 나라를 뺏기게 되죠.

단일사상체계를 수백년간 열심히 만들어서 열심히 나라 망하는 레이스를 한 번 달려봤던 나라가 이 나라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반성을 하고 있었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이미경 부회장을 갖고 벌어지는 논란이 참 깹니다. 미국 아카데미가 당대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대답을 "기생충"이라고 내놓은 상황에서... 그들이 어떻게 "다양성을 포용할 것인가"를 실제로 보여준 현장에서 우리는 어떻지?란 생각을 해보는게 아니라... 돈 댄 물주가 마이크 몇 분 더 잡는다고, 한국 영화산업과 미국 헐리우드와 직접 다리를 놓았던 자기 오빠 이야기 좀 했다는 것에만 집중포화가 떨어지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깹니다.

대한민국은 사회적 지위를 세습하는 방법이 공고화되기 시작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저는 불과 500명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살길을 찾아왔을때 벌어졌던 광기를 기억합니다. 저는 트렌스 젠더 학생이 여대에 입학하겠다고 했을때 폭언을 퍼붓던 이들을 기억합니다. 저는 한국에 살고 있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건강보험의 건전성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그들이 '보험의 혜택'을 받았다고 공격하던 이들을 기억합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한 국가의 문제만으로 취급하면서 그 나라 사람들을 경멸하는데 앞장선 이들도 기억합니다.

대한민국은 다양성의 문제로 넘어오면 아주 견고한 돌덩어리와 항상 마주하게 됩니다. 다양한 허상에 갖혀 소수자 집단의 지배 혹은 배제를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는거죠. 문제의 원인을 찾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발생하지 않게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가지고 있는 나라죠.

계속 비슷한 사안들이 사회적 해결보다는 일방의 희생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 해법이 될 수가 없죠.

영국 옥스포드의 보건시스템, 보건정책전문가인 Swee Kheng Khor는 자신이 최전선에서 참여했던 2009년 신종플루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글을 며칠 전에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기고했었습니다. (원문을 읽으시려면 http://bit.ly/2Seem22 )

이 글에서 그는 과학자들이 동등한 지위로 참여하는 국제연대, 국제협력이 이런 질병을 극복하는 힘이며 이런 형태의 전염병이 도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과 국제연대지 국가간 분쟁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Swee Kheng Khor의 지적이 과연 전염병에만 해당되는 문제일까요?

지금의 대한민국 대통령은 전쟁난민의 아들입니다. 염색체는 XY, XX 두 가지 밖에 없는 것이 아니고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밝혀낸 것들이죠. 밖에서 뭔 영광을 경험하기 시작하면 나라 안에서도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접점이 많아지는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이미 합법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의 숫자만 200만명이 넘습니다. 2018년에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1535만명이 넘었습니다. 그것도 사스 여파가 좀 있어서 줄어든거에요. 그리고 바이러스. ㅎㅎㅎ 2009년 신종플루가 퍼지기 시작했던 곳은 멕시코입니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전세계로 퍼졌었죠. 어느 나라에서 언제 뚫릴지 모르는게 새로운 전염병이에요. 이건 거의 무한하게 이어지는 싸움일 수 밖에 없다구요. 그런데 한 나라만 막으면 된다? 다른 나라에선 다른 전염병이 안 돌 것 같습니까?

대한민국은 아직도 다양성을 포용하기 보단 차별을 어떻게 하면 공고하게 할 것인가에 훨씬 더 골몰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갑과 을의 역전만 꿈꾸고 사는거죠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사실 정치 밖엔 없어요. 어떻게 이 깝깝한 사회가 다양성을 받아들이도록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아주 명확한 비전과 실천력이 필요하죠. 어떻게 보면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이 이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 이야길 하지 않습니다. 대중의 반감과 맞서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어쩌면 다른 네 편의 영화를 맹렬하게 지지했을 이들의 반감을 그 네 명의 감독에 대한 진정한 존경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날려버린 봉감독 같은 양반이 작금의 정치판에 절실하게 필요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이상 숭어가 뛰기에 같이 뛰어본 망둥어였습니다.


  Samuel Seong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메인 저자입니다. 모매체 국제부에 한 20년 글썼고 요즘은 xsfm 그알싫에 종종 등장하는 그 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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