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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재규] 5장 B-2 벙커 (1)

牛公移山 (bhsaurus@gmail.com)
2019-06-11 09: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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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말씀 드렸던 것처럼 이 소설은 미완성이며, 이번 5장이 마지막입니다.
원래 30년 전쯤에 처음 구상할 때는 5장에서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서 어린 시절에 이어 김재규의 젊은 시절을 그려보려고 했지만, 자료와 능력 등의 부족으로 부득이 이번 장으로 미완성인 채로 중단하게 되었음을 거듭 미리 양해 부탁 드리겠습니다..^^;)

 


차가 육본에 들어서자 정승화는 직접 기사에게 차를 세울 곳을 지시했다. 맨 먼저 김정섭이, 그리고 정승화에 이어 김재규가 내렸다. 지하 벙커로 통하는 입구였다. 일명 B-2 벙커로 불리는 이 지하에는 상황실이 자리 잡고 있어서 비상 시, 즉 전시에는 전군에 대한 지휘소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강한 써치라이트 불빛 아래서 정승화는 그제서야 김재규가 양말만 신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신도 못 신고 빠져나왔을까, 현장의 급박했던 상황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막상 김재규도 흥분이 좀 가라앉고 보니 자신의 맨발이 거북스럽게 느껴졌다. 다행히 차에는 여벌의 구두가 준비되어 있었다. 박흥주가 알아서 그것을 꺼내주었다.

말없이 정승화가 앞장서서 벙커 안으로 들어섰다. 김재규 일행 역시 묵묵히 그 뒤를 따라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초소로부터 보고를 받은 상황실 장교가 다급히 뛰어나와 그들을 맞았다.

갑작스럽게 예고도 없이 사복 차림으로 나타난 최고 지휘관을 보고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정승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굳이 뭐라고 설명을 할 계제도 아니었다. 그는 김재규 일행을 벙커 안의 총장실로 안내하도록 시키고는 자신은 바로 상황실로 들어갔다.

상황실장을 비롯한 장교들이 놀란 얼굴로 그를 맞았다. 그는 대뜸 지시부터 내렸다.

"지금 당장 국방장관한테 연락 좀 해주시오. 합참의장하고, 각 군사령관, 각군 총장한테도. 그리고 연합사 부사령관한테도 연락하고. 직통전화로 다들 때려서 빨리 선이 닿게 하시오."

지시를 내리는 자신의 음성이 스스로 듣기에도 평소와 달리 굳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노재현 국방장관이 가장 먼저 연결되었다. 그는 집에 있다가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불문곡직하고 정승화는 빨리 나와달라고 부탁했다.

"급한 일이 생겼으니 빨리 좀 나오셔야겠습니다."
"어디요?"
"예, 육본 벙컵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직접 얘기 드려야겠습니다."
"알았소."

정승화는 곧 전군에 '진도개 하나'를 내리도록 지시했다. 진도개 하나란 명령만 떨어지면 곧바로 전투를 시작할 수 있는 준비태세, 즉 전쟁 개시 직전을 의미하는 2급 비상사태 지시였다.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쿠데타군의 공격에 대비한 것이었다.

이어서 다른 전화가 연결되었다. 1군 사령관 김학원 중장이었다. 당시 1군은 홍천 지역에 무장공비가 나타났다고 해서 출동 중이었다.

"아 나 총장인데, 지금 작전을 중지하고 즉각 부대를 복귀시키시오. 그리고, 부대를 정규전에 대비시키시오."
"예? 아니, 무슨 일입니까?"
"지금은 뭐라 말할 수 없고, 차차 알려줄 테니 그리 알고 기다리시오. 그리고 좌우지간 병력 통제에 만전을 기하시오."

정승화는 3군 사령관 이건영 중장에게까지 진도개 하나를 전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아직 군 쪽으로는 별다른 조짐은 없는 듯했다. 일면 마음이 놓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의아한 생각도 들었다. 그럼 차지철이 우발적으로 일으킨 사건이란 말인가?

어쩌면 각 군사령관들은 제껴놓고 밑의 사단이나 군단장급들을 장악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우선 수도권의 주요 부대를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차지철의 직접적인 입김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어보면 혹시 뭔가 이상한 분위기가 잡힐지도 모르지 않는가.

먼저 전화에 나온 것은 수도군단장 차규헌이었다.

"차 장군? 나 총장이요. 부대에 이상 없소?"
"이상 없는데요."
"지금 뭐하고 있소?"
"예, 그냥 집에 있습니다."
"예하 부대는...?"
"이상 없습니다."

차규헌의 목소리는 오히려 무슨 일이 있나 해서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다음으로 연결된 것은 수도경비사령관 전성각 소장이었다.

"부대에 아무 이상 없소? 예하부대는 잘 장악하고 있소?"
"네, 염려 마십시오."

역시 별다른 낌새는 챌 수 없었다. 그러나 혹시 모르는 일이 아닌가, 수경사는 유사시에는 경호실장의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는 부대다.
민간인인 경호실장이 군을 지휘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진작부터 한번 각하께 건의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없어 미적이고만 있었는데...

어쨌거나 차지철이 각하를 시해했다면 지금 가만히 청와대에 앉아만 있을 리는 없을 것이었다. 만일 우발적 사건이었다면 지금 차지철은 당황해서 앞뒤를 못 가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차츰 정신이 되돌아온다면 우선 수경사부터 장악하려 들 것이다. 아니, 어쩌면 탈출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직 수경사를 장악하지 못했다면 우선 수경사로 하여금 청와대를 포위토록 하는 게 좋으리라. 정승화는 아예 전성각에게 육본으로 직접 와서 지시를 받으라고 출두 명령을 내렸다. 가만히 내버려두었다가 차지철의 지시를 받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정승화가 분주하게 각 부대를 확인하는 사이, 육본에는 비상 연락을 받은 참모차장 이희성과 각 참모들이 속속 모여들어 자체 방어를 위한 병력 배치에 나섰다. 지하 벙커엔 일체 외부인의 접근을 금지시키고, 본부 병력 전원에게 실탄이 지급되었다. 도대체 영문을 모르는 채 우왕좌왕하면서도 사람들 사이에는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잠시 말없이 앉아 눈치를 살피던 김정섭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버리자 참모총장실에는 이제 김재규와 박흥주만이 남아 있었다.
자,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한다? 문뜩 지금까지의 일이 마치 꿈이 아니었나 싶은 나약한 감상에 젖어드는 자신을 느끼고 김재규는 흠칫 몸을 떨었다. 안 될 말이었다. 여기서 실수하면 만사휴의가 되고 만다.

가만히 생각을 더듬어보았다. 우선, 비상계엄령부터 내리는 것이 필수다. 권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고 그 정점에서 그 권력을 장악해야만 한다. 그리고, 차지철과 그밖의 박정희에 빌붙어 부정부패를 일삼던 무능한 작자들을 죄 숙청해야 한다.
막상 거기까지만 생각해도 다시 가슴이 흥분되어 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단지 막연할 뿐이었다. 글쎄, 일을 저지를 때는 뭔가 잘 풀릴 것 같은 기대도 있었는데...
자꾸 혼란스러워져 오는 머리가 우선 문제였다. 차분히 생각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만 머릿속이 엉망으로 흐트러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까부터 자꾸만 참을 수 없이 목이 탔다. 이리저리 방안을 둘러보았으나 마실 물 같은 건 눈에 띄지 않았다.

"박 대령, 나가서 물 좀 시키지."

불안한 표정으로 그의 눈치를 살피던 박흥주가 벌떡 일어섰다. 그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김재규는 그제서야 갑자기 뭔가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상황을 장악하기 전까지는 무엇보다도 보안이 중요하다. 만에 하나, 내가 각하를 죽였다는 사실이 미리 새어나간다면 숙청이고 뭐고 죄 도로아미타불일 뿐이다.
나중에 차분히,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야기하고 힘으로든 뭐로든 남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놓은 다음에야 비로소 밝혀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사태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나와 내 부하들, 그리고 김계원뿐!

박흥주가 물주전자와 컵을 직접 가지고 들어왔다. 우선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뒤 김재규는 박흥주에게 김계원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라고 시켰다. 그의 지시를 받은 박흥주가 총장실에 놓인 일반전화와 상황실 전화로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청와대에도, 집에도, 그리고 궁정동에서도 김계원의 행방은 묘연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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