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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과 YWCA위장결혼식..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牛公移山 (bhsaurus@gmail.com)
2021-02-23 17: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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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KBS에서 방영한 백 선생님 다큐("산자여 따르라")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당신께서 YWCA 위장결혼식 사건 때 주례를 맡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솔직히 이 부분은 선생님께서도 직후에 보안사 끌려가 혹독한 고문으로 심신이 파괴당하시면서 약간 기억의 편집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제껏 YWCA 사건 당시 주례는 함석헌 선생님이셨다는 게 정설이었다.

개인적으로 당시 함 선생님을 댁으로 모시러 갔던(주례이시니까 ^^;) 선배에게도 직접 들은 얘기가 있다.
그 내용인즉, 애당초 선생님께도 이 결혼식이 가짜라는 사실을 전혀 말씀 드리지 않았고, 당시 함 선생님도 자신이 아끼시던 민청협 홍보부장 홍성엽 선배가 실제로 결혼하는 걸로 알고 주례를 승락하셨는데...모시고 오는 택시 속에서 처음으로 진상을 말씀 드려서 함 선생님도 얼굴이 굳어지셨다..는 것이었다.

백 선생님 다큐에서는 그날에 대한 이야기를, 신랑이 입장하자마자 계엄군이 쳐들어왔다고 하셨는데

당시 현장에 있던 다른 분들의 과거 증언을 참고하면 물론 사전에 어느 정도 정보는 새서 밖에 계엄군이 출동해 대기하고 있었고,
신랑 입장 후 바로(애당초 신부는 없었으니까) 대회 취지문을 낭독하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자마자 문이 부숴지고 계엄군이 난입했다..고 한다.
즉 신랑만 입장한 채로 (신군부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통대)에 의한 (장충)체육관 대통령 선거 저지 촉구대회'는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로 계엄군이 쳐들어온 건(즉 실패로 끝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일부에서 주례가 박종태 전 공화당 의원이었다는 얘기도 있고

사회자가 (흔히 알려져 있듯 김정택 목사가 아니라) 양관수 교수였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 역시 또 다른 기억의 편집에 의한 부정확한 증언으로 보인다.

(어쩌면 함석헌 선생님께처럼 백 선생님께도 사전에 집회 성격을 말씀 드리지 않아서 정말 홍성엽 선배 결혼식인 줄 알고 오셨을 수도 있고

진짜 결혼식이 아닌 만큼 경찰과 보안사의 눈을 피해 집회 준비를 하느라 좀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실제로 백 선생님께도 주례 부탁 얘기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겠다..
비록 당시로 생각해보면 백 선생님이 함석헌 선생 등 원로를 제쳐두고 주례를 맡기에는 아직 40대 후반의 연배셨지만...ㅋ)


 

말난 김에 YWCA 사건과 관련해 덧붙일 얘기가 있다.

몇 번 말했다시피 개인적으로 백 선생님의 큰 따님과 큰 아들이 모두 잘 아는 학교 선배여서 86년부터였나, 진관동 자택으로 세배를 드리러 가기도 했었지만, 처음 선생님을 곁에서 모신 건 87년 대통령선거 때부터였다.


87년 9월부터 진보진영 내에 독자후보론이 대두되기 시작하고, 이어서 백기완 선생밖에 민중후보로 나설 분이 없다는 여론으로 선생님께 후보 수락을 호소 촉구하는 몇 차례 집회에 이어 마침내 선생님께서 후보 출마를 공식 수락한 것이 12월 16일 선거일을 불과  한달 반 남긴 10월 30일이었다.

이 날은 마침 (명동 YWCA회관에서 ^^;)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선언대회가 예정된 날이었고, 백 선생님도 축사를 하기로 돼 있으셨다.

그러나 당시 이른바 재야의 분위기는 다수가 DJ에 대한 비판적(이란 명분하에 사실상 무조건적 -__-) 지지와, 소수의 '후보단일화론'으로 양분돼 있었고, 적어도 재야 내에서 진보진영의 독자후보론에 동조하는 세력은 극소수였다..-__-;;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그간 30여 년을 재평가하면서 당시 진보진영의 정치적 입장으로 과연 무엇이 가장 옳았던가에 대해서는 언제고ㅡ지금도 만시지탄이지만ㅡ엄정한 재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__-)

백추(백기완 민중후보 추대위원회)에서 백본(선거운동본부)으로 이름을 바꾸자마자 상황실 담당자로 소속이 바뀌어 선생님을 모시고 참석한 대회장 분위기는 백 선생님의 출마 소식이 알려져 냉랭하기 그지없었고, 누구였는지는 기억을 못하지만 축사하러 나와서 백 선생님이 (CIA의) 공작에 넘어갔다고 대놓고 비난한 분도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축사에 나선 백 선생님께서 '공작이 맞다. 그러나 CIA가 아니라 민중의 공작이다'라고 맞받아치신 얘기는 나름 알려져 있지만..그 뒤 짧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ㅋ

출마를 선언하셨으니 후보등록 준비를 해야 하고, 선거포스터용 사진을 찍어야 했다.

(후보등록과 관련된 우여곡절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한 보따리 늘어놓기로 하고..^^;;)

명색이 진보진영을 대표한 대통령 후보니 동네 사진관에서 찍은 수준의 사진으로 포스터를 만들기는 민망하다 싶던 참에, 내가 대학 학생회 시절 졸업앨범 제작으로 인연을 맺었던 유명 사진관이 마침 명동에 있었다.


선본 회의에서 내 제안으로 사진을 거기서 찍기로 결정을 하고 한겨레 창간발기대회가 끝나자마자 선생님을 모시고 회관 바로 옆에 있던 사진관으로 가서 사진을 찍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꼭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방금 CIA의 공작 소리를 듣고 나오신 터라 표정이 잔뜩 못마땅하게 굳어 있는 채로 촬영을 마치셨다..ㅋ

아래 첨부한 게 바로 그때 찍은 그 사진으로 만든 87년 대선 포스터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인연까지 있었기에...최근 조 뭐시기가 감히 이 포스터를 들고 나와 추모를 운운하며 선생님을 욕보인 데 대해 더더욱 용서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__-;;

덧붙이자면 구글에서 이미지 검색하면 선관위 자료실 사이트에 있는 이 포스터가 나오긴 하는데, 실제로는 아주 한참 밑으로 스크롤을 내려야 찾을 수 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몇 년 전 이 사진을 다시 찾아내 SNS에 처음 공유한 건 나였다고 생각한다.
당시 선생님의 마지막 필생의 역작인 '버선발 이야기' 출판기념회를 함께 준비하면서, 선생님 사진전 기획 얘기를 들으며 불현듯 생각나서 이미지 검색을 해서 찾아냈었다...ㅠㅠ)

그런데...덧붙일 얘기는 이 얘기가 아니고..^^;;
(옆길로 한참 샜다..ㅋ)

백 선생님의 출마를 CIA의 공작이라고 매도하던 분과 비슷한 얘기가
바로 그 79년 YWCA 사건에 대해서도 있었다...*.*


서중석 선생이 몇 년 전 프레시안에 연재하던 현대사 기획에서, 바로 이 YWCA 사건에 대해 당시 신군부가 정치에 개입할 빌미를 찾기 위해 의도적으로 재야의 도발을 유도한 공작에 이용당한 측면이 있다..는 식으로(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취지에는 차이가 없다 -__-) 언급하신 것이다.

백보 양보해서, 신군부 입장에서는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다고 본다.


비유적으로 미국 9.11 테러 당시에 CIA의 역할이 빈 라덴 일당에게 직접적으로 무역센터 폭파를 사주했는지, 단지 뭔가 테러 징후를 포착하고도 중동에서의 국면 전환을 위해 역이용하고자 방조한 정도였는지에 대해 지금도 설왕설래가 있지만,
어쨌든 CIA가 개입했다는 자체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조차 음모론이라고 배격하는 입장도 물론 있지만..ㅋ)


마찬가지로 신군부가 YWCA 사건을 구체적으로 기획했다는 건 말이 안 되고, 다만 당시 계엄하에서 청년 활동가들이 모여서 집회를 기획할 수 있도록 방조한 측면도 가능성을 100%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YWCA 사건이 해서는 안 되는 모험주의, 맹동주의적 집회였느냐..고 한다면, 당연히 전혀 그렇게 평가할 수 없는 일이다. -__-;;

서중석 선생이 말하듯 79~80년 당시 신군부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국을 만들기 위해 간접적인 공작을 한 측면도 당연히 있겠지만, YWCA 사건이든 5월의 봄이든 이런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적 열망이 그런 공작을 주요 측면으로 해서 이뤄졌다고 보는 것은 너무도 지나친, 상식에 맞지 않는 수동적 패배적 관점일 뿐이다.
(또 덧붙여...그런 의미에서 마치 광주항쟁을 초기에 광주'사태'라 부르듯이,
언제까지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만 명명할 것인지도 한번 고민해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또 비슷한 얘기를 최근 '광주항쟁'에 대해서도 들었다. 시민들이 무기를 든 것은 소위 '편의대'라는 보안사 특수부대의 공작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인데,

실제로 편의대라는 조직이 시민들 사이에서 프락치 활동을 한 자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들의 공작이 민중항쟁을 좌우하는 영향력을 가질 만큼 위력적이었다는 주장 자체가 차라리 한 편의 소설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소설..은 아니고, 최근 공연했던 '광주'라는 뮤지컬을 보러 갔다가, 극의 시놉시스 자체가 이런 관점에 기반하고 있기에 스트레스만 잔뜩 받고 돌아온 기억도 있다.

작가나 제작자는 40년이 지난 광주를 모티브로 뮤지컬을 만들면서 새로 등장한 편의대라는 소재를 적극 활용하고 싶었겠지만..-__-

또 다른 한 축인 시민들의 생생한 투쟁과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다룬 장면들이 없었다면 보다가 뛰쳐 나왔을지도...ㅋ)



PS.
앞에서 언급한 87년 10월 30일 한겨레신문 창간발기선언대회 영상이 유투브에 올라와 있다.
당시 누가 CIA 공작 발언을 했는지 혹시 확인할 수 있을까 싶어 영상을 다 봤는데...물론 그런 발언 대목은 없을뿐더러...
백 선생님은 축사는커녕 등장하지도 않으신다..*.*

그냥 영상에 등장하는 분들 외에도 축사 등 더 많은 분들이 계셨는데 부득이 빠진 중 한 분이신 걸로 생각하는 게 맞겠지....ㅋ


(말 난 김에...
백 선생님의 독자후보 활동 및 에피소드들은 재미있고 감동적인 것들도 많은데 거의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진보진영이 백 선생님의 죽음에 대해 앞다투어 추모한다고 하면서도
어쩌면 정작 지금도 선생님의 정당한 평가는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외면 당한 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그 진보진영의 상당수가 기회주의적 자유주의 중도보수 지지로 투항한 것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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