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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페미니즘 이야기]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창작자푸른비 이창우 (overdye)
2018-01-16 13: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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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듣기] 1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01화에서 못다한 이야기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소설가이며 1977년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자랐다. 열아홉에 미국으로 건너가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인종, 이민자, 여성에 대한 문제를 주제의식으로 삼은 소설로 평단의 각광을 받으며 영미문학을 이끌 차세대 작가로 부상했다. 이 책의 원본이 된 TED강연은 유튜브에서 250만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고, 팝스타 비욘세의 노래에 피처링되기도 했다. 스웨덴에서는 이 책을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 2학년에게 나눠주고 성평등 교육의 교재로 삼고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세상이 현실과 다르다고 알게 된 것은 십 대부터였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여자로 태어났지만 ‘나’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삶에서 선택은 문학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버지니아 울프와 시몬 드 보봐르, 루이제 린저와 F. 사강, 전혜린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인간’으로 살았다.

 

내가 자연스럽게 여기던 것들은 현실에서 부자연스러웠고 “여자인 내가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말이 익숙하게 될 즈음 부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자신을 숨기는 일은 나를 드러내는 일보다 더 쉬웠다. ‘나’를 숨긴다는 의미는 이십대까지는 ‘세상 모르고 산다’는 것을 표현하는 일이고 친구들에게 아나키스트라 불리는 것에 더 익숙한 시절이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세상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에 분노하거나 저항하는 일보다는 ‘나’를 지켜내는 일에 몰두했다. ‘나’로 산다는 것은 ‘홀로 주체’가 된다는 일이고 혼자서 거의 모든 선택을 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오히려 동성 친구에게서 ‘나’를 존중받는 일이 고단했던 기억이 많다. “왜 화장을 안 하니?” 결혼식 당일까지 무던히도 들었던 대표적인 말이다.

 

남들과 다른 내 삶을 좀 더 객관화할 수 있던 시기는 결혼 후 사회 활동을 하면서였다. 아, 어떻게 남편이 일방적으로 휘두르는 삶에 적응하며 살 수 있는 거지? 결혼하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니. 자주 떠오르는 물음이었다. 이제는 나로 살아가는데 필요했던 힘을 드러낼 수 있는 의지를 발휘하며 산다. 21세기에 서 있는 나는 이제 그렇다. 나와 교류하는 사람들에서 자연스럽다.

 

“그들에게 나도 남자와 똑같은 인간이라고, 나도 똑같은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그저 사소한 일이지만, 때로는 사소한 일이 가장 아픈 법입니다.

 

직장인으로 살아보지 못한 내가 겪는 분노이기도 하다. 지난해까지 ‘을’이라 지칭되는 집단이나 개인으로 서 있던 시절이 거의 없는 셈이다. 나는 노동의 가치를 다르게 인식하며 살았기에 나에게 노동은 놀이와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고 자유롭다. 이 점에서 늘 나는 겸손해진다. 얼마나 큰 행운이던가. 그 행운은 ‘나’로 살아온 시절이 있었기에 가능한 준비된 자에게 온 행운이기도 하다.

 

책을 좋아해서 쌓아둔 책이 나를 먹여 살리는 일을 할 것이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책을 읽는 일이 일상이고 밥벌이다. 그 자격은 사회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다고 여기는 내 취미활동으로 기록되곤 하던 독서였다. 이 사소하다 여기는 취미로 내가 가장 아팠던 일은 꽤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버지의 분서갱유다. 직접 진시황제처럼 책을 불질러버린 사건은 아니여도 내게는 가장 큰 아픔이었다. 집안에 있는 책들을 아파트 현관문 밖으로 다 내던지시며 시집이나 가라는 말씀. 당시까지 아버지는 개방적인 분이셨고 미래지향이셨던 분이기에 상처가 컸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더럽고 치사해서 결혼 한다 내가. 후후. 아버지는 그 후 1년이 되기 전에 세상을 뜨셨다. 어머님의 위안은 이렇게 이어지곤 한다. 다 네 아버지가 떠날 때가 돼서 마음이 급해서 막내딸 손잡고 결혼식장에 들여보내기 위해서였던 것이라고. 내 어머니도 당시에는 드물게 맞벌이를 하며 독립적인 여성이었다. 이런 일들은 현실에서 늘 덜그럭거리는 불협화음이다.

 

“지금보다 좀 더 공정한 세상을, 스스로에게 좀 더 진실함으로써 좀 더 행복해진 남자들과 좀 더 행복해진 여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이 부분이 그 많은 페미니즘 이야기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슬그머니 넘어갔다. 이 문장을 서 너 번 소리 내어 읽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굳이 남자와 여자들이란 말을 하지 않고 싶다. 성별 구분 자체가 너무 오랜 시간 편리하게 사용된 관념 덩어리이기에 모두가 더 행복해진 세상을 상상하면서 지금을 살아나고 싶다.

 

한국사회는 여자 남자로 성역할을 고정시켜서 모두가 힘들다. 남자는 남자라서 여자는 여자라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자기 선택과 가치는 제쳐두고 사회에서 원하는 이름에 종속되곤 한다. 개인의 행복이 사회에서 무시되는 일이 너무 흔하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타인의 행복을 말할 수 있는가.

 

나부터 행복해지기. 내가 웃을 수 있어야 당신도 웃을 수 있지 않은가. 같이 웃고 같이 울 수 있으면 된다. 페미니즘이 그 시작으로 된다면 세상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보다는 안으로 채워진 나의 가치와 공감으로 변화 가능성이 지속되고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망을 품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크게 품으면 안 돼. 그러면 남자가 기가 죽을 테니까.

 

남자의 기를 살리기 위해서 야망을 너무 크게 품으면 안 된다는 말은 여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만들어 왔다. 한국사회에서 아들, 특히 장남을 위한 희생이 미덕처럼 여기던 시절을 지나온 현재까지도 가족에서 딸, 굳이 장녀를 위한 희생은 거론되지 않는다.

 

맏딸은 살림밑천이란 말을 종종 들으며 성장한 기성세대로서 남아선호로 인한 편애는 어머니 교과서의 한 부분이다. 어머니 교과서 개정판은 은밀하게 희생을 강요한 사회에 맞서는 일의 하나로 강한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져 오기도 한다.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라는 말이 가슴 한 편에서 메아리칠 때가 있지 않던가. 강한 어머니는 당당하게 불릴 수 있어야 했던 이 땅의 페미니스트였다.

 

“다리를 오므리렴. 몸을 가리렴.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여자로 태어난 것부터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인 양 느끼게끔 만듭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남자이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대체로 타인의 시선에 몸을 사리고 방어막을 두르기 시작하면 소통할 수 없는 사회로 이어진다. 결국, 불통에서 생산된 말들이 모여들면 한 더미의 쓰레기 처리장처럼 냄새를 풍긴다.

 

‘혐오’라는 말로 ‘충’이라는 말로 인간임을 스스로 내던지는 일을 거침없이 하기도 한다. 유전자의 다름으로 구분하기 전에 같은 사람으로서 조화를 이루는 일은 유토피아처럼 여긴다. 이 문장들은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새롭게 다가온다. 나와 당신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가슴을 후벼 팠으면 한다.

 

여자와 남자가 사회에서 어떤 상황으로 위치해 있는가는 모두에게 새로운 시선을 갖는 기회를 준다. 내가 선택할 기회조차 없는 상태에서 강제된 것이기에 여자, 남자라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 폭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류가 진보한다는 것은 어느 한 편으로 집중되는 발전은 아니다. 그런 사회구조에서 만들어진 문화가 변화하려면 주체로 선 내가 주체인 당신과 동행하며 얻는 가능한 변화이다. 페미니즘 공부는 가능한 변화를 위한 첫 걸음으로 좋은 선택이다.

 

“바로 그 점이 문제의 일부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젠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거나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겉보기에는 사소한 상황들에서, 남자들이 나서서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를 드러 내는 일을 겁내지 않아야 한다. 그래, 말은 쉽다. 젠더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전 세대가 각자 의식하고 있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한국사회에서 ‘성sex’이란 말은 겉으로 편하게 주고받거나 나를 드러내는 말로 자리 잡을 수 없다.

 

‘금기’가 넘치는 사회라고 할까. 19금. 일상에서 자주 보이는 표식이다. 그것은 어쩐지 대상을 더 강조하는 표식이 되어 19금을 넘나드는 것도 일상이라 할 만큼 진부하다. 형식에 그치는 사회제도를 내가 순순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사회제도를 그게 현실이니까 어쩌겠냐는 말로 대신한다. 원래 인생은 부조리해!?

 

사회 강자로 살아온 사람들이 나서서 부당하다고 외칠 이유는 넘친다. 이젠 그런 남자를 만들어야 하는 일부터 해야 하는 걸까? 이 점에서 ‘나’를 성찰해야 한다. 과연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역꾸역 해올 수 있던 것은 내가 자유롭기 위해서 멈출 수 없었던 이유가 크다.

 

페미니즘 공부는 나를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데 아주 훌륭한 근거였다. 자유인으로 누리는 삶은 내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확실하게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만 자유로운 세상을 나는 결코 원하지 않는다. 당신도 자유롭기를 바란다. 그래야 서로 신나게 놀 수 있지 않은가.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문화를 만듭니다. 만일 여자도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우리 문화에 없던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문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안체 슈룹 글과 파투 그림의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를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그림과 글로 비교적 쉽게 페미니즘 역사를 보여주는데 ‘하나의 페미니즘’은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나 새로운 제안, 연구 결과, 그리고 지식만이 있을 뿐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나누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문화는 사회에서 약자들을 배제해온 문화였기에 모든 사람을 품어 향유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고 그 시작은 내가 먼저 첫 걸음을 떼면서 형성할 수 있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인류 역사에 일방적으로 내린 전 세계로 뻗친 뿌리를 흔들어야 한다. 모든 가부장제에 합류해 강한 협력을 조장한 자본주의에서 배제를 더 이상 참아낼 이유가 없다. 자본주의에서 외면당한 목소리가 내 안에서 숨죽이고 있지 않던가.

 

“그 순간 나는 친웨 아줌마의 성격에 모난 데가 전혀 없는 비결을 알아차렸다. 아줌마는 그것들을 몽땅 뭉개고 있었다. 아줌마는 무한한 아량의 바다였다.

 

남편이 나만큼 행복하길 원했던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를 자유롭게 해주는 일이었다. 그 자신이 선택한 것은 성장하면서 자기 안에 쌓인 분노를 풀어내는 일이다. 길을 걷는 만행이었다. 그는 인도로 명상의 길을 떠났고 자기와 마주함에 온전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와 동행하는 여행자들로부터 ‘부처’라는 허무맹랑한 호칭이 내게 붙었다.

 

내가 충분히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에 남편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결과. 남편의 길 떠남이 가져다 준 것은 가족 부양의 책임이다. 당시 나는 충분한 능력이 사회 분위기와 맞아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결핍은 아이들에게서 생겼다. 두 어른의 결정만으로 세 아이들은 각각 아버지 부재라는 일상의 결핍에 힘든 성장기를 거쳐야 했다. 특히 남자 아이가 겪어야 했던 결핍은 한국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자신과 다를 때 혼란을 주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부모라는 말로 가해지는 사회폭력은 얼마나 이기적이던가.

 

친웨 아줌마처럼 나는 무한한 아량도, 타인에게 말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한 것도 아니다. 나는 그의 불행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몰랐고 그 스스로 찾아내주길 바란 이기심이 먼저였다. 물론 나는 관용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 이면에는 ‘나’의 공감과 만족, 지금 이대로 행복할 수 있는가에 달린 점을 빼놓을 수가 없다. 나를 위해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과 나를 위해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게 한 관용으로 덮은 자기애와 비슷하다.

 

“왜 아줌마는 단정하게 반응해야만 존경받을 수 있었을까? 왜 아줌마는 모욕에 직면하여 세상에 대고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을까? 왜 아줌마의 완벽함은 아무것도 받지 않는 것에 달려 있었을까?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관리를 필요로 하는 고된 일이다. 외모지상주의에서 학벌주의 등 나를 에워싼 사회에서 요구하는 나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나는 인정하는 일부터 하면서 비로소 ‘나’로 살아가는 시간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 힘은 아무리 둘러봐도 평생의 벗으로 늘 곁에 있어준 책이었다. 문학에서 만난 여성들의 목소리는 나를 자연스레 “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선택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제, 비로소 ‘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넘치기를 바라면서 2018년을 열고 있다. 그대, 함께 가시려나... .

 

[덧붙임]

팟캐스트 <그 많은 페미니즘 이야기>를 송출하고 못내 아쉬운 점들을 후기로 정리해 보니 마음의 무게가 덜해진다. 평생 공부를 하면서 남은 삶을 잘 짓고 싶은 마음. 이 방송을 듣고 이 글을 읽는 이들 모두가 페미니즘 공부 효과를 같이 나눌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삶은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스스로 한 걸음 딛고 걸어가는 ‘선택’이 연속되는 낯섦과 두려움에서 이어지는 거였다. 나는 노마드의 삶을 즐기는 중인데 그 가운데 함께 나눌 페미니즘 공부로 새로운 세계를 꿈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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