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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재규] 3장 사무라이 (2)

牛公移山 (bhsaurus@gmail.com)
2019-05-05 1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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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가 아는 바로는 히구치 선생은 원래 일본 육군 기병 대위 출신으로 조선에 건너왔다가 예편해서는 아예 조선에 눌러앉았다고 한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부인은 일찍이 그가 경성의 용산 주둔 기병대에서 근무하던 당시 본국에서 병사했다고 들었다.

중일전쟁이 벌어지고 그가 소속해 있던 사단이 만주로 출병하게 되자 히구치는 신병을 핑계 삼아 군에서 자진 예편하였다. 그리고 딸을 조선으로 데리고 와서는 한동안 경성에서 생활하다가,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이곳 안동농림학교에 축산과목 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40대 중반의 그는 입만 뻥끗하면 사무라이 예찬론을 늘어놓는 전형적인 무골형의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로 현재 일본 군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비난을 서슴지 않아 어찌 보면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조마조마할 지경이었다.

그는 싸움을 즐기는 무사는 진정한 사무라이의 자격이 없다고 했다. 올바른 사무라이는 의(義)가 아니면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 항상 그가 주장하는 지론이었다. 그런데 현재 일본의 군부는 말로는 항상 무사정신, 무사정신을 떠들어대지만 정작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과는 상관없이 권위주의와 속물근성에 빠져 있으며, 그 결과로 국민들을 무모한 전쟁 속으로 몰아넣어 고통만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가 조선인이었다면, 설사 일본인이라고 해도 내지 일본에서였다면 아마 그 역시 몸이 성치는 못했을 것이었다.

그는 특히 학교의 교련 교사들과 사이가 나빠서, 그들을 속물이라 부르며 경멸해 마지 않았다. 자연히 같은 일인 교사들보다도 조선인 교사들과 더 친숙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재규의 교련 성적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지난 3학년 때는 '가'를 맞기까지 했다. 성적표를 받아든 그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 점쟁이가 니 관상을 보고 뭐라 캤는지 아나? 열심히 공부는 하는데 졸업장은 하나도 몬 받고, 돈은 벌어도 재산을 몬 지키고, 커서 사람을 해치게 될 상이니 아예 무관을 시키라 카더라. 그런데 이 교련 점수가 이게 뭐꼬?" 하면서 혀를 차기는 했지만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나무라자니 사실 성적이 나쁜 과목은 비단 교련 하나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히구치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재규는 못내 못마땅한 얼굴을 펴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거나 말거나 형규는 내내 옆에서 따라오며 재규가 기어이 못 참고 화를 터뜨리지 않을 정도로만 약을 올려댔다. 그것은 말하자면 형규도 왜 재규가 혼자서만 히구치의 집에 가고자 하는가 하는 속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재규가 다시 4학년이 되어 히구치의 학급이 된 데 대해서 마음 깊숙히 기쁨을 느꼈던 은밀한 이유, 그것은 바로 히구치 선생의 무남독녀 외딸인 히구치 마사코 때문이었다.

마사코는 우연히도 재규와 같은 열 아홉, 대구에서 고녀(高女)를 마치고 집에서 아버지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물론 학교로 보면 그보다 두 학년이나 위였지만 재규 쪽에서 보자면 같은 동갑의 여성이었다. 게다가 타고난 성격 탓인지 워낙 활발하고 굳이 남녀를 가리는 조신한 태도가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성격도 성격이지만 아버지 히구치의 가정교육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국가주의자로 오해될 수도 있으리만치 사무라이 예찬론을 펴는 히구치였지만 그의 사상적 바탕은 오히려 자유주의에 가까왔고, 자신의 철학에 철저하고자 하는 그의 생활은 가정에서도 외동딸에 대한 교육에까지 그대로 드러났다.

흔히 일본인들이 가지는 조선보다 엄격한 남존여비 사상과 달리 그는 딸을 말하자면 제멋대로 키운 편이었는데, 그것은 그의 교육관도 교육관이지만 아마도 일찍 어머니를 여윈 딸에 대한 애처로움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그 마사코를 재규는 1학년 방학 때 히구치의 초대를 받고 그의 집에 놀러갔다가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1학년이 끝날 동안 몇 번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렇다고 둘 사이에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도 마사코에게도, 서로는 히구치 선생을 매개로 몇 번 얼굴만 마주한 사이였을 뿐이었다.

우직한 만큼 다소 내성적인 성격에 가까운 재규에 비해 그녀는 활달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어서 재규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굴기는 했지만, 그런 마사코를 처음 대한 재규는 그녀의 개방적인 태도가 낯설어 사실은 거리감부터 느껴졌었다.

마사코에 대한 재규의 마음이 연정 비슷한 느낌으로 바뀌게 된 것은 오히려 그녀를 못 보게 된 2학년 이후부터였다. 늦된 나이에 비로소 사춘기의 열병을 앓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객지의 외로운 밤이면 고향 어머님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마사코의 얼굴을 떠올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핑계든 만들어 마사코를 만나고자 시도해볼 만큼의 주변머리가 그에게는 없었다. 누구나 한 번은 앓아보는 사춘기의 홍역 같은 것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제 다시 우연찮게도 히구치의 반이 되자 재규는 내심 마사코와의 재회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기회는 왔다. 방과 후 느닷없이 교무실로 그를 부른 히구치 선생이 집으로 심부름을 시켰던 것이다. 거기에 형규가 끼어들다니, 마사코와의 오붓한 재회에 결정적 훼방꾼이 나타난 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형규로서야 재규가 마사코와의 재회에 들떠 있다는 것까지야 알 수 없었다. 그저 선생에게 그들과 같은 또래의 외동딸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예쁘다는 말도 들었지만 그야 직접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사실, 마침 그로서도 뜻하지 않게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는데 호락호락 물러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계속 재규가 찜찜한 얼굴을 풀지 않자 형규는 나름대로 화제를 돌리려 해보았다.

"니 4학년들을 내지 항공병 학교에 지원 받는다 카는 얘기 들었나?"
"그 이왕 전하가 사령관으로 계시다는 그 학교?"
"그래 맞다. 내는 이번에 그 학교에 지원할라 카는데 니 같이 안 갈래나?"
"미쳤나? 학교도 다 안 마치고 전쟁터에 나간다꼬?"
"학교는 무슨, 니나 내나 무슨 공부를 우등을 하나. 학교 마치면 뭐 할끼고? 내가 들어보이 항공병학교 지원하면 학교는 졸업한 걸로 해준다 안 카나. 생각해 보그레이. 은빛 하사부사를 타고, 구름 사이를 뚫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그 모습을. 멋있지 않캤노?"
"문둥이 자슥, 멋있을라카면 니나 하그라. 내는 빠질란다."

항공병 학교 얘기는 재규도 들어 알고 있었다. 일본에 있는 요카이치 항공병 학교에서 특별 간부후보생을 모집한다는 얘기. 학교라 하지만 사실은 준 군대였다. 육군 항공대 52비행사단 소속의 하사관 학교인 것이다.

마침 이왕부(李王府)의 영친왕 이은 중장이 바로 그 사단의 사단장으로 있다 해서 학생들 사이에서 이야기 거리가 되었었다. 하사부사는 일명 '제로 전투기'라고도 불리던 구형 97식 전투기를 대체한 일본군 항공대의 신형 전투기 이름.

"뜬금없이 갑작스럽게 뭔 하사부사 타령이가?"
"니 <다케야마(武山) 대위> 안 읽어봤노?"
"정인택이가 쓴 다케야마 대위? 니는 책도 잘 안 읽는 아가 언제 또 그 소설은 읽었노?"

재규의 퉁명스런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형규는 약간은 도취한 듯 들뜬 목소리로 연극 대사를 외듯이 읊어댔다.

"아, 바람처럼 날아서 한 점 사쿠라처럼 떨어진 하늘의 신병(神兵), 다케야마 대위여!"
"자알 한다. 아예 외워버렸구만?"
"그래, 내는 그 책을 읽고 밤에 비행기 타는 꿈까지 꿨다 안 카나."

재규는 형규가 다케야마 대위 이야기를 꺼내자 싱긋 웃음이 피어올랐다.

"니 그 다케야마 대위가 누군지 아나?"
"글씨, 내가 그걸 우예 아노? 선산 사람이라고 써 있긴 하드라만서도...?"
"맞다, 바로 우리 고향 선배라카이. 최명하라꼬 우리 선산 사람인기라."

재규는 그가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사실에 괜히 자신도 모르게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 역시 최명하에 대해서 말만 들었지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는 그보다 아홉 살이나 위였던 것이다. 그는 일찍이 1940년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항공대 중위로 태평양전쟁에 참가하였다가 그만 1942년 전사하였다. 인도네시아의 네덜란드 군 비행장을 폭격하다 불시착하여 생포당하게 되자 권총으로 자결하였다고 하는데, 그의 최후는 반년이 지나서 일본군이 수마트라를 점령한 뒤에야 원주민들의 입을 통해서 알려지게 되었다.

반도인이면서 황군으로 참전하여 장렬히 옥쇄한 그의 무공은 당시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조선인과 물자를 전쟁에 동원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던 일본 당국으로서는 아주 좋은 선전거리였다. 이런 방침에 호응하듯 소설가 정인택이 최명하를 주인공으로 삼아 쓴 장편 전기소설 <다케야마 대위>는 나오자마자 그해 총독상의 유력한 수상 후보작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소설 읽고는 마, 항공대에 지원하고 싶어졌다, 이 말이가? 부모님한테는 말씀 드려봤나?"
"어데, 미리 말씀드리면 안 된다 칼 게 뻔한데 뭘. 지원해놓고 말씀 드리면 그때야 우짜시겠노.
그건 그렇고 니도 장래 군인이 된다고 안 캤나. 진짜 같이 지원 안 해볼끼가?"

사실 재규야말로 장래 희망이 군인이라고 말해왔다. 다만 그는 최명하처럼 육사를 지원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히구치 선생처럼 제국 육군의 기병장교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히구치의 방에는 금색 술을 수놓은 장교복이 항상 걸려 있었다. 기병대는 의장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서 제복이 화려했다. 그 제복에 반한 그는 만일 군인이 된다면 자신도 기병장교가 되겠노라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니 같은 육사 출신이라 해도 최명하처럼 항공병과나, 아니면 보병이나 포병 따위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더구나 육사도 아니고 기껏해야 하사관이나 될 게 뻔한 항공병 학교라니.

육사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학교부터 마쳐야 되겠지만 일단 4학년만 마쳐도 응시자격은 주어진다고 들었다. 그래서 재규는 우선 올해가 지나고 나서 한번 시험을 쳐볼 요량으로 있었던 터였다.
다만 자신의 성적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한번 쳐봐서 안 되면 한 1년 죽어라고 들러붙어볼 생각도 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동네에서 병정놀이를 할 때마다 번번이 대장은 그의 차지였다. 정미소집 아들인 그가 대장이 되는 데 대해 아이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자신은 장래 장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라왔다.

아버지도 자식이 군인이 되는 데 대해 적극 찬성은 아닐지라도 은연중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교련 점수야 '가'를 면하지 못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히구치 선생의 영향으로 교련이란 과목 자체에 별 힘을 쏟지 않은 때문이다, 라고 그는 스스로 자위하고는 해왔었다.

나도 노기 대장 같은 사나이다운 사무라이가 되리라, 항상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해왔다. 어느새 의병대장은 그의 뇌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긴, 집을 떠나 안동에서 하숙하는 동안 이제는 아무도 그에게 왜놈들을 때려잡는 의병 이야기를 해줄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었다. 그 위에, 눈 뜨면 보고 듣는 이야기는 죄 귀축 미영(鬼畜 美英)을 무찌르고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해 나가는 위대한 황군의 무용담뿐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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