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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만 장군의 기적

牛公移山 (bhsaurus@gmail.com)
2019-06-28 16: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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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열왕기 하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세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나아만이란 장군이 있었다.
거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자였는데 그만 나병(한센병)에 걸렸다.

거두절미하고, 선지자 엘리사가 그에게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완치될 거라고 했고,
(약간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 말대로 하자 실제로 완치가 된..정도가 아니라 피부가 아기처럼 보드러워졌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역전의 맹장 피부가 아기 피부..수줍어라 ㅋㅋ)


어려서 교회 다니던 시절에 들었던 이 얘기가 특별히 기억에 남은 이유는,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여섯 번을 씻어도 전혀 변화가 없었는데도 실망하거나 화를 내지 않고 믿음으로 일곱 번을 씻자마자 순식간에 나았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애당초 성경 본문에는 그런 구체적 표현은 없다.
이게 목사님의 살 보태기인지, 이 얘기가 좀더 자세히 다뤄진 다른 자료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의학적 치료가 아니라 기적에 대한 얘기니 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기적으로 보자면 씻을수록 조금씩 나아지는 것보다는(그것도 물론 당연히 기적이지만) 사실 이쪽이 좀더 극적으로 효과가 높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묘사는 사실 어쩌면 종교와는 상극이랄 수 있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양질 전화의 법칙을 떠올리게 한다..ㅋㅋ)


요즘도 종종 이 얘기가 떠오르는 건, 문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이런저런 요구와 문제제기를 하면 (꼭 극문이 아니더라도)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좀 기둘려라 뭐가 그리 급하냐고 오히려 우리를 나무랐기 때문이다..

허니문 핑계를 대는 것도 시효가 있는 법..
이제 취임 2년을 넘기고 3년차로 반환점을 향해 가는데..
대통령 임기가 50년도 아니고, 남은 기간 뭔가 달라지려면 최소한 그동안 그럴 수 있는 싹수는 보여줬어야 한다..-__-

아니 마치 무슨 나아만 장군 얘기처럼 5년 임기 내내 미적거리다가, 임기 마칠 때 한꺼번에 기적처럼..마술처럼 해결하겠다는 건가??

익스큐즈는 종국에는 자기합리화를 넘어 인지부조화에 이르는 법이다.
최근에는 뭐가 그리 급하냐, 조금만 더 기다려라를 넘어, 수구 적폐세력의 저항이 워낙 완강하니 지금 정권이 몇 번을 더 집권해야 그때쯤 가서 비로소 개혁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황당한 소리까지 들었다.
(물론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한 얘기는 아니지만..ㅋ)

자유한국당과 이전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여당일 때조차도 국회선진화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하려고 억지를 부리고 판을 흔들었다.
그 결과로 최소한의 떡고물을 챙기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국을 만들어냈다.

이런 걸 과거에는 '야성(野性)'이라고 불렀고, 투쟁성이라고 했다.
(엄밀히 따지면 양자 사이에는 물론 차이는 있지만, 일단 공통점만 얘기하고자 한다..ㅋ)

새누리는 여당일 때도 발휘하던 야성을, 민주당은 야당일 때도 시도조차 한 적이 없고(필리버스터 정도는 예외적으로 인정해주겠지만..-__-)
여당이 돼서는 아예 어차피 안 될 거니까..하면서 선진화법의 뒤에 숨어서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아왔다.

한마디로 야성, 투쟁성, 진정성 그 어느것도 오직 입으로만 떠들 뿐 행동으로는 한 번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다.
어느 쪽이냐면, 정작 민주당은 최근 10여 년간 대중들의 지지에 대해 항상 뒤통수로 화답해왔다.
(이에 대해서는 조만간 한번 별도로 정리해보고자 한다..-__-)

그래도 지지자들은 여전히 믿고 기다리라고 한다.
마치 인터넷 유머에 나오는 '일본 축구국가대표 1진'*을 기다리라는 소리 같다...ㅋ

(* 한일 축구국가대표 경기에서 일본이 지면 일본 축구팬들이 항상 '일본 대표는 정규 1진이 아니었다'고 매번 변명을 해서 한국 축구팬들이 비아냥 삼아 쓰는 표현)

안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래도 당장 경기는 살려놔야 하니 근본적인 재벌 경제체제, 대기업 불공정거래 갑질에는 손도 못 대고
어설프게 최저임금 핑계로 수구 기득권세력에 영합해 애꿎은 을들의 싸움으로만 몰고 간다.
거기에 방해가 되는 민주노총은 수구좌파라고 매도하고...급기야는 노동개악에 항의하던 과정에서 벌어진 사소한 우발적 충돌을 빌미로 노동운동의 대표자를 '도주 우려가 있다'는 모욕을 뒤집어씌워 구속시킨다.
그리고는 '구속은 사법부가 했는데 왜 우리한테?'라는, 왠지 낯설지 않은 유체이탈화법까지 구사한다.

대통령 하나 바꿨을 뿐인데..가 아니라,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촛불로 바뀌기를 기대한 세상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한마디로 촛불에 대한 배신이고, 자칭 촛불 정부의 파탄이다.
아니 이건 자칭도 아니고 '참칭(僭稱)'이라고 불러야 맞다...-__-;;


누구나 이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고 말한다.
나 같은 사람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이 정부의 성공의 기준은 무엇인가?

오로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국민들이 민주당에 표만 찍으면 된다?
그래서 개혁은 하나도 제대로 안 하면서 이벤트 마케팅으로 지지율 관리에만 목을 매는 건가?

최악은 아니니 차악에 만족해라?
감히 최선이나 차선을 요구하는 건 수구좌파다??


문재인은 나아만이 아니다.
여섯 번을 씻어도 아무 티도 안 나다가 일곱 번을 씻고 나서야 기적이 일어나 아기처럼 피부가 보드러워지는 일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동의할 수 있는 것은 한 번 씻으면 한 번 씻은 만큼, 두 번 씻으면 두 번 씻은 만큼 깨끗해지는 것이다.
최소한 한두 번으로는 티가 안 나더라도, 세 번 네 번이면 티가 나야 한다.
그게 상식이고, 일곱 번 다 씻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건 좋은 말로 하면 순진하거나 멍청한 것이고, 나쁜 말로 하면 불순한 사심을 감춘 주장이다.

하물며 지금도 여전히 비정상인 사회, 시스템에서 고통 받고 심지어 죽고 다치는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마당에
자신은 그런 피해를 겪는 입장이 아니라고, 그들의 고통을 알지도 못하고 신경도 안 쓰면서 '뭐가 그리 급하냐 기다려라' '수구좌파로부터 대통령을 지키자'...??

자신이 의식하든 안 하든
그 역시 좋은 말로는 순진하고 나이브한 거고,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멍청하거나 양심이 없는 소리다..-__-;;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나아만 장군의 기적이 아니다.
현실에서 이 정부의 성공의 발목을 잡는 것은 수구좌파 민주노총, 민주진보진영이 아니다.
이 정권 스스로의 무능과 무책임, 무사안일이다.

지난 3년간 기적의 징표는커녕 실패로 치닫는 결과들만 계속 쌓이고 있는데
굳이 기적이라면 국민들이 이미 몇 차례나 사망선고를 내린 수구 정치세력을 지지율 30%까지 되살려주는 그야말로 '기적'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나아만의 기적만을 기다려야 할까?
아무리 특정 정치세력의 지지자들이 종교나 다름없는 수준이라고 하지만...-__-;;



• 시민단체 중견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되도록 좀더 객관적인 주관을 가지되 독선은 배제하자..는 모토로 세상을 바라보고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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