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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방생활(8)

최진수 (mediamall)
2021-09-10 07: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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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범해 보이는 이것이 교도소식 된장국이다. 수용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똥국으로 불리는 교도소 된장국은 거의 매 끼니마다 나오는 단골메뉴다.
재료도 거의 바뀌지 않는다. 백년전 부터 지금까지 사시사철 배추된장국이다.
수용자 1인 1식대는 1386원이다. 이 금액으로는 정상적인 상품을 구입하기 어렵다. 그래서 수용자 식자재는 상품과 쓰레기의 중간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럼에도 이 금액으로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이른바 규모의 경제학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서울구치소 처럼 3000명이 넘게 수용돼 있으면 구입하는 식자재량이 어마어마한 규모다.
따라서 다소 상품성이 떨어지는 물건을 시중가보다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다.
그래서 서울구치소의 경우 그 유명한 닭미역국이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기도 한다.
서울구치소에 있다 형이 확정돼 지방의 작은 교도소로 이감을 가면 음식의 질이 확 떨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 원리다.
다시 배추된장국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구치소나 교도소에서 된장국에 넣는 재료가 시금치나 아욱 근대 냉이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비싸니까.
하지만 배추도 사시사철 싼 채소는 아니다. 겨울에서 봄까지는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 그런데 어떻게 교도소에선 사시사철 배추된장국을 공급할 수 있을까?
아마 백년전부터 그랬을 것으로 보이는데 배추값이 최하로 떨어졌을 때 사들인 걸 염장하는 거다. 그렇게 염장해 놨던 배추로 겨우내내 배춧국을 끓여댄다.
그래서 겨울이 깊어갈수록 교도소된장국은 신맛이 더해간다. 염장한 배추가 발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효된 배추와 역시 발효한 된장이 만나면 참으로 오묘한 맛을 낸다. 다른 양념이 거의 들어가지 않아도 구수하면서도 시큼털털한게 진짜 별미다.
해서 지난 가을 김장하고 남은 배추를 독에넣고 염장을 해봤다. 소금물에 파뿌리만 넣고 재워두었는데, 오늘 꺼내 맛을 보니 김치보다 맛있다.
그동안 뚜껑조차 열어보지 않았으니 항온을 잘 유지해 기가 막히게 발효가 잘된 것이다.
이렇게 십몇년만에 교도소식 배춧국을 끓였더니 맛이 괜찮다. 국은 많은 양을 끓일수록 제맛이 나기에 3000명 분의 서울구치소 된장국을 따라가진 못해도 날배추로 끓인 것보다는 훨씬 풍미가 좋다.
이맛이 궁굼하면 죄짓고 구치소엘 들어가거나 나처럼 가을에 배추를 염장하면 된다. 구치소에 수용되지 않고도 진짜 명품 된장국을 맛보려면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된장을 사면된다. 백년 넘게 이어온 된장맛이 근사해서 상품으로 팔고 있다.

 1980~90년대에 민주화운동 관련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지금은 강원도 화천 오음리에서 농사 짓고 글 쓰고 생들기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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