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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들기름 이야기

최진수 (mediamall)
2020-11-05 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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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으른 농부다.
귀농 15년차인(징역 가기 전까지 더하면 20년이 넘는다) 나는 아직도 저녁형 인간이다. 아침 해가 일찍 드는 게 싫어 동쪽을 산이 막은 곳에 집터를 잡고도 느티나무를 동쪽 창 앞에 심었다. 게으른 놈이 본업은 뒷전이고 기자질에 아스팔트 농사에만 열중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밭은 망한 초나라의 농토처럼 망초가 점령하기 일쑤다. 그래도 딴에는 알량한 자존심 하나로 농약은 쳐다도 안보고 염천 뙤약볕 아래를 기어 다니며 풀과 싸우다보니 망초 등 모든 잡초를 이기는 신통한 작물이 있더라.
늦은 것이 좋다.
모종한 들깨가 밭으로 나가는 철은 늦봄 초여름이다. 봄 작물 중에 가장 늦게 심는다.
출발은 늦지만 추수는 여느 작물과 비슷하다. 게으른 농사꾼에게 딱 맞다. 늦게 심으니 제초도 수월하고 향이 강해 병해충도 산짐승도 건드리지 않는다. 애초부터 들깨농사에는 농약이 필요 없다. 그런데 성분은 최고다. 혈관 건강을 지켜주고 간암을 막아주는 오메가 3, 6, 9 등 알파리놀레산과 루테올린 함유량이 세상 어느 씨앗보다 풍부하다. 한마디로 봉을 본거다.
느린 것도 좋다.
독일에서 들여온 엑스트라 버진 급 올리브유 냉압착(cold pressed) 채유기의 핵심은 느리게 돌려 큰 힘을 얻어내는 감속모터다. 천천히 도는 스크류가 강력한 압력을 만들어 볶지 않은 날깨에서 기름을 짜낸다. 40도씨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기름이 쌓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짠 기름엔 깻가루가 섞여 있다. 그냥 먹어도 좋지만 여과지와 중력에만 의존해 여과한다. 여과기를 쓰면 맑은 기름을 얻을 수 있지만 여과기는 기계가 만든 공기압을 이용하기에 기름을 산화시킨다. 이뿐이 아니다. 짜기 전 씻어 말리는데 걸리는 시간까지 꼬박 사흘이 필요하다. 이렇게 시나브로 만들어진 기름이 좋은 것이다. 양놈들 말대로 슬로우 푸드(slow food)다.
냉압착 착유기를 정직하게 돌리면 오메가 -3 함유량을 70%까지 올릴 수 있다.
좋은 것은 늘 적다.
‘액체금’으로 까지 불리는 생들기름을 제대로 짜내려면 양적 욕심은 포기해야 한다. 내가 주변머리가 없어선 지 들깨 5Kg을 짜면 겨우 1ℓ정도 나온다. 다행인 것은 생들기름의 적절한 하루 섭취량이 많지 않다는 것, 한 숟가락 정도의 분량을 아침저녁으로 나눠 먹을 때 소화흡수율이 가장 좋다. 처음부터 많이 섭취하면 본의 아니게 살까기 효과를 보게 된다. 물론 아침마다 공복에 소주잔으로 한 잔 씩 마셔도 멀쩡하다는 친구도 있다.

고압력을 만들 수 없던 시절에도 기름은 있었다. 
조상들은 어떻게 들기름을 만들어 냈을까?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들기름은 참 맛이 없었다. 이유는 들깨를 볶지 않고 쪄서 짰기 때문이다. 찐 후에도 바로 짤 수 없어 맷돌에 갈아 베 보자기에 넣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누름틀로 기름을 내렸다. 
이렇게 내린 들기름은 풍미는 떨어지지만 안전식품이었다. 섭씨 100도 이상의 가열 과정이 없어서 벤조피렌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 
하지만 열에 약한 오메가-3 등 불포화지방산 성분이 많이 파괴됐다. 기름 색깔도 볶아 짠 것과 다르게 미색에 가까웠다. 
그런데 유압 프레스가 보급되면서 부터 착유 방식이 달라졌다. 들깨를 고온에서 볶아도 기름을 짤 수 있는 압력을 얻은 거다. 
이때부터 들기름 색은 짙은 갈색으로 변했고 거의 참기름 수준의 고소한 냄새와 맛을 내기 시작했다. 들깨를 태우다시피 볶으면 일정한 분량의 들깨에서 짤 수 있는 기름양도 배가 되니 업자도 좋고 소비자도 좋은 셈이다. 
하지만 전술 했듯이 이렇게 짠 들기름은 말 그대로 독이다. 얼마 전 보도 됐듯이 대기업 제품들에서도 발암의심물질인 벤조피렌이 기준치를 훨씬 초과한다. 
풍미와 양을 늘린 대신 인체에 치명적인 물질을 만든 셈이다. 
생들기름이 이런 들기름에 비해 비싼 이유는 같은 양의 들깨에서 나오는 기름의 양이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먹거리를 선호하는 추세에 따라 시중에는 생들기름이 넘쳐난다. 하지만 진짜는 아주 적다. 관련 법규가 없기 때문에 진짜 개나 소나 생들기름 행세를 한다. 들깨를 볶지 않고 짠다고 다 생들기름이 아니다. 
시중에 보급된 착유기의 99.99%는 예열장치가 들어가 있다. 깨를 볶지 않아도 압착과정에서 가온을 하는 셈이다. 
방앗간을 오래 경영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예열장치를 끄고도 기름을 짤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들깨를 데운다고 한다, 나에게 대단한 호의를 가지고 있는 방앗간 주인은 100도만 넘지 않으면 생들기름의 노란색을 얻을 수 있으면서 기름양도 많이 나온다며 이 방법을 권했다. 
한마디로 사기를 치라는 거다. 
해서 들기름은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이것이 내가 들기름 장사에 뛰어든 이유다. 
나는 내 인격과 신용을 팔겠다는 생각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1980~90년대에 민주화운동 관련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지금은 강원도 화천 오음리에서 농사 짓고 글 쓰고 생들기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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